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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삼성의 일감 몰아주기와 공정위의 '예고사격'

조회수 2020. 9. 11. 21: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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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9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언급된 기업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 그 이름, 삼성입니다. 혐의가 있는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공정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특정 기업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삼성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오해를 풀 지점이 있습니다. 내부거래라는 말 자체가 갖는 부정적 인식과 실제 의미엔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감 몰아주기는 통상 ‘사익편취 행위’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특수관계인(회사 동일인과 친족)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뜻하며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 상 이 같은 행위를 막고 있습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계열사 자산 총합이 10조원을 넘는 곳) 가운데 특수관계인 보유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 20% 이상인 비상장회사가 이 규제에 해당됩니다.


다만 보유 지분이 규제 이하인 경우는 ‘수직계열화’라는 이름으로 내부거래가 허용됩니다. 오늘 이야기할 삼성의 내부거래도 바로 수직계열화 이슈입니다. 즉, 삼성의 매출 중 내부거래가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어떤 형태로 그룹 생태계가 돌아가고 있는지 따져보려 합니다.


삼성 수직계열화의 명암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은 내부거래 생태계를 크게 만들어 놨습니다. 삼성전자는 시장에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중간재와 완제품을 팔고, 제조 과정에서 계열회사를 통해 필요한 각종 부품과 소재 등을 공급받죠. 이밖에 IT 시스템 관리나 공장·건물 건설, 광고 등도 삼성 내부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상당합니다.


삼성전자와 관련된 주요 계열사의 매출과 특수관계인 매출은 이를 확인하기에 좋은 데이터입니다.

출처: 2020년 상반기 삼성 주요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매출 대비 특수관계자 비중이 가장 큰 곳은 바로 제일기획과 삼성SDS입니다. 제일기획은 상반기 매출 4313억원 가운데 무려 81.2%가 특수관계자로부터 나왔고 삼성전자 비중도 69.7%에 달합니다. 특수관계자를 뺀 매출이 단 800억원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삼성그룹의 광고 대행 업무로 먹고 산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특수관계인 매출 비중이 61.2%, 삼성전자 비중이 43.7%인 삼성SDS는 원래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져 삼성그룹의 IT 시스템 구축을 전담했던 곳입니다. IT솔루션 부문에서 매출이나 영업이익 모두 업계 1위이고 물류까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확장했지만 삼성 계열사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줄곧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건설을 담당하는 삼성엔지니어링은 매출 대비 특수관계자 비중이 47.2%, 삼성전자 비중이 34.8%입니다. 마찬가지로 건설을 담당하는 삼성물산은 특수관계자 비중이 32.9%지만 삼성전자 비중은 10.8%로 비교적 낮습니다. 같은 건설이더라도 삼성전자발 매출 비중에서 차이가 나는 건 삼성전자의 공장 라인을 짓는 엔지니어링과 토목-건축을 담당하는 물산의 사업 성격 차 때문으로 보입니다.

출처: 삼성전기 2020년 1, 2분기 부서별 매출 변화./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삼성전기는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영업이익 하락폭이 여느 계열사보다도 큽니다.


2019년 삼성전기는 매출 대비 특수관계자 비중이 74.5%에 달했는데, 이는 역시 매출의 54.9%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0년 이 회사의 상반기 매출 대비 특수관계자 비중은 32.7%, 삼성전자 비중은 21.5%로 말 그대로 ‘급락’합니다.


왜 이렇게 숫자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졌을까요.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상반기 스마트폰 판매량은 1억1250만대로 지난해보다 24%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카메라 모듈과 통신 모듈을 주로 공급하는 곳이 바로 삼성전기 ‘모듈 솔루션’ 사업부죠.


스마트폰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는 모듈 솔루션 사업부는 코로나19로 상반기 공장 가동률이 43%에 불과했습니다. 이 기간 매출은 1분기 4631억원에서 2분기는 2789억원으로, 한 분기만에 39.8%나 떨어지는 ‘직격탄’을 맞습니다. 이는 삼성전기가 전년 상반기 대비 매출이 올랐음에도 영업이익은 오히려 떨어진 주된 요인이 됐습니다.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0은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가 한 방송서 “흥행에 참패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삼성전자가 내년 스마트폰 출하량을 올해(2억6000만대)보다 4000만대 높은 3억대로 상향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구체적 사업계획이 확정돼야 삼성전기의 내년 영업이익 회복 가능성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장단점이 확실합니다. 시장지배력이 강한 주력 회사와 소재,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계열사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장점이죠. 반대로 주력 회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계열사 실적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 주요 소재나 부품을 공급하는 계열사 공장에 혹여 문제가 생길 경우 주력회사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들이 불가피한 변수를 미연에 예방하고자 소재,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데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삼성 내부거래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바로 각 사 영업이익률입니다. 삼성전기(5.3%)와 삼성SDI(5.5%), 삼성SDS(5.5%), 삼성엔지니어링(4.2%), 삼성물산(1.3%), 제일기획(7.7%) 중 어느 한 곳도 영업이익률 10%를 넘기는 곳이 없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률이 13.5%였죠.


사실 경쟁이 치열한 제조업에서 영업이익률이 낮은 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삼성의 경우는 좀 달라보입니다. 세계적으로 뒤쳐지지 않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그룹의 주력인 삼성전자를 위해 여타 계열사들이 희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의 위상과도 맞물립니다.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라는 후광 아래 삼성전자는 한국 산업을 이끄는 ‘국가대표 회사’로서 국민에 각인됐죠. 반면 그 계열사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대중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 산업계에선 ‘삼성전자 밑에 ‘삼성후자’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공정위는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물론 서두에 언급했듯 삼성의 내부거래 생태계는 사익편취와 별개입니다. 과거부터 워낙 부침이 심했던 만큼 삼성그룹은 재계에서도 대외 평판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공시 상 뻔히 눈에 보이는 일감 몰아주기같은 이슈로 굳이 문제를 만들 이유도 없죠.


그래서 조성옥 공정거래위원장의 최근 발언이 더 귀에 박힙니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방식의 행위가 삼성 내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흘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2020년 상반기 삼성SDS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 가지 미뤄 짐작되는 곳은 바로 삼성SDS입니다. 2019년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김용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삼성SDS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갖고 질의를 합니다.


그는 “삼성SDS는 SI(시스템 통합) 간판을 달고 있지만 매출 구조의 절반이 물류에서 발생한다”라며 “삼성전자 내부 부서에서 담당했던 물류를 삼성SDS가 떠안으면서 사업규모가 커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거래했던 국내 업체들이 삼성SDS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게 김 전 의원 측 지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조 위원장은 “보고 받지 못한 내용”이라면서도 “물류부분의 계열사 몰아주기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삼성SDS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의 17.01%을 갖고 있습니다. 사익편취 허들(상장사 30%)에 걸리진 않지만, 혹여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SDS에 부당하게 물류를 밀어준 정황을 찾아 공정위가 조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출처: 2020년 상반기 삼성SDS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정리하자면 삼성 계열사들은 수직계열화 생태계 안에서 매출의 상당액을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코로나19와 같은 돌발 변수 앞에서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리스크 요인으로서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또 공정위가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힌 일감 몰아주기는 ‘뇌관’으로서 언제든 터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By 리포터 이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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