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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六感] 국악은 언제 음악으로 다가오는가

조회수 2016. 12. 23. 10: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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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는 신명의 순간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윤광준 사진작가 '육감(六感)' 여덟 번째 이야기는 '국악, 턱밑에서 들어봤나'입니다.


경북 영주의 100년 된 한옥에서 열린 판소리와 가야금 산조 연주회에서 체험했던 일을 들려줍니다.


왜 국악은 '우리 음악'인데도 늘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질까요. 그런 완고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지인들과 시작한 연주회가 올해로 3회를 맞았다는군요.


'얼씨구' '좋다' '그렇지' 같은 추임새가 절로 터져나오는 신명의 순간은 언제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출처: ⓒ윤광

올초 꽃 피던 봄의 일이다. 사람들을 모아 판소리와 가야금 산조 연주를 들려준 적이 있다. 무대가 고색창연한 한옥이었다. 경북 영주의 진성 이씨 종택인데 지은 지 100년도 더 된 곳이었다.


내 벗이기도 한 한국 파버카스텔 이봉기 대표의 고향집이었다. 파버카스텔이라면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필기구, 그 회사다. 옛 가옥을 오래 공들여 복원한 이 대표는 이곳이 두고두고 사람 온기가 도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이런 벗의 숙원을 어떻게 풀어줄까. 친구들은 이곳에서 공연을 벌이자고 했다. 준비 끝에, 지리산에 7년을 파묻혀 홀로 판소리 수련을 거친 소리꾼 배일동과, 춤사위의 선이 더없이 고운 춤꾼 이지선을 불러냈다.

출처: ⓒ윤광

그날 객석에 모인 이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평소 국악이라곤 들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도 국악방송 FM 99.1이 걸리면 주저 없이 넘기는 사람 말이다. 말해놓고 보니 그렇다. 한국인이면서 우리 음악인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절대 ‘보통 한국인’일 리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이날 행사에 온 사람들도 그저 날씨 좋은 봄날 운치 있는 한옥에서 분위기나 즐겨보리라, 이런 마음으로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 연주를 직접 접한 이들의 표정은 놀라움 일색이었다. 소리가 귀 아닌 심장을 누르고 후비고 두근거리게 만드는 느낌이라니.


개중에는 애당초 공연보다 종택 안마당에서 벌이는 시골 잔치에 더 혹해서 온 이도 있었으리라. 연주 중에도 전 부치는 기름 냄새에 막걸리 향이 흘러들고, 솥에서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었다. 하지만 객석의 사람들은 온통 국악의 신명에 넋이 빠져 있었다.

출처: ⓒ윤광

그 재미없던 국악을 어찌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날의 풍경을 더듬어 적어보면 이렇다. 우선 무대가 ㅁ자 형태의 한옥 대청마루였다. 듣는 사람들의 자리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마루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끝에 걸터 앉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저 건너편 툇마루에 앉아서 들었다. 마당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이들도 있었다. 공연장의 정렬된 객석에서 정색을 한 채 정면의 무대를 주시하는 평소의 감상법과는 너무도 달랐다.


공연자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도 더없이 가까웠다. 한옥은 대개 천장이 아늑하게 낮다. 집 가운데 자리잡은 대청마루는 크지는 않아도 트인 기운이 좋은 공간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집안의 방과 바깥마당이 닫힌 듯 열려 있다. 때문에 청중은 가까이 모여들 수밖에.


객석의 앞뒤도 별차 없다. 몇 발짝 떨어진 마당의 관객 눈에도 가야금 예인의 현란한 손가락이 보이고, 열두 줄 무명실의 떨림이 잡힐 듯 전해진다. 목청 좋은 소리꾼의 핏발 선 표정과 침 튀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지척에서 한꺼번에 육박해 올 때의 전율이란.

출처: ⓒ윤광

우리 음악은 이렇게 턱밑에서 들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연주와 향수의 공간이 분리되는 순간 감흥은 겉돈다. 텔레비전의 <국악 한마당>을 보고 또 봐도 썰렁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음악은 즉흥의 어울림이 중요하다. 얼씨구! 잘한다! 같은 추임새로 관객이 연주의 내용에 개입할 때 신명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음악을 매개로 구경꾼까지 일체로 녹아드는 것, 그게 우리 소리와 춤이다.


그날도 소리꾼은 소리를 하고 춤꾼은 춤을 추었지만, 듣는 이들도 저마다 소리를 하고 춤을 춘 기분이었을 터. 그 자리에서 그들은 청중도 관객도 아닌 놀이꾼이 되는 체험을 맛본 것이다.


어느 나라든 ‘국악(國樂)’이라는 지위의 음악이란 오래된 것, 낡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살아 있는 음악이 되려면 즐기고 놀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체험이 없고서야 국악은 그저 먼 국악일 뿐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불행히도 그런 체험의 기회가 없다.

 

우리가 아는 국악이란 대개 명절 연휴 TV에서 (그것도 천하장사 씨름 시합 전에) 한복 차림의 무리가 열 지어 부르는 민요나 병창 정도가 고작이다. 수십 년째 변화도 없다. 내보내는 방송사는 법 규정에 따른 억지 편성의 무성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출처: ⓒ윤광

그러니 국악이란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음악이란 고정관념이 뿌리를 내릴 수밖에. 어떤 예술이든 부정적 선입견이 먼저 박히고 나면, 진미의 세계로 진입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재미로 가득 찬 세상에서 따분한 국악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그런 국악 선입견에 금을 내려고 시작한 모임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였다. 첫 회에는 가야금 연주자 추정현을 초대했다. 가야금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추정현 가야금 산조> 음반을 추천한다.


두 번째 모임에는 미국인 가야금 주자인 조세린 교수를 모셨다. 이십대에 가야금에 빠져 한국 국립국악원에 들어간 후 평생 연주를 이어오고 있는 분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올해 봄의 공연이었다.


굳이 종가의 고택이 아니어도 좋다. 찾아 보면 주변에도 국악 연주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무작정 좋은 공연 하나를 골라 들으러 가보자. 우선 들어보면 안다. TV나 라디오에서 들은 건 들은 게 아니다. 연주자와 한 공간에서 소리를 접해보면 알게 된다. 몸이 절로 움찔거리고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새나온다. 그런 스물거림이 몸에 한번 입력되고 나면 또 찾게 돼 있다.

출처: ⓒ윤광

정 바빠서 시간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체험도 있다. 요즘 기기들이 워낙에들 좋아졌다. 어느 블로거는 신형 오디오칩 쿼드DAC가 탑재된 모델을 사용한 후기에서 “이 소리의 차이를 글로 쓰려니 한계가 느껴진다”고 토로했던데, 정말 그렇다.

 

기계음에 주로 의존하는 팝의 음질 차이가 그러한데, 하물며 온몸을 관통해 피를 토하듯 내뿜는 판소리, 단가, 병창이야 오죽할까. 가야금 산조의 역동적 울림, 긴장 가득한 뱃심에서 우러난 명창의 소리를 어디 한번 들어보라. 예전에 알던 그 국악은 국악이 아니다.


윤광준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미안 좋기로 소문난 사진가이자 글쟁이. 재미있게 사는 것을 신조로 삼고 놀이와 작업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오디오, 음반부터 온갖 생활 디자인 용품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마당과 객석 기자를 거쳐 웅진출판 사진부장으로 '한국의 자연 탐험'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8년간 진행했다.


1996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베짱이 인간의 삶'을 시작했다. 2002년 사진 분야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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