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피아니스트 꿈꿨던 소녀, 30년째 '삽질'하고 있는 이유

조회수 2016. 2. 20.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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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저자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터뷰
북클럽 오리진이 우리나라 고인류학 박사 1호 이상희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 교수의 최신 화제작인 '인류의 기원' 외에도 그만의 남다른 삶과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책 속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사연들이 소개됩니다. [미니북]은 말 그대로 작은 책입니다.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내용의 긴 글을 담아 선사합니다. [미니북]을 읽을 때는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읽어 내려가셔도 좋겠습니다. 1boon의 야심찬 교양 프로젝트인 북클럽 오리진은 앞으로도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알찬 지식문화 콘텐츠로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공룡, 우주, 사피엔스, 인류, 빅히스토리.. 자연과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영화는 물론 출판계에도 관련 도서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주로 외국 저자의 번역서들이었다면 이제는 국내 저자가 우리말로 쓴 책도 눈에 띈다. 반갑다.
지난해 두 권의 인류학 교양서들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상희의 '인류의 기원'과 진주현의 '뼈가 들려준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두 저자의 이력이 겹친다. 둘 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한 데 이어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나란히 한글로 책까지 냈다.
이 교수가 대학으로는 선배다. 작년 말 출간을 계기로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빡빡한 일정 끝에 출국하는 날 아침이었다. 호텔 앞 카페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검정 쉐타에 얇은 카디건 차림이었다. "춥지 않으세요?"라고 하자, "멀리 갈 것도 아닌데요 뭐"라며 웃었다. 순간, 얼굴이 스마일 이모티콘처럼 변했다.


자그마하지만 다부져 보이는 체구에 걸음걸이도 씩씩했다. 한국에 와서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이 교보문고 목 좋은 자리에 진열된 것을 보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진한 모닝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력이 특이하더군요. 

네, 원래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어요. 85학번입니다. 교양 과정 후에 전공 과정으로 들어갈 때 고고학과 미술사학으로 나뉘는데, 고고학으로 간 건 사실 우연이었어요. 이건 사실 학자로서는 대놓고 얘기할 건 못 되는데...(웃음) 저는 학자스러운 뭔가가 일찍부터 있지는 않았어요. 가령 이런 것 있잖아요. "여섯 살 때 공룡을 처음 보고는 확 넘어가서 평생 저걸 해야겠다"는 식의 결심 같은 건 없었어요.

처음엔 피아노를 쳐서 음대를 가려고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제가 학력고사 세대인데, 학력고사를 친 후에 실기를 봤어야 했어요. 그때 마침 딱 피아노 실기를 앞두고 슬럼프가 닥친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학력고사 점수는 너무 잘 나왔어요. 그러고 나니 아, 이제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군요.

그래서 그때 음대가 아닌 다른 대학으로 눈을 돌렸어요. 일단 점수에 맞춰서 학과를 찾는데 고고미술사학과가 눈에 들어왔어요. 가나다 순으로 맨위에 있었으니까.(웃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걸 공부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았어요. 대학 가면 그런 거 해야지라고 생각하고는 들어갔죠.
출처: ⓒ 전병근
-요즘은 남다른 이력이 더 주목받는 시대니까, 학자답지 않게 비칠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그런가요? 저는 사실, TV나 다큐 같은 데 나오는 분들 보면, 멋있게 한 우물만 팠노라고 하는 인생이 부럽던데, 저는 좀 그렇지를 못했어요. 사실 제가 음대에 간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어요. 피아노를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제가 그래도 하겠다니까, 결국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주시긴 하셨는데, 고 3이 돼서 다시 제가 방향을 바꾼 셈이니까, "너는 왜 도대체 한 우물을 파지 않고 그러느냐"고 하시더군요.

-미술사 대신 고고학을 전공으로 지망하실 때는 어떤 생각이었지요?

미술사는 왠지 모르지만 제겐 너무 우아해 보이고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만 하는 학문 같았아요. 저는 그만한 인문학적인 머리가 안 따라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몸으로 떼울 수 있을 것 같은(웃음) 고고학 쪽으로 갔어요. 그러고는 대학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땅을 팠습니다.(웃음) 처음엔 삽질에서 그 다음 꽃삽질로, 그 다음 붓질로 차례차례 승진했어요.

-네? 아, 승진 순서가 삽 크기로 결정되나요?

요즘은 다른데, 30년 전만 해도 우리 학과에 입학하면 저 같은 신참은 처음엔 삽도 못 잡았아요. 발굴터 안에서 선배들이 작업하면서 나오는 흙이 쌓이면 그걸 퍼나르는 일부터 했어요. 거기서 능력을 인정받은 다음에 삽질을 할 수 있었고, 그 다음에 3학년이 되면 꽃삽이 주어졌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흙을 털어내는) 섬세한 붓질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는 거죠.
# "그러니까 삽이 작을수록 선배입니다"
-그때 했던 기억나는 발굴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가 맨처음 가본 작업이 서울 송파구의 몽촌 토성 발굴이었어요. 80년대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 한창 백제 붐이 일었어요. 그전까지 주로 경주만 알려지다가 서울에서 큰 행사를 하게 되니까 백제 유적에도 관심을 쏟게 된 거였죠. 85년에 몽촌, 86년에 석촌동, 지금은 다 관광지가 됐지요. 그 발굴 현장에서 삽질을 했어요. 그 두 사업이 컸고, 전남 순천의 주암댐 수몰 지구 발굴도 했지요.

대학 졸업할 때 한국고등교육재단이라고 해서 옛날 선경(지금 SK)에서 만든 장학재단이 있었어요. 거기서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5년 동안 유학 자금을 조건 없이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 당시로선 아주 좋은 조건이었지요.
 
-삽질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했나 보네요.

시험을 잘 봤지요.(웃음) 그렇게 5년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어디 가서 뭘 공부할까 고민하던 중에, 제게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 지금 서울대 박물관장인 이선복 선생님인데, 당시 국내 고고학계 소장파 학자(75학번)로 학계 미래를 많이 생각하셨어요. 그분이 "너는 미국 가서 뼈, 화석, 인골 진화 이런 걸 공부하고 오너라. 한국에 제대로 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네" 하고 갔죠. 가서는 정말 피나는 고생을 했어요.(웃음)

왜냐하면 제가 고등학교 때도 문과였고, 대학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가) 사회대도 아닌 인문대에 있었기 때문에 과학에 대해서는 훈련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유학을 가서 보니, 고인류학은 기본적으로 과학이고 생물학인 거예요. 유전학이며 해부학이 다 그렇잖아요. 그걸 다 영어로 다시 공부하려니까 굉장히 힘들었던 거죠.

-국내에서 했던 공부와는 많이 달랐나요?

대학 때는 '인류의 진화' 과목 정도 들은 게 다였어요. 선친께서 예전에 홍콩으로 출장을 가셨다가 'Origins'(리처드 리키의 저서. 국내에는 '인류의 기원'으로 번역 출간)라는 책을 사다 주셨는데 그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은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방면의 뭐가 돼야지 하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요. 서울대에 인류학과가 있긴 했어도 사회대에 속해 있었고, 거기서 하는 것도 사회문화인류학이었어요. 가족과 친족, 상징과 의례, 종교 같은 민족학적인 것이었지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미국은 다른가요?

미국의 경우에는 인류학 안에 사회문화인류학과 고고학, 형질인류학, 언어학 이렇게 네 가지가 있어요.

-거긴 여러 갈래가 통합돼 있었던데 반해 우린 분리돼 있었단 얘긴가요?

네, 그렇죠.

-서울대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대학들도 그랬나요?

우선 고고학과가 있는 학교부터가 많지 않았어요. 고고학을 전공한 분들도 주로 사학과 쪽에 가 있었어요. 최근에 와서는 10년 전부터 뼈나 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의 경우 박순영 선생님이 와서 생물인류학을 하고 있어요.

-말이 나온 김에, 일반인들을 위해 인류학을 간략히 개관해주시겠어요?

인류학은 말 그대로 인류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인데, 범위도 넓고 그만큼 애매하기도 해요. 어디든 갖다붙이면 되니까요. 전통적으로는 앞서 말한 대로, 사회문화인류학과 고고학, 형질인류학, 언어인류학, 이렇게 네 가지가 큰 줄기를 이룹니다. 사회문화인류학은 사회와 문화 전반을, 고고학은 옛사람의 자취나 흔적을 연구합니다. 형질인류학은 뼈와 거기에 붙어있는 살, 특히 최근에는 거기서 나오는 유전자를 분석합니다.

언어인류학은 언어를 중심으로 문헌을 주로 연구하는 분야인데, 사회문화인류학과 비슷해요. 인간의 문화 활동 자체가 언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사실 굉장히 포괄적이에요. 심지어 침묵도 포함됩니다. 사람이 언제 침묵하고, 그게 뭘 뜻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지요.

# '침묵'도 '언어'다
-예전에 우리가 알던 인류학은 대체로 사회문화인류학으로 봐야겠군요.  

네. 지금 설명 드린 것은 대체로 미국의 인류학 전통이고, 한국의 인류학은 일본 인류학 전통의 느낌이 강합니다. 일본 인류학은 다시 독일이나 유럽의 인류학을 받은 거지요. 유럽 인류학은 미국과 달리 (자연)과학의 느낌이 적고 마치 민속학 같습니다. 특이한 문화나 풍습 같을 주로 연구하지요.

게다가 일본 학계는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영향을 받아서 한국 인류학도 그 근간에서는 인문학적인 성향이 강하죠. 여기에 미국 쪽 영향이 더해지면서 요즘은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것들을 많이 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지금도 학풍이 많이 다른가요?

많이 달라요. 유럽에는 형질인류학이나 고인류학을 하는 사람이 정작 인류학과에는 적어요. 그런 사람들은 아예 해부학과라든가 의대, 연구소 같은 곳에 속한 경우가 많지요.
-최근 들어서 새로운 성과가 많이 나오는 곳은 아무래도 '과학적인' 인류학 쪽이겠죠?

그렇죠. 사실은 그래서 지금이 고인류학의 존재 위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는 인류학자들이 뼈와 화석을 중심으로 공부를 많이 해왔는데, 지난 10년 내지 20년 사이에 유전학이 크게 떠오르면서 유전자를 통한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어요. 게다가 10년 전까지는 유전자라고 해도 현생 인류를 통해 과거로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는 정도의 느낌었거든요. 너나 나나 우리 같은 사람들 유전자를 통해서 과거를 추측 복원하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옛날 인류 화석에서 직접 DNA를 추출해서 시퀀싱(sequencing, 염기서열분석을 통한 유전자 해독)을 해내는 단계까지 기술이 발전했어요. 그 결과, 옛날에는 고인류학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화석이라고 할 정도로 등식화돼 있었던 데 반해, 앞으로는 화석을 통한 연구가, 물론 아주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유전학을 하는 분들은 팀 단위로 일을 하거든요. 실험실에서 계속 기계를 돌리면서 아주 자연과학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해요. 그 렇다 보니 과연 고인류학의 연구를 전통적인 인류학과에서 계속 맡아서 할 수 있을까. 이게 큰 현안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고인류학이나 형질인류학을 하는 사람들은 인류학과를 떠나서 다른 학과로 적을 옮기거나 인류학과 자체가 분할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학과를 인문적 인류학과 과학적 인류학으로 나누는 거지요. 지금이 굉장히 역동적인 변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할로윈 축제 때 학교 조교들이 가져온 소품으로 꾸민 이상희 교수. 이 교수는 "400명이 듣는 개론 강의라서 이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가끔 즐거움을 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만큼 과학적 인류학의 성과 잠재력이 크다는 얘기겠군요.

그렇죠. 거기에 더해, 인류학계 저변에는 지난 20년 동안 쌓여온 반(反)과학적인 정서가 있어요. 과학에 대한 반감 말이죠. 과학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사회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른 착취에 복무했다는 비판적 사고 말이죠. 산업주의와 연결된 과학에 대한 반감 같은 겁니다. 여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사조도 한몫 했습니다. 과학의 객관성이랄지 합리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품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과학적인) 형질인류학을 하는 사람들은 학과 내에서 입지가 굉장히 불안했어요. 이 학자들이 다른 곳으로 많이 옮겨가기도 했죠. 2000년초까지만 해도 학과가 나뉘는 대학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였는데, 2008년에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좀 주춤해졌어요. 대학 내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수 학과가 되면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 움직임이 조금 중단된 상황입니다.

-선생님은 어느 쪽에 속하시죠?

저는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지극히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받았어요. 그 뒤로도 과학적인 접근을 하죠.

-미국으로 유학을 간 곳이 마침 그런 학파였군요.

네, 그렇죠.
출처: ⓒ 전병근
-그렇게 보면 운이 좋았던 건가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제가 박사 학위 논문을 성(gender)의 차이를 가지고 썼어요. 암수의 차이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거였어요. 제가 그걸 주제로 삼겠다고 했더니, 당시에 동료 학생 중 하나가 "뼈에서 어떻게 성별을 구분하지? 성별은 순수하게 사회적인 개념인데" 이렇게 반문했어요.

당시 인류학계를 지배하던 사고가 '세상에 객관적인 자료라는 것은 없다'는 거였거든요. 모든 것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거라는 거죠. 그런 입장과는 대화가 어렵죠. (과학적 접근을 취하는) 편에서는 암수가 실재한다고 보고, 문화로 보는 사람들은 그런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 우리의 인식이고 개념이고 정의라고 보는 입장이니까. 그 두 입장 사이의 학문적 골이 참 많이 깊었어요.

-지금은 어떤 입장이신가요? 점점 더 과학 쪽으로 가신 건가요?

그런데 제가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제가 원래 문과 출신이었기 때문에 유학 가서도 과학적인 접근법을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생소했던 과학적인 사고를 체화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거지요. 그래선지 이제는 오히려 그전의 (인문학도였던) 제 모습과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대학원 소장 학자 시절에는 과학적 합리성을 문제 삼는 사람과는 말을 안 섞을 정도로 귀담아 듣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과학의 정치성이랄지, 저나 다른 사람이 하는 연구가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영향 받고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둘의 역동 관계에 대해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군요.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인문적 접근과 과학적 접근 양쪽을 다 포괄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 셈이군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그것 보세요. 외길만 가는 것보다 좀 뒤섞이는 게 낫다니까요. 피아노 치신 것도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몰라요.(웃음)

아, 그런가요.(웃음)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여성 고인류. 발굴 당시 라디오에서 들려온 비틀스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인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에서 이름을 따서 붙였다. 루시는 320만년 전쯤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위키백과)
-연구는 실제로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지금도 현장에 나가서 삽질도 하나요? 아니면 연구실에서 실험을 주로 하나요?

물론 삽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고인류학 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게 화석을 찾는 사람들은 아주 한정이 돼 있어요. 고고학의 경우엔 일단 어딘가를 파면 뭔가 나오거든요. 인간이라는 게 워낙 사방에 쓰레기를 남기고 다니는 종이기 때문에. 일단 뭔가 있겠다 싶어서 파보면 나와요.

하지만 의미있는 화석으로 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그러니까 판다고 다 나오는 게 아니라 거기에도 운이 따라야 해요. 그래서 화석을 파는 데 특화된 사람은 따로 있죠. 루시를 발견한 도널드 요한슨이랄지, 팀 화이트랄지 그런 사람은 평생 발굴 현장에서 살았죠. 형질인류학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발굴 전문가들이 파놓은 화석을 가지고 연구를 하지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구요.
출처: wikipedia
# 루시를 처음 발굴한 도널드 요한슨.
-지난 가을에 방한하셨을 때는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에서 인골 발굴을 하다가 왔다고 들었는데 그 작업은 뭐죠?

아, 그건 화석은 아니구요. 그 지역의 중세 시대 뼈들이 출토되고 있는 곳이예요. 기원전 1, 2세기부터 14세기까지 해당되는데, 우리로 치면 삼국시대 같은 거죠. 어쩌다 우연하게 그곳 발굴 작업에 가담하게 됐어요. 한국만 해도 불과 25-30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서 인골이 나오면 취급도 안 했어요. 혹시라도 나오게 되면, '아이쿠' 하면서 옆에 다시 파묻고는 소주병 갖다 놓고 그냥 넘어갔어요. 

이제는 안 그러죠. 인골이 나오면 연구 자료로 취급을 하지요. 그런 인식의 전환이 거의 한 세대 만에 일어났는데, 지금 아제르바이잔이 우리 20-30년 전과 같은 상황인 거예요. 땅에서 인골이 나오면 치우거나 덮거나 하는데, 제가 그냥 그곳에서 나오는 뼈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참가하게 된 거예요.
저로서는 나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제가 여태 화석만 연구하다보니 이제는 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더군요. 마침 그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고인류학적인 화두와도 연결되는 것이, 이 중동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다양한 집단들이 계속 교차하면서 피가 섞인 지역이거든요. 사람들이 농경을 시작한 후에는 한 곳에 정착하다 보니까 지금 사람들은 형질이 어느 정도 일정해요. 한국인은 대체로 한국인처럼, 남중국인은 남중국 사람처럼 생겼죠.

하지만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마구 돌아다니며 살았을 거거든요. 따라서 우리가 그런 시대 인류의 고화석 형질을 연구하면서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산 현대인의 형질과 비교하는 것은 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히려 이동이 자주 교차하는 지역에서 형질이 뒤섞인 집단의 형질과 비교해야 좀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은 거죠.

아제르바이잔이 딱 그런 곳이예요. 여기서 나오는 인골을 보면 흔히 말하는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형질이 다 섞여 있어요. 이런 다양한 집단의 피 섞임이 어떻게 뼈에 드러나는지 들여다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 2015년 1월 아제르바이잔 발굴 현장의 이 교수.(앞쪽 모자 쓴 사람) "추운 겨울에 쭈그리고 앉아 발굴하다 보니 이젠 이런 일 할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나오는 것들은 화석이 아니라 뼈인가요?

뼈는 유기물인데 이게 무기물로 바뀌는 과정을 화석화라고 해요. 뼈가 100% 돌이 되면 화석인 거죠. 지금 아제르바이잔에서 나오는 것들은 아직 뼈 상태예요. 대개는 통상 1만년 정도를 기준으로 그 이후 것들은 뼈라고 하지요.

-이번에 내신 책이 첫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과학동아에 연재한 것을 묶었다고 했는데 그전에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쓴 적은 없었나요?   

과학동아에 연재하기 전에 인터넷 신문에 글을 쓴 적이 있어요. LA에 사는 대학 동문들이 주축이 돼서 만든 '아크로폴리스타임스'라는 곳이었어요. 그 신문 사이트가 지금은 5년도 더 돼서 시들해졌지만, 초창기에는 386세대들이 서로 신이 나서 글을 올리곤 했어요. 그때 학교 선배가 편집부장이었는데 저보고도 기고를 권해서 쓰게 됐어요. 요즘 페이스북에 올림직한 일기 같은 글을 하나 썼는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 다음에 미주 중앙일보에도 작은 칼럼을 쓰게 됐어요.
-그걸 보고 과학동아에서 연락이 간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보다 2년 전에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이 기획한 특집에 제가 참가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대중적인 글이 아니고 보통 논문 쓰듯이 썼는데, 윤 편집장이 저를 기억했나 보더군요. 제 이메일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해서 2년 동안 연재를 하게 된거죠. 반응이 좋아서 책까지 내게 됐고, 여러가지 운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학자들 사이에는 그런 잡지 기고문이 '잡글'이라며 품위가 떨어진다고들 생각을 많이 했잖아요. 지금도 학문적인 성과로는 쳐주지 않지요. 그래서 그전까지는 저도 주로 딱딱한 글만 썼는데, 이런 글을 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더군요.(웃음)

-유학 간 뒤로는 줄곧 미국에서만 살았나요?

네. 공부도 영어로만 했구요. 한국과는 별 접촉이 없었어요. 공부하는 동안에는 그곳 한국인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박사 학위를 받은 게 1999년인데, 그때 한국에 돌아가려고 보니까 국내 사정이 아주 안 좋았어요. 주변에선 그래도 어떻게든 짐을 싸들고 들어가서 비비다 보면 자리가 생긴다고들 했는데,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 마침 지도교수가 일본 대학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을 구한다고 해서 그리로 갔어요.

[과학동아]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 연재

-일본에는 얼마나 계셨죠?

1년 10개월 정도 있었어요. 저로서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물론 문화적인 경험도 좋았지만, 제가 간 곳이 마침 유전학 연구소였어요. 유전학자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사고하는지, 과제나 질문은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어느 정도 몸으로 느끼면서 볼 수 있었어요. 또 그런 접근법에는 어떤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것까지 알게 됐어요.

유전학은 일본 사회하고 정말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맨 위에 보스가 있고 그 밑에 중간 보스가 두 명 정도 있고, 그 다음 서너 명이 있는 식이죠. 점심도 보스가 먹자고 하면 같이 먹고. 일사분란하게 질서가 잘 잡힌 곳이었어요. 유전학을 하려면 실험실을 계속 돌려야 하고, 스위치도 정확히 껐다 켰다 해야 하는데, 맨 아래 사람이 그런 걸 맡아서 하는 식이지요.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물론 지도교수가 있긴 하지만 그 밑의 학생도 교수 밑에 있다기보다는 자기가 독립해서 길을 가기 전까지만 교수가 도와주는 정도예요. 일본은 보스가 되는 길은 지금 보스가 자리를 떠서 빈 자리를 채우는 길밖에 없는 거예요. 중간 보스가 다른 데 가서 자기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배반인 셈이지요. 은근히. 이렇게 짜인 조직에서는 학문의 발전이란 게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창의적인 게 나오기 어렵단 얘긴가요?

그렇죠. 보스하고 너무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되니까.

-미국에 있을 때는 유전학을 하지 않았나요?

미국에서는 뼈만 연구했어요. 그래서 일본 가서는 처음부터 다시 했어요. 그래서 많이 울었죠.(웃음) 유전학이 그때 그렇게 득세할 줄 알았다면 미국에서 공부할 때 좀 해뒀을 텐데 하면서 말이죠. 90년대만 해도 유전학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헤게모니를 쥔 분야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저로서는 문과생으로 유학 온 처지에 뼈나 해부학 같은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벅찼으니까요.

생물학은 공부를 했어도 유전학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일본에 가서 유전학을 접할 수 있었으니 저로서는 운이 좋았던 거죠. 반대로, 저를 받은 일본 교수는 뼈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을 구해다가 자기가 배우려고 했던 거죠. 자기는 유전학을 하지만 인류의 진화를 제대로 공부하지는 않았으니까.
#실험실에서 연구 중인 이 교수. 이런 두개골과 친하다. 어느새 눈이 침침해서 이런 작업 때에는 안경을 껴야 한다.
-선생님 책을 보면 현대 인류학의 쟁점들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그 중에서도 인류가 어디서 기원했는지가 여전히 가장 큰 관심사지요? 

네, 현생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가 인류학자로서는 가장 궁금한 주제지요. 여기에는 크게 아프리카 기원설(호모 사피엔스는 6만~1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새로운 종이며 이들이 유라시아로 퍼지면서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입장)과 다지역 연계설(현생 인류의 조상은 하나가 아니며 다양한 집단끼리 문화와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200만 년 동안 계속돼 왔다는 입장)이 맞서 있습니다.

인류가 한 곳에서 비롯했느냐, 여러 곳에서 왔느냐, 그리고 한 곳에서 왔다면 그게 어디냐가 쟁점인데. 사실은 네안데르탈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어요. 네안데르탈인을 현생 유럽인의 조상으로 볼 것인가가 쟁점이지요. 이건 아무래도 도표로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이 교수는 프론트로 가서 메모지를 얻어와서는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출처: ⓒ 전병근
이렇게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가 있어요. 화석으로 보면 유럽 지역에는 현생 유럽인 이전에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던 거예요. 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유럽인의 조상이냐 아니냐가 학계의 큰 쟁점이에요. 그것은 세상이나 학계가 유럽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 자료가 제일 많아서이기도 해요.

반면에 아프리카 자료는 별로 없어요. 아시아도 이 지역(중국)쯤에나 화석이 좀 있을까. 현생 인류 직전 시기의 화석으로 많이 발굴된 게 유럽밖에 없고 그게 거의가 네안데르탈인인 거예요. 따라서 유럽의 경우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에서 왔거나 다른 곳에서 온 것일 텐데, 지금으로서는 아프리카가 유력한 거죠. 만약 네안데르탈인에서 유럽인이 유래했으면 네안데르탈인처럼 생겼겠죠.

그런데 유전자 분석을 통해 연구해보니 현생 인류의 기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적 최근이라는 게 밝혀진 거예요. 그뿐 아니라 기원이 아프리카였다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최근에 확인된 현생 인류의 조상이 유럽의 조상이기도 하고 아시아의 조상이기도 한 거죠. 이게 단일기원설이예요.
출처: wikipedia
유럽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지도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이 지금 유럽인의 조상이었고, 지금까지 화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보는 게 다지역 연계설이예요. 원래 기원을 따질 때 유전학적으로는 돌연변이에 의한 다양성의 정도로 선후를 파악하거든요. 돌연변이란 게 무작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쌓이게 돼 있어요. 그 돌연변이의 수를 가지고 그 계통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가 있는 거지요.

그렇게 계산해 봤더니 현생 인류의 돌연변이 수가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은 거예요. 우리 인류의 역사가 일천하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변이가 가장 다양한 곳이 아프리카예요. 그러니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래했고,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았겠구나 추정하는 거죠. 그 다음이 유럽과 아시아 지역이겠구나라고 본 거지요. 이렇게 유전학을 바탕으로 한 단일기원설이 한 20년 동안 주류 가설로 득세했어요.

그런데 2010년에 네안데르탈 게놈의 염기서열이 분석이 돼 나왔잖아요. 30억개를 왕창 다 들여다봤더니, 우리 모두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조금씩 다 갖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얘기는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한 무리가 나와서 지구를 싹쓸이한 게 아니라, 다양한 무리들이 계속 왔다갔다했다는 거죠. 지금 아제르바이젠 지역처럼 대륙을 넓게 오가며 계속 피도 섞으면서 살아왔다는 거예요.

그렇게 본다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와 다른 종이 아니라 같은 종인 거죠. 왜냐하면 서로 피를 섞고 멀쩡한 자손까지 낳았으니까. 다양한 인류의 무리들이 한 종을 이루면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이어온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보자니, 네안데르탈인하고 현생 인류가 같은 종이라는 게 감정적으로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생각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그래 피가 섞이긴 섞였어. 하지만 그렇게 많이 섞이지는 않았고, 굉장히 무시할 만큼 조금 섞인 거야' 이런 정도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죠.
출처: ⓒ 전병근
-정리를 하자면, 하나의 종에서 시작됐지만 서로 다른 지역으로 넓게 뻗어나간 그룹들이 각지를 거점으로 공존하면서 서로 간에 접촉도 있었다는 거군요.

네, 그렇게 서로 섞였던 거죠. 만약 이 그룹들이 완전히 따로따로였다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유전자 교류가 전혀 없었다면 서로 별개의 다른 종이 되고 마는 거거든요. 그렇지 않고 계속 섞였다는 거죠.

-그러면 서로 사촌지간으로 볼 수 있겠군요.

네, 그때도 각 지역의 무리들이 흩어져 살았지만 교류가 있는 지금처럼 한가지 종이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인류라는 종을 구분하는 기준은 뭐지요? 다른 유인원들과는 종으로서 갈라진 지점이 있을 텐데요. 어떤 차이점으로 구분이 되지요?

그게 참, 문제가 되지요. 학술적인 종(種)의 정의는 유전자 교환의 가능성이거든요. 서로 유전자를 교환해서 다시 멀쩡한 후손이 나오면 하나의 종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 종이 아니예요. 말과 당나귀가 서로 다른 종인 것은 둘 사이에 새끼가 태어나도 그 노새는 새끼를 못 낳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종일 경우에는 자연 상태에서 서로 교배를 하지 않거나, 설사 교배가 된다고 해도 노새 같은 불임 후손만 나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종을 구분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구분 방식에는 결함이 있어요. 모든 생물체를 일일이 다 교배시켜 볼 수도 없고, 가령 인간이 침팬지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없잖아요. 윤리적으로도 반하고, 여러가지 비용이나 대가 측면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또 후손을 낳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세대의 생식 능력 여부까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서 현실적으로 별개의 종이란, 서로 유전자 교환을 못 한다는 얘기는 유전자풀이 완전 분리가 됐다는 뜻이고, 그럴 경우에는 서로 생김새도 다를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래서 일단 생김새가 다르면 다른 종이라고 해요.
-생김새의 다른 정도는 뭘 기준으로 삼죠? 생긴 걸로 치면 원숭이를 닮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을 알아보는 눈은 공부해서 생기는 눈이 아니예요. 같은 인간끼리는 그냥 서로 직관적으로 알아봐요. 우리가 말이나 당나귀 같은 종을 분별해서 알아본다고 할 때에는 공부를 해서 아는 거거든요. 반면에, 어떤 개체를 보고 자신과 같은 종인지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직관적인 눈은 거의 유전적으로 본능에 가까운 거예요. 그런 직관을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야 딱 봤을 때 저 개체를 먹을 거냐 도망갈 거냐, 짝짓기를 할 거냐, 이런 판단을 곧바로 할 수 있거든요.

-살아있는 개체끼리 서로 같은 종을 알아본다는 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고인류의 경우 화석으로만 남아있는데 어떻게 알아보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인류가 아닌 종들의 고생물의 경우에는 우리가 읽어낼 수가 있어요. 말을 직접 알아보는 눈이나, 말의 종을 알아보는 눈이나, 말의 화석을 보고 알아보는 눈이나 다 우리가 말에 대해 학습된 눈을 가지고 보는 거죠. 하지만 인류의 경우 살아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아보지만 고인류의 화석은 학습된 눈으로 알아보는 거거든요. 그 두 눈 사이에 실은 차이가 있어요.
출처: ⓒ 전병근
-그렇더라도 인류에 대한 잠정적인 정의는 있어야 하지 않나요? 다윈의 경우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큰 두뇌와 작은 치아, 직립 보행, 도구 사용을 꼽았다지요. 하지만 도구 사용만 해도 이제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지금 학계에서 인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뭐죠?

네, 지금은 직립 보행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인간 고유의 특징으로 꼽던 언어나 도구 사용은 다른 동물들한테서도 발견되고 있지요. 도구만 해도 인간의 도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학습된' 도구라고 차이를 두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른 동물도 학습을 통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특별하진 않아요.

계통적으로 봤을 때 인간을 어떤 한 종으로 규정하는 것은 참 어려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생물학적인 종은 교배 가능성을 통해 정의를 내리는데, 그것도 시간적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개념을 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계속 올라가다 보면 종이 끝나는 지점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겠어요? 바로 윗 세대와는 계속 이어질 텐데. 그래서 인류의 화석에서 종을 따질 때는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을 쓰지 않고, 종의 시작을 어떤 분기점으로 봐요. 큰 흐름에서 갈라져 나온 시기.

옛날에 1960년대까지는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다시 네안데르탈인으로 그 다음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변했다면 그것 역시 호모 에렉투스인 거예요. 호모 에렉투스와 후대인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차이가 있으려면 호모 에렉투스에서 두 종이 갈라져 나와야 해요.
출처: wikipedia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호모 에렉투스의 복원모형
-종의 진화라는 게 단선으로 대를 잇다가 어느 대에서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긴 시간대에 걸쳐 전이 과정 자체가 두텁게 이뤄진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분기 과정이 나뭇가지 갈라지듯이 갑자기 쫙 갈라지는 게 아니라, 물줄기처럼 나뉘어 흐르는 거예요. 이런 단계에서는 갈라진 줄기들 간에도 일정 기간 서로 유전자 교환이 일어날 수도 있죠. 그러다가 점차 확률적으로 유전자 교배의 가능성이 줄어들죠. 진화 과정이 오늘 어느 순간까지는 같은 종이고 내일부터 다른 종일 수는 없는 거예요. 이게 '양질 전환'의 부분에 해당하기도 하지요. 결코 단절적인 과정이 아니예요.
 
-디지털 시계처럼 1에서 2로 바뀌는 식이 아니라, 아날로그 시계바늘처럼 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거군요.

네 그렇죠. 좀 조심스러운 비유이긴 한데, 저는 그 과정을 대머리로 설명을 하곤 해요. 우리가 볼 때 언제부터가 대머리이고 언제까지는 대머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대머리가 어떤 것인 줄은 분명히 아는 데, 시작 지점은 특정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언젠가 이마가 아주 넓은 외국인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I am balding"이라고 해서 서로 웃은 적이 있어요. 머리가 벗겨진 상태를 진행형으로 표현한 건데, 진화도 그런 식이라는 말이군요.

(웃음) 그렇죠. 그래프의 세로축을 변화의 정도로 두고, 가로축을 시간의 경과로 두고 보면, 초반에는 차이가 미미하고 뒷 부분에서는 확연하지만 이 중간쯤에서는 한동안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다는 거죠.
# 어느 정도부터 대머리가 아닌 것일까?
-그 부분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반박할 때 "진화가 맞다면 왜 중간 형질이 없느냐"라고 반문하는 것이 생각나는군요. 어떤 종이 분기했을 때 왜 그렇게 나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 수 있지요?

그것을 유전적 분리라고 해요. 어떤 유전자풀이 있을 때 언제 어떤 이유에선지 두 집단 간에 유전자 교환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게 된 상황이예요. 가령, 굉장히 작은 몸집의 동물의 경우 대규모 지각 변동 때문에 그 사이에 엄청난 협곡이 생긴다든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서로 고립이 될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에게서는 사실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요.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돌아다니거든요. 전 세계에 걸쳐. 그렇게 분방하게 돌아다니다가 비슷한 무리를 만나면 애부터 낳고 보기 때문에, 아마 그런 식의 완전한 고립이나 분리는 생각하기 어려워요. 다른 동물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그런 상황이 있어요. 재생산만 해도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데, 다른 종과 교배해서 새끼를 낳는 것은 장기간 투자를 요구하는 일인데 결과가 무위에 그쳐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른 종끼리는 교배를 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노보와 침팬지가 서로 다른 종이라고 보는 근거 중에 둘이 섹스를 못 한다는 것도 있어요. 보노보는 체위가 다양하기로 유명한데 반해 침팬지는 보통 하나예요. 체위가 안 맞아서 못 하는 거예요. 아니면 생식기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서로 안 맞을 때, 아니면 배란기나 교미기가 어떤 이유로 인해 서로 어긋날 때랄지.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 중에 어떤 것도 해당되는 게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인류가 한 종으로 지낸 기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길었을 거라고 믿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됐지만 그 다음 전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살게 된 이후로도 항상 한 종이었고, 다양하게 무리를 지어 흩어져 살았다는 거죠. 
출처: ⓒ 전병근
-그렇게 퍼져 나가서 결국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인류의 특징은 뭐라고 보세요?

제가 생각하는 인류의 특징은... '넘어섬'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는 중에도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극진하게 사회에 의존해서 살아요. 태어난 순간부터. 가령, 출산만 해도 인간은 그 과정이 대단히 힘들거든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암컷은 보통 산통이 시작되면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일을 봐요. 그럴 땐 누가 가까이 가거나 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진통이 멈추거나 암컷이 새끼를 물어죽이기도 해요.

하지만 인간 여성은 그 반대예요. 해산의 진통이 다가올 때 혼자 있게 되면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는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하고 출산 때에는 누군가가 아기를 받아줘야 해요. 이건 굉장히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흔히 인간이 사회성을 두고, 친족 유전자를 나눠 갖고 있으니 사회를 이뤄 사는 것이라고들 해요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요. 다른 사회 생활을 하는 개미는 클론(복제품)이나 마찬가지니까 차치하고라도,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들만 해도 아들이 태어나면 자란 후에 그 집단을 떠나요. 그러면 그 사회는 서로 혈연 관계에 있는 암컷 위주로 유지가 되고 수컷들이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근친교배를 피하지요.

반대로 수컷이 무리에 남고 암컷이 떠나는 경우에는 혈연 관계에 있는 수컷들 중심으로 집단 생활을 하게 되고요. 그럴 경우 집단 생활을 하면서도 개체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늘 일치하지는 않아요. 그럴 때는 개체가 집단을 위해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도 궁국에는 같은 유전자를 나눈 집단을 위하는 행동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요. 하지만 인간의 사회 생활은 그렇지 않다는 것예요.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다른 개체들과도 같이 살고 협력도 얼마든지 하거든요.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국내외에 대형 참사가 많았잖아요. 그런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항상 뒤따라 나오는 게 각종 미담들이에요. 자기와 유전적으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애써 죽이는 것도 인간이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돕는, 극단적인 경우 자기 목숨까지 던지는 것도 인간이에요. 이런 건 다른 동물 세계에는 어디에도 없는 행동이죠.

-인간은 생물학적인 논리를 넘어선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죠.
-리처드 도킨스의 밈(meme) 이론도 그렇고, 인간이 생물학의 차원을 넘어 문화의 논리를 따르는 존재라는 점은 누차 얘기돼왔지요. 급기야 이제는 인류가 인간 종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도 하잖아요. 초인류를 주창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도 있지요. 인류학자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류가 걸어온 과거 행로를 봤을 때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요즘 미국에서는 부모를 몇 명까지 인정할 거냐는 게 이슈예요. 사실 부모나 양친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 상황인데, 남자와 남자 커플이 자신들 중 누군가의 정자를 가지고 다른 여성으로부터 제공받은 난자와 수정시킨 후에, 또 다른 여자의 자궁에 착상시켜 태어난 아기는 부모를 몇 명으로 볼 거냐는 거죠. 생물학적인 부분도 논란거리지만, 법적 친자 관계라든가 양육책임권은 누가 질 거냐는 현실적인 쟁점도 있죠.

지금까지 가족 개념은 근대 핵가족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어요. 지금 우리는 그런 걸 다 넘어서고 있어요. 심지어 요즘은 자신이 길러온 반려견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사람도 있잖아요. 혀를 차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인간의 진화 방향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류가 점점 핏줄이나 친족 관계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증여의 상대가 생판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강아지일 수도 있는 거지요.

-앞으로는 로봇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럴 수 있죠. 여태까지 계속돼온 진행 방향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죠. 요컨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점점 더 느슨해지는 쪽으로 진화해온 것이 인류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순히 현대 문명의 발달, 기계 발달의 차원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에요.

아까 인간 종의 특징으로 언어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른 동물이나 곤충들의 소통과 인간의 언어가 다른 점 중 하나가, 분절음 같은 그런 특징을 떠나서 말의 내용으로 봤을 때 '지금 이곳'을 벗어난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한다고 해요. 다른 동물들은 소통의 내용이 '여기 지금 먹을 것이 많아'라는 식이라면, 인간 언어의 대부분은 '지금 여기'를 벗어난 얘기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좋게 말하면 가정법,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거죠. 
# '로봇'이 가족이 되는 시대가 올까
-상상력과 관계가 있겠군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생각해내고 이야기한다는 거니까.

그렇죠. 현실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상상의 영역을 이야기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요즘 그 '넘어섬'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인간이 씨족이나 부족 단계을 넘어 국가를 형성하게 된 것이나 나아가 오늘날 국제사회나 인류를 이야기하게 된 것도 그런 '넘어섬'의 귀결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죠. 언제나 현재를 넘어 내일을 이야기하고, 내일을 넘어 10년 뒤를 이야기하고, 혹은 지금을 10년 전과 비교해보고 하는 게 인간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언제부터 나타났느냐를 굳이 따지자면, 이미 3만년 내지는 6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동굴 벽화의 추상적인 무늬나 상징적인 문양의 화석 같은 것을 보면 그때 이미 예술 활동 같은 것의 흔적이 나타나거든요.

-우리가 '원시'라고 부르는 그 옛날에도 그들 나름대로 초월을 꿈꾸고 형상화하려 했다는 얘기군요.

그렇지요.

-그렇게 보면 지구나 인류의 역사를 길게 보는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고인류나 현대인은 비슷한 시대를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네, 그렇죠.
출처: ⓒ 전병근
-아까 인간의 또다른 특징으로 사회성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회적 동물들과는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이른바 진사회성(eusociality) 동물이라고 하죠. 벌이나 개미의 경우 수컷이 자기 생식은 포기하고 집단을 위해 평생을 사는데 그런 동물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그때 나온 이론이 유전자 이론이었죠. 중요한 것이 개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진 유전자라면 개체 수준에서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거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도킨스 같은 학자만 해도 개체는 그저 유전자가 잠시 몸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유전자의 자기복제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다른 영장류만 해도 대개 혈연 관계로 이뤄진 사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니까 그런 설명이 가능해요. 하지만 지금 인간은 그렇지가 않아요. 물론 지금 사회 상황을 두고도 해석이 다를 수 있어요. 아직 혈연주의나 정실주의가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최근까지 인간도 친족 혈연 사회를 이뤄 살았는데 갑자기 근대화하면서 현대 사회 질서 속에서 살게 된 결과 아직 친족 사회 때 습관은 남아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해석과는 달리, 진작부터 우리는 딱히 친족 사회를 이뤄 산 게 아니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한참 생각)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요즘 제가 많이 하는 생각이, 우리가 말하는 엄마, 아빠 개념도 사실은 혈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사실은 굉장히 문화적인 색채가 강한 관계일 수 있다는 거예요.

-옛날에 친자가 아닌 양자 개념이 있었죠. 일본에도 친자가 아닌 밖에서 들인 수제자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음으로 양으로 많이들 그랬죠.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빠가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잖아요. 일일이 친자 관계를 검사해보고 같이 사는 건 아닌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냥 같이 살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잖아요.

-'그러려니' 한다는 게 사실은 생물학적인 데서 비롯한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착된 거란 말이군요.

네. 소수민족을 연구할 때 봐도, 엄마는 출산 과정을 통해 사실 여부가 분명하니까 그런 엄마 곁에서 같이 살고 있는 남자를 그냥 아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사람이 실제 아빠 노릇도 합니다. 우리도 집안의 자녀를 당연히 내 피가 섞인 자손이려니 하면서 함께 살고 애정을 주고 하잖아요. 저 아이가 정말 내 유전자를 받은 애일까 의심은 거의 안 하잖아요. 특이한 경우만 빼놓고는. 그런 걸 봤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옛날에는 아주 혈연적으로 탄탄한 친족 사회에서 지금은 그것이 일거에 와해된 현대 사회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환상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은 아이디어 수준인가요? 어디 논문으로 발표된 적이 있나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이에요. 사실 이런 생각들은 과학적인 연구 훈련을 통해서는 나올 수가 없는 생각들이거든요. 저는 그전에는 화석이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과학적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찾고 검증하는 훈련을 주로 받았어요. 하지만 이번에 책을 쓰면서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펼치게 됐어요. 이제는 지금 같은 생각도 하면서 이런 걸 논문이나 학술적인 글로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는 주제 같아요. 부족주의나 혈연주의도 생물학적인 필연이 아니라, 그때그때 권력이나 자원을 가진 사람이나 관계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구축된 사회 질서일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죠. 일종의 '피의 내러티브'죠.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것을 앞세워 인위적인 결속을 다지는 거죠.
-민족주의가 근대 국가의 산물이라는 유명한 이론(베네딕트 앤더슨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 참조)도 있잖아요. 그 논리를 소급해 올라가면 부족주의나 친족주의도 어떤 작위성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년의 유작 '경제와 사회'에서 파고든 방대한 주제가 가부장제에서 근대민족국가에 이르는 사회질서의 진화였다.) 

그렇지요.
  
-이번 질문은 앞서 말씀하신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관계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이기적 유전자와는 별도로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연구 결과도 많이 나옵니다. 인류는 원래 이타적이었나요?

이타적인 면도 있지요. 훈훈한 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고요.

-요즘 유튜브 같은 데 올라오는 동영상들을 보면 다른 동물들도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 같아요. 약자에게 동정심을 발휘한다든지. 그런 걸 보면 이타성이라는 것도 인간의 고유한 품성이나 덕목으로만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는 편이예요. 특히 인간의 손이 닿았던 동물의 행동은 진위를 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동물에게 있어서 새끼에 대해 보이는 반응만큼은 좀 별개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어요. 이른바 '큐트 리플렉스(cute reflex)'라는 게 있어요. 어느 동물이나 새끼들은 상대에게 동정이나 호감을 자동적으로 유발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그 덕분에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새끼 입장에서는 생존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포식자 눈에는 그게 무조건 먹이로 보이지 않고 배려나 아량, 동정의 대상으로 비친다는 거잖아요. 그럴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이기적인 본능과 이타심의 경계가 확연한 건지도 의문스러워져요.

당장에 먹지 않고 좀 더 커진 다음에 먹으려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출처: ⓒ 전병근
-일종의 지연된 이기심이라는 말씀이군요. 물론 이타심 자체도 장기적, 혹은 변형된 이기심으로 보는 입장도 있지요. 아뭏든 그전까지는 이기심을 생물이나 생태의 기본 원리로 보다가, 최근 들어서는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사회성(social)', 공존, 협력의 측면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이타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서는 좀 더 말씀 드릴 게 있어요. 궁극적으로 출산과도 연결되는데요. 인류의 머리가 상대적으로 큰 것을 두고도, 결국 어떤 생존을 위한 물리적 기술이나 자연 지식을 담기 위한 과정에서 커졌다고 보기보다는, 사회 관계의 정보를 담기 위해 커졌다는 해석들을 하거든요. 혈연이나 친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사회일 경우에는 그런 정보들이 더더욱 중요해지겠지요.

우리가 엄마나 이모는 그냥 편하게 넘어가도 먼 아주머니는 오히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런 식으로 사회 관계의 끝없는 정보를 담아두기 위해 머리가 커졌다고 한다면, 역으로 머리가 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은 극히 사회적이었고 그때부터 이미 이타심을 보인 게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겠죠.

머리가 언제부터 커졌는지는 유골을 분석해보면 대충 알 수가 있거든요. 5백만년 전부터 2백만년 전까지는 대체로 450-500cc 정도로 고만고만해요. 그러다가 2백만 년 전부터 쑥쑥 커지기 시작했거든요. 이게 출산의 사회성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우리 인간은 산모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신생아의 머리가 산도(産道)보다 크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출산 과정에서 아기가 어렵게 비집고 나와야 하는데, 원숭이의 경우에는 산모가 다리 사이로 새끼를 직접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의 아기는 출구가 좁다 보니까 몸을 골반 속에서 두 번 정도 틀어요. 그 결과 아기가 산도에서 나올 때는 산모의 시선을 등지고 있게 돼요. 그런 자세에서 엄마가 아기를 받으면 목이 꺾이게 되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받아줘야 해요.

그런 식의 난산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알 수가 있어요. 호모 에렉투스 그 무렵부터 그처럼 어려운 출산이 시작됐다고 본다면, 여기서부터는 소설이긴 한데, 인간의 어려운 출산-두뇌 크기의 증가-고도의 사회성, 이런 게 다함께 맞물려서 호모 종의 진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죠.
# 이 교수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고인류 화석 '루시' 추정 복원 모형. 핑크색이 이채롭다. 4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한 개론 수업 마지막 시간에 조교들이 깜짝 선물로 준 것이다.
-선생님은 책에서, 인류가 특징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큰 두뇌보다 직립보행이 더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했는데요.

네. 사실 예전에는 인류가 언제부터 직립을 했는지는 별로 안 중요했어요. 호모 사피엔스는 머리로 승부하는 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머리가 언제부터 커졌는지가 주 관심사였고, 나머지 특징들은 뒤따라 오는 거라 생각했어요. 직립보행도 부차적인 특징으로 본 거지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흔히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하면 네 발로 걷다가, 그 다음엔 구부정하게 걷다가, 다시 60도 정도 굽은 자세로 걷다가, 나중에 와서야 똑바로 서서 걷는 식의 상상도를 많이 봤을 거예요. 그렇게 보자면 직립보행은 맨 나중에 생긴 부차적인 특징이 되지요.

하지만 330만 년 전 인류 초기 화석 루시가 발견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 이 화석을 보면 신체의 다른 것들은 다른 유인원과 다를 게 없어요. 머리도 조그맣고 몸집도 작고 팔도 길고 다리는 짤막해요. 그런데 여기에 직립보행의 특징도 있더라는 거예요. 처음 그 발표가 나왔을 때 아주 충격적이었어요.

그전까지 직립보행은 200만 년 전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에 와서 나온 특징으로 간주됐거든요. 루시를 보니까 그게 아니라 도구나 언어 같은 특징이 나타나기 전에 직립보행이 우선했다는 거죠. 그 후로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학계에서는 인류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게 직립보행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인류가 맨 처음 출현했을 때 자세가 구부정했던 게 아니라 당당하게 걸었다는 거죠. 하기야 구부정한 자세로 어떻게 몇 십만 년 동안을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 어정쩡한 자세로는 도망도 제대로 못 가고 잡혀서 유전자도 못 남겼을 텐데.
-직립보행 다음의 진화 순서는 어떻게 되지요? 

직립 후에 일단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손에 관련된 도구의 사용이 등장했고,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쓰게 되면서 이빨도 점차 작아진 것으로 불 수 있어요.

-오래 걷기는요?

오래 걷기는 좀 더 나중이라고 봐야 해요. 그건 직립보행에서 시작됐다기보다 다리가 길어지면서 가능해진 현상이니까요. 양팔을 추처럼 흔드는 원리를 이용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오래 걸을 수 있게 된 거죠.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직립보행 덕분이었어요. 네 발에서 두 발로 걸으면서 배와 가슴 사이의 횡격막이 자유로워졌고, 그것을 발성하는 데 마음껏 쓸 수도 있게 됐지요. 

-언어가 점차 정교해지면서 복잡한 사회 생활도 가능해지고 그에 따라 머리도 커진 수순인가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인의 뇌가 오히려 작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몸집으로 볼 때는 인류의 최대치였어요. 머리도 몸집도 제일 컸어요. 그 뒤 인류가 정착해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 몸집은 오히려 작아졌어요. 영양이 부실해지면서 머리도 작아지고.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의문이 있어요. 증거로 볼 때는 작아진 건 사실인데 정말로 작아진 건지 샘플링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점점 작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근거로 삼은 비교 샘플을 보면 네안데르탈인이 가장 많아요. 그때는 빙하기였거든요. 대체로 추운 지방 사람은 체중에 비해 머리가 커요. 반대로 더운 지방은 체중에 비해 머리가 작고. 그런데 빙하기 이후로 지구의 온난화가 진행됐잖아요. 따라서 머리가 작아진 것은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일 수도 있지요. 어떤 두뇌 활용이나 지력의 사용에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출처: wikipedia
# 1908년 프랑스 라샤펠오생 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두개골
-선생님은 책에서 "진화는 늘 가장 좋은 선택이라기보다 그때그때 적합한 선택과 적응의 결과였다"고 썼지요. '그때그때 적합한 선택'이라는 게 결국에는 최선 아닌가요?

그 당시로 볼 때는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절대적인 최선은 아닙니다.

-최선의 적응이 계속 이어져 왔다면 그것을 발전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발전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어떤 시점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왜 그런 질문을 드리느냐면, 인류 문명이 진보했느냐는 것을 두고 지금도 논쟁이 붙기도 합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인류 진보에 대한 낙관론은 세계 대전 등을 겪으면서 수그러든 것 같은데, 그래도 현대 문명이 절대빈곤을 낮추는 등의 뚜렷한 기여를 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오히려 인간성이 위협받는 시대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 같은 것 아닌가 싶어요. 인류의 삶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를 두고 섣불리 가치평가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절대적으로 좋은 선택도 절대적으로 나쁜 선택도 없습니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 본성 안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인류의 폭력성이 감소해왔다고 했지요. 전쟁이나 고문, 학살 같은 크고작은 폭력이 감소돼온 통계와 자료를 제시하면서 인류가 그래도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지요. 그건 어떻게 보세요?
저는 그 책을 직접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전하자면, 근거로 삼은 데이터의 문제를 많이 얘기들 하더군요.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폭력은 누구를 직접 죽인다거나 대량살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 최저임금제를 지키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에게 기초 생활기반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거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게 아니라 서서히 불행하게 죽어가는 상태로 나타나는데 그런 것들은 수치로 계산이 안 되고 있다는 겁니다. 가령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일주일 만에 끝날 수 있을 병도 지병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삶의 질이 나빠지는 과정에서 미시적인 부분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인데. 반대로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제는 절대빈곤도 없고 능지처참 같은 고문이나 참형은 사라지지 않았느냐 식의 반론이 오가는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은 어떤 입장인가요?

솔직히 저는 그 문제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 과정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랄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거야, 옛날보다는 나아졌어'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 자체가 제 눈에는 재밌게 여겨집니다.
-아까 말씀하신 인간의 '넘어섬'과도 관련이 있겠군요. 실제로 인류가 진보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입장이 갈리겠지만, 그런 진보의 기대를 똑같이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요. 얼마 전 캐나다의 토론 이벤트인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에서 인류의 진보 여부를 놓고 쟁쟁한 지식인들끼리 공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어요. 찬성 쪽에 스티븐 핑커 교수와 과학 작가인 맷 리들리가, 반대 쪽에 유명 저자인 맬콤 글래드웰과 알랭 드 보통이 조를 이뤄 맞붙었는데 볼 만하더군요. 거기서도 거론된 쟁점 중 하나가 인류의 농경 문화인데, 그전까지는 문명의 진보로 봤던 것이 요즘은 비판의 대상이더군요.

인류가 정착해서 농경 사회를 이뤄 살면서 많은 변화들이 생겼어요. 전염병도 많이 돌기 시작했고, 기근도 그때부터 시작됐죠. 수렵채집 시절엔 주기적인 기근이라는 게 없었거든요. 하지만 농경 사회는 특정 작물에 의존하다 보니까 흉작이 되면 그 해 집단의 생계가 통째로 위협받게 됐지요.

또 경작지에 묶여 살게 되면서 전염병이 돌아도 꼼짝을 못하고 당하게 됐고. 충치도 주요 작물을 통한 전분질 섭취가 높아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지요. 영양이 좋지 않아 사람들 덩치도 작아지고 평균수명도 낮아졌다고들 하죠. 적어도 다수가 풍요를 누리고 장수하면서 살게 된 것은 아니었어요.

-결국 진화 과정에서 얻는 만큼 잃은 것도 있고, 문제를 해결한 만큼 새로 떠안게 된 것도 있다고 본다면, 지금까지의 합산은 플러스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플러스였겠죠. 그러니까 지금 지구상에 인간의 개체 수가 이렇게 엄청나게 많잖아요. 다른 동물들은 대부분 멸종 위기인데. 유인원들만 해도 다 멸종 위기예요. 오랑오탄이나 침팬지나 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게 됐든지 간에 현재 지구상에서 최고로 성공한 종이라고 할 수 있죠.
-가장 큰 비결은 뭐라고 보세요?

가장 단순하게 대답을 한다면, 후대를 번식하는 데 있어서 양과 질을 모두 추구해서 성공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진화의 성공이라는 게 같은 유전자의 개체 수를 얼마나 많이 남기느냐에 달렸다면, 새끼를 낳고 기르는 데 보통 두 가지 접근법이 있어요. 아주 많이 나아서 생존의 확률을 높이거나, 아니면 한둘만 나아서 제대로 잘 키우거나.

첫째 경우는 개체 수가 많은 만큼 새끼당 비용은 낮게 들어가는 경우이고, 두번째 경우는 비용이 아주 비싸게 들어가지요. 대개 육식동물일 경우에는 비싸고, 초식동물이나 어류들은 싼 전략을 택해요. 영장류만 해도 새끼를 한두 마리밖에 안 낳아요. 새끼 양육에 비용을 많이 들이는 동물의 특징은 개체 수가 많지 않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적지 않은 수의 자식을 낳으면서도 다 비싸게 키워냅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장류의 새끼 양육법과는 아주 달라야 했어요. 암컷이 혼자서 출산과 양육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공동 육아로 갔습니다. 그 공동 육아에 참가하는 게 누구냐를 두고서는 논쟁이 있어왔지요. 그게 아빠냐 할머니냐는 거죠. 또 이모냐 언니냐를 두고도 싸우기도 해요. 저는 답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의 특징 중 하나가 기가 막힌 유연성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또 집단이 처한 형편에 따라서 그게 아빠가 될 수도 있고 삼촌일 수도, 이모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공동 육아를 통해 후손 번식의 질과 양, 두 마리 토끼를 다 거머쥐었다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재생산 과정부터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는 거군요.

그렇죠.
출처: ⓒ 전병근
-할머니의 역할을 이야기한, 이른바 '할머니 가설'도 재미있더군요.

네. 난자는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여성은 폐경을 맞게 돼 있어요. 따라서 여성이 나이가 든 후에는 자신이 직접 출산하기보다 자기 딸의 아기를 돌보는 식으로 유전자를 위해 봉사한다는 게 '할머니 가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노년기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 시점이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와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해석을 했어요. 빙하기에 인류가 어려웠던 것은 단순한 추위 때문이 아니라(추운 날씨가 계속될 경우엔 한번 적응한 상태로 계속 가면 되니까 큰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기후 변화가 예측불허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요. 간빙기도 있고 해서 춥다가 다시 따뜻해지기도 하면 거기에 맞춰서 몸이 계속 적응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변화에 대한 적응은 유전자에 입력이 돼있을 수는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할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 경우에는 정보의 힘이 아주 중요해지죠. 그래서 좀 장난스럽게 얘기하자면, 노인들은 당시 인류 공동체로 볼 때 마치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처럼 기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 거죠. 과거 정보를 축적한 세대로서. 3대가 같이 살면서 지식이 축적되고 전수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세대가 겹치면서 정보가 쌓이기 시작한 게 3만 년 전쯤이 아닐까 싶어요. 2004년에 제가 그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많이 받어요. 그때 어떤 기자가 묻더군요. 그러면 "컴퓨터가 보급된 지금은 노년이 필요없어지게 된 건가요"라고요.

-지금은 노년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용도(?)를 위협받는 상황 같은데요.

거기에 더해서 재미있는 점이, 지금은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70, 80, 90살까지 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됐잖아요. 그럴 경우 네 세대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는 거예요. 늘 3세대 정도가 공존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인류의 기원과는 별도로 한국인들은 한민족의 기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바이칼호를 발원지로 지목하기도 하는데 그런 주장은 어떻게 보세요?

우리 민족도 어딘가에서 이동해서 왔을 것은 틀림이 없겠지만, 문제는 '기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은 그렇게 과학적이지가 않아요. 오히려 인문적인 개념이죠. 마치 인류의 시조를 아담과 이브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북방 민족에 대한 환상이 좀 있어요. 흔히 대륙을 누비던 기마민족의 기상 같은 것을 떠올리거든요.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사고의 경향이나 희망이 앞서다보면 정작 실증 자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외국에서 연구를 해온 외부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해 비교적 거리를 둔 시각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심증으로는 한반도에 흘러든 사람들은 동남아에서 온 무리가 주류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유는요?

현생 인류가 퍼진 이동 경로를 이야기할 때 대개 해안을 따라 이동했을 거라고 봅니다. 보통 해안을 따라가다가 내륙으로 점점 퍼져 들어가는 식이지, 내륙을 통해서, 가령 굳이 힘든 히말라야를 넘어 동남아로 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거죠.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지 않나 싶어요. 물론 100%가 다 그렇게 왔다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왔다갔다 이동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섞였을 테지요.

제가 요즘 아제르바이잔에서 출토된 인골을 들여다 보는 이유의 저변에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동북아나 한반도, 일본 열도에서 나온 인골과 비교했을 때 뭔가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 카스피해에 인접한 아제르바이젠의 위치
-지금 현재 인류학계의 최대 관심사는 뭐지요? 

네안데르탈인이에요. 언제나 네안데르탈이에요. 지금 데니소바인이 굉장히 뜨고 있는데 그 이유도 어떻게 보면 네안데르탈인과 관련이 있어서 그래요. '같은 시기에 다른 대륙에도 뭔가가 있었구나' 하는, 어떤 면에서는 뿌듯한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아마도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면 학계 자체의 지각변동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를 포함해서 학계 사람들조차 아직 지금 일어나는 변화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어요. 화석을 기반으로 연구해오던 학계가 이제는 유전자 분석에 의해 방향이 출렁되고 있으니까요. 데니소바에서 출토된 새끼손톱만 한 뼈조각 하나를 분석한 결과 데니소바인이라는 민족 하나가 생겼잖아요.
출처: wikipedia
# 이런 작은 뼈 조각 하나가 인류학의 지형도를 바꾸기도 한다
유전학이 급부상했을 때 초기의 허니문 단계는 이제 끝났어요. 맨처음 인간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분석됐을 때만 해도 마치 모든 답은 유전학이 제시해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됐어요. 모든 병도 다 고치고 퇴치될 걸로 기대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차분하고 성숙된 상황에서 유전학이 어떻게 고인류학의 한 부분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를 주시하고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유전학은 기본적으로 접근법이 완전히 다른데, 그럴 경우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이 과연 인류학에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학계간 융합학문으로 다시 변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인류학도 유전학도 아닌 새로운 분야가 생기게 됩니다. 어차피 지금의 대학, 단과대학, 학과라는 단위는 옛날부터 그냥 내려온 구조예요. 하지만 새로 바뀌려면 그럴듯한 대안이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허술해도 그냥 있던 대로 가고 맙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듯이...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궁금한 연구 주제는 뭐지요?

신기하게도, 예전에는 굵직굵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최근 한 5년, 이 책의 글을 쓸 무렵부터는 한반도에 사람이 어떻게 나타났고 정착해서 살게 됐을까, 동북아의 현생 인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을까, 그 인류와 지금 한반도 거주민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점점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봐요.(웃음) 고향 회귀 본능? 향수병이라고 할까요?
출처: ⓒ 전병근
-책은 평소에 어떤 것들을 주로 읽으세요? 

제 연구 분야의 특징 중 하나가 최신 연구 결과가 책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개 학회지의 논문으로 나오니까. 그러다 보니 평소에 책은 오히려 전공과 상관 없는 것들을 읽습니다. 최근에 저도 이런 책을 쓰게 되면서 과학교양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인류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교양서로 추천할 만한 게 있나요?

글쎄요, 딱 떠오르는 걸로는 소설이 있는데요. 매리 러셀(Mary Russell)의 'Sparrow('스패로우'로 국내 번역)라는 책이에요. 인류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공상과학소설인데요. 제 책에서도 언급이 된 책이에요. 크라피나의 식인 여부를 놓고 연구한 분인데, 고인류학 박사 학위를 딴 후에 교수까지 하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이에요. 이 책이 크게 인기를 끌었어요. 아마존에서 죽기 전 봐야 할 소설 백선에 들기도 한 책이에요.
-무슨 내용이지요?

지구에서 출발한 인류가 어떤 행성에 가서 외계지성체와 만나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책이에요. 저자가 인류학자 출신이다 보니, 웬만한 인류학 책보다 훨씬 많은 영감을 줘요. 결국 인류의 진화도 만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인간 집단이 서로 다른 이상한 존재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오해를 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관해 묘사했는데, 아주 잘 썼어요.

이분이 박사 학위도 네안데르탈인으로 했거든요. 저같은 동종 학계 사람이 읽다 보면 '아, 이건 여기서 모델을 따왔고 저기서 영감을 얻어 묘사했구나' 싶은 게 많이 보이죠. 그전에 제가 가르치는 인류의 진화 시간에 필독서로 권하기도 했어요.

-지금 보니 국내에 번역도 돼 있네요. 저자는 살아있나요?

이제 60대 초반입니다. 강추합니다.
 
-혹시 다음 책 준비하시는 게 있나요?
 
아직 계획은 없어요. 서울에 오니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인류의 기원'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너무 허접한 글들만 있다고. 저보고 블로그를 해서 검색 가능한 콘텐츠를 많이 올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런 걸 좀 생각하고 있긴 해요. 당장에는 돌아가서 신 학기 강의 준비부터 해야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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