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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개혁 대상 '회계법인' 매출 급증, 어떻게 보십니까?

조회수 2020. 10. 3. 11: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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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상위 4대 회계법인 로고./사진=각사 홈페이지 및 SNS 갈무리

‘회계 개혁’의 일환으로 2018년 11월 도입된 신(新)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결국 회계법인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우려가 차츰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신 외감법 도입에 따른 회계법인 실적을 가장 잘 알려주는 2019년 회계연도(2019년 4·6·7월~2020년 3·5·6월) 결산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죠. 종합해본 결과 10대 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 제외)의 매출액은 2018년 회계연도 대비 15% 증가했고,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10대 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 제외)의 회계감사 매출은 전년 대비 16% 늘었습니다.

출처: 10대 회계법인 매출 증감 현황./자료=공시 종합

신외감법이란 한마디로 회계감사 품질을 높이라는 법을 말합니다. 회계법인이 기업 재무제표를 감사할 때 이전보다 더 잘 감사하라는 취지에서 새로운 규제를 대거 도입해 적용시킨 법률이죠.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태가 개정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았던 모 회계법인이 알고도 분식회계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시장의 공분을 산 뒤 개정 요구가 많았죠.


이런 신외감법은 △표준감사시간제도 도입 △주기적 지정제 도입 △상장회사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의무화 및 연결기준으로 확대 △일반기업회계기준 적용 기업 연결범위 확대 등 전례없던 파격적 규제를 담고 있어 ‘회계개혁법’이라고도 불립니다. 기업 감사를 더 투명하고 철저하게 하라는 요구들인 셈입니다.

출처: 신외감법 주요 개정 내용 및 시행시기./자료=금감원 보도자료

그런데 지난해 부터였나요. 이 제도가 도입되고 일부 제도가 본격 시행되자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업들의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죠. 대기업 한 재무 담당 임원은 기자에게 “회계법인들을 파헤쳐 달라. 갑자기 감사 수수료를 4배 높게 부른다. 적자가 날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데 정말 난감하다. 감사를 안받을 수도 없고… 감사 수수료의 기준도 없이 막가파 식으로 수수료를 높게 요구한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이 기업 뿐만이 아니었죠. 한 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언론 매체에서도 ‘회계 쇼크’ 문제를 크게 다루었습니다. 신외감법 영향으로 감사보고서 작성이 깐깐해지자 한해 농사를 숫자로 적어넣는 사업보고서 작성이 대거 늦어진 거죠. 사업보고서 제출 연기를 신청한 상장사는 지난해 3월 60개를 기록, 직전해(21개)보다 3배 가량 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회계법인과 신외감법을 성토하는 글이 자주 올라왔습니다.


반면 개혁 대상이 된 회계법인들은 늘어난 업무량과 엄격해진 규정에 스트레스를 호소했습니다. 자칫 잘못된 감사를 했다가 적발될 경우 실형을 살 수도 있도록 법규가 바뀌자 이전과는 다르게 소신있고 깐깐하게 감사를 해야 하는데, 그만큼 업무량도 늘어난거죠. 수수료 인상은 어쩔 수 없다는 게 회계사들의 하소연이었습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파트너 회계사는 “예전에 1명이 담당하던 업무를 지금은 2~3명이 해야 소화할 수 있게 됐다”며 “업무량이 늘어난만큼 수수료 인상은 불가피했다”고 말합니다. 극명하게 나뉜 양측의 하소연, 그 결과는 회계법인들의 실적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출처: 삼일회계법인 연도별 매출 증감 현황./자료=공시 종합

매출액과 회계사 수에서 1위인 삼일회계법인의 매출액은 수일전인 지난달 30일 추석 직전 공시됐습니다. 2019년 회계연도에 무려 6848억원을 기록,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한영회계법인만 아직 2019년 회계연도 결산결과를 공시하지 않았고요. 지난 6월과 8월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10대 회계법인 중에서 신한회계법인을 제외한 9개 회계법인의 회계감사 부문 매출액(미공시 한영회계법인도 증가 추정)은 직전해보다 적게는 13%, 많게는 48% 급증했습니다.

출처: 삼일회계법인 연도별 매출액 현황 그래프./자료=공시 종합

개혁의 대상이었던 회계법인이 개혁 이전보다 더 잘 살게 된 셈이죠. 많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은 ‘수수료 교섭권’ 입니다. 신외감법 영향으로 과거 ‘동반자’라 생각했던 회계법인이 기업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로 돌변, 수수료 교섭권에서 회계법인이 기업보다 우위에 서게 된거죠.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3월 삼일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 감사 의견으로 ‘한정’ 의견을 제시, 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은 오랫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우호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금호 내부 관계자들의 예상도 깨버리고 ‘한정’ 의견을 제시, 아시아나항공 회계 쇼크 사태를 불렀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3월22일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같은달 25일 관리 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26일 바로 ‘적정’ 의견의 감사보고서가 제출되며 ‘회계 쇼크’는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으로 결국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고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감사 대상 기업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기초로 회계감사를 벌이면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개정된 신외감법으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문제가 조금 발견되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게 보통이었지만 이제는 잘못하면 회계사가 구속됩니다. 기업 회계감사 자리를 따내려 회계법인들이 기업 재무부서 문앞에 줄을 선 풍경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회계 개혁의 성과로 볼 수 있죠.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6월 ‘회계개혁 간담회’에 참석,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 회계개혁 조치를 국내외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주기적 지정제 등 회계개혁 핵심 제도가 시행되는 첫 해로, 회계개혁의 성패가 판가름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계 개혁의 성과가 회계법인의 매출 급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시대에서건 개혁의 대상은 구조조정의 대상이지, 구조조정의 주체는 아니거든요. 기업회계의 투명성은 기업 일방의 희생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죠. 회계업계 전체의 자성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회계법인의 호황이 지속된다면 시장에서는 신외감법을 회계개혁법으로 부르지 않고, 기업회계개혁법으로 부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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