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넌 직업이 악플러냐?"

조회수 2016. 10. 17. 12:0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지켜보고 있다

고백건대, 저는 네이버에서 댓글을 자주 달았었습니다.(여기서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 주로 네이버 야구 뉴스란에서 댓글을 답니다만, 일반 뉴스에서도 종종 댓글을 답니다. 모 정치 뉴스에서 베스트 댓글이 돼 본 기억도 있습니다. ‘좋아요’도 5천개 가까이 받았었죠. 저는 댓글을 보통 ‘시비 거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기사 본문이나 댓글에서 어이없는 주장이 눈에 띄면 그냥 보고 못 넘어갔습니다. 기어이 비꼬고 넘어가야만 찜찜함이 사라졌습니다.


댓글을 달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받는 입장입니다. 받는 입장이 되니 무척이나 신경쓰입니다. 욕설을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주제 선택 단계에서부터 은연중에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제 ‘업보’라면 업보겠으나, 댓글로 위축되는 이런 현상은 콘텐츠 쪽에서는 흔합니다. 기자는 물론 크리에이터부터 웹툰작가 등 웹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창작자라면 댓글을 정면에서 맞기 때문이죠. 


댓글을 마주하는 창작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서 영상 콘텐츠를 지속해서 올리며 댓글에 직면하고 있는 창작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알트'(ALT)의 구현모 님, 1인 미디어 <쥐픽쳐스>의 국범근 님, 테크 전문 매체 <더기어>에서 영상 콘텐츠를 담당하는 노승균 PD님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출처: ’지켜본다의 지켜보쇼’ <미스핏츠> 영상 화면 갈무리
"넌 직업이 악플러냐?"

구현모


댓글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시점 : ‘세월호 악플 읽어주는 소년’으로 알려진 <미스핏츠>의 ‘지켜본다의 지켜보쇼’ 제작 이후 


주로 제작하는 콘텐츠 :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는 사항 


악플의 주요 내용 : 본인에 대한 인신공격, 영상 속 대상에 대한 비난

출처: <쥐픽쳐스> 영상 갈무리
이런....ㅆ

국범근


댓글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시점 : ‘범근뉴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사 현안을 다루면서부터 


주로 제작하는 콘텐츠 : 시사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 


악플의 주요 내용 : 본인에 대한 인신공격,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욕설

출처: <더기어>영상 화면 갈무리
"너네는 왜 키보드를 그렇게 쓰니...?"

노승균


댓글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시점 : 콘텐츠 만들기 시작하면서 항상. 커뮤니티 활동하던 시절부터 


주로 제작하는 콘텐츠 : 제품 리뷰 및 언박싱 콘텐츠, 게임 관련 콘텐츠 


악플의 주로 내용 : 본인에 대한 인신공격,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하

“악플 쓴 사람도 저를 직접 대면하면 그렇게 못하리라는 걸 알거든요. 저도 그러니까. 그래서 괜찮습니다.”
(넌 왜...욕부터 하는거니...)

입장은 다를 수 있는 데 왜 욕을 할까


구현모 씨와 국범근 씨는 사회 현안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실명과 얼굴을 ‘까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콘텐츠를 내놓았죠. 이 사회에서 입장이 다른 문제는 대부분 감정적인 문제로 귀결되곤 합니다. 사실 이 두 분의 콘텐츠는 ‘사이다’라는 호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소다수처럼 속이 시원하게 현안을 비판한다는 거죠. 


어떤 입장을 개진하다 보니, 반대편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고깝게 들렸습니다. 저 비판이 내 생각을 향하고 있고, 나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때 필요한 대응은 논리적인 반박입니다. 왜 화자가 말하고 있는 주장이 옳지 않은지, 틀렸는지를 말하면 됩니다. 문제는 댓글에서 주로 이뤄지는 건 반박이 아니라 비난이라는 점입니다. ‘이 새끼 빨갱이냐’, ‘명불허전 좌좀’, ‘믿고 거르는 선동과 날조’는 물론, 개인의 외모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비속어나 욕설은 흔하고, 그에 준하는 비아냥과 비꼼도 포함됩니다. 인터뷰이들은 ‘정당한 비판이라면 아프더라도 받을 수 있는데, 인신공격이 앞선다’라고 공통으로 댓글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국범근 씨는 “인플루언서(=온라인상에서 팔로워 등이 많아 발언 영향력이나 확산력이 높은 사람)와 논쟁이 있으면 그 추종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악플을 단다”라며 “이 상황에서는 논리적인 토론이 안 되겠다 싶어서 대꾸를 안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어떤 흐름을 타고 욕하는 사람들이 몰려오면 (정신적으로나)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했습니다.

"댓글은 하나하나 다 보고 있습니다"

기기 관련 콘텐츠를 주로 만드는 노승균 PD도 인신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 나온 기기를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하면서 빠지거나 넘어가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댓글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이 지적을 하면서 인신공격을 함께한다는 겁니다. 노승균 PD는 “’말투가 싸구려 같다’, ‘목소리가 별로다’, ‘얼굴이 그냥 멍청하게 생겼다’, ‘뇌까지 근육으로 찬 놈이다’, ‘컨셉 거지 같다’ 등등 별의별 말을 다 듣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신공격은 제발 그만...ㅠㅠ)

가급적 대응은 자제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국범근 씨는 대부분 대응을 자제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국범근 씨는 “논리적 근거가 있는 지적이면 뼈아프더라도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설득하지도 않고, 달래지도 않고, 악플에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하고자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승균 PD는 대부분 답글을 달아준다고 합니다. 다만 악플의 경우는 ‘영혼이 없는’ 댓글을 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같은 것들이죠. 맹목적인 비난을 지속해서 일삼는 경우는 차단하고 신고합니다. 심한 댓글에 고소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미디어에서 일하는 만큼 쉽사리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악플이지만 감안하고 콘텐츠 제작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최대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구현모 씨는 “쌍욕으로 댓글을 다는 분들도 의도가 있지 않겠나”라며 “그중에서도 비교적 정중한 편이고, 인간적으로 대화할 수 있겠다 싶은 분들은 답글을 달거나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답했습니다.

(면전에서도 이런 말을 하실 수 있나요)
“‘다 때려치우고 오버워치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비난'보다는 '정중한 비판'


악플은 창작에 썩 좋은 영향을 주진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창작자들을 움츠러들게 할 뿐입니다.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칭찬이라고 무조건 긍정적인 건 아닙니다. 창작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댓글은 ‘정중한 비판’이었습니다. 노승균 PD 말이 그렇습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미친놈아 그거 아닌데’라고 말하기보다는 ‘여기서 실수하신 것 같다. 수정 부탁드린다’라고 말해주시면 감사하고 기분도 좋죠. 지적을 당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고맙고 배우는 느낌입니다.” 다만 구현모 씨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전반적인 반응을 파악한다는 점에선 악플도 도움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정중한 비판 '좋아요')

순기능 살아나는 댓글난 되기를


댓글에는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콘텐츠 제작자와 수용자 간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전해주지 않는 추가 정보를 덧붙일 수도 있고, 콘텐츠가 만든 프레임 바깥을 볼 수 있게 돕습니다.


인터뷰이들은 댓글난이 필요하다고는 답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댓글난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습니다. 구현모 씨는 “개별 인터넷 사이트라면 자정은 가능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될 것”이라며 “나아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댓글이 있어야 재밌다”라고 말했습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승균 PD는 “기자든 누구든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댓글 외에는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없다”라면서 댓글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악플은 달릴 수 있겠지만, 소통을 통해서 좀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국범근 씨는 댓글란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최소한의 효능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그저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만 주어졌을 뿐, 그 공간이 좀 더 건강하고 건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국범근 씨는 “단순히 ‘좋은 댓글’을 달자고 주장하기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라며 “자신의 의견이 어떤 진지한 토론이나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조그만 효능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