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접은 LG전자, 어쩌다 '제2의 노키아'가 됐나

조회수 2021. 4. 7.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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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1995년부터 26년간 이끌었던 스마트폰(MC) 사업을 중단합니다. 초콜릿폰·프라다폰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한때 피쳐폰의 전설이기도 했던 LG전자입니다. 다른 회사들이 폴더블을 만드는 마당에, 어쩌다 스마트폰을 접어버리게 됐을까요?

출처: (그래픽=박수혁)

혹시 LG가 무엇의 약자인지 아시나요? ‘Life Is Good’? 지금은 그렇지만 그때는 아닙니다. 30대 이상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바로 그 이름, Lucky Goldstar, 일명 ‘금성사’입니다. 럭키금성이라고도 불리던 이 회사는 1995년 LG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LG전자의 휴대폰 역사는 바로 이때 시작됩니다.

출처: (사진=유튜브 '비공식채널' 갈무리)
LG전자의 첫 휴대폰 '화통'.

이 폰이 바로 LG전자가 만든 첫 휴대폰 ‘화통’입니다. 과거 금성사 시절 만든 ‘셀스타’의 후신이었죠. 무게 178그램, 길이 140밀리미터라니 지금 봐도 꽤 경량화된 폰입니다. LG는 이후 1997년, PCA용 단말기를 만들면서 LG전자의 르네상스를 이끈 ‘싸이언(CYON)’ 브랜드를 만듭니다. 출시 당시는 ‘귀족의 자제’라는 의미의 ‘CION’을 썼는데, 2000년대부터 ‘싸이버 온’이라는 의미의 ‘CYON’이 됐죠.


사실 싸이언은 출시 초기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통신망을 쓰던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고, 또 LG전자의 휴대폰 기술력도 그렇게 받쳐주진 못했죠. 원래 회사 휴대폰 제조도 LG전자가 아니라 LG 유플러스의 전신인 LG정보통신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몇 년 간 기술을 갈고 닦으며 절치부심하던 LG전자는, 2005년 엄청난 물건을 하나 꺼내 듭니다.


LG전자 휴대폰 희대의 역작, 전설의 레전드, 바로 초콜릿폰입니다.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 색상에 매끈하고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당대 최고의 스타인 김태희와 현빈, 다니엘 해니를 앞세운 이 모델로 LG전자 휴대폰은 세계에서 우뚝 서게 됩니다.


당시 LG전자는 어떤 휴대폰을 만들었을까요? 글로벌 2000만대를 팔아치운 ‘초콜릿’,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빌린 ‘프라다’. 지금은 안습이 된 ‘빅뱅’과 ‘2NE1’이 광고한 ‘롤리팝’이 있습니다. LG전자는 이들 폰과 함께 짧지만 달콤한 ‘휴대폰 르네상스’를 걷게 되죠.


이때는 LG전자의 휴대폰 기술력이 물올랐다고 평가받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LG필립스LCD가 만든 디스플레이를 써 화면이 선명했고 디자인도 세련된 데다가 인터페이스도 우수했죠. 한때 삼성보다도 휴대폰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출처: (사진=유튜브 'cfclip' 갈무리)
'초콜릿폰'은 LG전자 휴대폰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이었다.

LG전자 휴대폰이 기울기 시작한 것도 이때와 묘하게 맞물립니다. 2007년을 되돌아봅시다. 스티브 잡스가 세기의 발명품이 될 아이폰 1세대를 선보였고요. 삼성도 블랙잭과 미라지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갤럭시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모바일이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흐르는 건 너무나 자명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LG전자 모바일은 피쳐를 고수했고, 또 스마트폰으로의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LG전자에 낸 보고서에 스마트폰을 ‘찻잔 속 태풍’이라 평했고, LG전자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설이 있죠. 진위는 불명확하나 LG의 스마트폰 전환이 늦었던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후에도 LG전자의 헛발질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뉴초콜릿, 프라다2와 같은 고가형 피쳐폰에 주력했죠. 그리고 2010년, LG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무려 7088억원의 영업손실을 냅니다. 대표가 바뀌었고 외국인 중심의 임원진도 물갈이됐죠. LG는 2010년 ‘옵티머스’로 뒤늦게 스마트폰에 전력투구하게 됩니다.


LG가 그나마 스마트폰으로 분전했던 시기가 바로 2013년경입니다. 안드로이드 OS 안정화에 성공했고, 옵티머스 G프로로 북미 시장 점유율 10%로 삼성, 애플에 이어 분기 기준 3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사진=LG유플러스 블로그 갈무리)
LG전자는 옵티머스Gpro 모델로 스마트폰에서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LG전자는 또 한 번 무너집니다. 옵티머스 G플랙스2와 G4가 저조한 성능과 발열, 무한부팅 문제 등으로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된 겁니다. 2015년 LG전자 모바일 사업부 영업이익은 2억원으로 사실상 제로 마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LG전자 스마트폰을 망친 주범이 등장합니다. 바로 모듈형으로 나온 G5입니다. 빛샘과 잔상, 내구성 논란 등에 빠지며 LG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회사 전체의 실적을 깎아 먹는 부실 사업부로 전락합니다.

출처: (사진=라이브LG 갈무리)
'G5'는 LG전자 모바일 역사상 최대의 문제작으로 거론된다.

사실 LG전자 모바일이 자빠진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일명 단통법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발하던 휴대폰 보조금에 제한을 두자는 이 법에 LG는 찬성합니다. 돈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LG전자의 자충수가 됩니다. 애플의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이 치고 올랐고, 삼성은 갤럭시로 방어에 성공했지만 LG는 점유율 수성에 실패한 겁니다.


이후 LG전자의 스마트폰 행보는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G시리즈와 V시리즈는 수많은 스마트폰을 만들었지만 결국 브랜드가 없어졌죠. LG전자는 MC사업부문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비용 구조를 개선했고, 2020년엔 프리미엄 라인업으로 ‘벨벳’과 ‘윙’을 내세우는 한편 올해 초까지 ‘LG롤러블’이란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벨벳과 윙은 부진했고, LG롤러블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죠.


MC사업부는 2015년 2분기 이후 단 한 차례도 영업이익을 기록하지 못하며 지난해까지 무려 5조원의 적자를 낳았습니다. 네티즌 사이 LG가 ‘Life Was Good’이라 불리는 게 바로 LG전자 모바일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일 이사회에서 LG전자 MC사업부 영업을 정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키아가 2003년 만든 '1100'은 2억5000만 대나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휴대폰으로 꼽힌다.

LG전자의 휴대폰을 보면 떠오르는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노키아입니다. 고급 휴대폰으로 세계를 흔든 노키아는 한때 핀란드를 먹여살리는 기업이라고도 불렸죠. 하지만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둔감하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모바일 사업부를 매각하게 됐습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포기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이유입니다.


LG전자는 MC사업부문을 접고 내부자원 효율화를 통해 핵심 사업으로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죠. 그리고 7일 실적 발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공개했습니다. 비록 LG전자의 모바일 역사는 중단됐지만, 이번 선택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되길 바라는 목소리도 크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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