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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대화를 되찾으려면

조회수 2018. 6. 24. 1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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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터클의 신간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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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큐레이션] 미국 기술심리학자 셰리 터클의 신간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서 골랐습니다.


원제목은 Reclaiming Conversation으로 2015년 10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저자 셰리 터클은 디지털 기술이 현대인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선도적으로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입니다. 현재 MIT 교수입니다.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과 멀티태스킹에 함몰된 현대인에게 면대면 대화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본문 중에서 구체적인 조언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대화를 되찾으려면 관심부터 되찾아야 한다. 현재 미국의 성인들은 평균 6분 30초에 한 번꼴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이 현상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요즘 아기 그네(그리고 유아용 변기)에는 디지털 기기를 담는 구멍이 있다. 미국의 십대 청소년 중 4분의 1이 잠에서 깬 지 5분 안에 전자기기에 접속한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하루 100건가량의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과잉 접속의 상태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믿게 만든다. 멀티태스킹은 실제로 모든 활동의 질을 저하하면서 모든 면에서 실제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우리 기분과는 별개로 생산성은 떨어지게 된다. 또한 테크놀로지가 지닌 결핍은 '감성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잦은 멀티태스킹은 우울감, 사회 불안증, 감정 파악 불능과 관련이 있다.


희망은 우리의 회복력에 있다. 성장 초기부터 컴퓨터 화면에 의지한 어린아이들이 자긍심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경우, 대화는 아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딸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면서 이메일 작업을 하기보다는 말을 걸어라. 아들이 탄 아기 그네에 태블릿PC를 넣어 두기보다는 책을 읽어 주고 책에 관해 대화하라. 대화가 막힐 때 재빨리 텍스팅을 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집중하려 애쓰라.


하지만 대화 치료는 간단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즉각적인 만족과 빠른 속도, 예측 불가능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경과학자들이 '탐색 드라이브'라 부르는 상태, 가령 트위터 스크롤을 갈망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의 두뇌는 그것을 갈망하도록 단련된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향상되지 않지만 더 많은 멀티태스킹을 갈망하게 된다.

휴대폰의 힘을 명심하자. 그것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휴대폰은 당신이 하는 일뿐 아니라 당신 자체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심리적 장치다. 손에 전자기기를 든 채 무심코 모든 상황에 임하지 않도록 하자. 휴대폰 사용이 허용될 때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어렵다. 심지어 효율성이나 예의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해야 할 때조차 쉽지 않다.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의 관심은 의도와 상관없이 분산된다. 결과적으로 듣는 태도와 대화 내용, 유대감의 정도 등 여러 측면에서 대화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휴대폰은 침묵할 때도 풍부한 대화에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다.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치워야 한다. 휴대폰도 치워야 한다.


속도를 늦춰라.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신과의 대화다. 그런 대화를 하려면 우선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이것이 가능하게끔 충분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온라인 활동은 하루에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지나치는 정보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너무 바쁘면 사고와 창조, 협동을 위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질문을 하면 늘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온라인 활동을 추동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 기대감에 맞게 더 단순한 질문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의사소통은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복잡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창의성을 지켜라. 시간을 내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라. 자신의 과제를 설정하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라. 우리는 테크놀로지에 길들여져 반사적이고 업무적인 의사소통에 익숙해졌다. 테크놀로지가 그러한 의사소통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이것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성공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메일 수신함을 전부 비우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을 따로 빼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처리하지만 받은 편지함을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학부모든 교사든 고용주든 이메일로 어떤 요청을 받으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장하라. '생각해 보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는 것은 심사숙고를 중시하며 테크놀로지가 몰아붙이는 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아이들에게 진흙이나 점토 같은 재료를 만지게 하는 것은 느긋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재료의 저항감은 아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창의성의 불꽃은 놀이방, 교실, 공원 너머에서도 가능하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지속되어야 한다.


대화를 위한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자. 저녁 식탁과 부엌과 자동차 안에서 전자기기를 금지해 가정에 성소를 마련하자. 자식들이 아직 어릴 때 도입해야 할 징벌이 아니라 기본적인 가족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아이들 옆에서 조용히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고독의 수용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불필요한 방해가 없게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전자기기 없이 동네를 혼자 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산책하자. 시험 삼아 저녁 시간이나 주말 하루를 정해 오프라인으로 보내 보자.


이러한 공간은 학교와 대학과 직장에서도 필요하다. 대학에 와이파이가 없는 학습 공간과 휴식 공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 처음 인터넷 망이 깔릴 때만 해도 학생들이 서로에게 집중하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이 방해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사무실에 디지털 접속이 없는 대화 공간을 마련하거나 사복을 입는 금요일(casual Fridady)을 대화하는 목요일로 바꿔도 좋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집중하고 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마련한다.


다음 목표는 유니태스킹이다. 그러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과는 향상되고 스트레스는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에 하나씩 하기는 어렵다. 테크놀로지가 이룬 용이성과 눈앞의 가시적 성과들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은 속성상 특유의 행복감을 동반한다.


우리의 두뇌는 신속하고 예측할 수 없고 빠른 효과를 내는 이 신인에게 열광한다. 이것은 인간의 취약점이다. 우리의 삶과 테크놀로지가 멀티태스킹을 우회하도록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 스스로 위축된 활동 속으로 후퇴하게 될 것이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 대화는 산만함뿐 아니라 편견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는다. 최근 한 연구는 소셜미디어상의 정치 대화가 '침묵의 나선'의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팔로워들이 반대할 만한 글은 소셜미디어에 게시하기 꺼려 한다.


만인과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라 해서 반드시 만인과의 상호작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동조하는 사람들에 한해 상호작용을 하려고 인터넷을 사용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미사용자보다 오프라인 토론에 더 소극적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회피하는 행태는 얼굴을 마주하는 실제 세상으로 확장된다. 실제 세상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형성되는 것들의 반향실로, 아늑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것은 배우지 않는 삶으로 바뀌었다.


개선의 여지는 있다.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면 자녀들에게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가르칠 수 있다. 원인과 근거와 가치에 대한 의견을 표현해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작은 공감대도 대화를 위한 토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7분 룰'을 준수한다. 룰에 따르면, 7분 동안 휴대폰을 보지 않고 대화가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 대화가 지지부진해도 그냥 둔다. 7분 룰은 인생의 다른 전략들도 고독과 자기 반성과 대면 대화에 의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루함을 내면에서 흥미로운 것들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내면으로 들어가 연상되는 것들을 만난 다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나 대화로 돌아간다. 우리의 마음은 일하는 중에도 공상에 잠길 때가 있다. 마음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환상에서 귀환할 때 마침맞은 것이 딸려 오기도 한다.


인생도 그렇듯 대화에도 침묵과 지루함이 존재한다. 게다가 반복된다. 하지만 비틀거리고 주저하고 침묵에 빠지는 때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디지털 의사소통은 우리를 편집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편집되지 않은 삶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삶을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까다로운 대화를 어려워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엔지니어들이다. 우리의 과제는 어려운 대화, 즉 타인과 대화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작업에 적합한 도구를 선택하라. 때때로 테크놀로지는 놀랍기 그지없어서-실제로 스마트폰은 놀랍기 그지없다.-보편적 도구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다. 어찌나 놀라운지 이제껏 우리가 가진 도구들을 모두 대체하는 도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로 대화를 이메일로 대체한다면 잘못된 도구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메일이 일부 업무에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서도, 모든 업무에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서도 아니다.


텍스팅과 이메일과 화상 회의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더 알기 쉽고 사용하기 쉽도록 기술적으로 성능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개선되어도 이것들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사람들의 정서 안정과 친목 도모에 시선 맞추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선 맞추기의 부재는 우울감과 고립감, 냉혹한 성격 같은 반사회적 특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문제들이 심화될수록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더 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슬로건은 어떨까. 도구로 인해 서로 얼굴 보는 것이 어렵다면 도구를 필요할 때만 사용하자고, 도구에 우선적으로 의지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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