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우리 선시 산책] 가끔 투명하게 나를 잊을 때가 있다

조회수 2016. 12. 5. 07: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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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철선 혜즙의 '홀로 앉아'

정민 교수의 '우리 선시 산책'이 궁금하다면

대 씻고 솔 다듬고 홀로 문을 닫고서

내가 나를 잊은 채 적막히 말이 없다.

늦은 나비 날아와 그 무슨 심사인지

밝은 창에 착 붙었다 동산 향해 가누나.


洗竹科松獨掩門        我還忘我寂無言

세죽과송독엄문        아환망아적무언

飛來晩蜨何心事        忽著明囱卻向園

비래만접하심사        홀착명창각향원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홀로 앉아(獨坐)」

말수가 자꾸 준다. 대나무를 물로 닦아주고 소나무 잔가지를 가위 들고 나가서 전지(剪枝)했다. 말쑥하다. 그리고는 닫아건 문 안에 다시 혼자다. 가끔 투명하게 내가 나를 잊을 때가 있다. 아무 말이 필요 없다. 저물녘 나비가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불빛 비치는 환한 창에 달려들어 붙었다가 이내 잔광이 설핏한 꽃동산을 향해 날아간다. 불빛 안의 풍경이 잠깐 궁금했던 걸까? 아니면 따뜻함이 그리웠나? 잠깐 파닥이다 지워진 그림자를 나는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죽(洗竹): 대나무를 씻어주다.

과송(科松): 소나무의 잔가지를 솎아주다.

엄문(掩門): 문을 닫아걸다.

환(還): 도리어.

비래(飛來): 날아오다.

만접(晩蜨): 저물녘의 나비.

홀착(忽著): 갑자기 붙다.

명창(明囱): 환한 창.

각(卻): 도리어.

작자 소개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조선 후기의 승려. 법명은 혜즙이고 철선은 법호다. 속성은 김씨로 전남 영암 출신이다. 14세 때 두륜산 대흥사로 출가해 19세 때 완호(玩虎)와 연암 조사에게서 각종 경전을 익혔고, 수용(袖龍)의 법을 받았다. 시문집 『철선소초(鐵船小艸)』 1책이 남아있다.


새로 맡은 학교의 직무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토막 난 시간들 사이가 너무 메말랐다. 사막의 마음에 바람 한줄기, 냇물 한 웅큼을 건네주려고 자투리 시간마다 한 수 두 수 정리했다. 그동안 바빠 마음을 가누기 힘들 때마다 늘 이런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앞서 우리 한시 3백수 시리즈로 두 권을 펴냈다. 이번에는 특별히 스님들의 5,7언 절구시만 추려 따로 모았다. 옛말로 소순기(蔬筍氣), 즉 채소와 죽순만 먹고 살아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언어들의 향연이다. 툭 던지는 말씀, 같지만 다르고 다른데 같다.

선시(禪詩)는 그저 보면 다 그게 그거다. 왜 맨날? 행간을 훑자 그 속에 그 사람이 있다. 비슷해도 같지 않고 달라서 다 똑같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저마다의 달빛이요, 염화시중(拈花示衆)은 알아들을 귀가 따로 있다. 이언절려(離言絶慮), 언어를 떠나 생각마저 끊긴 자리, 묘합무은(妙合無垠), 이음새가 교묘해 가장자리가 없다. 영양(羚羊)의 뿔은 어디에 걸려있나?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어이 보리.

말의 길은 이제 다 끊겼다. 진흙 소는 바다로 가고 없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형형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미망(迷妄)이 제자리걸음을 못 면해 깨달음의 언어는 먼 허공을 맴돈다. 영각(靈覺)의 깊이야 나 같은 속말(俗末)이 가늠할 길이 없다. 그저 말뜻이나 헤아려 참구의 방편이 되었으면 한다. 작업의 과정 내내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015년 겨울
행당서실에서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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