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우정을 통해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한 책"

조회수 2016. 11. 11. 13: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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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작가로 유명한 '나폴리 4부작'의 김지우 번역가 인터뷰

북클럽 오리진의 [미니북]은 손바닥 안의 책 한 권입니다. 화제의 저자 인터뷰를 비롯해 긴 호흡의 글을 전합니다.


오늘은 번역자 인터뷰입니다. 초점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화제의 소설인 '나폴리 4부작'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세계 40여개 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얼굴 없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으로 관심이 증폭됐습니다.


두 여자 주인공의 어릴 적부터 노년까지 펼쳐지는 다층적인 이야기가 섬세한 심리 묘사와 함께 페미니즘의 메시지까지 담고 있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4부작 중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함께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라 경합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는 올해 7월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들'이 번역된 데 이어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가 이달 말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김지우 번역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와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북클럽 오리진은 11월 30일 '나의 눈부신 친구' 독자들과 함께 독후감상회를 엽니다. 김지우 번역가가 번역 출간 과정의 이야기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에도 답합니다. 참여를 원하는 분은 journey.jeon@gmail.com으로 신청하시면 안내합니다.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한다고 들었습니다. 이탈리아와는 어떤 인연이 있지요?

음악을 전공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사춘기 시절을 이탈리아에서 보냈습니다. 체류 기간이 아주 긴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언어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민감하던 시기를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 때 전공과 지금 하는 일도 모두 이탈리아와 관계가 있으니 나름대로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겠네요.

-번역 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모교인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특성상 대학 시절부터 학교 통역협회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통-번역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수 문학 작품 번역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분야여서 기쁘기도 하고, 첫 작품으로 워낙 대작을 만나게 되어 긴장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나폴리 4부작 번역은 어떻게 맡게 되셨지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그전부터 알고 있었나요?

지금 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지인 분 소개로 한길사와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경우, 뛰어난 작품성에다 작가의 익명성 등의 이유로 이탈리아 내에서는 이미 인지도가 아주 높은 작가입니다.

나폴리 4부작 시리즈는 아니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 두 편이 이미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죠. 저도 주변 이탈리아 동료들로부터 읽어보라는 추천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번역 의뢰가 들어왔을 때 기뻤습니다.

-두 여자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이야기가 축입니다.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나폴리 4부작은 1950년대 나폴리를 배경으로 비범한 릴라와 상대적으로 성실하지만 평범한 레누라는 소녀의 우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1권은 두 소녀의 유년기와 사춘기를, 2권은 청년기를, 3권은 중년을, 4권은 노년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두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소설이자 인물의 성장 과정을 다룬 교양소설(bildungsroman)로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릴라와 레누를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에도 비교했는데 아주 명확하지만 너무나 단순하게 두 인물의 성격을 표현 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면 이야기는 릴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사건 중심에는 릴라가 있고 레누는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릴라를 선망과 질투, 애정과 증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뛰어난 릴라와 그에 비해 평범한 자신을 바라보며 괴로워합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가장 큰 발전을 이뤄내는 쪽은 오히려 레누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이야기가 레누의 성장 과정이기도 한 것이죠.

'나폴리 4부작'의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릴라를 회상하는 레누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는 서로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간파하는 특별한 사이지만 그들의 우정 안에서도 미묘한 감정은 존재한다. 그들에게 서로의 존재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다. 


릴라는 명석함을 타고났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한다. 모범생이고 노력형인 레누는 이런 릴라를 보고 자극을 받아 공부하지만 릴라의 영특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릴라보다 무엇 하나 잘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레누와 외부 환경 때문에 꿈이 좌절되는 릴라.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들의 감정은 요동친다.

-어느 캐릭터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물론 릴라가 너무나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후회하고, 망설이고, 자책하는 가운데 서서히 변화하는 레누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소심한 듯 은근히 강한 캐릭터예요.

-4권을 다 읽으셨겠지요? 작가가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큰 메시지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아직 4권까지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권을 읽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저도 간직한 채 한 권씩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2권 번역을 완전히 마친 다음 기쁜 마음으로 여유 있게 3권을 읽을 생각입니다.

주제 면에서는 우정, 계층 간 문제, 여성 문제 등 다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물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페란테의 역사의식입니다. 소설의 레누는 끊임없이 전세대의 결핍과 죄악을 반복하게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절름발이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나타날까봐 두려워하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결국 그녀의 발전 동력이 됩니다.

릴라 역시 구세대의 악행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 세대에서 뭔가 변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인물입니다. 이에 반해 스테파노는 결국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솔라라 형제는 기득권 세력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에 빌붙어 살아가죠.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류는 릴라와 레누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스테파노나 솔라라 형제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퇴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란테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거대 담론을 가장 친근하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페란테는 두 주인공의 우정과 삶이 사회에 의해 변화된다는 것을 말한다. 페란테가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깝고 사적인 근심들은 정치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듯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우정은 여러 세대의 삶과 관련되고 얽혀 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갈등하고 선택하며 변화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일상은 모두 역사의 일부가 된다. 그들은 사소한 역사적 사실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우리의 일상도 역사의 일부다. 우정은 인생 최초의 갈등이자 연대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통해서만 세상은 바로 설 수 있다.

/출판사 소개 글

-이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해외에서는 서평이나 판매 돌풍이 대단했는데요, 국내에서는 1권이 출간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반응은 어떤가요?

해외에서는 ‘나폴리 4부작’ 전권이 출간된 반면 국내에는 1권이 나와 있는 상황인데도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3개월 만에 4쇄를 찍었어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데다, 익숙하지 않은 이탈리아 문학 작품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들의 우정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요. 또 출간이 된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표지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하는 작품의 흡입력이 결정적인 이유이겠지만요.

그동안 두 번 정도 독자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1권이 상당히 극적인 지점에서 끝났기 때문에 다들 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면서 2권 출간일자를 묻곤 했어요. 2권은 11월 말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더불어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도 더욱 각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에서 그렇게 열광한 이유는 무어라고 보세요?

‘나의 눈부신 친구’가 비단 이탈리아에서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간과 장소를 떠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유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나폴리 4부작’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부신 친구’는 유년기와 사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치 체계의 형성과 해체가 반복되고 자아의 틀이 구축되는 이 격동의 시기를 겪은 사람이라면 두 소녀의 성장기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상당히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는 텍스트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두 소녀의 우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세대와 세대간의 대립, 물질만능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가 주인공들의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읽고 난 후 저는 잘 만든 고전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촬영 기술이나 복잡한 편집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캐릭터와 내러티브의 힘 하나로 묵직하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그러면서도 반복해서 볼수록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고전영화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극적인 재미가 이 모든 것의 기본 바탕이 되겠지요.

-작품도 뛰어나지만 저자 엘레나 페란테가 얼굴 없는 작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최근에는 신원을 지목하는 보도가 나와서 작가의 익명성 보호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국내에서는 조용했던 편입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간의 경과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탈리아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클라우디 가티가 '얼굴 없는 작가' 페란테는 이탈리아의 독일 문학 번역가인 아니타 라자(Anita Raja)라고 주장했습니다. 라자의 부동산 기록과 페란테의 전속 출판사인 ‘에디치오니 e/o’의 재정 기록 분석을 토대로 했지요. 라자는 현재 로마에 살고 있는데 남편이 나폴리 출신 소설가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Domenico Starnone)입니다.

가티의 조사에 의하면 2000년 페란테의 소설이 이탈리아에서 처음 영화화됐을 때 라자는 방 7개가 있는 아파트를 샀고 2001년에는 투스카니에 별장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또 남편 스타르노네는 로마에 있는 방 11개가 딸린 아파트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부부의 수입과 부동산 매입이 늘어난 시점이 페란테의 책이 국제적으로 잘 팔리던 시기와 맞물린 사실을 단서로 제시했습니다.
아니타 라자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디치오니 e/o 출판사는 페란테의 정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서면으로만 주고받던 페란테의 인터뷰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전 세계 독자들도 가티를 응원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니타 라자를 사칭하는 트위터 계정까지 등장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수의 작가와 독자들은 굳이 페란테의 정체를 밝히려 한 가티를 비난하는 편입니다. 페란테와 인터뷰를 했던 『가디언』의 비평가 데보라 오르(Deborah Orr)는 “페란테가 자기 정체를 보호하려는 상황에서 가티는 작가의 정체를 알지 않으려는 독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가티나 지지자들이 알 권리를 내세운 데 대해서도 『뉴 리퍼블릭』의 말콤 해리스(Malcolm Harris)는 “개인 사생활을 보도하는 것은 매우 볼썽사나운 일이고 형편없는 저널리즘”이라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소설가 에리 드 루카(Erri de Luca)는 “가티는 자신의 익명성을 지키려는 사람을 조사할 게 아니라 탈세자들 재산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지요.

저 역시 이번 사건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란테는 글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가입니다. 물론 거의 모든 작품이 1인칭 시점이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그녀의 작품은 독자에게 극히 사적으로 느껴지며 그래서 더 진실되게 느껴집니다.

실제 작가의 삶과는 상관 없이 적어도 독자가 느끼기에는 작품에서 작가의 투영도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작가 자신이 작품으로만 독자와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오래전부터 밝혀온 만큼 그 뜻은 지켜주는 것이 옳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적어도 다음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혹시 번역하는 동안 실제 작가가 누군지 짐작을 하셨나요?

사실 아니타 라자의 이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었습니다. 남편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도 마찬가지이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작가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자신을 나타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다만, 작가의 성별만큼은 ‘여성 작가’일 거라고 거의 확신했습니다. 워낙 여성 간에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로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한 작가가 남성이라면 약간 속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엘라네 페란테는 다른 이탈리아 작가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나요?

다른 점이라기보다 문학사적으로 네오리얼리즘 소설 및 영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베르토 모라비아, 조르조 바사니, 엘사 모란테 등의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역사와 사회적 상황을 이념적으로 접근하면서, 외부 조건에 개인 현실이 영향받고 달라지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인간 내면의 이중성, 남부 문제, 성별과 계층 간 갈등까지 다루었죠. 이런 특성이 현대 작가인 페란테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탈리아 문학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문학에 비해 국내에는 덜 알려진 편인데요, 특징이라면?

한 나라의 문학을, 그것도 이탈리아라는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문학을 몇 가지 특성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특성을 꼽자면 많은 이탈리아 문학 작품이 직간접적으로 국가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는 로마제국 이후 오랫동안 작은 중소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861년에야 통일이 됐으니 공식적으로 이탈리아라는 국명으로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문학 작품은 지역적 혹은 사회적 공동체의 탄생을 다룬 경우가 많습니다. 인물을 통해 이러한 지역 혹은 특정 공동체에서 형성된 정체성이 국가 공동체적 정체성으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 2차 세계대전 후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이름만 하나의 국가일 뿐 지역간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컸습니다. 공업 위주의 북부에 비해 농업 위주의 남부는 경제적으로 빈곤했습니다.

북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남부의 노동력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남부에 파는 구조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고 빈부 격차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빈곤을 배경으로,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남부 서민 경제를 장악한 것이 바로 이탈리아 남부 지방 마피아 일당인 카모라 세력입니다.

소설에서는 이런 범죄 세력과 결탁해 지역 경제를 장악하는 문제가 솔라라 형제를 통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남부 문제’는 아직도 이탈리아가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국가 정체성 형성과 관련해 등장하는 또 한 요소는 ‘표준어’ 사용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레누는 뭔가 중요한 말을 할 때나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때마다 ‘표준어로 말했다’라고 돼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는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우리말의 ‘표준어’로 번역하기는 했지만 원문에서 사용한 단어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아직 텔레비전 같은 매체가 보급되지 않아 사투리와 표준어의 차이가 그만큼 컸다는 뜻도 되고, 언어 속에 내재된 계급적 우월성이 나타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이렇듯 이탈리아 문학은 역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국가 정체성 형성 과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이 잘 읽히는 편입니다. 원작자의 문장이 쉬운 편입니까? 어려움은 없었나요?

우선 페란테의 문체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소설 중 릴라가 이스키아에서 쓴 편지를 레누가 읽은 후에 받은 느낌을 쓴 부분일 것입니다. 이 때 레누는 릴라가 '글로써 이야기를 할 줄 안다'고 합니다. 문체가 섬세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페란테의 문체가 바로 그렇습니다. 복잡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단도직입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었을 때는 번역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번역을 시작하고 보니 문체가 간결했기 때문에 오히려 단어 선택에 더 신중을 기해야 했습니다. 짧은 문장에서도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사건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는 편이지만, 중간중간 심리 상태를 주변 환경에 반영해 세밀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런 부분들은 문장 자체가 꽤 복잡해서 번역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에는 저 자신이 그 장면을 그림 그리듯이 상상을 한 다음 그 광경을 최대한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하자는 마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번역가에 따라 번역에 대한 견해도 조금씩 다릅니다. 크게 보자면 원문에 충실한 쪽과 의미 전달을 위해 원문에 연연하지 않는 쪽이 있습니다. 어떤 편인가요?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두 가지 기준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러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두 언어의 유사성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예를 들어 같은 라틴어 계열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간에는 거의 100%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언어구조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원문과 완벽하게 똑같은 번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번역을 한다면 단어의 나열밖에 되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번역문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원문의 단어를 100% 똑같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원문에 연연하지 않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제한적인 창의적 각색은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 소설이라고도 합니다. 왜 그렇게 해석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엘레나 페란테 스스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70년대 페미니즘 테제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나의 눈부신 친구‘에도 잘 나타납니다. 소설 속에서 릴라와 레누는 여성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50-60년대 나폴리에서는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죄악시되었고 아내-딸-누이가 남편-아버지-오빠의 소유물처럼 인식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몸부림치는 딸아이를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오빠는 뭇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는 이유만으로 누이를 윽박지릅니다. 여자아이로서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학교에 진학하고 뛰어난 성적을 거둔 레누를 기다리는 것은 동네 문구점 점원을 하거나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시청에 취직하는 암울한 미래뿐입니다.

페란테는 “소설 속 여성들은 강하고 교육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충격에 쉽게 부서진다. 나는 이러한 울림을 늘 경험했고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나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소녀의 일상을 가감 없이 담담한 어조로 표현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적인 틀 때문에 여성으로서 겪는 부조리를 폭로한다는 면에서 분명 페란테의 소설은 페미니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거나 좋아하는 대목이나 구절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지극히 사실적인 전개가 계속되다가 간혹 릴라나 레누의 상상에 기인하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있습니다. 1권의 경우 유년기에서 사춘기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릴라가 불꽃놀이를 지켜보던 중에 ‘경계의 해체’ 현상을 목격 및 체험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평범한 인간이 탐욕과 집착으로 인해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강렬하게 형상화한 부분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성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고 약간 먹먹하기도 했던 부분은 역시 소설 마지막에 릴라가 레누에게 ‘너는 내 눈부신 친구야’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언제나 릴라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무게 중심이 다시 균형점을 찾으며 두 주인공이 서로를 이끌어주는 비등한 관계가 되는 순간이지요.

또한 둘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레누에게 릴라가 평생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면 릴라에게 레누는 환경적인 요인 탓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줄 또 다른 자아였던 것이죠.

-2권 번역서 출간도 막바지라고 들었습니다.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다음 권 출간 계획은요?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11월 말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어느 정도 비극적인 전개가 예상되었던 1권 마지막 장면 이후 릴라의 결혼 생활을 시작으로 두 주인공의 격동의 청년기가 펼쳐지죠. 다소 서정적인 느낌이었던 1권에 비해서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훨씬 강해졌습니다.

원래는 2권 출간과 함께 한길사에서는 번역자와 함께 떠나는 ‘이탈리아 남부 문학기행’을 준비했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레누와 릴라의 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이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페란테의 전속 출판사 ‘에디치오니 e/o’도 직접 방문해 출판사 대표와 미팅할 예정이었고요.

아쉽게도 최근 이탈리아 중부 지역 지진과 각종 자연재해로 일정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두 주인공들 흔적을 따라 가보고 출판사 대표와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내년 봄에,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내년 여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특별히 어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까?

두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여성스럽기만 한’ 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여성 독자가 조금 더 섬세하게 공감할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인간관계와 수많은 주제를 다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남성 독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의 삶 전체를 다루기 때문에 독자의 연령에 따라서 특정 시기에 대한 공감도나 이해도가 다를 수 있겠고요. 꼭 특정 연령층이나 성을 기준으로 독자층을 국한짓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성향의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앞으로 번역이나 저술 계획이 있다면?

첫 번역이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긴 하지만 문학 번역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나폴리 4부작의 번역을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상대적으로 국내에 덜 알려진 이탈리아 문학 작품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지우 번역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 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를 졸어했다. 동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유럽연합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번역 작업으로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모레티의 영화 '비앙카', 안토니오니의 영화 '일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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