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제철보국' 포스코, 비철 그룹됐다

조회수 2020. 8. 26. 22: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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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코로나19 여파는 예상대로 막강했습니다. 1968년 창사 이래 단 한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았던 포스코가 처음으로 적자를 냈습니다. 포스코는 2분기 108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포스코의 영업손익을 적자로 바꾼 건 원가와 철강재 판매 때문인데요. 철광제품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올라 비싸게 샀는데, 코로나19로 팔 곳이 줄어들면서 적자를 내게 된 것입니다.


포스코는 각종 산업에 쓰이는 중간재를 만드는 철강회사인데요.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5위일 정도로 굴지의 철강사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수요업체에 철강재를 팔지 못하게 되면서 ‘철옹성’ 같던 52년의 흑자 기록이 끊긴 겁니다. 매출과 영업이익, 생산량 등 각종 지표들을 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수준으로 회귀했는데요. 지금부터 볼 데이터들은 포스코의 철강회사 지위를 위축시킬 정도입니다.

포스코가 지난 13일 공개한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철강 부문의 비중을 알 수 있습니다. 상반기 철강부문 영업이익 비중은 35%였습니다. 지난해에는 72%에 달했는데 불과 6개월 만에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인데요. 이 수치는 의미심장합니다. 삼성그룹의 핵심은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과 모바일, 반도체 부문의 상반기 영업이익을 합하면 15조원이 넘습니다. 삼성그룹의 정체성이 전자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반기 영업이익을 보면 포스코의 정체성은 철강업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철강부문의 영업이익 비중은 35%로 무역부문(28%)과 건설부문(25%)에 비해 조금 높은 수준입니다. 이전에는 철강부문의 영업이익이 70% 이상을 유지하면서 무역과 건설부문 비중은 10% 안팎으로 유지됐습니다. 그런데 철강업의 비중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여타 사업과 비등비등해진 것입니다.


매출 기준으로 보면 전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매출을 많이 내는 것보다 수익을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팔아 많이 남겨야 주주에게 배당을 할 수 있고, 미래 성장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원가를 절감하고,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해 생산효율을 높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업을 통해 수익을 내지 못하면 주주가치도 기업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의 철강업 비중이 줄어든다는 건 곧 성장동력이 쇠태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포스코는 올해 2분기 779만톤의 쇳물을 생산했고, 776만톤을 판매했습니다. 2010년대 2분기 평균 판매량은 870만톤에 달하는데, 올해 약 100만톤 가량 판매량이 줄었습니다. 업계에서는 2분기부터 코로나의 영향이 본격 나타날 것으로 봤는데요. 예측이 적중했고, 여파는 예상보다 더욱 컸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철강부문의 영업이익은 1조7665억원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82.5% 가량 줄었습니다.

사실상 미국발 금융위기가 촉발된 2008년 수준으로 회귀했는데요. 올해 2분기 생산량과 판매량은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2009년(생산량 713만톤, 판매량 701만톤)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철을 주로 쓰는 자동차산업과 건설업은 쇠태하고 있고, 이는 중간재를 만드는 철강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 겁니다.


포스코도 철강부문의 사업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2000년 이후 포스코 역대 회장은 미래 비전으로 비철강(글로벌 인프라)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포스코의 2차전지 소재 사업과 에너지 사업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글로벌 인프라 부문을 강화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포스코그룹의 영업이익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철강업의 수익이 30%대로 줄어든다는 건 국민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상당합니다.


포스코는 국민이 주인인 기업입니다. 포스코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국민이 주주가 될 수 있냐구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12.06%의 지분을 보유한 공공기관인 국민연금공단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공공기관입니다. 공단은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납부한 국민연금을 재투자해 수익을 얻습니다. 지난해 국민연금공단은 포스코에서 약 900억원을 배당받았습니다. 쉽게 말해 포스코가 수익을 많이 낼수록 국민의 노후 곳간도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포스코는 연간 영업이익 규모가 큰 만큼 국세 기여도가 높습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법인세 총액은 72조2000억원에 달했습니다. 포스코가 지난해 법인세로 국세청에 납부한 금액은 655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법인세의 약 1% 안팎을 포스코가 맡고 있는 셈입니다. 국가 예산을 책임지는 100명이 있다고 상상하면 포스코가 1명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포스코의 수익 저하가 국가 경제와 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법인세는 세전이익(영업이익에서 영업외비용)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배당은 순이익 규모를 고려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포스코 실적의 관심을 둬야하는 이유입니다. 관건은 코로나19의 여파에서 얼만큼 빨리 빠져 나오는지입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돼 수요처의 철강 주문이 줄어들수록 포스코의 실적 회복도 장기화될 전망입니다.


By 리포터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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