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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N]박삼구가 되기 싫었던 정몽규

조회수 2020. 9. 4. 09: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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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사진=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및 HDC현대산업개발 홈페이지

“비슷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건설회사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간다.”


작년 말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SPA(주식매매계약)를 체결하자 건설업계에서 나온 얘기다. 건설업체인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대주주였던 것처럼 또 다른 건설업체인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을 취하게 됨을 의식한 말이다.


건설사의 취약한 재무구조와 자금여력은 긴급 자금이 필요한 항공사에겐 득이 될게 없다. 항공업 특성상 과다한 부채는 늘 장기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삼성·현대차·SK·LG와 같은 대기업집단이었다면 필요할 때마다 긴급자금이 수혈될 수 있었겠지만, 국내 항공사는 이런 넉넉한 대그룹을 주주로 두지 못했다. 그래서 금호산업에서 HDC현산으로 주주가 바뀐다고 한들 취약한 대주주의 자금지원 여력이 바뀌겠냐는 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결국 “건설사가 대주주가 되면 그리 바뀔 게 없을 것” 이라는 자조섞인 한숨은 우려에서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로 재무상황이 더욱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을 HDC현산이 인수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금호아시아나그룹보다 조금 더 나은 HDC그룹의 자금여력 때문이다.


‘제2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제2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HDC그룹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가장 경계했던 호칭이다.


HDC그룹이 아무리 2조원에 달하는 ‘빵빵한’ 현금고를 갖고 있다곤 하나, 분기마다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회사를 품기란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인수했을 때의 그룹 부실화 위험과 인수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비용을 비교하면 답은 명확하다. 채권단 내에서도 그를 이해한다는 기류가 있다. 방식은 잘못됐지만 항공업황이 언제 살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룹의 존립을 걸고 베팅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란 이해다. 그저 막연한 ‘모빌리티그룹으로의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룹 전체가 위기에 몰리는 ‘승자의 저주’를 경험할 바에는 평판 위험과 기회 비용을 날리는게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출처-한국기업평가 기업재무요약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말 HDC그룹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을 때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였다. 부채비율 700%에 달하는 회사를 2조원 넘게 들여 사들인다고 HDC그룹의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 때보다도 더 안좋다. 올 상반기 부채비율은 1년 전 대비 3배 오른 2291%에 달하고, 순손실 규모 또한 6000억원을 넘어선다. 상반기 내내 이어진 채권단의 자금 지원 노력이 무색할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전 대주주(금호아시아나그룹) 관련 돌발 악재까지 터지면서 HDC현산의 인수 의지를 낮추기까지 했다.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여파로 수익성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HDC그룹이 만약 이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채권단이 마지막 협상에서 던진 ‘카드’를 받아든다고 해도 HDC그룹은 벌어들인 돈과 보유 현금으로 아시아나항공 빚만 갚다 끝날 공산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의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은 6월 말 기준 2조 7000억원으로, HDC현산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회사채 등 외부 조달로 메울 순 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 HDC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 강등이 예고돼 있어 이자비용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 국내 3사 신용평가사들은 HDC현산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린 바 있다.


‘코로나 천수답’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곧 대규모 비용 지출일 수 밖에 없다. 장기화 시 승자의 저주도 불가피하다. 딜 결렬에 HDC그룹 주주들이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다.


정 회장의 인수 일정 미루기 전략은 ‘승자의 저주’로 대변되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건 지도 모른다. 초대형 대기업 집단으로 도약을 위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다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을 넘어 결국 그룹 전체가 위기에 내몰린 회사가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By 리포터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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