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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트랜스휴머니즘 인류의 미래인가 유사 종교인가

조회수 2016. 4. 15. 09: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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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 출마한 미래운동가와 과학자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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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노화와 죽음의 한계 극복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 대선에 출마한 트랜스휴머니스트)
"그런 믿음은 유사 종교에 가까우며, 현재 시급한 빈부 해소의 초점을 흐릴 뿐이다." (트랜스휴머니즘에 반대하는 물리학자)

우리는 총선이 막 끝났습니다만, 지금 미국은 대선 경선이 한창입니다. 들려오는 소식은 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혹은 민주당의 클린턴 힐러리와 버니 샌더스 이야기입니다.

그 틈새 군소 후보 중에는 독특한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세를 키워가는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즘'의 기치를 내걸고 캠페인에 나선 미래운동가(futurist)입니다.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도 익숙합니다. 우리말로는 인문주의 혹은 인본주의입니다. 인간을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는 생각을 말합니다. 서양의 경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신 중심의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인간을 중심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대두된 사상으로 해석됩니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트랜스(trans)'라는 접두사는 '초월한다(transcend)'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합쳐서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하면 현재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조건을 넘어서는 초인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한 노력을 옹호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이런 생각이 힘을 얻고 있는 이면에는 속도를 더해가는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이 기반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과 생명 공학이 두드러집니다. 이 과학 기술 분야의 성취를 발판으로 인간 자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사상이 트랜스휴머니즘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혁신가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사실상 자신들이 의식하든 하지 않든 이런 암묵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철학을 기반으로 한 사회 운동까지 전개되면서 2016년 미국 대선에 후보까지 출마했습니다.

이 후보와 과학자의 논쟁이 최근 한 영문 웹진(Demos Quarterly)에 소개된 것이 있어 번역해 소개합니다. 점점 빠른 속도로 세를 키워가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장과 비판자들의 논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논쟁에 앞서 지난해 국내에도 번역되면서 크게 주목받은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오는 관련 대목을 먼저 소개합니다. 여기서도 '트랜스휴머니즘'의 대두가 우리가 직면하게 될 중요한 도전으로 언급됩니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이 천재 생쥐를 만들 수 있다면 천재 인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그 약이 건강한 사람의 기억력력을 극적으로 증진시키는 부수효과가 있다면 어떨까? 누가 그와 관련된 연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치료제가 개발되었을 때 그 약을 알츠하이머 환자만 사용하도록 하고 건강한 사람은 이를 복용해 천재적 기억력을 얻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외부 세계는 물론, 우리 신체와 마음까지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 능력은 위험한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영역의 활동이 전통적인 방식에 안주하지 못하고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말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대로 브레이크를 밟고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는 과학 프로젝트들을 중단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불멸을 향한 탐구-길가메시 프로젝트-와 떼려야 뗄 수 없이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에게 왜 유전체를 연구하는지, 왜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려고 시도하는지, 왜 컴퓨터 안에 마음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지 물어보라. 당신이 듣게 될 표준적 답변은 십중팔구 다음과 같을 것이다. 병을 고치고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이것이 표전적인 정당화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570-586쪽 중에서 발췌

트랜스휴머니즘 논쟁 원문

논쟁을 벌인 트랜스휴머니스트와 과학자 소개

졸탄 이스트반(Zoltan Istvan)
미국 작가, 퓨처리스트, 철학자, 트랜스휴머니스트.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랜스휴머니스즘  대표하는 후보로 출마.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
영국의 실험 고분자 물리학자, 셰필드대학 연구혁신 부총장. 2013년 공학물리학연구위원회(EPSRC) 위원.

졸탄 이스트반: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존재와 경험을 개선하려는 국제적 운동인 트랜스휴머니즘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어느 곳을 보더라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급진적인(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술을 기꺼이 수용하려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이미 우리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골격 기술 덕분에 다리가 마비된 장애인도 걸을 수 있고, 달팽이관 이식술 덕분에 청력장애인이 들을 수 있게 됐으며, 앞으로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수만 건의 치명적인 음주운전 사고도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모든 사람이 긍정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자면 이제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입니다. 머지않아 로봇과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은 모든 유형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삶은 보다 수월해질 것입니다. 근대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자유 시간이 앞으로는 일상적인 것으로 변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십 년 안에 트랜스휴머니즘 기술이 유전자편집 기술과, 3D 프린팅을 이용한 인공장기 맞춤 생산, 로봇을 통한 인체 부위 대체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생물학적 노화와 심지어 죽음까지 정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지구상에서는 매일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어가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공동체 들이 가슴 아픈 상실감을 겪고 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그런 상황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사용해 인간이 겪는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보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트랜스휴머니즘은 놀라운 철학이며, 동참하고 받아들일 만한 사회 운동입니다.

저는 여기 지구상에서 우리의 소중한 삶에 잠재된 최선의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가 트랜스휴머니즘을 필요로 한다고 믿습니다.

리처드 존스:

기술 진보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분명히 그런 입장은 아닙니다. 저는 나노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학문적 이력을 바쳐온 물리학자입니다. 저 역시 기술의 진보 덕분에 더 발전한 세계에서 번영을 누리는 거주자들, 즉 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우리 선조들보다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불가피한 것도 아니고, 그 방향이 사전에 예정된 것도 아닙니다. 사회운동으로서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이 이미 이룩한 성취를 이용해 일련의 미래에 대한 열망에 종교적 신앙을 더하려고 합니다. 그 열망이라는 것들은 현재 일어나는 추세에서 생겨가는 당연한 추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인류가 오래 전부터 열망해온 것들의 충족에 해당합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만물이 풍요로운 초월적 세계와 수천 년 계속되는 영원한 삶을 염원해 왔습니다. 그런 염원은 새로운 과학의 언어로 포장된다고 해서 성취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알츠하이머 같은 고령자에게 닥치는 잔인한 질병이 치유되는 것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치료법은 '철학이나 사회 운동에 가담'한다고 해서 생겨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생명의료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많은 돈을 투자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입니다.

제약업계 전반의 최근 역사를 보면, 특히 치매퇴치약 개발을 위한 노력들을 보면 점점 쉬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조만간 노화와 죽음을 물리치게 될 거라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합니다.

그리고 로봇과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쉽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은 대단한 부자로 만들어주는 반면 나머지는 경제적 불안이 더 커져가는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중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결과가 어느 쪽일지는 우리의 정치적 선택에 좌우될 것입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기술 결정론은 우리에게 필요한 이런 정치적 선택을 흐리게 합니다. 그 결과, 정치 경제 권력의 기득권층에게 힘을 더해주고 맙니다.

요컨데, 트랜스휴머니즘의 주장들 중 다수는 기술적으로 틀렸고, 그 운동의 이념적 뿌리는 의심스러우며, 트랜스휴머니즘적 시각의 확산이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기술에 관한 이야기 방식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졸탄 이스트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우리에게 '트랜스휴머니즘' 운동이 필요한가? 답은 자명하지는 않더라도 간단합니다. 운동의 형태로 전개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우리 대부분이 이성과 과학의 가치를 지지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 다수가 종교적인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경험을 바꾸거나 죽음을 극복하려고 애써야 할 동기를 별로 못 느낍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자연스럽게 정부에도 그대로 전달됩니다. 미 연방의회 의원의 100%, 연방대법원 판사, 대통령까지도 종교적이고 내세를 믿습니다.

이런 환경은 과학을 사용해 세계를 바꾸고 인간의 모든 질병을 퇴치하고 싶어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지원하는 데는 돈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일부 의학과 과학 연구에는 돈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국방이나 전쟁, 폭탄 제조 지원보다는 10배 가까이 '적습니다'.

우리가 암이나 심장질환, 알츠하이머, 심지어 노화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 때문에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운동으로 조직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재 권력과 싸워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이 과학과 의료 연구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군사산업복합체 대신 과학산업복합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술 발전 속도는 극적으로 빨라질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과학이 인류 종에게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혜택의 규모도 그만큼 빠르게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질병과 노화로부터 수십 억의 삶을 구하기 위해 경주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 환경 운동이나 여권 운동이 공식적인 운동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잠시라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조직화하고, 협력하고, 전략을 개발하고, 로비를 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세계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과 집단 들로부터 나오는 조직력과 힘 위에서만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 트랜스휴머니즘에는 그런 운동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돼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당과 TV쇼와 비영리기구, 신흥 기업들, 심지어 제가 벌이고 있는 '불사의 버스(Immortality Bus)' 같은 괴상한 전국 순회 버스 투어까지 등장해서 지원에 나서는, 진심에서 우러난(bona fide) 글로벌 운동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어떤 운동과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고 그것이 사회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 해법을 찾아낼 것이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생활 수준을 개선할 것입니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돼왔습니다. 또한 트랜스휴머니즘은 죽음과 질병을 피해가는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특히 구글의 캘리오(Calio) 같은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돈을 이 분야에 쏟아붇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낙관주의에 고취된 사회 운동이면서 전염성이 강합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성장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운동의 일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우리에게서 보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존스:

우리가 적정 비율에 맞춰 군사비는 보다 적게, 과학과 의학 연구에는 보다 많은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확실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영국이나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나라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그점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사회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과학과 기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연구 분야는 미국 사회가 종교적이어서 유럽보다 하기가 더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가령, 줄기세포 연구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기술 -농업 생명공학기술 - 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사회의 태도와 종교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명료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미국의 문제가 종교적 사고라고 생각한다면서 해법을 또다른 사회운동 - 그것 자체가 종교적인 반향을 낳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 - 에서 찾는 것은 저로서는 당혹스럽습니다. 당신은 미래의 어떤 사건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종교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묵시론적 전통과 아주 흡사해 보입니다.

사람들이 '특이점'을 '바보들의 열광(Rapture of the Nerds, 같은 제목의 풍자 소설이 2012년에 출간된 적이 있음)'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이점 이후 AI라는 선의의 초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물질적 풍요와 영원한 삶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약속은 종교적인 성격이 다분해 보입니다.

죽음과 질병의 퇴치가 매력적인 약속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맨처음 말에서도 암시했듯이, 과학이 조만간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의 기술적 근거에 대해 저는 아주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경우야 어찌 됐든, 우리가 현재 직면한 건강 관련 문제의 다수는 과학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는, 거주지의 버스 통근 거리에 따라서만도 평균 기대수명이 10년이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것만 봐도 우리가 겪는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미국의 경우만 해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과 안느 케이스가 연구 결과에서 보여줬듯이, 백인에 비히스패닉인 중년 남녀의 사망률은 실제로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이런 문제들은 의학 연구만 더 많이 한다고 해서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이며, 정치적 해결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기술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불가능한 꿈은 이처럼 '지금 여기'의 시급한 현안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뿐입니다.

졸탄 이스트반:

트랜스휴머니즘에 이른바 종교적 측면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특이점'이나 죽음을 퇴치하는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두 개념은 지속적인 행복의 장소를 발견하고, 죽지 않음으로써 영원을 보장받으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반영한 것입니다. 행복을 원치 않는다거나 자신의 존재와 의식을 영원히 유지하는 방법을 찾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제가 볼 때, 그동안 종교가 저지른 잘못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약속한 방법에 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행복과 무한한 수명을 이성과 과학 그리고 자연의 도구를 통해서 이루려고 합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공식 종교들은 죄의식과 근본주의, 기이한 의례, 영원한 저주의 위협을 통해 그것을 수행합니다. 우리들 다수는 그런 방법에 자연스럽게 끌리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과학과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길입니다.

당신이 인간 수명의 무한 확장이라는 목표를 과학이 달성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는 데 대해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성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쥐 세포를 회춘시켜 더 젊게 만드는 실험에서의 진전, 바이오 심장 같은 인공 장기 시험의 성과, 유전자 편집기술이 불러일으키는 기대 같은 것들을 보면 인간이 이전 어느때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매일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억만장자들이 참여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자원이 장수와 노화방지 분야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야 연구에서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노화를 숙명이 아니라 치유 가능한 질병처럼 보려는 목소리가 세계 전역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무한 수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과학적 문화가 더 확산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소식이 당신이 말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곧바로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적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가 일반적으로 그런 것처럼 미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수명이 길어졌지만, 그리고 세계 은행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전역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은 이전보다 높아졌지만, 사회 평등을 위해서는 할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빈곤을 퇴치하고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트랜스휴머니스트의 깃발 아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2016년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선거 유세를 하면서 과학 기술의 힘을 통해 세계 민주주의와 사회 평등, 평화, 환경 보존, 생활 수준이 얼마나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선거운동에서 주장하는 보편 기본소득제는 빈곤을 퇴치할 것입니다. 또한 무상 교육, 무상 보건과 함께 지금까지 개발된 최고의 트랜스휴머니즘 기술은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또한 아기가 출생하기 전에 인간 종을 개선할 수 있는 맞춤아기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최극빈층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 기술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해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정부 지원으로 달성할 것입니다.

많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저같은 기술인들은 얼마간 (정치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다가올 트랜스휴머니스트 과학기술의 세계를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점을 고수할 것이고, 이제 움트기 시작한 트랜스휴머니즘 운동 역시 그런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압니다. 우리는 급진적(radical) 과학과 기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 운동입니다. 이런 생각에 집중함으로써 세상 모든 사람이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리처드 존스:

인류를 더 낫게 하기 위해서 꼭 과학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것은 우리가 사회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습니다.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비전은 기술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한 방향이 오직 한 길만 있다고 제시함으로써 그런 선택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아까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인간 종을 개선할 수 있는 맞춤 아기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이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무엇이 더 나은 개선인지에 대한 결정은 누가 하지요? 신 기술이 돈과 힘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들 사이의 양극화를 심화시킬지, 모두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줄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장수와 노화방지 연구에 자원을 투입하는 억만장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저는 당신만큼 열광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 기술 연구의 의제가 부자와 권력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이 인류 전체에 대한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면서, 연구의 의제 설정 과정에서 부자들이 결정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 과정은 훨씬 폭넓게 개방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방향이 그 사회의 힘 있는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일 테지요.

당신이 트랜스휴머니즘의 유사종교적 차원을 인정해준 데 대해서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의 한 가지 역할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 캘리포니아 기술 엘리트들 사이에 인기높다는 사실; 기술이 독자적인 불가피한 논리에 따라 전개되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힘이라는 생각이 현재 사회 질서로부터 가장 혜택을 많이 입는 사람들에게 아주 위안이 된다는 사실; 트랜스휴머니즘이 사실상 캘리포니아 기술-신자유주의의 국가 종교이며, 모든 국가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 목적이 현재 권력자를 정당화한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하등 놀라울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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