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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오늘의 큐레이션] 우리는 삶을 어떻게 허비하는가

노벨상 작가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제목은 프로이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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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은 지난 5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입니다.


영문으로 발행되는 계간지 <파리 리뷰> 2008년 봄호에 실렸던 인터뷰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파리 리뷰>는 1953년 파리에서 창간돼 1973년 뉴욕으로 거점을 옮겨 발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문예지입니다. 특히 유명 작가들과의 긴 인터뷰로 유명합니다.


국내 출판사 <다른>이 그중 36명을 선정해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 세 권으로 묶어 낸 바 있습니다. 이시구로의 인터뷰 전문은 2015년에 출간된 <작가란 무엇인가 3>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는 <파리 리뷰> 편집자인 수재너 휴뉴웰이 진행했습니다. 맨 아래에 인터뷰 영문 원문과 이번 노벨상 수상 직후 노벨위원회측과 한 전화 인터뷰 오디오 파일을 함께 링크했습니다.

이시구로가 딸 나오미와 전직 사회북지사인 아내 로나와 함께 사는 회색빛 주택에는 번쩍거리는 전기기타 세 대와 최첨단 기능의 스테레오가 있다. 이시구로가 글을 쓰는 2층의 작은 작업실은 은은한 색의 목재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있다. 벽장에는 여러 색깔의 바인더들이 깔끔하게 쌓여 있다.


한쪽 벽에는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말레이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번역된 그의 소설들이 줄지어 있다. 다른 쪽 벽에는 연구용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토니 주트가 쓴 <포스트워 1945-2005>와 에디스톤 C. 네벨이 쓴 효과적인 <호텔 경영Managing Hotel Effectively> 같은 책들이다.

-처음 출간한 <창백한 언덕 풍경>을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 책을 좋아하지만,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말은 거의 수수께끼나 다름없죠. 그렇게 사람들을 당혹하게 해서 예술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전혀 없는데, 미숙한 탓이었어요. 어떤 것이 뻔한 방식이고 미묘한 방식인지를 잘못 판단한 거죠. 그 당시에도 결말이 불만스러웠어요.

-무엇을 성취하려 노력하신 건가요?

어떤 두 사람이 둘 다 아는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칩시다. 한 사람이, 친구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우유부단하게 대처한다며 화를 내요. 완전히 노발대발하죠. 듣고 있던 사람은, 그가 친구의 상황을 빌려 자기 얘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아요. 전 그게 소설을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고통스럽거나 어색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상황을 빌려 자기 얘기를 하게 만드는 것. 복지시설에서 노숙자들과 생활할 때, 그들이 그곳에 오게 된 사연을 들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덕분에 그들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쟁 중에 군국주의를 찬양했던 화가가 그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두 번째 소설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에 영감을 준 건 무엇인가요?

<창백한 언덕 풍경>에는 나이 많은 교사에 대한 보조 플롯이 있는데, 그는 자기 삶의 기반이 된 가치들을 제고해야 했죠. 그걸 쓰면서, 같은 상황에 처한 남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에서는 특정한 시기에 살게 된 탓에 경력에 먹칠을 하고 만 예술가를 표현했죠. 그다음에는 <남아 있는 나날>에 시동을 걸었어요.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를 보며 생각했죠. '직업적인 면에서 소모된 삶을 탐구한 점은 꽤 만족스러워. 사생활은 어떨까?'

젊을 때는 모든 걸 직업과 관련지어 생각해요. 결국에는 직업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저 자신이 그걸 느끼고 있었어요. 모든 걸 다시 쓰고 싶었죠. 우리가 직업 측면에서 삶을 어떻게 허비하고, 사생활에서는 삶을 어떻게 허비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남아 있는 나날>은) 어떤 내용인가요?

자세하게 얘기하긴 그렇고, 이야기의 초반을 얘기해볼게요. 한동안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망각하는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어떻게 타협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썼지요. 문득 개인이 기억하고 망각하는 방식과 사회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방식은 무척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망각하는 편이 더 나은 시기는 언제일까?'라는 생각이 반복해서 떠올랐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가 흥미로운 경우죠.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는 드골의 말이 옳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누가 협력했고, 누가 그러지 않았는지는 너무 생각하지 맙시다. 그런 자기분석은 다른 때로 미뤄두기로 하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정의가 푸대접을 받았고, 결국 더 큰 문제로 이어졌다고 말할 겁니다. 분석가들은 억압하는 개인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제목은 어떻게 정하세요?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해요. 수많은 논의가 지속되죠. <남아 있는 나날>처럼 어떤 건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작가 축제에 참석했을 때 마이클 온다체, 빅토리아 글렌디닝, 로버트 매크럼, 그리고 네덜란드 작가인 유디트 헤르츠베르크와 함께 해변에 앉아 있었어요.

곧 완성될 제 소설에 붙일 제목을 찾는, 반쯤은 장난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마이틀 온다체가 '등심 즙이 풍부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제안했어요. 그런 수준이었죠. 전 집사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 설명했어요.

그러다 유디트 헤르츠베르크가 '낮의 잔재Tagesreste'라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그건 프로이트가 '낮의 잔재debris of the day'와도 같은 꿈을 가리키려고 쓴 말이죠. 그녀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그걸 번역해서 나온 제목이 '낮의 유물Remains of the day'이었어요. 분위기 면에서 딱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소설 때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The Unconsoled'과 '피아노 꿈꾸다Piano Dreams' 중에서 골라야 했죠. 제 딸이 태어났을 때 그 아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던 친구가 있어요. 우리 부부는 아사미와 나오미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아사미는 사담과 아사드를 섞어놓은 것처럼 들린다고 하더군요. 아사드는 당시 시리아의 독재자였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바로 그 친구가 말했어요. 도스토옙스키라면 '위로받지 못할 사람들'을 택했을 테고, 엘튼 존이라면 '피아노, 꿈꾸다'를 택했을 거라고 했죠. 그래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정했죠.

-도스토옙스키의 팬이셨군요.

네. 그리고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샬럿 브론테, 윌키 콜린스의 팬입니다. 대학에서 처음 읽은 19세기 정통 소설들이죠.

-어떤 점이 좋았나요?

소설에서 창조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소 비슷하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니까요. 푹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내러티브에서 확신이 느껴지는데, 플롯과 구조와 인물이라는 전통적인 수단을 사용한 내러티브죠.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견고한 토대가 필요했어요.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와 <제인 에어>,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소설, 체호프의 단편소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6종 가운데 적어도 5종. 그런 책을 읽으면, 견고한 토대를 갖게 되지요. 그리고 플라톤을 좋아합니다.

-이유는요?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는 대개 이런 일이 일어나요. 어떤 사람이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그 사람을 불러앉힌 뒤 그의 생각을 뒤집어버려요. 파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선한 것의 본질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이에요. 때로 사람들은 틀릴지도 모르는 신념을 전력으로 붙잡고, 삶의 근거로 삼아요. 그게 제 초기 작품들이 다루는 내용이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소크라테스 같은 인물은 없어요.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은 두세 번 실망하면 대개 염세적으로 변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구절이 있어요. 플라톤은 선의 의미를 찾는 문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거예요. 퇴짜를 맞더라도 환멸에 빠져서는 안 돼요. 우린 그저 그 탐색이 어렵다는 걸 발견한 것뿐이고, 탐색을 계속할 의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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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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