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로봇 교통사고'의 진실

조회수 2019. 1. 18. 1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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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자율주행차가 로봇을 죽였다"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로봇을 죽였다”

‘소비자가전쇼(CES) 2019’ 개막 첫날, 기자들에게 이메일 한 통이 전달됐습니다. 프로모봇이라는 러시아 로봇 개발사가 보낸 보도자료였습니다. 자율주행 모드로 달리던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있던 자사의 인공지능(AI) 로봇을 들이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사건의 신빙성을 위해 유튜브 영상 링크까지 첨부했습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로 로봇 간 교통사고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서 벌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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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모봇 로봇 사고 현장 (사진=프로모봇 유튜브)


세계 최초 로봇 간 교통사고?


프로모봇 측에 따르면 1월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웨스트게이트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앞 도로에서 테슬라 모델S는 프로모봇의 로봇 모델 v4와 충돌했습니다. CES 부스로 로봇을 옮기던 중 대열에서 이탈한 로봇이 도로에 서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주장입니다. 프로모봇 측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도로 가장자리에 서 있던 로봇이 테슬라 차량이 지나가면서 넘어지고 조끼를 입은 남성이 다가와 로봇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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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모봇은 사고를 당한 로봇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몸통 부분과 팔 부분 장치, 머리, 이동 장치 등에 심각 손상을 입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습니다. 프로모봇에 따르면 테슬라 차량 탑승자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 완전 자율주행 모드를 테스트 중이었습니다.


테슬라 탑승자 조지 칼데라는 “사람과 차량이 없는 지역에서 테슬라를 자율주행 모드로 바꿨고 도로 위에 있던 로봇을 발견했다”라며 “조그마한 로봇이 피해갈 거라 생각했는데 차량과 똑바로 부딪혔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로봇이 귀여웠는데 엔지니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고는 현재 경찰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로모봇은 네바다주 경찰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고, 경찰이 현장을 살피는 모습을 목격자가 촬영한 별도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올레그 키보쿠르트세브 프로모봇 개발 책임자는 “CES 참여를 위해 로봇을 필라델피아에서 가져왔는데 전시할 수 없게 됐다”라며 “왜 해당 로봇이 도로로 갔는지 밝히기 위해 내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홍보 욕망에 의한 조작 가능성


여기까지는 프로모봇 측의 주장입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로봇 교통사고는 조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사고 차량으로 지목된 테슬라 모델S에는 완전 자율주행 모드가 없습니다. 운전을 보조하는 ‘오토파일럿’ 모드가 탑재돼 있지만, 부분적인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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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모델S (사진=테슬라)


테슬라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내비게이트 온 오토파일럿’은 자율주행 성능이 개선됐지만, 고속도로에서 쓸 수 있는 기능입니다. 내비게이션 경로에 기반해 목적지를 입력하면 차량이 목적지까지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출구를 인식해 주행할 수 있습니다. 사고 현장은 주차장 앞 좁은 도로였습니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에나 완전 자율주행용 AI 칩 ‘하드웨어3’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프로모봇 측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로봇이 쓰러지는 모습이 어색하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영상 속에서 프로모봇 로봇은 차량에 충돌해서 쓰러진다기보다 마치 누군가 잡아당긴 것처럼 어색하게 넘어집니다.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로봇을 잡아당기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밧줄처럼 보이는 물체가 등장합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알려진 내용도 거짓일 수 있습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 경찰 측은 해당 사건이 접수된 기록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작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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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프로 추정되는 물체가 영상에서 포착됐다. (사진=트위터 @ShayneRarma)


결국 프로모봇 측이 자사 홍보를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얘기입니다. 프로모봇이 공개한 사고 영상은 현재 127만 조회수를 넘었지만, 댓글 반응은 “로봇 안에 있는 사람은 안 다쳤냐?”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대부분 프로모봇 측에 부정적입니다.


<와이어드>는 이번 사건을 차량 업체가 ‘자율주행’을 과대 광고한 결과라고 짚었습니다. 테슬라가 오토파일럿 기능의 한계를 알리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홍보가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프로모봇이 자율주행에 대한 대중의 혼란과 오해를 이용했다는 얘기죠.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그렇다면 만약 사건이 실제라면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아직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을 가릴 명확한 규정은 없습니다. 자율주행차 사고 문제는 원인 규명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상 여러 원인이 겹쳐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문제일 수 있고, 탑승한 사람의 부주의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우버 사고는 우버 소프트웨어 설계 결함도 있었으나 차량에 배치된 안전요원이 스마트폰으로 TV 쇼를 시청하느라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이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사람과 기계 간의 책임 공방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일반 교통법규를 적용해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을 따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5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했던 테슬라 모델S 오토파일럿 모드 교통사고의 경우 NHTSA는 사고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고속도로에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하던 테슬라 차량과 대형 트레일러가 충돌해 테슬라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입니다. 조사 결과 카메라와 센서가 트레일러의 흰색 탑재물을 하늘로 잘못 인식해 속도가 줄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운전자가 오토파일럿 모드에서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위급 상황에 대처하도록 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차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이유로 테슬라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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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웨이모 미디엄 블로그


이번 사건 역시 위의 사례를 놓고 봤을 때, 운전자의 부주의가 책임 소지를 가리는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이 실현됐을 때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 상태에서 탑승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를 부과하는 건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와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스템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제조사 책임 압력이 높아지면 기술 발전이 더디게 진행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자율주행 법안을 마련하는데 치열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업체마다 그리는 미래상이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고학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각의 회사가 그리는 자율주행 세상이 다른데 구글은 전세계 모든 자동차 제조 업체들이 구글 소프트웨어 장착하고 다니는 세상 그릴 거고, 현대차는 제조업체가 중심이 되는 자율주행 세상을 생각할 것이며, 테슬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체 패키지를 마련한 회사이기 때문에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기술이 어떻게 될지,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자리 잡을지에 따라 법적인 논의나 쟁점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고 교수는 “사고 메커니즘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어떤 유형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지, 누구한테 책임 부담을 줘야 사회 총체적으로 사고가 덜 나타나게 될 것인지 그런 관점에서 법적인 논의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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