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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六感] 이런 축제라면 매년 기다려지겠다

6. 독일 뮌헨 옥토버페스트에 6백만이 모여드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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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 사진작가 '육감(六感)' 다섯 번째 이야기는 옥토버페스트와 축제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뮌헨의 맥주 축제 현장에서 보내온 사진과 글입니다. 전문 작가답지 않게 사진에 취기가 흘러 넘칩니다. 초점이 안 잡혔거나 흔들린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술 기운이 아니라 인파로 인한 북새통과 뜨거운 축제 분위기 탓이라고 해명합니다.


어디 한번 읽어보시고 진위를 판별해 보시죠.

매년 이맘때면 독일에선 거나한 술 잔치가 벌어진다.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세계에서 가장 큰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다. 지금은 국내에도 꽤 알려졌다. 호프집 벽면에도 이곳 축제의 흥겨운 장면으로 도배된 곳이 많다.


독일어로 옥토퍼베스트가 '10월의 축제'라는 뜻이지만 시작일은 9월 15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이다. 그때부터 10월 첫 일요일까지 이어진다. 축제 초기에는 10월에 열렸지만 쌀쌀한 날씨를 감안해 9월부터 시작해 10월 초에 끝나는 걸로 바뀌었다고 한다.


올해로 183회를 맞았다.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것이 터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이어온 셈이다. 이걸 보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대략 6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웬만한 나라의 일 년 총 관광객 숫자보다 많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뭘 하나? 그게 궁금했다.

축제의 현장 뮌헨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뮌헨 중앙역 남서쪽에 자리잡은 너른 잔디밭이다. 이곳 사람들은 '테레지엔비제'라 부른다. 독일어로 '테레제 공주의 잔디밭'이라는 뜻이다. 옥토버페스트가 바로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 기념 승마 경기가 열렸던 곳에서 시작됐단다.


연일 내린 비로 도시 전체가 질척했다. 날씨 때문에 김빠진 축제가 될 줄 알았다. 더구나 유럽 전역이 테러 공포로 위축된 상황 아닌가. 실제로 올해는 축제 규모도 방문객 수도 줄었다는 말까지 들렸다.


하지만 웬 걸. 도착해보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행사장은 한눈에도 성황이었다. 맥주회사들이 세워놓은 임시 천막마다 사람들로 넘쳤다.

 

옥토버페스트의 맥주 텐트가 크다는 말은 나도 들어보긴 했다. 그래 봐야 일이백명? 삼사백명? 그 정도겠지, 라고 생각했다.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공간부터가 도무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었다. 그곳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어림으로도 만 명은 넘어 보였다.

이런 인파를 천막 여섯 개 정도가 다 수용하고 있었다. 큰 맥주회사들은 물론 작은 맥주 회사들 것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저마다 개성과 특징을 내세운 채 몇 백 명 정도는 거뜬히 품었다.


아, 그 유명하다는 축제의 한복판에 드디어 오게 되다니. 촌닭 장터 온 것마냥 내 나름대로는 감개무량했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축제의 규모는 실제로 보니 상상했던 것을 넘었다.


정작 천막 안은 어느 것이나 비슷했다. 외관상으로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온몸으로 전해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안의 열기와 신명에 금새 동화가 됐다.


밖에서 볼 때는 좁지 않은 크기였는데도 여기저기서 커다란 맥주잔을 든 채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로 비집고 들 틈도 찾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리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 채 그냥 복도에 서서 맥주만 들이켰다. 명색이 사진가인데 사진 하나 제대로 찍을 틈조차 확보를 하지 못하다니.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죄다 흔들린 것들이다. 술기운에 취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워낙 분방하고 북적대다 보니 찍는 사진마다 초점이 안 맞아서다. 사진에는 취기가 아니라 현장의 분위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런데도 그런 기색 하나 없다. 다들 즐거운 표정이다. 인상 쓰는 얼굴은 물론 술김에 시비 거는 사람 하나 없다. 북적대기만 할 뿐 열기와 노래 소리에 파묻혀 행복해 하는 모습들이다.

남녀노소도 따로 없다. 옆자리의 처음 본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고 잔을 부딪치며 어울린다. 맥주의 취기가 모두를 아우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듯했다.


무대 위에는 대규모 브라스 밴드가 흥을 돋웠다. 흥겨운 파티 음악에 이어 귀에 익은 가락이 울려퍼져 가만 귀기울여 보니 비틀즈의 헤이 쥬드다. 기막히게 편곡을 했다. 어느새 하나둘 따라부르더니 취객은 합창단이 된다.


이른바 떼창이란 게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늘 홀 안에 처음 모인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이토록 단일하고 우렁찰 줄이야. 그래, 축제란 이래야 하는 거지. 그런 추임새가 입밖으로 절로 나온다.

보름 남짓한 축제 기간에 사람들이 마셔대는 맥주는 총 600만 리터가 넘는다. 여기서 말하는 맥주는 당연히 생맥주다. 1,000cc짜리 잔으로 줄잡아 600만 잔 정도가 소비되는 셈이다.


맥주는 이곳에서 쓰는 유리잔에 한가득 따라 마신다. '마스크루크'라 부르는 1리터짜리 잔이다. 처음에는 도기 잔을 썼다고 한다. 지금도 기념품으로 나오는 도기잔이 있기는 하지만 축제 중에는 다들 유리 잔을 쓴다. 양을 속이지 못하게 한 조치다.


이걸 축제 도우미들은 보통 한 번에 여섯 잔씩 들고 나른다. 일곱 잔을 들고 가는 것도 봤다. 그 무거운 맥주잔을 무더기로 두 손에 들고 양팔에 두르고 가슴에도 안고 가는 모습은 그것대로 진풍경이다.


이들은 ‘디른들’이라 부르는 바이에른 지역의 민속의상을 입는다. TV에서 본 만화 영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입고 있던 옷을 떠올리면 된다.

독일 맥주야 종류가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특별히 이 축제 기간에는 도수가 높은 맥주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나는 맥주에 관한 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연이어 잔을 들이켰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취흥에 빠져보랴 싶어서다.


맥주가 마실 때는 좋지만 늘 따라오는 걱정거리가 있다. 화장실 말이다. 내게도 신호가 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마셔대면 크고 작은 뒷일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걱정할 게 없었다. 천막 규모 못지 않게 겁나게 큰 화장실이 천막 주변에 늘어서 있다. 나온 김에 둘러보니 인근에는 놀이 시설도 있었다. 회전목마, 고공낙하, 롤러코스트 같은 것은 기본이고 다른 음식을 파는 간이 상점들도 즐비하다.

그것 말고 행사장에 더 이상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사실상 현지 독일인과 타지에서 온 관광객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마시고 춤추는 게 전부다. 천막 안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단순한 놀이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축제라는 이름을 단 행사는 많다. 듣기로는 연간 15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딱히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없다. 외국 친구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물론 나부터 신나게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보다 축제로 한몫 보려는 장사치들이 주인공이어서가 아닐까. 그런 축제는 실패하거나 오래 못 간다.

국내 축제들마다 주최측의 작위적 냄새가 물씬한 것과는 달리, 뮌헨의 맥주 축제는 동원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입고 있는 민속의상만 해도 주최 측에서 나눠주거나 어디서 대충 빌린 게 아니다. 각자 제 돈으로 축제에 입을 옷과 신발을 산다. 모두들 일 년에 단 한번, 이 날의 흥겨운 잔치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니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즐길 작정을 했고 준비가 돼 있는 셈이다. 그런 마음이 한데 만나면 어떤 기운으로 뿜어져 나온다. 우리가 일상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에너지다. 낯선 어떤 사람과도 마음을 열고 어울리는 개방적인 태도가 된다. 그런 자리에는 이상한 신명이 생긴다.


사실 그런 기운이나 흥은 꼭 대규모 축제가 아니어도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자주 가는 LP바가 그런 곳이다. ‘온 더 그라운드’를 찾아가 음량을 한껏 높인 음악을 듣다 보면 무아지경이 된다. 어느 순간 모르는 사람과도 즉석에서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와 열기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한데 모일 때만 발생한다. 여럿이 함께 일으킨 에너지는 마력이 된다. 모두를 사로잡는다. 그럴 때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고개를 든다. 알콜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인들이 어떤 사람인가. 질서에 매너라면 교본 같은 이들 아닌가. 타인에 대한 불편을 결벽증처럼 꺼리는 그들이 옥토버페스트에서만큼은 격의 없다. 테이블 위로 올라가 거침없이 춤을 춘다. 주변에서는 환호한다. 서로서로가 치켜세우고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때가 이랬던가.


집단적 열기는 몰입을 부른다. 인파가 꽉 찬 축구 경기장에 가보라. 시합 시작 전부터 원형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엄청난 흥분이 몸 안에서 상승한다. 조금 전까지의 속상한 일도, 내일 처리해야 할 난제도 이 순간은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오직 지금 여기만 생각할  뿐이다. 옥토버페스트가 별 다른 프로그램이 없이 그 많은 인파를 불러모으는 것도 규모의 몰입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내력부터가 그렇다. 지금은 뮌헨시의 대표 관광 상품이지만, 초반엔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행사이자 시민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발전시킨 축제였다. 그러니까 남에게 보여주려고 벌인 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진정한 축제란 그런 것이다. 먼저 스스로 즐기고 사랑하고 함께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순수 에너지로 가득한 것이 축제다. 그속에서는 밖에서 홀리고 빨려든 사람도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니다. 그들의 신명과 나의 신명은 구분할 수 없다.


아, 이런 체험이라면 나도 한마음이 되어 다시 1년 후를 손꼽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필자 소개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미안 좋기로 소문난 사진가이자 글쟁이. 재미있게 사는 것을 신조로 삼고 놀이와 작업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오디오, 음반부터 온갖 생활 디자인 용품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마당과 객석 기자를 거쳐 웅진출판 사진부장으로 '한국의 자연 탐험'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8년간 진행했다.


1996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베짱이 인간의 삶'을 시작했다. 2002년 사진 분야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냈다.

작성자 정보

북클럽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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