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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미니북] "제 2의 인생 일찍 시작하세요"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 말하는 삶과 글, 그림,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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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서 학생으로, 저자에서 화가로. 이제는 이도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도저도이기도 한 사람.

북클럽 오리진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만났습니다. 3년 전 입학한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을 졸업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올 초 또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건물에 지하벙커처럼 자리잡은 연구소를 찾아갔습니다. 사방을 책으로 엄호하다시피한 원룸 소장실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로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이 왜 그런 제목의 책을 냈는지. 무엇보다 그의 민첩한 행보가 21세기의 지식노동자, 혹은 화이트컬러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듯해 관심이 갔습니다.

학술적인 내용을 낄낄거리며 읽게 하고,  글과 그림을 혼식하게 하는가 하면, 사진과 아포리즘의 편집으로 새로운 책 쓰기를 구현하는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도 물어봤습니다.

-중년 남자를 겨냥한 책이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퇴직을 앞뒀거나 이미 심리적 이직 상태인 사람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빗대자면 '외로워야 성년'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 같았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좀 더 힘이 있을 때 일찍 독립을 도모하라'는 거예요. 늦어도 50세 이전에 홀로서기를 하라는 게 제 철학이에요. 제가 꼭 50에 학교에 사표를 냈어요.
-맘이야 그래도 생계나 부양가족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텐데요.
글쎄요. 그런 걱정 때문이라면 갈수록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조금이라도 다른 출발을 생각할 여지가 있을 때 실행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 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거든요. 인생 백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첫 직장 들어갈 때도 그렇게들 계획해서 들어갔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 졸업 후에 적당히 들어간 것 아닌가요. 그때처럼 똑같이 다시 시작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직장에 다닌 성인들은 대학 갓 졸업한 때보다는 상황이 나을 수도 있어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사회 생활 시작했잖아요. 그때처럼 지금도 새로 시작해서 백 살까지 갈 생각을 해야지요. 제 친구들만 해도 잘 나가도 55세 되니까 나와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 건가요. 저만 해도 은퇴 교수로 늙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나왔어요. 아직 건강하고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때 해보는 게 남은 50년을 잘 버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인생 2막은 필수인 시대니까 최대한 빨리 시작하라는 얘기군요.
그렇죠. 가만 앉아서 세상이 왜 이리 불안하고 피곤해지느냐고 욕만 할 수는 없잖아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심리학주의라고 해요. 이것도 문제가 많은 거지만, 존재론적인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전가하는 것도 무책임한 생각이고 한심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제가 백 살까지 살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 얘기하는 게 아니예요. 외로움의 문제를 돈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노인 복지를 통해 용돈을 탈 수는 있겠죠. 그렇더라도 외로움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웬만한 사람이 굶어죽기야 하겠어요. 제가 말하는 것은 개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의 문제를 극복하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그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 때 그것을 통해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을 키우는 게 늙어서의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겁니다.

외로움을 그나마 감당할 수 있을 때 더한 외로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자는 거죠.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하는 외로움은 정말 불행한 거예요.

주체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하면 나중에 고통스런 떠밀리는 외로움의 기간이 짧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더 외로워야 (나중에) 덜 외롭다는 이야기죠.

-그러면서 공부 이야기를 하셨어요. "다들 주체적 삶을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른다. 주체적 삶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가능해진다." 이렇게 썼더군요.
제 경우에는 그림 공부, 언어 공부를 택했어요. 일본에 가서 그림을 배우고 일본어를 시작했어요.

내가 뭔가 생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다행히 내가 생산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것이 될 때 삶의 보람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생산이 가능하려면 내 스스로 그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조금 덜 불안해질 테고, '직장을 통한 안정' 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경감돼요. 결국 불안의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책은 공부해서 실력을 키우는 것밖에 없다는 겁니다.
-요즘 주변을 봐도 학습열이 일기 시작한 것 같긴 해요. 예전엔 공부라는 게 취직하고 돈 벌기 위한 도구로 봤다면, 요즘은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스스로 택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건 거의 절대적인 진리예요. 그 외에 딱히 뭐가 있겠어요? 돈 있는 친구들도 예전엔 인생은 잘 노는 게 제일이라고 했어요. 멀쩡한 회사 팔아서 재산 쌓아두고 죽을 때까지 그거 쓰면서 살 거야, 이랬던 친구가 6개월 지나서는 심심해 미치려고 해요. 유흥도 하루이틀이지, 그것만 보다 보면 재미가 없어져요.

물리지 않게 재미있는 건 공부밖에 없어요. 인류 역사가 만들어 놓은 게 다 공부거리예요. 그게 문명인 거죠.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제 경험상으로는 어학을 공부하는 게 가장 좋더라 이거죠. 이번에도 홍콩 가서 느낀 건데, 사람들은 맛있는 것 먹으러, 쇼핑하러들 거기에 가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독일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을 쓰려고 여행을 다니는데, 이게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호텔 방에서도 공부했어요. 여기 가면 무슨 박물관, 저기 가면 누구 생가, 이런 식으로 계속 연결되면서 공부가 재미있는 거예요. 이 때 제일 중요한 게 어학이더라는 거죠.

어학을 하면 여행 자체의 질이 달라져요.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맛있는 것 먹고 쇼핑하는 것 이외에, 공부를 하는 게 진정한 여행의 맛이에요.

그래서 저는 중년 남성에게 조언한다면 어학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자기 관심사를 찾다 보면 그것과 만나는 지점에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제 경우는 지식노동자니까 책을 쓰는 방식이 되는 거고, 개인에 따라서는 다른 다양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업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고.

-각 개인의 불안이 분노나 적개심으로 표출되는 것을 두고 '감정 전염'이라고 설명하셨지요.
저는 우리 사회에 그게 아주 심각하다고 봐요. 왜 그럴까요. 본인이 불안하고 외로우니까, 그걸 구조적 적개심으로 정당화하는 거죠. 적이 있으면 싸워야 할 존재들이 있으니까 불안은 잠시 잊힐 수 있어요.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사회 개혁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말하는 게 아니예요. 불안 증폭이나 감정 전염의 기제들 뒤의 집단 심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보수, 진보 막론하고 비슷해요. 종편에서 목소리 높이는 거나, 소셜에서 왁자지껄하는 거나 표피는 달라도 본질은 유사해요.

그 안에 들어있는 근본적인 정서는 불안이에요. 저는 그 근본 원인을 백세 시대 때문이라고 보는 거예요.

제가 일본에서 보니까 그렇더라구요. 일본의 돈은 노인들이 쥐고 있는데 언제 죽을지는 모르고, 더 살고는 싶으니까 안 푸는 거예요. 그래서 막혀 있는 거예요. 우리도 비슷하게 가는 거예요.

그런 불안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거예요. 백세 시대의 문제들을 문화심리학적으로 이해하면 보이는 게 있어요. 그것은 정치적 변화로 쉽게 해결되지 않아요. 노무현 정부 때,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정부 때, 편만 한 번씩 바뀐다 뿐이지 분노의 양상은 비슷해요.

한국 사회가 온통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있는 까닭은 매번 말도 안 되는 이분법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요즘 기존의 여당, 야당과는 다른 새로운 당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큰 이유도 네 편-내 편,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강요로부터 이젠 제발 좀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정당정치가 되었든 일상의 사소한 선택이 되었든, 이분법적 갈등에서 벗어나러면 현재를 상대화하는 '메타(meta)적 시선'을 발견해야 한다. 자녀가 둘이어도, 아들딸이 섞여 있는 부모가 이분법적 딜레마에서 좀 더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면 맘이 많이 편해진다. /본문 185쪽

-그 근저의 이분법적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메타적 시선의 폴리포니(polyphony)'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무슨 뜻이죠?
메타적 시선이라는 건 눈앞의 상황이나 사태를 상대화해서 볼 수 있는 것을 말해요. '폴리포니'는 '다성음악'을 말하지요. 여러 성부를 가진 음악이라는 뜻이죠. 여러 선율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결합되는 형태를 말해요.

메타적 시선은 여유가 있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해요. 비극이나 공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알기 때문이거든요. 무서운 이야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상대화하는 메타적 인지 능력이 있어야 만 즐길 수 있어요.

피아제 심리학에서 도덕성 발달의 핵심이 놀이의 규칙을 익히는거예요. 가위바위보에서 주먹이 가위를 이긴다는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거죠.
피아제는 그걸 도덕성 발달이라고 했지만 저는 재미의 발견이라고 해요.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놀이니까 그렇게 치는 거예요. 진짜 사활의 문제로 보지 않을 수 있는 거죠. 바로 메타적 시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놀이가 재미있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메타적 시선이 부족한 거죠. 이른바 '꼰대'나 '댓글부대'가 되는 거예요.

웬종일 종편이나 온라인 카페만 보다가 분개만 하고 있는 사람들 있잖아요. 자기 삶이 재미가 없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 채널이나 사이트는 그런 분노와 적개심을 키워서 먹고 사는 거고. 내 인생이 재미있으면 그거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있겠어요?
-최근 미국 사회학자들 사이에 '희생자 문화(victim culture)'를 말하던데 비슷한 진단 같군요.
그래서 제가 르네 지라르(Rene Girard, 1923-2015, 프랑스 철학자였지만 미국에서 활동)를 높이 평가하는 거예요.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욕망의 모방'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요하고 추구하는 것이 실제로는 남들의 욕망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흉내 내야 하는 타인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메카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끝없이 야기한다. 이 갈등은 희생양을 찾아 집단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문명의 기원은 바로 이 같은 '희생양 제의'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두려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질투로 인해 눈을 부릅뜨고 적을 찾아내는 한국 사회다. 그렇게 '발명된 적'에 집단 린치를 가하며, 자신은 지극히 정의롭고 선한 존재로 합리화한다. / 본문 320쪽

-바로 이전 책이 '에디톨로지'였지요. 거기서 '창조는 곧 편집'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번 책이 마치 예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운 식의 화법'에 대해 들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 때 백일장 나가서 상을 타본 적은 있어요.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은 좀 있었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글로 내가 먹고 살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글쓰기 연습도 전혀 안 돼 있었고.

-그런데 어떻게 베스트셀러 저자가 된 거죠?
제가 논문 이외 글을 처음 쓴 것은 교수 되고 나서 '여가학'을 이야기하고 다닐 때였어요. 2002년인가 2003년에 한 일간지에서 주말 섹션 시작한다면서 '여가'에 대해 써줬으면 했어요. Q&A 식으로 연재해달라고 하더군요. 질문도 내가 만드는 식으로.

써서 보냈더니 매번 '빠꾸'였어요. "신문 글을 논문 쓰듯이 하면 안 됩니다" 이러면서. 기분이 아주 안 좋더군요. 그래도 담당 기자의 성의가 느껴져서 참았어요.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쓰는 문장을 무조건 자르라는 거예요. 접속사도 붙이지 말래. 그렇게 연재를 8개월 가까이 했는데, 그때 단문 글쓰기의 감이 좀 왔어요. 매주 한 편씩 연재를 했으니까.

그때 반응이 괜찮았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연락이 와서 첫 책을 내게 됐어요. 사실 나중에는 그것도 부끄러워 절판을 시켰지만.

그 후에 글쓰기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자는 생각에서 쓴 게 '노는 만큼 성공한다'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걸 제 첫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목은 친구인 김갑수(문화평론가) 씨가 지어줬는데, 나머지는 소제목까지 내가 다 정했어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지금도 내 문장이 좋다고 생각 안 해요. 지금도 글 잘 쓰는 사람 보면 열등감을 느껴요. 그런데도 내 책이 더 많이 팔리거든요.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책도 내자고 하는 거고. 그러면 사람들은 왜 찾아 읽을까, 생각해 보게 돼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결국 나는 글이 좋다기보다, 독자와 상호작용이 좋은 사람 아닌가, 혼자 생각해요. 제 글을 읽으면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랑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도 '립스틱 짙게 바르고' 대중가요와 여자 화장 이야기를 꺼내서는 '배후 공간', '다중자아' 이론으로 연결시키더군요. 캠핑과 불장난 좋아하는 남자의 심리를 말하다가 '의미 구성' 개념, 맥루한의 미디어론으로 이어가고...
그게 글에 대한 내 열등감과도 관련이 있는데, 저는 글의 수사가 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은 내가 말을 잘하는 줄 아는데, 녹음해서 들어보면 엉망이에요. 정말 말 잘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받아써도 문장이 되잖아요. 저는 그게 안 돼요. 건너뛰고 버벅대고.

수사가 딸리는 이유를 가만 생각해봤더니, 대학 졸업 후에 독일로 유학 가서 13년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기간 동안은 점잖은 성인의 어법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 대학생의 언어에 머물렀지.

13년 간 독일의 학술 언어만 배운 사람이지. 이 문제는 유학 오래 한 지식인이 갖고 있는 똑같은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교수들 글이 난삽하거나 어려운 것도 그런 것과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내 책을 보고 사람들이 키득키득 할 수밖에 없는 게, 역설적이게도 내 어법이 대학생 수준이고 그걸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생 어법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약간 '고교생 얄개' 같은 화법 같기도 해요.
저로서는 내 글쓰기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건가를 고민해요. 다행히 제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을 추적하는 습관이 있어요. 내 책 '에디톨로지'에서도 데이터베이스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사례를 축적하는 거죠.

오늘만 해도 아침식사로 스크램블을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돼요. 그러면서 왜 사람들은 아침에 계란을 먹을까,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브런치는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이런 식으로 의문이 이어지는 거예요. 그걸 스마트폰 메모에 저장해요.

나중에 자료를 찾죠. 일본에서 언젠가 사놓은 책을 뒤져봐요. '조식의 역사'라는 책인데, 그것도 참고하고. 이런 식으로 추적이 되는 거예요. 그런 습관이 내 글쓰기로 자리를 잡은 거예요.

-그런 습관은 언제부터 생긴 거죠?
'노는 만큼 성공한다' 쓸 때부터 생긴 습관이예요. 물론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독일에서 공부할 때 배운 거지만. 신문에 글 연재하면서 소재 찾고 자료 찾는 법이 많이 늘었죠.
-글쓰기에 '내 친구 귀현이'가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도 어떤 스토리텔링의 장치처럼 보여요.

책에 다른 사람 이야기하면서 이니셜이 아니라 실명을 그대로 쓴 것은 드문 경우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제 글을 더 살가워하는 것 같아요. 그게 상호작용을 담보해주는 장치가 되는 거죠.

대단한 누군가가 무엇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고, 일상에서 똑같은 문제로 열 받고 히히덕거리는 캐릭터를 통해서 심리학,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니까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무게를 잡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친구 이야기처럼 수평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이군요.
저는 누구 가라사대 식으로 글 쓰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제가 유학 생활에서 얻은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대학자나 외국 이론에 대한 열등감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굳이 어떤 대단한 누구, 어떤 이론에 의지해서 권위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질색이에요. 저는 하이데거 사상을 알아들을 수 없는 우리말로 잔뜩 인용만 해놓은, 그런 류의 책을 아주 싫어합니다.

-철학과 교수들이 기분 나빠할 것 같은데요.
아니, 저는 그렇게밖에 쓸 수 없다면 철학 교수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정확히 이해해서 우리말로 썼다면 왜 보통 사람이 이해가 안 되겠어요.

제가 명색이 독일에서 10년 넘게 공부를 했는데, 그런 책 번역서나 심지어 해설서까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사람도 이해가 안 되면 누구를 청중으로 한 책이냐는 거죠. 한국 지식인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라고 봐요.

얼마 전에 유명 소설가 표절 시비가 일었을 때도 '문단 권력'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솔직히 좀 우스웠어요. 권력이라는 게 다른 사람에게 작용하는 힘인데, 우리나라에서 '문단 권력'이 작동하는 데가 지금 얼마나 되나 싶었어요.

-이른바 '문단' 안에서는 그렇다는 거겠지요.
문제는 지금은 문단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 없다는 거예요. 소설, 시보다 랩이 훨씬 더 파워풀한 시대잖아요.

왜 그렇게 됐나.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글쓰기의 장르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어요. 새로운 장르의 글쓰기가 나올 때가 됐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걸 실험적으로 제가 해보는 거예요. 인문사회과학적 지식과 일상의 경험들을 어떻게 만나도록 하느냐. 그것을 통한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저도 답을 안다고 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여러 이론들이 일상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하는 게 저의 근본적인 질문이예요. 그런 것이 연결된 새로운 장르가 제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번 책을 보면 그림과 약간의 아포리즘, 마치 화장실의 낙서 같은 단상, 그리고 아주 학술적인 정보팁까지 조합이 돼 있어요. 이야기 중간중간에 애교 섞인 '음담'까지 별사탕처럼 넣고.
전략이라기보다, 제가 평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예요. 그런 '음탕(?)한' 생각 정도는 늘 하니까. 저만 그럴까요?(웃음)

-적어도 책에 그렇게 쓰는 사람은 드물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왜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것들을 일상에서 내가 공부한 것과 연결해서 설명을 못할까. 왜 이것과 저것 들이 따로 노는 걸까. 그런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문제 제기이기도 해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글 쓸 때 너무 진지해진다 싶으면 한번씩 몸을 푸는 것처럼 넣기도 해요. 생각도 훨씬 더 유연해지는 거죠. 진지한 문제를 진지함 일색으로 풀어 가면 아무도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최고의 가치를 재미라고 생각해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재미가 없으면 읽지를 않아요. 재미를 위한 장치 중 하나인 거죠.
-그림 이야기를 해볼까요. 미술대학 졸업도 하셨고, 책에 소개된 작품도 꽤 많던데요.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이 그림이나 사진에다가 짤막한 글을 더해 읽고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 거예요.

저는 이게 바로 옛날 문인화를 했던 사람들의 생각 아니었을까 싶어요. 선비들이 글과 그림을 같이 했단 말이죠. 일본 하이쿠 하는 쪽 친구들 봐도 그림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사진과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주석을 달 때 독특한 쾌감이 있어요.

-옛날 문인화는 점잖고 고상한 선문답 같은 것인데, 선생님 경우는 킥킥 웃음이 나는데요.
그때는 그런 것이 재미로 여겨지던 때였으니까요. 문화 코드의 차이죠.

저는 이제 지식의 계급적 차이는 없어졌다고 봐요. 누구나 재미라고 하는 시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재미에는 꼭 말초적 감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주는 것도 포함돼요.

글은 너무 길고. 그림이나 사진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모두를 가져와서 편집해보니까 원했던 효과가 나는 거예요.

요즘 예능 프로에서 제 3자의 생각이 자막으로 들어가는 데서 재미의 새로운 차원이 발견되듯이.

저도 그동안 잊혀온 그림과 글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구현해보니 잘 되더라는 거예요. 그림을 그릴 때 벌써 제목은 뭐로 할까, 이걸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을 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사유의 방식 자체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글과 그림을 같이 하다 보면.

-문화심리학이라는 전공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사람의 심리 설명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는 걸 얘기하는 건데 그림은 시각화하니까 보완이 돼죠.
그렇죠. 인상파부터 쭉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제 책 마지막에도 썼는데 '외화(外化, Äußerung)'란 말이 있어요. 내면의 것들이 드러나는 경험이예요.

글로만 쓰다 보면 논리적이 되면서 사람을 계몽하려고 해요. 논리학 수사학이라는 게 상대를 논리로 굴복시키는 전략이니까요. 하지만 그림은 굴복시키기보다 공감을 꾀해요. 거기에 재미라는 장치가 들어가는 거죠.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그림을 곁들이면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상호작용에 초대하는 글쓰기가 되는 것 같아요.

-책 표지에 올린 그림도 직접 그리셨던데. '외로움과그리움 사이'라고 제목을 붙였더군요. 누굴 그린 거죠?
(김 소장은 책상으로 가더니 작은 흉상을 가져왔다.) 
이게 작가 프란츠 카프카 흉상이에요. 이걸 그린 거예요. 스케치도 안 하고 그렸어요.

서울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는 싶은데, 일본화 화구나 재료가 일본에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아크릴화를 그려봤어요. 마침 제 책상 위에 두고 보는 이걸 그린 거죠.

그리다 보니 내 쓸쓸함이나 외로움 이런 게 다 여기 숨어 들어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목도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이라고 붙였어요.
-이 흉상은 웬 거죠?
아, 이 작은 흉상에도 사연이 있어요. 독일 유학 시절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처음 동구권을 여행할 수 있게 됐을 때였어요. 독일은 아직 통일이 되기도 전이었죠. 장벽만 무너졌고, 여행은 할 수 있었어요.

그때 동독을 통해 체코까지 간 거예요. 그때는 비자고 뭐고 다 혼돈 상태였으니까. 저는 한국인이어서 원래 체코에 못 들어가는데 베를린 시민증이 있어서 통과됐어요. 그래서 프라하까지 가서 길바닥에서 산 거예요.

그때 이 모습이 너무 강렬했어요. 25년 전에 산 건데 항상 제 책상에 이걸 두고 있어요. 내면의 고독함, 쓸쓸함이 너무 잘 표현된 조각상이예요.

-저는 친구 귀현인가 했습니다.(웃음)
하하하. 그냥 그려놓고 우두커니 계속 덧칠을 했어요. 나 혼자 앉아서. 사실은 다들 제가 그냥 편하게 잘 살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저도 내면이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안 믿을 것 같은데요.(웃음)
아마 그럴 거예요. 뭐, 어쩌겠어요. 그런 데서 느끼는 쓸쓸함도 있어요. 사람들은 절대 나를 이해를 못 할 거라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누구나 그런 건데.

그래서 이 책의 메시지가 뭐냐면, 누구나 사실은 외로운 존재인데 그걸 인식 못하거나 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더 힘든 거라는 얘기예요.

저는 외로을 때 그냥 그립니다. 그러면 외롭더라도 슬퍼지지는 않아요. 이런 걸 하고 있으면.

남들이 봤을 때 저 정도 성취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 아니거든요. 물론 제가 성취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함과 기쁨, 이런 것은 다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근원적인 문제들이 절대 사라지는 것은 아니예요.

그 근원적인 게 외로움이에요. 어떤 분들은 저한테 어깃장을 놓을 때 이런 말을 해요. 돈도 있고 여유가 있으니 외로움 타령을 하는 것 아니냐, 다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런 소리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 돈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안 외로울까요?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위험해요. 물론 절대빈곤은 없애야 해요. 그런 절박한 처지의 사람은 어떤 최소한의 존엄조차 누리기 어렵죠. 그것만큼은 극복하자고 사회 제도가 만들어진 거고.

오늘날 한국에서 웬만큼 직장에 다니고 월급 받는 사람이라면 그런 절대빈곤자는 아니예요. 그런 사람도 돈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내면을 충실히 쌓아가는 게 덜 외로워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김정운 소장의 그림

단언컨데 목마를 타고 떠난 그 소녀는 애마부인이 되었을 거다 /2013 /김정운 /화지에 수간채, 석채

-그림이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이기도 하군요.
그림을 그리면 행복하고 즐거운 이유는 생산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예요. 마르크스가 옳아요.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의 노동의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어요. 대개 회사에서 일하고 돈만 받아올 따름이잖아요.

그 상실감이나 허탈함이 나아가서 불안으로도 쌓이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 자기 내면을 '외화'하는 기쁨이 있어요. 내 내면의 것이 산출되고 생산되는.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그런 기쁨을 그림이 가져다 주더군요.

-그림은 일본 가서 처음 시작하셨나요?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미술 선생이 늘 미대 가라고 했죠. 그때는 그 말이 "나한테 레슨 받아"라는 말이었죠. 교사들이 레슨으로 용돈벌이할 때였으니까.

미대를 가지는 않았지만, 맘속으로 그림은 언제든지 내가 잘 그릴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어요.

음악도 감각이 좀 있는 편이긴 한데, 악기 기본기를 익히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못 참는데. 그림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별 연습 없이도 일단은 그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일본화는 과정이 뭐가 다르지요?
제가 다닌 대학은 입학 후 첫 몇 달을 계속 스케치, 뎃생을 시켰어요. 그게 기본이니까. 그게 끝나면 전공별로 나뉘는데, 교수가 일본화를 권하더군요.

그분 입장에서는 한국인에게 일본 전통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겠지요. 막상 배워보니까 재미있더군요. 물감을 손으로 만진다는 개념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물감 자체가 돌가루, 조개가루 두 가지예요. 조개가루도 하얗게 삭혀서 분말로 만들어요.

돌가루는 색깔별로 다 있고, 조갯가루는 흰색에 가루 염료를 섞어서 색깔을 다 만들어놓고. 그런 걸 아교물에 녹여서 그 위에 1대3으로 물 세 숟가락, 아교 하나 넣고 해서 붓으로 그려요.

-뭐가 제일 어려운가요?
이게 의도한 대로 잘 안 나와요. 그럴 때가 어렵죠. 바닥에 돌가루로 기초를 하고 그 위에 조개가루를 바른 후에 갈아요. 그런데 그게 계산 대로 잘 안 나와요. 우연이 많아요.

서양화는 덧칠이 계속 가능한데 동양화는 개칠이 안 돼잖아요. 일본화는 개칠은 가능하지만 돌가루와 아교의 결합이 의도대로 안 돼요. 마르고 나면 딴 색이고, 갈고 나면 전혀 다른 게 나오고.

그래서 또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인생이 의도대로 안 되잖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 진리를 새삼 배우죠.

현대인들의 불안이나 통제 강박도 의도한 대로 안 되는 데서 오는 거잖아요. 의도대로 될 거라는 그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요. 인생에서 내 의도대로 되는 게 뭐가 있다고. 그렇지 않아요. 내가 지금 이렇게 살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예전부터 바우하우스 책을 쓰신다고 여행도 몇 년째 다닌다고 하셨죠. 언제쯤으로 예정하시나요?
답사 다닌 지 4년쯤 되지요. 매년 여름과 겨울. 작년 여름에는 못 갔고 겨울에는 갔어요. 지금은 무작정 가는 거예요. 할 게 너무 많아요.

요새 읽고 있는 이 책 '저먼 지니어스(German Genius)'도 기가 막힌 책이예요. 이걸 다 잘라서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서 들고 다니면서 봐요.

독일, 근대 서구는 '멜랑콜리'라는 정서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인데, 재미있지 않아요?

슈베르트 가곡 같은 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겨울나그네 같은 독일 음악이 왜 다 슬프냐. 이게 독일의 뒤늦은 산업화와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독일 지식인이 볼 때 정치는 유치했던 거예요. 더 고상한 가치가 있는 거야. 독일의 문화 개념, '쿨투르(Kultur)'는 아주 고상하고 인문학적인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면 현실과 동떨어진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개인의 기쁨, 즐거움은 다 제거가 되는 거예요. 예술가의 고독, 슬픔, 베토벤의 고통, 이런 것만 독일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게 바로 나치를 낳았다는 거예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늘 얘기하는 게 '괴테, 실러, 베토벤의 나라에서 어떻게 나치가 가능했느냐'는 의문인데 거기에 답하는 거죠. 이게 바우하우스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거지? 독일의 디자인하우스에 질리지 않는 이유는 뭐지? 이런 생각을 해요.

이게 다 미니멀리즘과 관계가 있는 건데, 이걸 어떻게 연결해서 설명해야 하지? 이런 게 요즘 제가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예요.

여행 중에 깨닫게 된 게 또 하나 있어요. 저는 제가 서양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양을 싫어하고. 저는 또 골동품 이런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우리 것도 근대 이후가 좋고, 유럽도 마찬가지로 인상파 이후 것이 좋아요.

왜 그런가 봤더니 이 시기에 동양과 서양이 만나서 좋아지는 거예요. 그게 창조의 핵심이었어요. 인상파는 '자포니즘'이라고 하는, 물론 동양을 대표해서 일본이 들어간 거죠, 동서양의 만남을 설명하지 않고는 인상파를 설명할 수 없어요.

바우하우스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도 서양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만나서 생긴 혼돈 이후의 것들이 저는 재미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되면 한자도 공부해서 실학도 들여다 보고 싶어요.

한국 지식인들이 서양을 받아들인 것이 실학의 내용이란 말이죠. 그래서 정민 교수 같은 분이나 그 시기 한문학 하는 분들 작업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어요.
-바우하우스 작업이 기대가 됩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제 스스로도 강박이 커요. 그래서 저 자신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면, '네가 그걸 빨리 써야 하는 이유는 뭔데? 그 과정조차 즐겨야 하는 것 아냐?' 이렇게 주문을 걸어요.

암튼 요즘 공부의 재미는 이쪽에 있어요. 이 책장 한 벽이 다 관련된 자료, 책들이에요. 3년간 사 모은 거예요.

-저걸 언제 다 소화해서 쓰죠?
(웃음) 그러니까. 평생 공부거리죠. 뭐, 책이 안 나와도 상관 없어요. 어디서 연재하자는 얘기가 있어서, 재밌게 하는 방법은 뭘까 궁리하고 있어요. 행복한 고민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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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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