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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숫자로 보는 삼성 이재용 '불법승계' 재판

조회수 2020. 10. 22. 14: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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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다루는 첫 재판이 2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311호 중법정에서 시작됩니다. 국내 최대 재벌기업 삼성의 승계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은 시작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가 법원에 낸 공소장은 A4용지 133페이지 분량에 달합니다. 사안은 복잡하고 방대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할 숫자들이 눈에 띕니다.


①’1:0.35′ :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비율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번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 이벤트입니다. 검찰은 이 합병을 통해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이 부회장이 최소 비용을 들이는 방향으로 ‘승계 작업’이 벌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 회사 간 합병이 중요한 이유는 이 부회장이 보유했던 지분 때문입니다. 그는 합병 전 제일모직 지분 23.23%를 갖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한 주도 없었습니다. 2015년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은 통합법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지분율 16.40%)가 됐습니다.


이 합병으로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확립됐고, 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삼성물산-삼성전자(4.06%),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7.21%)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은 돈 안 들이고 그룹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1:0.35’는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입니다. 2015년 5월 22일 기준 주식시장에서 모직 1주 당 15만9224원, 물산 1주 당 5만5767원을 기준으로 이 비율이 대략 맞아 떨어집니다. 쉽게 말해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삼성물산 1주와 같게 봤다는 의미입니다.

출처: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자료는 2016년 제윤경 의원실이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만든 데이터.

이 같은 합병비율에 삼성물산 주주들은 반발했습니다. 당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매출은 5.5배, 영업이익과 총자산은 3배에 이를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삼성물산 시가총액이 제일모직보다 크게 저평가되던 시기였는데, 굳이 왜 이 시점에 두 회사를 합병하느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가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가 이를 주도했죠.


검찰은 삼성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을 기준주가와 유사한 1:0.35로 정해 놓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벌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이사회 단계, 의결권 확보 단계, 주주총회 이후 단계 등 세 시기에 걸쳐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고, 특히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 과정에서 삼성 측이 시세를 조종했다고 단정합니다.


반면 삼성 측은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결정이고, 합병과정에서의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져 수사팀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은 범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합니다. 또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는 합병으로 인한 지분 변동의 ‘결과’ 였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으며 합병이 되지 않았다면 삼성물산의 가치가 더 떨어졌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주장하는 합병비율 조작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공소장 내용이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모두 상장사였고, 현행법 상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합병비율 조작을 어떻게 증명해낼지, 삼성은 이를 어떻게 방어할지가 이번 재판에 주목할 포인트입니다.

②’50%±1′: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는 앞서 언급한 데로 삼성물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높게 평가됐습니다. 그 중심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계열사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있습니다.


검찰은 삼성이 에피스에 대해 거짓공시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 주석에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콜옵션 세부 내용을 은폐했고(거짓공시), 2015년 재무제표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기존의 연결회계 처리를 지분법으로 바꿔 합병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과다 계상했다(분식회계)는 겁니다.


말이 어려운 만큼 이해를 위해 로직스와 에피스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 설립된 로직스는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사업 육성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삼성물산, 외국회사 퀸타일즈가 각각 4:4:1:1씩 지분을 나눠가졌고 이후 로직스의 증자 때 삼성물산의 불참, 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의 합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등 이벤트를 거쳐 합병 삼성물산은 로직스 최대주주(51.04%)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중요한 회사는 바로 2012년 설립된 에피스입니다. 에버랜드와 바이오젠이 각각 85%, 15%의 지분을 두고 합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회사는 앞서 검찰이 공소장에 적어 놓은데로 ‘콜옵션’을 계약에 넣었습니다. 콜옵션에는 아래 표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로직스는 2014년까지 에피스를 단독으로 지배(종속회사)했습니다. 통합삼성물산의 2015년 3분기 보고서에도 에피스는 종속회사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해 말 보고서에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계기준을 공정가치 평가로 전환했죠. 이 경우 에피스는 로직스의 관계회사로 바뀌며, 보유지분 전부를 공정가치에 따라 매각한 뒤 처분 손익을 인식하는 형태로 회계가 처리됩니다.


회계 개념이 복잡하지만 결과를 정리하자면, 단순히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을 뿐인데 회계상 로직스의 자산이 증가하는 ‘마법’이 벌어졌습니다. 늘어난 자산은 ‘4조8086억원’으로 그해 에피스의 순이익은 1조9000억원이 됐습니다. 이 액수는 그대로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를 평가할 때 반영됩니다.

출처: 합병삼성물산의 2015년 연결감사보고서. 전년 없었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취득원가, 순자산가액, 장부금액이 채워져있다./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삼성은 이에 대해 2015년 회계기준 변경은 복제약 판매 허가로 에피스 기업가치가 커진 데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 주장합니다. 회계 전문가 12명이 회계기준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분식회계’ 결론을 지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처분도 법원 영장 심사에서 회계기준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도 강조합니다.


반면 검찰은 로직스-바이오젠 간 계약 내용대로라면 에피스에 대한 로직스의 지배력은 애초부터 없었고, 이에 2014년까지 콜옵션 세부내용을 숨긴 건 거짓공시일 뿐만 아니라 로직스의 에피스 주식 재평가도 불가했다고 봅니다. 또한 2015년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꿈으로써 콜옵션 부채에 따른 완전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자 삼성이 분식회계를 벌여 자산가치를 늘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는 삼성 측이 2015년 4~7월 수 차례 바이오젠에 콜옵션 행사 후 지분 매각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통합삼성물산의 4분기 보고서는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회계 기준을 바꿨습니다. 또 회계기준을 바꾸면서 금융감독원에 ‘비조치의견서’를 구하지 않은 문제도 있습니다. 2018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기준 변경을 고의 위반으로 보고 검찰에 고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③‘15만6493원’ – 제일모직 주식매수청구권 법정매수가격


검찰의 공소장에서 눈길을 끄는 또다른 숫자는 제일모직의 자기주식 매입 관련 부분입니다. 검찰로선 삼성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했거나 또는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직간접적 위법행위를 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평가했다는 내용만으론 이를 증명하기 부족했다고 판단하고 이 부분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이 주장한 삼성의 시세 조정 내용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제일모직의 주식매수청구권 가격(15만6493원)에 주가가 근접하자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기대감을 높여 주가를 띄웠고, 이어 주식매수청구기간 고가주문 7049회, 물량소진 주문 1만3185회, 단주주문 1만4075회 제출 등 시세를 조정했다는 내용이 공소장에 나옵니다.

출처: 검찰은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 기간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상회한 데 대해 시세 조종 의혹을 보내고 있다. /자료=서울중앙지방검찰청 보도자료

검찰은 “주총 이후 주가가 하락하자 물산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억제할 목적으로 자사주 집중매입을 통한 시세조종을 감행했다”며 “자기주식 매입을 시세조종의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고,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및 이 사건 합병 거래를 할 목적으로 위계를 사용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다만 이 공소사실에 대해선 자본시장 내 달리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삼성의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이 통상의 방식과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검찰 주장대로 자사주 매입 기간 제일모직의 주가가 16만9500원에서 17만1000원으로 조정되며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상회했고, 이에 고정된 합병비율로 삼성물산 주가도 함께 오른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식매수청구기간이 지난 뒤엔 주가가 곧바로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졌죠. 마치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이 회사 주가에 큰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유지 자체만 봤을 때 불법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통상 기업의 자사주 매입 행위는 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거나 부양하는 게 주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현행법 상 자사주 매입엔 장전 5%, 장중 최고가격이나 최우선매수호가 중 높은 가격으로의 고가주문도 가능합니다. 또 시총 20조원에 달하는 제일모직 주가를 4400억원 상당의 자금으로 관리한다는 게 실질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고도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검찰이 합병비율 조작을 위한 시세조정을 주장하는데, 불법적 상황을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삼성이 실제 시세조정 행위를 했더라도 스무딩(주가 유연화) 수준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 조작과 직결됐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다만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이 여타 방식과는 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곳은 서울지검 내에서도 자본시장 반부패 수사를 담당하던 경제범죄수사부이고, 공소사실에 자본시장법 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을 정확히 적어놓은 만큼 그에 걸맞은 근거가 있을 것이란 추측입니다. 어떤 방식의 자사주 매입이 범죄가 될 수 있을지 나올 수 있는 만큼 자본시장에서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By 리포터 이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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