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는 SF 장르가 아니에요

조회수 2021. 2. 18.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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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시지프스: the myth’는 조승우, 박신혜, 성동일 등 화려한 배우진이 가세하며 일찌감치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청률 5.6%(닐슨코리아 집계 기준)를 기록하며 전작 ‘런 온’ 첫 회 시청률(2.1%)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출처: (사진=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시지프스

화제성 만큼이나 이야기의 구성도 독특하다. ‘강서해'(박신혜 분)가 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 분)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온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공상과학(SF) 장르로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서 유심히 봐야할 것은 부제인 ‘the myth'(신화)다. 제목에 담긴 의미와 드라마가 상징하는 메시지를 주인공 한태술의 시점에서 풀어본다.


시지프스 신화, 그리고 한태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는 ‘코린토스’라는 국가의 왕이다. 어느 날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시지프스는 아소포스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는 대신 코린토스 성 안에 맑은 샘이 샘솟는 대가를 받는다. 화가 난 제우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내 그를 체포하도록 명령하지만 오히려 시지프스가 밧줄로 그를 묶어 가둔다.


이 일로 세상에 죽음이 사라지자 신계는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제우스가 전쟁의 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했고, 시지프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 앞에 끌려오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시지프스는 하데스에게 끌려가기 전 아내에게 “내가 죽더라도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하데스와 마주한 시지프스는 “죽으면 장례와 지하세계를 건널 배 삯을 혀 밑에 넣어둬야 하는데 아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이승세계에 다녀오겠다고 호소한다. 하데스의 허락을 얻어 이승세계로 돌아온 시지프스는 저승사자들이 올 때마다 임기응변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며 늙어 죽을 때까지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출처: (사진=시지프스 방송 화면 갈무리)

드라마에 등장한 한태술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의 모습과 닮았다. 시지프스가 ‘왕’이라면 한태술의 경우 IT 기업 ‘퀀텀앤타임’의 회장이다. 인간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통해 높은 명성과 부를 축적한 공통점이 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음에 직면하자 친구이자 회사 부회장인 에디 김(태인호 분)에게 자신의 재산을 환원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이는 하데스에게 끌려가기 전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시지프스의 모습과 비슷하다. 뇌사 상태로 죽음을 경험했다가 깨어난 것도 이승과 저승을 오간 시지프스를 연상케 한다.


코린토스에 솟아난 ‘맑은 샘’은 드라마 속 한태술의 부와 연결할 수 있다. 한태술은 제우스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대가로 샘물을 맛 본 시지프스처럼 친형의 간절한 외침을 무시한 후 나스닥 상장이라는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죄책감’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약을 먹어도 가시지 않는 고통을 경험한 것인데 이마저도 시지프스의 마지막과 닮아 있다.


고통의 굴레, 극복할 수 있을까


하데스는 저승에서 다시 만난 시지프스를 용서하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에서 커다란 바위를 굴려 올리게 함으로써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으로 몰아 넣었다. 한태술 역시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하며 영원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신화 속 시지프스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을까. 한태술과 시지프스의 차이는 이 지점에서 명확히 대비될 것으로 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제리 출신 작가 알베르 카뮈는 저서 ‘시지프 신화’를 통해 이를 날카롭게 들여다 본다.


카뮈의 시선에서 시지프스는 ‘부조리’를 고발했다가 고통을 받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한 인물’이다. 신의 존재에도 굴하지 않고 반항과 투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성취했고, 영원한 고통의 굴레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출처: (사진=시지프스 방송 화면 갈무리)

한태술은 형의 죽음을 떠올리며 후회와 고민을 반복한다. 이는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리면서 느꼈을 다양한 감정 중 하나이자, 견뎌야 할 시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변수는 ‘구원자’로 등장하는 강서해다. 강서해는 폐허가 된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인물이다. 차원을 건너왔다는 점에서 신화 속 아레스, 타나토스, 하데스 같은 신의 위치를 연상케 한다. 중국집 배달원인 ‘썬'(채종협 분)을 한 번에 제압할 만큼 강하며, 구원자라는 명목으로 한태술을 추적하는 것을 보면 ‘반전의 키’를 쥐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지프스가 첫 발을 내딛은 만큼 이야기의 전개 방식을 쉽게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신화 속 시지프스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시지프스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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