[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르네요"

조회수 2016. 6. 9.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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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 fnt 실장의 책과 삶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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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 곁에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살아보겠다는 뜻의 다른 말입니다.

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가 예측 불허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릴레이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뜻밖의 독서 취향을 발견하고 의외의 책과 조우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소설가 김연수->'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출판기획자 조원식->만화가 박흥용->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준익 감독->박정민 배우->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김봉진 '배달의 민족' 대표->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김주환 연세대 교수->뮤지션 한희정->김대현 작가->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 편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김대현 작가가 추천한 이재민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이재민 fnt 스튜디오 실장님을 추천합니다. 예전에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문학적 기초가 단단하신 분 같았습니다. 어떤 책을 읽는지, 요즘 근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대현 작가 편 바로가기

이재민 스튜디오 fnt 실장과는 이메일을 통해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스튜디오 fnt가 뭐하는 곳인가 궁금해서 검색해봤습니다. 홈페이지가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한눈에 짐작이 되더군요. 한번 일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튜디오 fnt 홈페이지 바로가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소개받은 김대현씨와는 어떤 관계지요?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와 김대현 작가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에 같은 회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함께 야근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고요. 지금은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연락이 닿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2006년에 시작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fnt를 기반으로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인쇄 매체들과 아이덴티티 같은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여한 국내외 전시회로는 《그래픽 디자인, 2005 ~ 2015, 서울》, 《타이포잔치 2015: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Weltformat 15 Plakatfestival Luzern》, 《Korea Now! Craft, Design, Fashion and Graphic Design in Korea》 등이 있습니다.
현대백화점(The Hyundai) 브랜드 아이덴티티
그 외에도 현대백화점이나 JTBC 같은 기업과 국립현대미술관, 정림건축문화재단, 국립극단, 서울레코드페어 같은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과도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작은 고양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이재민 개인 홈페이지 바로가기

-대표작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표작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최근에 작업한 것들의 잔상이 많이 남아있기 마련이겠죠. 최근 작업 두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 번째 것은 전위주의 재즈 연주자 김오키의 Cherubim's Wrath 12인치 바이널입니다.
김오키 앨범 디자인 - Cherubim's Wrath (12" LP)
이 음반은 원래 2013년도에 CD로 소량 제작됐다가 품절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비트볼 뮤직의 '21世紀 한국째즈 클래식스' 프로젝트 중 하나로 180그램 오디오파일 바이널로 재발매됐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이 앨범은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라이너 노트(음악 감상에 도움을 주기 위한 글)에 적힌 황덕호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자면, 김오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1970년대와 2000년대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모습을 재즈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앨범의 수록곡들도 착하게 살며 세상의 풍파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삶의 막장에서 품게 되는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케루빔(Cherubim: 천사)'이란 우리 사회의 민초들을 뜻한다고 하네요.

두 번째는 '書(Letter)'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더블린의 Hen's Teeth Prints에서 기획한 전시에 참여했던 작업입니다.
텍스트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들이 어떻게 다뤄지느냐에 따라 때로는 더 명확하게, 때로는 더 모호하게 바뀌어 갑니다.

저는 의미 전달을 위한 매개로서 텍스트가 사진이나 그림에 비해 이런 비확정적인 모호함을 갖고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을, 書라는 한자와 책가도(冊架圖) 그림의 요소들을 가지고 표현해봤습니다.

이 작품은 온라인 매장인 Hen’s Teeth Prints에서 50매 한정 제작돼 판매도 되고 있습니다.

Hen’s Teeth Prints 온라인 매장

-자기 분야에서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꼽아주실 수 있나요?
그 역시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아주 많지만 단 한 명을 거론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지금 기분으로는,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그노시스(Hipgnosis)'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릴 때 들었던 많은 레코드의 커버가 이들의 작업이었습니다. 쓸​쓸하고 적막하며, ​약간의 서스펜스도 ​있는 이상​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들입니다.
힙그노시스가 디자인한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Dark Side Of The Moon(1973)

힙그노시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평소에 책은 어떤 것들을 어떻게 골라 보세요?
전공과 관련한 서적보다는 소설, 그림책, 사진집이나 만화책 등을 많이 사 보는 편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온라인 서점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서점이 있어서 한적한 저녁 시간을 틈타 슬쩍 다녀오곤 합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가지입니다. 어떤 책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서, 어떤 책은 표지가 멋져 보여서, 또 어떤 책은 띠지의 소개글이 흥미로워서 등등 다분히 충동적인 기준으로 책을 구입합니다.
책을 읽는 습관도 그리 진중한 편은 아닙니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서 10권을 구입하면 고작 3~4권 정도를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읽는 도중에 덮어 두고서 더 큰 흥미를 유발하는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구입해 두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사람을 조금 나태하게 만드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 사이에 특별히 손꼽히는 책이 있나요?
한두 권으로 꼽을 만한 그런 책이 있을까 싶네요. 역시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책이라면 있습니다.

디자인과 관련된 책은 아니지만,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Le Cosmicomiche)'라든가,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 폴란드의 소설가)의 '솔라리스(Solaris)' 같이 풍부한 상상이 깃든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책은 어떤 편집 디자인 수업에서 텍스트로 사용하기도 했었구요.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신가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후와 후와'(비채),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마음산책),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혜원출판사)입니다.
-각각 읽게 된 계기와 소감을 들려주시겠어요?
'녹턴'은 가장 최근에 읽은, 아니 지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얼마 전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구입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책 소개만 보고 바로 집어 들었습니다. 원래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거의 다 읽고 마지막 몇 장이 남아있어요.
'녹턴'은, 음악에 대해 깊게 다루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섯 편의 단편에는 프랭크 시나트라라던가 토니 베넷만큼이나 유명했던 나이 든 크루너와 그의 아내, 베네치아 광장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악단의 기타 연주자,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대학 동창들, 실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 경험했었고, 또 당장 오늘 밤에라도 경험할 수 있을 법한 흔한 실패담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언저리에는 술집에서 나즈막히 틀어놓는 음악과도 같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순간 잊혀지고 마는, 딱 그 정도의 볼륨과 존재감의 음악이 내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없지만, 매일 조금씩 현실에 마모되며 작어져 가는 희망 같은 것들을 부여잡으려 소리 없이 발버둥 치는 우리들의 모습이 ‘I Fall In Love Too Easily’나 ‘April In Paris’ 같은 친숙한 곡들과 함께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후와 후와'는 선물받은 원서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국내에 번역본이 나온 것을 알고 위의 '녹턴'과 함께 구입했습니다.
이 책은 어릴 적에 함께 살던 고양이 '단쓰'와의 추억을 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폭신폭신한 그림이 더해진 책입니다.

저도 어린 암컷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단쓰’처럼 할머니가 되겠지요. 동물들의 시간은 사람에 비해 너무나 빨라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작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집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 그러한 기분을 보듬고 어루만져 줍니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폭신폭신'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에 온전한 고양이의 전신을 담지 않고 일부분 만을 등장시켰으며, 그림에 그림자를 생략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그의 책은 보이면 보이는대로 모두 구입하는 편입니다. 그는 제작년 3월에 죽었습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작별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새로운 작품을 다시는 만나볼 수 없게 됐습니다.
'가벼운 나날'은 구입한 지는 한참 지난 책입니다. 절반쯤 읽다가 덮어둔 것을 발견하고 다시 읽는데 전에 읽은 내용을 기억해내느라 애썼습니다.
제임스 설터의 소설로서는 '어젯밤'을 처음 접했습니다. 약 5-6년 전 즈음 친구 C군에게서 선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접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의 이면에 아무도 모르게 생겨난 좁고 가늘지만 매우 어두운 틈을 - 보통 우리는 보고서도 모른 척하고 싶어지는 욕실 틈의 곰팡이나 환풍기 구멍의 먼지처럼 어느날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 참을 수 없이 신경이 쓰이는 그러한 부분들을 날카롭게 찾아내어 무서울 정도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벼운 나날'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무심하고 잔인한 것은 여전했습니다. 책을 절반 쯤 읽다가 덮어둔 후 일 년이나 지난 후에 다시 펼쳐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소설을 읽는 즈음의 저는 항상 무언가 혹은 누군가와 이별 중이었습니다.

작년 6월, 우연히 그의 다른 작품인 '스포츠와 여가' 번역본을 구입한 바로 며칠 뒤 신문에서 제임스 설터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이제 그의 신작도 다시는 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시집'은 시 '진달래꽃'를 교과서에서 접한 것 말고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얼마 전 책 표지를 제가 디자인하게 되어 정독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혜원출판사의 의뢰로 진달래꽃 양장본의 표지를 디자인했습니다. 진달래꽃 이외에도 같은 혜원출판사에서 펴낸 윤동주의 시집의 표지를 디자인한 적이 있습니다. 시리즈로서 발행된 두 책의 반응이 좋아 세 번째 시집도 만들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진달래꽃'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 디자인에는 각각 무엇을 담고 싶었나요?
혜원출판사가 이 시리즈 도서들을 기획할 때, 표지 디자인은 과거 발행되었던 책의 이미지를 재해석한다는 지침을 갖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전 작업인 윤동주의 시집도 예전 정음사에서 발간했던 증보판을 좀 현재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한 것이고요. 진달래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최근의 ‘복각판'과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완전히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사람들 눈에 익은 옛 표지의 이미지를 살려보는 것도 효과적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양장본이기 때문에 표지의 용지 선택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또 그 느낌을 잘 드러내기 위해, 인쇄는 하지 않고 전체를 2가지 색의 후가공으로만 구성했습니다.
-다음으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분으로는 어떤 분을 추천하고 싶으세요?
우선 허소영 님이 궁금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여자 보컬입니다.

또 한 분은 송재경 님. 음반 디자인을 통해 인연이 닿아 친해지게 된 밴드 ‘9와 숫자들’을 이끌고 있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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