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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돌연변이가 없다면 인류도 작별

조회수 2017. 3. 23. 2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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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수상 암전문의 무케르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IT(정보통신기술)혁명에 뒤이은 BT(생명공학)혁명은 잠재적 폭발력이 더 강할 거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유전자 기술을 통한 난치병의 치유를 넘어 인간 자신의 '본성'에 해당하는 형질의 변화도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5년 일명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CRISPR 기술이 개발되면서 그것이 초래할 파장은 머지 않아 현실로 닥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잠재적 위험성을 우려해 기술 적용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던 세계 학계도 국가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균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신간이 번역돼 나와 [오늘의 큐레이션]으로 소개합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의 암 전문의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의 부분 발췌입니다.

이제 새로운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서 유전학자들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으로 인간 유전체를 놀라울 만큼 정확히 변형시킬 수 있다. 원리상 유전체의 다른 30억 개 염기들을 대체로 건드리지 않은 채, DNA의 문자 하나를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문자로 바꿀 수 있다(이 기술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66권을 훑어서 다른 모든 단어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한 단어만을 찾아서 지우고 바꾸는 편집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우리 연구실의 한 박사후 연구원은 표준 유전자 전달 바이러스를 써서 세포주에 특정한 유전자 변화를 도입하려 했지만,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새로운 CRISPR 기반 기술로 바꾸자, 6개월 만에 인간 배아 줄기세포의 유전체를 비롯하여 14개 유저체에서 14개의 유전자를 바꿀 수 있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성과였다.


전 세계의 유전학자들과 유전자 요법 전문가들은 현재 새로 활기차게 앞다투어 인간 유전체의 변화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현재의 기술이 우리를 절벽까지 끌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줄기세포 기술, 핵 이식과 후성유전학적 조절, 유전자 편집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인간 유전체를 폭넓게 조작할 수 있고, 형질전환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실제로 이 기술의 신뢰도와 효율성이 얼마나 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한 유전자에 의도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유전체의 다른 부위에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일으킬 위험이 있을까? 다른 유전자들보다 '편집'이 더 쉽게 이루어지는 유전자가 있을까? 유전자의 편집 용이성을 통제하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우리는 한 유전자에 의도한 변화를 일으켰을 때 유전체 전체의 조절에 이상이 생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도킨스의 말처럼, 일부 유전자가 정말로 '요리법'이라면, 유전자 하나를 바꾸었을 때 유전자 조절에 폭넓은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유명한 나비 효과와 비슷하게 수많은 연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나비 효과 유전자가 유전체에 흔하다면, 유전자 편집 기술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유전자의 불연속성-각 유전 단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환상임이 드러날 것이다. 유전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상호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오.
나눌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을

/고전적인 산스크리트 시에 영감을 받아 쓴 익명의 음악 중에서

이런 기술이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아이가 잉태되었을 때, 모든 부모는 포괄적인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서 뱃속에 있는 태아를 검사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있다면, 부모는 잉태 초기에 그런 태아를 중절하는 쪽을 선택하거나, 포괄적인 유전 선별 검사를 통해서 '정상인' 태아만을 골라 착상시킬 수도 있다.


질병 소인을 부여할 수도 있는 더 복잡한 유전자 조합 역시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서 파악된다. 그런 예상된 소인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면, 유년기 내내 개입할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한 예로, 유전적 형태의 비만 성향을 지닌 아이는 체중 변화를 주시하고, 식단을 바꾸거나, 유년기에 호르몬이나 약물이나 유전자 요법을 써서 대사를 '재프로그래밍'할 수도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성향이 있는 아이는 행동 요법을 받거나 풍부한 교실 환경에서 지내게 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병이 생기면, 유전자 기반 요법으로 치료하거나 완치시킨다. 교정된 유전자를 직접 병든 조직에 전달한다...


정신과 의사 리처드 프리드먼은 2015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전쟁터에 돌아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군인을 상상해 보라. 유전자 변이체를 살펴보는 단순한 피 검사를 통해서,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그가 두려움을 없애는 일을 잘할지에 대한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당신이 두려움을 없애는 능력을 줄이는 돌연변이를 가진다면, 의사는 그저 노출을 더 하기만 하면-즉 치료 횟수를 더 늘리기만 한다면-당신이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 세포 기억을 지우면 역사적 기억도 쉽게 삭제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적 진단과 유전적 개입은 인간 배아에서 돌연변이를 찾아내고 교정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생식계통에서 특정한 유전자에 '개입 가능한' 돌연변이가 있음이 드러난다면, 부모는 잉태 전에 정자나 난자를 교정하는 유전자 수술이나, 배아의 산전 검사를 통해서 돌연변이 배아가 애초에 착상되지 않게 막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치명적인 유형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선택이나, 유전체 변형을 통해서 미리 인간의 유전체에서 제거된다.


이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어보면, 놀라움과 동시에 도덕적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각각의 개입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떤 한계를 넘지 않는 양 여겨질지 모르겠지만-사실상 암, 조현병, 낭성 섬유증의 표적 치료 등은 의학의 이정표적인 목표들이다-이 세계에는 특이하면서 반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측면들이 있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선생존자'와 '포스트휴먼'이다. 유전적 취약성을 미리 걸러냈거나 유전적 성향을 미리 변형한 남녀들이다.

 

질병은 서서히 사라질지 모르지만, 정체성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슬픔은 줄어들겠지만, 친절함도 줄어들 것이다. 심리적 외상은 지워지겠지만 역사도 지워질 것이다. 돌연변이체는 제거되겠지만, 인류의 변이도 제거될 것이다. 질병은 사라지겠지만, 감수성도 사라질 것이다. 우연의 역할은 약화되겠지만, 불가피하게 선택의 역할도 줄어들 것이다...

1990년 선충 유전학자 존 설스턴은 인간 유전체 계획을 설명한 글에서 지적인 생물이 '자신의 명령문을 읽는 법을 터득했을 때' 벌어질 철학적 곤혹스러움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러나 지적인 생물이 자신의 명령문을 쓰는 법을 터득한다면 한없이 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유전자가 생물의 본성과 운명을 결정한다면, 그리고 이제 생물이 자기 유전자의 본성과 운명을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논리 회로는 저절로 닫히게 된다. 일단 유전자를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인간 유전체가 드러난 운명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이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유전자가 우리의 삶과 존재에 훨씬 더 풍부하고 깊게, 불편할 만큼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개념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유전체를 해석하고 변형하고 조작하는 법을 배우고 미래의 운명과 선택을 바꿀 능력을 습득함에 따라서, 더욱 도발적이고 불편해질 것이다.


토머스 모건은 1919년에 이렇게 썼다. "아무튼 자연은 전적으로 접근 가능할지 모른다. 그토록 흔히 언급되던 자연의 불가해함은 다시금 환상임이 드러났다." 현재 우리는 모건의 결론을 자연에만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까지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나는 자구 삼촌과 라제시 삼촌이 미래에 태어났다면, 지금부터 50년이나 100년 뒤에 태어났더라면 삶의 궤적이 어떠했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그들의 유전적 취약성을 알아내어, 그 지식을 이용해서 삶을 황폐화시켰던 그 질병들의 치료법을 찾아낼까? 그 지식은 그들을 '정상화하는' 데에 이용될까?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도덕적, 사회적, 생물학적 위험이 수반될까? 그런 형태의 지식은 새로운 유형의 공감과 이해에 기여할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낳을까? 그 지식이 '자연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재정의하는 데에 이용될까?


그런데 무엇이 '자연적인' 것일까? 나는 궁금하다. 한편에는 변이, 돌연변이, 변화, 변덕, 가분성, 요동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불변, 영속, 불가분성, 신뢰성이 있다. 베드, 아베드, 모순의 분자인 DNA가 모순 덩어리인 생물을 만든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유전에서 항구성을 추구하지만, 정반대로 변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돌연변이체는 우리 자아의 핵심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하다. 우리의 유전체는 상반되는 가닥끼리 짝을 지우고, 과거와 미래를 뒤섞고, 기억과 욕망을 대비시키면서 상반되는 힘들 사이에서 허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그 부분을 잘 지켜내는 것이 우리 종의 지식과 분별력을 보여주는 궁극적인 시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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