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는 왜 '동북공정 드라마'로 불리나

조회수 2021. 3. 25. 17: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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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태종 이미지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 판타지 스토리로 기대를 모았던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첫 방송부터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룬 국내 드라마 가운데서도 역대급 혹평이다. 조선구마사는 왜 비난의 중심에 섰을까.


Point 1. 선택적 허구의 모순


역사 왜곡 이슈는 실존 인물을 차용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빈번하게 제기되는 문제다. 재미를 위한 허구의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실제 역사와 배치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대부분 극적인 반전이나 휴머니즘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 속 인물의 성격을 더 독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조선구마사 속 충녕대군.

다만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는 ‘적정선’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종영한 ‘뿌리깊은 나무’의 경우 극중 세종대왕(한석규 분)을 괴팍하게 묘사해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한글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인물 간 서사를 긴장감 있게 조명해 호평을 받았다. 당시 많은 시청자들이 무사 ‘무휼'(조진웅 분)을 실제 인물로 착각할 만큼 큰 존재감을 남겼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다면 이야기에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조선구마사를 본 시청자들은 이 기준에서 ‘선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드라마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태종'(감우성 분)은 악령에 홀려 백성을 잔인하게 도륙하는 왕으로 묘사했고,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장동윤 분)은 형제들에 밀려난 패배감을 곱씹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두 얼굴의 태종.

이런 캐릭터 설정은 비단 태종과 충녕대군에 그치지 않는다. 태조로 등장한 혼령은 태종을 농간한 악령으로 등장해 수 차례 목을 베인다. 아무리 혼령이라는 설정을 했다고 해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목을 벤다는 것은 지나친 설정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실명 논란도 있다. 태종의 넷째 아들인 ‘강녕대군'(문우진 분)은 생시(좀비)의 공격을 받아 괴물이 될 위기에 처한다. 제작진은 “역사 속 인물을 실명으로 표현해 현실적인 공포감을 주려 했다”고 해명했지만 이것은 모순이다. 생시의 공격을 받은 강녕대군과 그의 어머니인 ‘원명왕후'(서영희 분)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조선구마사 속 강녕대군. 실제 역사에서 태종의 넷째 아들은 성녕대군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태종의 넷째 아들은 강녕대군이 아닌 성녕대군이다. 원경왕후가 39세에 출산한 성녕대군은 막둥이로 태어난 만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생한 공포를 주기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차용했다면 역사에 기록된 성녕대군과 원경왕후의 이름도 그대로 썼어야 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특히 역사와 배치되는 인물 설정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태종은 유교를 숭상한 왕이다. 전국을 사찰을 폐쇄하는 한편 소속된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며 불교를 억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비기·도참 사상을 엄금하는 등 미신타파에 힘쓴 것으로 전해진다. 악령에 넋이 나가 백성을 무참히 죽인다는 설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조선구마사 속 태종과 원명왕후.

셋째 왕자 콤플렉스로 위축된 삶을 살아가는 드라마 속 충녕대군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은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을 당시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정치의 요체)를 알아 매양 큰일에 헌의(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패배감에 찌든 충녕대군의 모습은 역사서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기방에 들른 충녕대군이 “보위를 물려받을 것도 아닌데 주색잡기나 배워볼까”라며 이죽거리거나 “6대조인 목조께서도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를 하셨던 분인데 그 피가 어디 가겠냐”는 장면은 세종을 비롯한 조선왕조에 대한 모독으로 비쳐질 수 있다.


Point 2. 동북공정 의혹


‘문화적 동북공정’ 논란도 제기됐다. 극 중 충녕대군 일행은 통역관 마르코(서동원 분)와 신부 요한(달시 파켓 분)을 접대하기 위해 기방을 찾았는데 술과 함께 나온 음식은 피단, 월병, 중국식 만두였다. 조선 기방에 난데없이 중국 음식이 등장한 것이다.

출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영상 갈무리)

이에 대해 조선구마사 측은 “중국 국경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서역의 구마 사제를 데려와야 했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의주 근방이라는 장소를 설정한 후 자막 처리했다”며 “(당시)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해 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태종 집권기 당시인 1400~1418년 당시 명나라의 국경은 산해관까지로, 드라마에 등장한 의주 일대는 여진족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명나라 건국 시기가 1368년임을 감안하면 의주는 몽골인이나 여진족이 자주 왕래하던 지역으로 설정돼야 하는 것이다.


상상력을 가미했다던 제작진의 해명에서 주목할 점은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표현이다. 명나라 국경에 가까웠기 때문에 관련 소품을 준비했다면 가옥, 음식, 술 외에 기방의 기녀와 그들이 입은 복식도 해당 문화권을 따라야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중국 음식이 나오는 곳에서 기녀들은 한복을 입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중국이 시도하는 동북공정과 유사한 사례라고 지적받고 있다. 최근 중국 누리꾼들은 SNS를 통해 비빔밥, 갓, 한복 등 한국 고유 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구마사의 왜곡된 조선의 모습이 문화적 동북공정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출처: (사진=SBS 조선구마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22일 오후 4시 30분 기준 조선구마사 시청자게시판에는 1500건이 넘는 글이 게재됐다.

현재 조선구마사 공식 홈페이지 내 시청자 게시판에는 1500건이 넘는 항의글로 도배가 된 상황이다. 대부분 동북공정과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날 제작진은 “예민한 시기에 오해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시청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조선구마사를 보는 시청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 사이에서 자가당착에 빠진 조선구마사는 이대로 순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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