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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이 아니야'…아모레 '넘사벽' 된 LG생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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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3일 발표된 아모레퍼시픽의 2020 사업연도 실적에 업계 관심이 모두 쏠렸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오랜 기간 지켜오던 국내 화장품 업계 1위 자리를 LG생활건강에게 넘겨줬기 때문이죠.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하며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부문 매출규모에 처음으로 뒤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전년 대비 20.6% 감소한 4조432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부문 매출액은 4조4581억원으로 근소하게 아모레퍼시픽보다 많았습니다. LG생활건강 역시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었지만 감소분은 6.1% 수준으로 아모레퍼시픽과 비교해 상당히 선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영업손익은 차이가 상당합니다. LG생활건강이 화장품 부문에서 8228억원의 이익을 낸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5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1430억원의 이익을 내는데 그쳤습니다. 영업이익률로 따지면 LG생활건강이 18%, 아모레퍼시픽이 3%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아모레퍼시픽의 수익성 악화에는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말 위기를 인식하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바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얼마의 금액이 들었는지는 구쳊거으로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이번 순위 역전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보통 같은 업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의 성적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죠. 특히나 코로나19라는 동일한 대외변수 영향 아래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업종별로 비슷한 실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행 및 호텔 사업자들의 실적은 모두 악화했구요. 국내 정유업체들은 조단위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반대로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IT 업체들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죠.


이를 감안하면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의 극과 극의 성적은 사업전략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코로나19가 단지 트리거 역할을 했을 뿐, 이미 이전부터 이러한 사태를 암시하는 전조현상들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부문 실적만 기재.

출처(출처=금융감독원)

과거 10년치 실적을 쭉 살펴보면 LG생활건강은 2020년을 제외하고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화장품 부문 매출 규모를 늘려왔습니다. 2011년 1조원대 초반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4조원 규모로 성장하는 데는 단 7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기간 2600억원의 영업이익은 5300억원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2016년까지는 아주 빠른 속도로 매출을 성장시켜왔습니다. 2011년 2조6000억원 수준의 매출은 5년 만에 5조6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성장이 딱 멈췄습니다. 2019년까지 매출 5조원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구요. 그러다 지난해 4조원대로 급감한 것입니다. 2016년 한 때 8500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이후 매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러한 실적추이는 보수적인 사업전략에 기인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이 경쟁업체인 LG생활건강과 비교해 사업다각화에 힘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오프라인 브랜드 숍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이 잘 통하다 보니,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안주했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부문 실적만 기재.

출처(출처=금융감독원)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해외 시장에서도 똑같이 구사한 것으로 전해지죠. LG생활건강이 중국에서 입점과 온라인을 통해 제품 판매에 나선 것과 달리,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코로나19를 맞아 최악의 수가 됐죠.


화장품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오랜 기간 1위를 유지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LG생활건강과 기업 대 기업으로 비교해보면 이미 아모레퍼시픽에게 LG생활건강은 시쳇말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은 존재입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부문 뿐 아니라 생활용품, 식음료 등 사업군 확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LG생활건강의 모든 사업부문을 더한 매출액은 7조8000억원이구요.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액은 4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1430억원이니 비교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죠. 지난해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 사업부문에서만 2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뽑아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상당히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어 이번 실적 악화가 아주 치명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3300억원으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부채비율도 26.9%로 아주 우수합니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놓고 보면 현금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현재 보유한 현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개미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소액투자자들의 공격적 주식 투자 역시 그저 현금을 갖고만 있으면 손해 본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죠. 아모레퍼시픽은 수년 동안 엄청난 현금 기회비용을 상실한 셈입니다.


실제로 LG생활건강은 지난 15년 동안 20건이 넘는 M&A를 성사시켰지만, 아모레퍼시픽은 그간 M&A 시장에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움직였습니다. 2016년에는 순차입금이 9000억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부터 다시 M&A를 실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 해외 화장품 브랜드 지분 일부 인수를 성사시키기도 했죠. 올해는 디지털 전환에 힘쓰고 투자도 활발히 한다고 하는데요. 과연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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