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외국어 공부 어떻게 할까

조회수 2018. 10. 22. 15: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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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지혜학교 철학연구소장의 '나의 외국어 학습기' 중에서

세상을 탐구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알아가는 길
북클럽 오리진이 함께합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인류학자 대니얼 에버렛은 2년 정도 외국어를 공부해 유지하면 평생 덕을 본다면서 그만한 투자도 없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언어 공부는 뇌 신경 발달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세상은 물론 나와 타자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오늘의 큐레이션]은 외국어 학습에 관한 조언의 글입니다.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연구소장<나의 외국어 학습기: 읽기와 번역을 위한 한문, 중국어, 일본어 공부>에서 골라 봤습니다.


저자는 숭실대학교에서 율곡 이이의 실리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동양학의 길에 들어선 후 한문,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를 공부하고, 중국어, 불어, 일본어로 된 학술서와 인문 교양서를 번역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이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며 깨친 과정과 교훈을 이야기합니다. 부록으로 실린 '공부는 이렇게' 중에서 발췌해 소개합니다.

최소 2년, 멈추지 말고 꾸준히 하라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려고 입문하는 순간 우리는 언어의 신생아가 된다. 신생아가 부정확하고 짧은 단어 몇 개만 옹알거린다 해서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말을 부정확하게 떠듬거릴 때 우리는 결코 그를 비웃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짧은 단어 몇 개밖에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신생아가 한 단어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 수천 번 반복하듯이 한 언어를 배우려면 쉬운 단계부터 오랜 시간 반복해야 한다.


존경하는 선생님 한 분은 제자들에게 고전 한문을 가르칠 때 교재 한 권을 떼고 나면 반드시 입으로 소리를 내서 300독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300번을 읽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300번을 읽으면 통째로 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구절이나 한 단어만 운을 떼면 나머지는 저절로 줄줄 나오게 되어 있다.


대부분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 구체적으로 목적을 세우고 빨리 성취를 하려고 한다. 몇 개월 만에 HSK(한어수평고시)나 JPT(일본어능력시험) 시험을 봐서 몇 급을 따고 몇 단계를 통과하겠다고 성급하게 군다. 한두 달 외국어를 배웠다고 금방 외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 언어는 서두른다고 해서 능숙해지지 않는다.


한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은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 2년이라는 기한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추정한 기간이다. 2년 정도 공부를 하니 사전을 찾아가면서 혼자 그런대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겨도 혼자 힘으로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더 걸릴 수도, 덜 걸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최소한의 기간이다.


어떤 기술이든지, 학업이든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적어도 2년 정도 꾸준히 공부하면 그 언어의 특징과 언어의 세계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다. 2년 동안 공부를 하다 보면 저절로 해당 언어로 된 문화에 젖어든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문학작품을 접하고, 그 나라 사람을 만나거나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문화적 체험과 접촉은 어어 학습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현상이면서 필수 요건이 된다.

기계적 훈련의 힘을 믿으라


언어 공부는 콩나물 기르기와 같다. 콩나물을 기를 때 시루에 짚이나 천을 깔고 불린 콩을 넣고 날마다 한두 번 물을 준다. 물은 다 빠지지만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우리는 단어를 외는 데 집착한다. 단어를 외지 못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단계를 밟아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잊어버리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콩나물시루에 부은 물이 밑으로 다 빠져 나가더라도 물기가 남아서 콩나물이 자라듯이 우리가 배운 외국어 어휘와 문장은 배운 즉시 잊어버리더라도 외국어 실력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는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처음에는 비틀비틀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타다 보면 조금씩 균형을 잡고 제대로 타게 된다. 한번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면 도중에 한참 타지 않다가 다시 타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탈 수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한번 배운 언어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 것 같지만 막상 언어 상황이 닥치면 잊었던 언어 감각이 금방 다시 살아난다. 언어는 맥락과 상황으로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라도 공부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건성으로라도 교재를 읽어보고 넘어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읽지 않더라도 손으로 책장을 넘겨보기라도해야 한다.


기계적 훈련이 숙련으로 이끈다. 틈만 나면 읽고 쓰고 꾸준히 연습을 하여 차곡차곡 공부가 쌓이면 하루아침에 환하게 통하여 깨치게 된다. 하나하나 외운 단어가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문장이 어느 순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통하게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를 많이 뻗는다.


어떤 텍스트라도 쉬운 언어와 어려운 언어가 뒤섞여 나온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을 할 때, 심지어 강의를 하거나 학술 토론을 할 때도 쉬운 문장과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가 뒤섞여 나온다. 어떤 교재든 쉬운 문장부터 어려운 문장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준이 높은 문장이라도 쉬운 문장과 맥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처음 단계부터 기본 문장을 외고 익혀두어야 한다. 어려운 문장이라고 해도 실은 쉬운 문장이 여러 문법적 기능에 따라 얽히고설켜 있을 뿐이다.


외운다 해서 반드시 언제라도 생각나도록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고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는 강사가 그냥 텍스트를 읽고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나는 당일 수업이 끝나면 본문 내용을 무조건 열 번씩만 쓰고 넘어갔다. 내용이 암기가 되든 되지 않든. 머리가 나쁘니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공부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중국어 공부를 할 때에는 강사가 매일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쪽지에 본문을 써서 지하철을 타고 오갈 때 외었다. 외우는 방식이든 쓰는 방식이든 꾸준히 할 일이다. 우리 의식에서는 잊어버리더라도 무의식에는 남아 있다. 그리고 손이 기억하고 눈과 귀가 기억한다. 그래서 때가 되면 신기하게도 의식의 표층에 떠오른다.


기왕이면 단어를 외우지 말고 문장을 외워라. 한문은 좋은 문장, 시구가 많기 때문에 많이 외울수록 좋다. 그리고 나중에 써먹을 기회도 아주 많다. 중국 여행을 하거나 중국 사람과 교류를 할 때 시문을 외울 수 있으면 얼마나 유리한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모른다. 다다익선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외국어 단어 자체를 익히는 일이 아니라 그 단어로 이루어진 말을 배우는 것이다. 단어는 문장의 틀 안에서 얼마든지 갈아 끼워서 쓸 수 있다. 단어는 문장을 이루는 기초 자료일 뿐 독립된 의미를 갖는 완결된 언어는 아니다. 단어는 유사한 어휘로 바꿔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단어는 필요하면 사전을 찾거나 물어보면 된다. 물론 단어를 많이 알고 어휘를 늘려 하지만 단어 습득 자체를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외울 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직접 번역하는 습관 들이기


공부를 할 때 특히 중요한 사항은 머리로 이해하고만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배운 내용을 한 번이라도 내 입으로 소리내 읽어보고 내 귀로 들어보고 내 손으로 직접 써보아야 한다. 우리는 배운 것을 내 몸으로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고 필요할 때 써먹으려고 공부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 몸으로 재현해보아야 한다.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할 때에는 반드시 본문 내용을 읽고 번역을 해보아야 한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우리말로 실제로 옮겨보면 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텍스트를 가능한 한 축자적으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우리말답게 고쳐서 번역해본다. 처음 배우는 쉬운 문장부터 이렇게 번역을 하는 습관을 기르면 한두 해 지난 뒤공부의 수준이 높아졌을 때 저절로 번역을 잘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은 외국어와 우리말의 차이를 아는 데도 좋을 뿐 아니라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 수 있다. 나아가 언어에 관한 해석학적 통찰도 얻을 수 있다. 텍스트와 나의 해석이 어떤 관련을 맺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쉬운 문장이라도 막상 우리말로 옮기려고 하면 내 언어가 얼마나 졸렬한지, 내 표현 역량이 얼마나 부족한지 바로 깨닫게 된다. 배운 내용은 무조건 우리말로 옮겨본다. 때로는 기계적 학습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번역하는 과정을 거치면 반대급부로 우리말 실력도 쑥쑥 늘게 된다.

외국어 실력은 모국어 실력이 판가름


외국어 공부를 많이 하였거나 번역을 해본 사람은 한 목소리로 모국어 실력이 외국어 실력이라고 한다. 까닭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외국어든 모국어든 모두 언어이다. 그리고 언어의 본질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파악하며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도 실은 언어를 잘 구사하는 일일 뿐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어휘의 폭을 넓히고 생각을 많이 해서 의식의 세계를 넓혀놓으면 외국어로 된 글을 읽어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말로 옮길 때에도 더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다. 누구나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뜻을 담아내는 그릇은 저마다 다르다. 그릇이 크면 더 많이 담을 수 있다. 번역은 모국어라는 그릇에 외국어 텍스트를 담아내는 일이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외국어를 많이 접할수록 모국어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사상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 언어란 어차피 흐르는 물이나 공기처럼 서로 섞일 수밖에 없다. 외국어를 접할 때 가끔 느끼는 바이지만, 어떤 사상을 표현할 때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훨씬 더 적확하고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 '순수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우리말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외래어 찌꺼기와 번역어투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언어는 흐르는 것이며 유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념적 운동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순수하고 아름다운 고유어라도 쓰이지 않으면 사라지며, 외국에서 들어온 병든 말이라도 쓰는 사람이 많아서 의미의 세계를 획득하면 우리말로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말의 의미 세계를 넓혀가기만 한다면 외국어를 들여온다 해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말에서 외래 어휘를 빼버린다면 얼마나 많은 어휘가 남겠는가! 무슨 문제에 봉착하면 늘 본질을 직관하고 본질을 물어볼 일이다. 언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국어가 문제라면 언어의 본질을 직관하고 언어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 외국어도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을 직관하고서 접근한다면 외국어를 터득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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