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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말렸던 문화인류학, 스포티파이서 일하는 계기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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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을 공부하러 갈 때 주변에서 많이 말리셨어요.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인문학은 취업이 힘들거든요.”


‘문송’에는 국경이 없었다. 백원희 씨는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 들어갔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자 회사를 그만뒀다. 그 다음 백원희 씨가 선택한 건 디자인.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두 번째 직장은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그곳에서 백원희 씨는 인테리어부터 사용자경험(UX) 조사까지, 디자인에 관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디자인은 정말 원없이 해봤다.”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으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함께 수업을 듣던 30명 중 28명이 교수를 지망하고 있었다. 백원희 씨는 “사실 인문학 자체가 힘들다”라며 “석사(공부)를 하는 동안 미국 내 실업률 1위가 인류학이었고 2위가 역사학이었다.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스텝은 ‘문송’하지 않았다. 백원희 씨는 현재 스포티파이에서 시니어 유저 리서처로 일하고 있다. IBM에서 사용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개발 연구를 담당하기도 했다.


스포티파이는 전세계 79개국 2억700만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음악 구독 서비스 기업이다. 유료 가입자는 9600만명에 달한다. 최근 한국 진출설이 보도되면서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유저 리서처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직무는 아니다. 기획자나 디자이너 등이 유저 리서치(user research, 사용자 조사)를 진행하기는 하지만 전담직무와 팀이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스포티파이는 6년여 전부터 유저 리서치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현재 해당 팀의 규모는 40명 정도. 백원희 유저 리서처는 “구글,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우버 등 우리가 흔히 아는 글로벌 IT기업은 리서치 팀이 굉장히 크다”라며 “(유저 리서치 팀은)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규모가 작더라도 UX를 깊이 이해하고 UX 쪽에 강한 팀은 (리서치 팀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유저 리서치, 유저 리서처. 우리말로 사용자 조사, 사용자 조사원이다.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총체적인 백그라운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젊은 세대가 소셜 미디어에 ‘스토리’를 올리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현재 가진 고민, 키워드를 고려해야 이 행동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UX리서치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텍스트를 잘 안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 ‘왜’에 집중하는 거다. 조사를 해보면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와 새로운 타입의 커뮤니케이션이 있기 때문에 안 읽는 것이다. (*유저 리서치=UX 리서치, 디자인 리서치)


유저 리서처는 사용자를 만나 데이터를 모으고, 인사이트를 도출해서 제품과 디자인 팀이 의사결정을 내릴 근거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용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인지 반응을 평가한다. 콘셉트가 나오기 전에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파악하기도 한다. 인터뷰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조사한다. 조사방법은 다양하다. 정성 조사, 정량 조사가 있다. 인터뷰, 에스노그라피, 다이어리 스터디, 관찰, 설문조사, 로그 분석 등등. 조사마다 단점이 있는데 조사기법을 여러 개 써서 단점을 보완한다.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그 인사이트를 제품 팀 등과 공유해 제품이 개선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유저 리서치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


=목적은 여러 가지다. 사용자 경험(UX)을 보고 UX-U(사용자)=X라는 말이 있다. (웃음) 사용자를 공부하지 않고 경험을 창출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회사 규모가 작으면 이런 조직을 둘 수 없다. 그래서 가정을 해서 서비스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편하겠지?’, ‘이렇게 만들면 이렇게 쓰겠지?’ 하지만 실제로 사용자가 쓰는 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사용자들도 인터뷰를 할 땐 ‘이러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말과 행동이 굉장히 다르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본 회사들은 유저 리서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력을 전문적으로 둔다. 여건이 안 되는 회사는 디자이너, 기획자가 병행한다.

-병행을 하는 것보다 개별적인 직무로 나눠져 있는 게 나은가?


=병행은 단점이 있다. 본인이 디자인하고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가 있다는 거다. 중립적으로 일하는, 조사만 하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리서치는 개발을 다 마치고 나서 사용자 테스트용으로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다. 마지막에 가서 ‘이게 아닌데…’하면 되돌려야 한다. 출혈이 크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고 효율화하려는 거다. 이런 조사가 정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최대한 사용자에 가깝게 가는 게 목적이다.


-IT기업에 많은 직무인데, 테크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궁금하다.


=나는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제품이 시작단계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는 대략적으로 알아야 한다. 한 부분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유저 리서치는 개발 프로세스 중간중간 계속 들어간다. 각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세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개발자 언어, 디자이너 언어 등을 알면 좋다. 이건 일하며 배울 수 있다. 백엔드나 프론트엔드 개발자 등 일하는 사람들과 다 인터뷰를 하는 방법도 있다. 조직관계도와 이해관계자들의 관계를 이해하면 업무가 훨씬 편하다.


-전공 분포는 어떤가?


=다양하다. 인류학, 행동경제학, 사회학 등 인문계열이 많은 편이다. 앱은 디자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터랙션 디자인, HCI 전공자들도 있다. 경영학, 엔지니어링, 건축학 등을 전혀 다른 전공한 이들도 경력을 쌓거나 직장 내에서 리서치를 병행하다 온다.


-스포티파이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아티스트를 어떻게 발견하고 알아가는지 그 행동모델을 조사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 또는 아티스트에 대해 알게 되면, 구글 검색을 통해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그러면서 자신과 맞는지 확인하더라. 그래서 구글 검색을 통해 들어가는 스포티파이 페이지에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와 스포티파이가 제공하는 여러 정보들이 나오도록 했다. 프리뷰처럼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 아티스트의 음악과 기본 프로필, 스포티파이에서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비롯해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 다른 아티스트나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많이 듣는 도시 등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면서 스포티파이를 쓰지 않는 사용자들도 가입을 하도록 장려했다.


‘저니’ 프로젝트는 무료사용자들의 유료전환 동기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였다. 스포티파이에는 크게 무료 가입자, 유료 가입자가 있는데 먼저 비가입자가 왜 유료회원까지 하게 되는지, 그리고 무료 가입자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유료전환을 하는지에 대해 알기위해서 미국 네개 도시를 돌면서 사용자들을 만나 정성조사를 진행했다. 보통은 광고가 싫어서 결제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광고 이외에도 사용자의 다른 여러가지 문맥과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한 예로, 유료로 막 넘어온 사람들에게 무료사용 중에 만족하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좋아하는 기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문과 배경이 직무에 도움이 됐나?


=첫 번째로 ‘총체적인 관점’을 갖는 데 인문학, 문과 배경이 도움이 된다. 문화인류학에서 중요시하는 핵심내용 중 하나가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용자 조사를 할 때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행동연구에 그치지않고 더 넓은 맥락인 문화, 가치관, 태도, 상황, 경험 등 더 넓은 범위까지 파악해 이러한 백그라운드가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해석한다.


두 번째로는 ‘사용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됐다고 하지만 결국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술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저 리서처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직군으로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야 사용자들이 겪는 불편함과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인문학 공부가 큰 강점이 된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려워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다. 유저 리서처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UX 라이터(UX Writer)’라는 흥미로운 직업을 소개해주고 싶다. 앱에 들어가는 글을 쓰는 건데, 앱 안에서 사람들이 헤매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거다.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문구가 나와야 할지, 오류가 생기면 어떤 오류인지, 사용자는 그러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런 내용을 알려주는 거다. 새로 생겨난 직업이다. 스포티파이에 있다.


이렇게 인문학 전공자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작은 일이긴 하지만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테크업계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 중요하다. 유저 리서치도 재미있는 분야다. 적극 추천하고 싶다. 사람을 연구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 그만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다. 평생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면 좋다.


필드에 어떻게 들어와야 하냐고 묻는다면, 진입장벽이 다른 기술적인 분야보다는 낮은 편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이 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조사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변 대상자들을 인터뷰해보는 거다. 포트폴리오를 쌓을 기회가 많다. 미국에서는 취업할 때 무조건 포트폴리오를 본다. 전문지식이 있으면 백그라운드나 학벌 상관없이 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문화다. 실무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유저 리서치는 어느 조직이나 필요로 하는 일이라 앞으로 더 유망할 거다. 이 일은 아직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맥락을 읽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석과 해석은 아직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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