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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아시아나항공 계약금에 설정된 '질권' 미스터리

조회수 2020. 10. 4.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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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사진=홈페이지

‘질권’이란 쉽게 말하면 취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남이 취하지 못하도록 대상 물건에 법률적으로 제한을 걸어놓은 권리입니다. 취할 권리가 있는 사람을 ‘질권자’라 하고, 질권자에게 대상 물건을 넘기기로 한 사람은 ‘질권설정자’입니다.


법률 용어 해석서에는 좀 더 어렵게 설명돼 있습니다. 채권자가 채무자 또는 제3자(담보제공자)가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동산·유가증권·채권 등을 점유함으로써 채무의 변제를 간접적으로 강제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 물건을 처분하거나 권리를 실행해 그 대금으로 우선 변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출처: 통상적 예금채권 질권설정계약서./출처=예스폼 양식 캡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2500억원 규모의 계약금에도 ‘질권’이 설정돼 있었나 봅니다. 매매 당사자 양측은 금호산업의 계약 해지 선언 이후 “질권을 해지해 달라, 법적 검토 먼저 해보겠다”라고 실랑이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이 질권을 둘러싼 실랑이가 보통의 M&A에서 잘 발생하지 않은 실랑이인 터라, 새로운 이슈로 부각될 조짐입니다.


혹시 실랑이 뒷 배경에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시아나항공 M&A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만한 사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듭니다. 그만큼 양측이 계약금 질권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가 상당히 적대적이고 지나치도록 강경합니다.


이 사안에 대한 질문에 양측은 모두 “잘 모른다, 답할 수 없다”는 답을 해 왔습니다.


M&A 거래에서 계약금은 보통 에스크로(escrow) 계좌에 입금됩니다. 말이 에스크로 계좌이지, ‘에스크로’라는 명칭이 붙은 통장은 없습니다. 매매 양방이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확인, 어느 일방이 본인만의 계산으로 인출하지 못하도록 제3자(은행) 감시하에 묶여진 계좌를 말합니다.


M&A 거래마다 다양한 형태의 에스크로 계좌가 있죠. 국내 사모펀드(PEF) 업체 대표는 에스크로 계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상대방의 허락이 있어야 인출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놓는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다 일률적이지는 않다”며 “건마다 다 다르고 계약 내용이 천차만별이어서 딱히 정해진 룰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질권 설정은 많이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M&A 거래를 많이 한 국내 대그룹 한 임원은 “거래마다 다르다”며 “예금채권을 담보로 잡아 매매 양측간 합의 하에 인출이 가능하도록 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질권이 설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금채권청구권에 권리를 설정해 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계약금에 설정된 질권 역시 같은 범주에 있는 통상적인 질권인 듯 일단 보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미래에셋대우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2조5000억원에 사기로 했죠. 그러면서 지난해 12월27일 인수금의 10%인 2500억원을 에스크로 계좌에 넣어두었다 합니다. 이 계좌에 질권을 설정한 거고요. 질권자는 HDC현대산업개발, 질권설정자는 금호산업입니다. 질권 대상 물건은 계약금 2500억원일테고요. 질권 설정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거래 형태를 창조한 것도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통상의 M&A 거래 관례 안에 있습니다.

출처: 정몽규 HDC그룹 회장(왼쪽),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오른쪽)./사진=홈페이지

이상한 점은 그 다음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HDC그룹간 아시아나항공 매매 계약이 무산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금호산업은 지난 9월11일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 해지를 발표하면서 “계약금에 대한 질권 해지에 필요한 절차를 이행해 달라”고 HDC현대산업개발에 정식 요구했습니다. 관련 서류도 건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HDC현대산업개발은 나흘 뒤 입장자료에서 “아시아나항공 및 금호산업의 계약해제 및 계약금에 대한 질권해지에 필요한 절차 이행통지에 대하여 법적인 차원에서 검토한 후 관련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죠.

매우 이례적인 실랑이입니다.


과거 비슷한 전례로 자주 비교되는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파기와 이행보증금 몰취 사건 때도 ‘질권’과 ‘질권 해지’가 이슈가 되진 않았습니다. 이행보증금에 질권이 설정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어차피 당시 이슈가 된 계약금은 소송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양측이 판단했었기 때문에 ‘질권’ 해지 문제가 급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거죠.

출처: 금호산업 보유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매 계약 내용./자료=공시

질권 해지 권리는 질권자(HDC현대산업개발)에게만 있습니다. 거래 결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질권을 해지해 줄리 만무하죠. 그 자체로 계약 해지를 수용하는게 되고 계약 무산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음을 인정해버리는 꼴이죠.


그리고 결국 소송을 통해 질권 해지나 계약금 몰취가 진행되는 게 순리죠. 이상하게도 이를 모를리 없는 질권설정자(금호산업)는 음으로 양으로 HDC현대산업개발에 질권 해지 절차를 빨리 이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M&A 거래에서 잘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질권이 혹시 계약금 예금계좌 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주식에도 설정돼 있는 건 아닌지의 의구심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계약금을 주는 동시에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을 담보로 잡은 거죠. 사실이라면 질권 해지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감자 등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입니다.

 

앞선 대기업 임원은 “계약금 질권 설정 외에 계약의 목적물인 주식을 동시에 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는 자칫 배임 소지가 있어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아직 완납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계약금 만으로 전체 매각 대상 기업 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주식담보를 제공하는 것은 M&A 거래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금호산업이 계약금(2500억원) 중 일부를 빼내 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국내 PEF 한 관계자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의 사례를 보면 계약금 일부는 매각측에 귀속된 전례가 있으므로 전체 계약금 2500억원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먼저 빼 쓰려하는 것일 수 있다”며 “정확한 내용은 양측의 계약 내용을 봐야 하겠지만 질권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돈을 꺼내 쓰겠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금호산업의 자금 사정에서 계약금이라도 먼저 빼 써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소송 당사자는 산업은행이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채권단 관리 하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시아나항공 계약 당사자는 산업은행이 아닌 금호산업입니다. 민간기업이라는 차이점이 있죠. 민간기업은 긴급 자금 필요성이 늘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어서 그런 급박한 자금 필요성은 없죠.


어떤 이유에서건 아시아나항공 계약금에 설정된 질권 해지 공방은 통상적인 거래 관례와 다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질권 얘기를 처음 듣고 매우 생소했다”며 “어차피 계약금을 두고 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누구나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아직 소송도 시작 안했는데 질권 해지를 먼저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잘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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