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수펙스 점검]이사회 지원 '협치 경영' 자문 기구, 디지털 뉴노멀 시대 통할까

조회수 2021. 4. 16. 11: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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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진=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

가장 이상적인 가족 기업은 가족이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오너는 살짝 옆으로 비켜선 기업이다. 기업 경영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소유와 경영'이 융합된 기업의 형태를 이같이 정의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서로의 역할과 한계를 인식하고 존중해 경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삼성과 현대차, SK 등 많은 대그룹들이 소유와 경영을 융합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이들 대그룹들은 압축 경제 발전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해 대그룹으로 도약했다.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사업이 늘어났고, 계열회사가 다양해졌다. 그러면서 지배구조도 복잡해졌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협업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삼성과 SK 등의 대그룹들은 그룹 경영 전반을 관장하고 조율할 경영 자문 기구나 컨트롤타워가 필요해졌다.


삼성은 과거 미래전략실을 컨트롤타워로,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경영 지원 기구로 뒀다. 현대차 등 여타 대그룹에서는 기획조정실이 그룹 경영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출처: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이 14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

SK그룹의 계열사인 SK텔레콤이 14일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그룹 경영 자문 및 지원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SK텔레콤은 통신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해 'AI Digital Infra 컴퍼니(존속회사)'와 'ICT 투자전문회사(신설회사)'를 설립한다. SK브로드밴드 등 유무선 통신회사는 존속회사로 남고, 신설 회사는 SK하이닉스와 11번가 등 반도체와 ICT 회사 등을 지배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2016년부터 추진됐는데, 5년 여 만에 닻을 올리게 됐다. SK그룹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SK텔레콤 이사회 뿐만 아니라 수펙스추구협의회 내 ICT 위원회도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는 7개의 위원회가 있다. △전략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환경사업위원회 △ICT 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소셜밸류위원회 등이다.

출처: (사진=SK)
왼쪽부터 조대식, 윤진원, 김준, 박정호, 장동현, 서진우,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대그룹 중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경영 자문 기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설정하고 있는 SK그룹의 미래 전략 방향을 가늠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삼성그룹의 과거 미래전략실처럼 최고 의사결정 기구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SK그룹 관계자는 "각 계열사 이사회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수펙스(Super Excellent Level)' 의미 그대로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목표 이상을 달성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고 계열사를 지원하고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경영 자문 및 협의 활동을 한다.

출처: (자료=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기구.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과거 구조조정본부가 해체되면서 설립됐는데, 오너에게 집중된 권한을 전문경영인과 이사회로 분산해 소유를 분산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그룹 경영 전반에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설립한 것이다.


지주사인 SK㈜가 발간한 'SKMS(SK Management System)'에 따르면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이해관계자 행복을 키워 나가기 위해 SK 각사가 수펙스의 목표와 실행전략을 구현한다'고 명시돼 있다. SK그룹의 각 계열회사가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협치에 나선다는 설명이다.


이는 오너인 최태원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에도 부합한다. 최 회장은 1998년 최종현 회장이 작고하면서 30대 후반에 그룹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SK그룹은 199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과거 직물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에너지와 통신 등 사업구조가 고도화됐다. 생산과정이 복잡해졌고,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지면서 생산과 경영의 전문성이 필요해졌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혁신, 창의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SK그룹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목표로 삼았다. 국내 시장에 머물렀던 계열회사들은 '따로 또 같이'라는 슬로건 아래 혁신을 추진했다.


그런 점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오너인 최 회장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한 이상적인 지배구조 모델인 셈이다.


하지만 수펙스추구협의회 또한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경영 자문 기구인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념적으로 전문경영인은 임기가 제한된 만큼 단기적인 경영 성과를 중심으로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경우 회사가 어려워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전문경영인의 경우 자리를 잃는게 전부다. 이러한 간극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설립 이후 SK그룹은 안팎에서 다양한 현안들이 불거졌는데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적절한 역할을 해 왔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의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 출신 직원을 대규모로 '스카웃'했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이 조직적으로 배터리 기술을 탈취했다. 양사는 국내 법원에서 이 문제를 다퉜는데, 결국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로 소송이 확대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ITC가 영업비밀 침해 판결을 내림에 따라 미국 내에서 생산이 금지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2일 2조원(현금 1조원, 로열티 1조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출처: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소송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합의를 통해 조기 매듭지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조원의 배상금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1년 매출보다 많은 금액이다. SK이노베이션은 천문학적 금액을 LG에너지솔루션에 보상금으로 지급하면서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SK케미칼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 △SK건설 라오스 댐 붕괴 피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연루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횡령 등 오너일가의 비위 등에 있어 수펙수추구협의회는 '리스크 관리'에 한계를 보였다. SK케미칼과 SK건설의 사고는 경영진의 관리 부실 문제가 원인으로 제기됐다.


오너일가의 비위와 정경유착, 그리고 일부 계열사 경영 실패는 수펙스추구협의회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출처: (사진=SK건설)
SK건설이 시공한 라오스 세피아-세남노이 수력발전댐.

하지만 SK C&C의 ㈜SK 합병과 SKC의 KCFT(현 SK넥실리스) 인수는 SK그룹의 지배구조를 고도화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SK그룹은 2007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SK C&C가 ㈜SK의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하면서 '옥상옥' 형태였다. 합병으로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SK C&C→㈜SK→계열회사'에서 '최태원 회장→㈜SK→계열회사'로 단순해졌다. KCFT 인수는 SK그룹의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SK그룹은 최근 미래 사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있다. SK그룹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수소 사업에 18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25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 수소 액화 플랜트와 청정 수소 생산기지를 건설해 연 28만톤의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수소는 '넷 제로'를 맞아 친환경 에너지로 꼽히고 있다.


SK그룹은 △첨단소재(배터리, 반도체) △그린 에너지(수소 및 친환경에너지) △바이오 △디지털(AI 및 모빌리티)을 그룹의 4대 핵심 사업으로 정했다.


SK텔레콤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디지털 및 반도체 사업의 미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성공 여부는 단기간에 평가하기는 이르다. 산업구조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유망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SK그룹이 유망 사업으로 뽑은 4대 사업들은 성장이 더딜 수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다. 대그룹의 전략 투자와 지배구조 개편이 그룹의 경쟁력을 저해했던 사례는 많이 있다. 또한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협치 경영 체제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산업 구조에서 적합한 구조인지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출범 이후 SK그룹은 외형적으로 성장한 건 분명하다. 2015년 ㈜SK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96조원이었는데, 2020년 137조원 규모로 30% 커졌다. 종속회사는 같은 기간 277개에서 325개로 늘어났다. 그룹의 사업영역이 확대되면서 자산 규모도 계열회사 수도 늘어난 것이다.


반면 한계와 단점에 대한 수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결정하고 자문해 온 많은 전략적 의사 결정에 대한 공과를 진단하는 일이다.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도 그 중 하나다. 반도체 산업과 디지털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존 지배구조를 조금 바꾼다고 해서 구글이나 아마존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능력과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조치인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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