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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북] 지능은 유전자의 똑똑한 대리인

조회수 2017. 4. 23. 11: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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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탄생' 저자 이대열 예일대 석좌교수 인터뷰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한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신간 <지능의 탄생>의저자 이대열 교수 인터뷰입니다.


요즘 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블랙박스라는 뇌에 대한 학습욕도 커진 상태입니다.


얼마전 일론 머스크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 개발을 위한 뉴럴링크를 설립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마크 저커버그도 뇌와 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가동 중이라고 발표하면서 뇌에 대한 탐구와 정복 경쟁은 가열되고 있습니다.


때마침 인간의 뇌와 지능의 탄생 과정에 대해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그것이 인공지능에 대해 갖는 함의까지 담은 우리말 책이 출간돼 더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습니다.


저자 이대열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Dorys McConnell Duberg Professor)로 있습니다.


고양이의 뇌에서 시각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네소타대 생리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원숭이의 대뇌피질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뇌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메일로 2차례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교수는 다른 행사들 때문에 답변을 자세히 할 수 없어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대학 때 경제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신경과학(뇌의 의사결정)을 연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적 편력이 궁금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도중에 경제학을 포함한 모든 사회과학의 밑받침이 되는 것은 인간의 행동과 인지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심리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부에서 경제학과 함께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뇌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뇌나 지능을 연구하는 분야는 여러가지가 있고 접근법도 다른 것으로 압니다. 이 교수님의 분야나 접근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희 실험실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이해하기 위해 주로 원숭이를 모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유사한 뇌를 갖고 있는 원숭이를 사용하면, 실험심에서 잘 통제된 조건에서 그들의 행동과 함께, 인간에게서는 관찰하기 어려운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원숭이의 뇌가 인간의 뇌보다는 단순하지만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많이 제공합니다. 또한 원숭이는 인간들이 다루는 다양한 의사결정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뇌가 어떻게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지능과 지능지수(IQ)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쓰셨지요. 최근에는 감성지수(EQ)라든가 사회성지수(SQ)라는 말도 들립니다. IQ는 이제 무용한가요? 지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연구된 것이 없나요?

지능과 지능지수가 별개의 것이라고 해서 지능지수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지능은 지능지수가 다 잡아내지 못하는 복잡한 기능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복잡한 사회생활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능의 근원이 되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지능지수보다 더 인간의 지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보다 과학적인 방법들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뇌도 결국 신경계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신경계 전체를 회로도로 그린 커넥톰은 현실적으로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국내에도 소개가 된 승현준 박사의 브레인 커넥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특정한 뇌 전체의 회로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만으로 뇌의 작동 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 상태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수많은 시냅스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자세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지능은 생명체만 가능하다고 하시면서, 인공지능은 자신이 아니라 인간이 부여한 목적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로봇에 부여하는 목적에 따른 자율성의 범위를 확장해가다 보면 수행 과정에서 경계선을 넘거나 충돌하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요?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지금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들이 보편화되면 당연히 인간과 로봇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완전히 대체하는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은 불가능하다고 쓰시면서 인공지능은 동물의 신경계처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설령 다양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있다 해도 조만간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지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인가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는 수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아니면 기술적으로 그런 일이 불가능함을 보여줬다는 뜻이니까, 특이점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언젠가는 진정한 지능을 위해 필요한 인공생명의 개발도 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에 비해 인공생명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복잡하고 아주 드물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체의 지능과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기는 먼 훗날이 될 것입니다.

-최근에는 생명체/인체의 신경계와 결합한 인공지능 개발 움직임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최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설립하는 등 곳곳에서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만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인간의 뇌가 근육을 통하지 않고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미래 사회에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인간의 뇌를 아주 많이 더 자세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미래 산업이 가능하려면 지금보다 신경과학 연구에 더 많은 투자가 우선 이뤄져야 합니다.

-인공지능에 자율성을 부여한 좋은 사례로 화성탐사 로봇을 드셨습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더군요. 상호작용하는 로봇의 수가 많아지면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지요. 지능이 사회적 상황에서 진화할 가능성 말입니다. 인공지능도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인공지능도 사회적 지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의 다음 수를 예측했을 때 그것도 일종의 사회적 지능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뇌를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실행하기 위한 대리인의 관계로 설명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보다 나중에 사회를 조직하면서 만든 계약관계의 규칙을 생물이 진화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데 거슬러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더군요.

대리인 모델이 뇌와 유전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특정한 계약들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본인과 대리인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과, 뇌와 유전자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관계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추상적인 성질들입니다. 그와 같은 이론적인 틀이 적절한지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합니다.

-법률에서는 대리인이 계약에 반해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배임을 막습니다.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는 대리인인 뇌가 주인인 유전자의 이익에 반한 행동을 할 것을 대비한 제어 장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자기복제에 도움이 되지 않은 뇌를 설계한 유전자는 점차적으로 도태되는 과정이 그와 같은 경우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능도 유전자의 대리인으로 파악한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의 대리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공지능도 기계학습을 통해 스스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워가다 보면 인간 지능과 같은 경로를 걷게 되지 않을까요?

지능의 본질은 다양한 환경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인데 반해, 인공지능은 오로지 인간이 맡긴 특정한 문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지능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학습을 하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물론 인간의 뇌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만큼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면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도 생물학적인 지능과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대상을 인간이 지정하고 그 성과를 인간이 판단하는 이상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보다 제한된 영역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학습이야말로 지능의 본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경험과 학습이 뇌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유전자도 그런 뇌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기계학습을 통해 능력을 키워가는 인공지능에도 똑같이 유추한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나요?

인공지능이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인공지능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거나, 그것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유전자 복제의 목적에 반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듯이, 인공지능도 주어진 과제에 대해 인간의 의도나 예상과는 다르게 해결하려 들고 그것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 자율주행차량이 후진 주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경로를 예상 못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뇌의 지능이 유전자복제의 목적과 반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돌연변이나 발달 과정의 사고로 유전자의 복제 목적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뇌는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뇌는 자기복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율주행차량 또한 가끔 사고를 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많은 사고를 내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으로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자기 목표가 없는 한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쓰셨지요. 인간 지능의 자율성도 유전자에서 멀리까지 진화해온 결과 생겨난 것 아닌가요? 지금은 인류가 스스로 파괴적인 문명으로 멸종 위기를 초래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인데요?

인간의 두뇌는 유전자의 진화 과정에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유전자의 자기복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뇌는 여러 세대를 거쳐 가면서 점차 사라져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의 위협을 자기복제 가능성에 두시고, 인간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지요. 누구라도 허락을 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면 누구의 좋고 나쁜 이유나 동기에서 혹은 우발적이거나 부수적으로 허용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나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도움 없이 인공생명을 갖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닉 보스트롬이 '슈퍼인텔리전스'에서 이야기한 초지능의 출현에 대한 경고나 빌 게이츠, 스티븐 호킹,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의  AI 우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신가요?

저도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슈퍼인텔리전스나 특이점이 의미하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대체하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뇌에서 마음이 등장하는 과정을 사회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타인(다른 마음)의 이해는 철학적 주제이기도 합니다. 왜 똑같이 무리를 이뤄 사는 다른 영장류보다 인간만이 유독 강한 사회성을 형성하고 영향을 받게 됐을까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이 이루고 사는 사회가 더욱 복잡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욱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사회적 지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완전한 설명은 아닐 것입니다.

학자들 중에는 인간이 음식을 익혀 먹는 식생활을 하면서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뇌를 비대하게 하고, 그 결과 인간들이 더욱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지능과 메타인지(인지과정에 대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왜 중요하지요?

메타인지가 올바르게 작용하지 않으면 자기의 생각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정신 질환이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이유도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처럼 고도로 발달한 메타인지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유식한 강화 학습'을 평생 이어가다고 설명하시면서, 그것이 후회와 안도의 감정으로 나타난다고 하셨지요. 부연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유식한 강화학습 (model-based reinforcement learning) 이란,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취득한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학습과정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늘 실제로 얻어진 결과와 상상했던 결과를 비교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후회와 안도를 반복하게 됩니다.

-지능의 최고 경지로 자기 인식을 드셨습니다. 유전자가 지능을 통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굳이 자기 인식의 단계까지 이를 필요가 있었을까요?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를 넘어 밈으로 문화 현상을 설명한 것처럼 정신은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 독자적인 논리로 진화하는 걸까요? 책에서는 자기 인식이 사회 생활 중에서 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수적인 결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일종의 돌연변이 같은 것인가요?

살다 보면 자기 인식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기 인식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인간의 삶에서 사회적 지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겨난 사회적 지능이 재귀적으로 반복되어 결국 자신에게까지 적용되게 되면 불가피하게 자아의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생명체의 본질은 완벽한 자기복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기복제인 것이다. 같은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 마음이론과 같은 재귀적 추론이 등장하게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재귀적 추론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 자기인식의 가장 중요한 기능 또한 미래의 자신이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자기인식의 한계와 그에 따르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자기인식적인 명제는 논리적인 모순과 역설을 만들어내기 일쑤다. 이런 생각들은 철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연구거리를 제공하겠지만, 일상생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인식이 만들어내는 문제들 중에는 자유의지도 포함된다. 자유의지란 나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기'라는 개념이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별도의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나면, 굳이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답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본문 270-271쪽 중에서

-이해하려는 대상이 이해의 주체일 때 필연적으로 '자기지시(self-reference)가 발생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 생기는 논리적 모순이나 자유의지의 이율배반 개념을 불완전한 자기인식의 결과라고 하시면서 이런 모순은 '자기'라는 주체를 별도의 실체로 여기지 않으면 해결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윤리적/법적 책임의 문제와도 관련이 됩니다. 신경과학자로서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간의 사회는 언제나 모종의 윤리적 규범을 필요로 하지만, 과연 어떤 규범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지능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 책임과 관련된 문제들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극도로 발달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 정신질환이라면, 인공지능도 발달 과정에서 그런 질환성 장애가 생길 우려는 없나요? 통제 불능이나 폭력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점차 복잡해질수록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공지능의 발달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인공지능이 인공생명을 갖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인공지능은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유별납니다. 때로는 자기 목숨을 무릅쓰기도 합니다. 장기 이익을 위해서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서 비관해 자살도 합니다. 이런 의식 과잉에 따른 자멸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의사결정을 포함한 모든 생명 현상에는 절충(trade-off)이 존재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중하게 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거지요. 사회적 지능이 극도로 발달한 인간의 지능도 그와 같은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그와 같은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뇌는 생물마다 다양하다고 하셨지요. 인간의 뇌가 다른 생물의 뇌보다 고등하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건가요?

초음파를 사용해서 어둠 속에서도 장애물을 피해가며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박쥐들이나, 극도로 발달된 후각을 소유한 개처럼, 동물 중에는 인간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생명체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의사결정 과정을 개발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중 누구의 뇌나 지능이 더 우월한가는 특정한 환경을 전제로 하지 않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 전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지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과 동물의 지능을 비교할 때 항상 인간의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생명이 왜 생겨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생명은 열역학 제2법칙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복제의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하셨지요. 그렇다면 왜 살아남으려 하는 걸까요? 생존의 욕망 혹은 성향은 그냥 근원적인 것으로 전제해야 하나요?

생존의 욕망을 근원적인 것으로 전제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생명의 욕망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여러가지 복잡한 현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편리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왜'라는 질문을 과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대대적인 브레인 프로젝트를 발표했지요. 현재 어느 정도 상황에 와 있는지요?

미국의 브레인 프로젝트는 지금보다 더욱 정확하게 신경세포들의 연결 구조와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연구에 적용하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약 2천억원 정도의 연구비가 투자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 정부에서 지출하는 전체 뇌 연구비는 이보다 수십 배가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 연구 성과를 결합한 뉴로게이저라는 교육사업도 공동창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업이고 연구하신 것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뉴로게이저는 교육 사업이 아니고, 뇌의 구조와 활동을 최첨단 영상기법을 사용해서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들의 개인차를 파악하고, 그결과를 필요로 하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응용 분야에는 교육도 포함되지만 교육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활동과 같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개인차가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그와 같은 뇌의 기능을 다루는 제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됨에 따라 나타나게 될 사회적 구조의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회적 지능과 메타인지 능력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실 우리가 즐기는 많은 종류의 활동은 사회적 지능 및 메타인지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 예술, 학문과 관련된 모든 활동은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메타인지가 없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관련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사회적 지능 및 메타인지에 관련된 기능마저도 점차 인공지능의 한 부분이 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소위 기술적 특이점 같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능이란 근본적으로 자기복제를 핵심으로 하는 생명현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적 능력의 여러 측면에서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자기복제를 시작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본인으로 하는 대리인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유전자와 뇌 사이에 본인-대리인 관계가 성립되었듯이 인간이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도 본인-대리인의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본인의 자격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자기복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인공생명의 시작이다.


이제까지 전적으로 인간의 대리인이 역할을 해온 인공지능이 그와 같은 인공생명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공생명과 결합되는 과정이 언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그리고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문 287-29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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