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왜 접지 않고 붙였을까

조회수 2019. 2. 27. 17: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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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부족이 아닌 사업적인 현실
“삼성은 폰을 반으로 접고 엘지는 폰사업을 접는다”

LG전자가 공개한 듀얼 스크린 제품이 혹평을 받고 있다. 삼성 ‘갤럭시 폴드’, 화웨이 ‘메이트 X’ 등 화면을 접는 폴더블폰이 연달아 발표된 직후, 화면을 하나 덧붙인 제품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폰 두 개를 붙인 것 같은 LG 스마트폰을 두고 “폴더블폰 시대에 역행하는 제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G전자는 2월24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19 바르셀로나’ 개막 하루 전 바르셀로나 국제 컨벤션센터(CCIB)에서 ‘G8 씽큐’와 ‘V50 씽큐 5G’을 공개했다. 이 중 논란이 된 제품은 V50 씽큐 5G의 듀얼 스크린 액세서리다. 듀얼 스크린은 화면을 하나 덧붙여 쓸 수 있는 탈부착형 액세서리 제품이다. 6.4인치 OLED 화면을 탑재한 V50 씽큐 5G에 스마트폰 케이스 같은 액세서리를 씌우면 6.2인치 OLED 화면을 하나 더 쓸 수 있다. 폴더블 같은 폼팩터 혁신의 과도기적인 형태다.

| 듀얼 스크린을 결합한 ‘LG V50 씽큐 5G’

LG전자가 폴더블폰 대신 듀얼 스크린을 들고나온 이유는 뭘까. 듀얼 스크린 제품이 탄생한 배경은 기술력 부족이 아닌 LG 스마트폰 사업이 처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 1월 ‘소비자가전쇼(CES) 2019’에서 폴더블보다 앞선 기술로 평가받는 롤러블 TV를 선보인 바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과 휴대용 디스플레이 기술은 다르고, 이를 다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폼팩터 형태로 생산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LG가 디스플레이 기술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CES에서 디스플레이로 흥한 기업이 MWC에서 디스플레이로 논란이 된 모순된 현상은 기술이 아닌 사업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 듀얼 스크린에 비친 LG 롤러블 TV

폴더블폰은 아직 불확실한 시장이다.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의 구원자가 돼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당장에 사업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품은 아니다.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다.


삼성 갤럭시 폴드의 가격은 1980달러(약 222만원)다. 화웨이 메이트 X는 이보다 비싼 2299유로(약 292만원)이다. 당장 대중화되기 힘든 가격이다. 공급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폴더블폰은 많이 파는 게 아닌,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게 목적이다. 시장조사기관 위츠뷰에 따르면 올해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폴더블폰 점유율은 0.1%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부문에서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당장 수익을 가져다줄 수 없는 불확실한 시장에 선도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LG전자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따르면, LG전자 스마트폰 사업 담당 MC사업본부는 매출 1조7082억원, 영업손실 3223억원을 기록하며 15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조2148억원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1060억원 늘었다. 연간 매출은 8조500억원으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 10조원을 넘기지 못했다.


경영 효율화와 적자를 끊어내는 게 LG전자 MC사업본부의 목표다. 새로운 시장 개척이 아닌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력 회복이 급선무다. 기술력을 내세운 초격차 전략은 선도 기업이 펼칠 수 있는 전략이다. 가전 부분에서는 당장 팔리지 않아도 될 롤러블 TV를 낼 수 있지만, 스마트폰 사업에서는 그럴 수 없다. LG전자 스마트폰의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2~3% 수준이다.

| LG전자 MC/HE사업본부장 권봉석 사장

LG전자 MC/HE사업본부장 권봉석 사장은 지난 15일 한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사업의 현실성을 얘기하며 기술은 이미 갖췄지만, 폴더블폰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당시 권 사장은 “사업은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고 본다”라며 “폴더블 폰에 대한 시장 수요 외부기관에서 100만대, 70만대 정도로 보는데 LG전자의 일차적 사업 방향성은 메인스트림에서 시장 지위 회복이며, 어떻게 이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내부적 이슈이고 폴더블, 롤러블 등 시장 반응에 따라 언제든 기술이 준비돼 있다”라고 말했다. 폴더블폰 시장이 성숙하면 뛰어들겠다는 설명이다.


또 권 사장은 “전년 대비 매출 성장을 목표로 잡지 않고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노력하겠지만, 시장이 그런 쪽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스마트폰 시장을 낙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듀얼 스크린은 일종의 타협점이다. LG전자의 첫 5G 스마트폰 V50 씽큐는 5G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 전작 ‘V40 씽큐’의 플랫폼을 활용했다.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폰을 설계하기 힘든 상황에서 검증된 플랫폼을 토대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겉보기에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을 터다. 또 5G 환경에 맞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UX)를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 결과가 액세서리 형태의 듀얼 스크린이다.


폴더블폰 시장이 무르익기 전까지 듀얼 스크린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불확실한 시장에 뛰어들 사업적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즈니스적인 논리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단, 첨단 기술이 전시되는 MWC에서 듀얼 스크린은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두 개의 화면을 통해 스마트폰 사업에서 LG전자가 처한 현실만 고스란히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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