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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티 키보드' 달린 블랙베리 키투, 3주 써보니

조회수 2018. 9. 28. 16: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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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에서 안 예쁜 스마트폰으로.

예쁜 쓰레기. ‘블랙베리’라 하면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다. 외양에 반해 구입하지만, 성능이 좋지 않아 무용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예쁜 쓰레기만큼 기이한 말도 없다. 예쁜데 쓰레기일리가. 예쁜 것은 예쁜 것만으로 값지다. 지난 7월27일 국내 시장에 출시된 블랙베리 ‘키투’를 3주간 써보았다. 예쁜 쓰레기라는 칭호는 이제 떼어버려도 될 듯했다. 키투는 예쁘지 않았고, 쓰레기도 아니었으니까.


키보드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


키보드는 블랙베리의 상징이다. 아버지는 키투를 보자마자 ‘새로 산 미니 컴퓨터냐’고 물었다. 자판이 달린 스마트폰이라 하니 질문이 날아왔다. “스마트폰에 왜 자판을 달아? 그냥 ‘터치’하면 되는데.” 근본적인 질문, 말문이 막혔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휴대전화에 달려 있던 물리 자판을 없앤 아이폰을 내놓았다. 당시 블랙베리 경영진은 아이폰의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물리 키보드보다 불편하다고 지적했고, “블랙베리에 비하면 (아이폰은) 장난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경영진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폰은 승승장구했고, 물리 자판은 블랙베리에 남은 구시대의 유산이 됐다.

흔치 않은 쿼티 폰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키투를 꺼낼 때마다 열에 아홉은 “키보드 한 번만 쳐보자”며 달려들었다. 그 다음에는 어김없이 과거 2G폰을 사용하던 학창시절 추억담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몰래 책상 서랍에 휴대전화를 숨기고, 오직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문자를 전송하던 시절. 나도, 그들도 과거의 경험치가 충분하니 블랙베리 폰에도 금세 적응할 거라 예상했다. 옛날은 옛날, 지금은 지금. 익숙해지는 데만 4일이 걸렸다.

키투 키보드는 키보드 중앙을 기준으로 좌측 키는 왼손에 맞게, 우측 키는 오른손에 맞게 결이 달리 설계돼 있다. 두 손으로 잡았을 때 안정적인 형태다. 키보드 크기는 키원 대비 20% 더 커졌지만 자판 사이 거리가 촘촘해 옆의 키가 눌리는 등 오타가 잦았다. 물리 자판은 터치 자판을 쓸 때보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업무용 대화는 괜찮아도,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쉼없이 수다를 떠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볼록 튀어나온 키를 누를 때마다 묘한 쾌감이 일었다. 블랙베리 사용자들이 말하는 ‘손맛’이 이런 걸까. 어떤 느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피젯 큐브’를 갖고 노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지난해 사내에서 피젯 큐브가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다. 언뜻 보기에는 쓸데없는 손장난처럼 보여 혀를 찼다. 막상 손에 쥐니 그 단순하고 원초적인 손맛이 어찌나 중독적이었는지. 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

블랙베리는 키보드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하려 애썼다. 키투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는 극강의 편의성이다. 편의성을 이루는 두 축은 단축키와 터치 기능. 이들로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았다.


단축키부터 보자. 물리 자판을 활용해 총 52개 단축키를 지정할 수 있다. 홈화면에서 자판을 길게 누르면 각 자판에 설정해둔 앱 또는 연락처가 바로 연결된다. 나는 스펠링을 따서 G에 지메일을, I에 인스타그램을 등록했다. 자주 쓰는 앱은 손이 자주 가는 자판에 바로가기로 설정했다. Q에 ‘설정’을 등록하고, R은 카카오톡과 연동했다. 여기까지는 전작과 같다.

키투는 ‘스피드키’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오른쪽 하단에 점 9개 모양이 각인된 키가 스피드키다. 바로가기를 좀더 빨리 할 수 있는 기능키다. 단축키 자판과 스피드키를 함께 누르면 앱을 실행하는 도중에 다른 앱으로 바로가기를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을 F에 설정했다고 치자. 유튜브를 보다가 페이스북이 궁금하면 F와 스피드키를 동시에 눌러 페이스북을 바로 열 수 있다. 카톡을 하던 중에 아까 보던 웹툰 창을 즉각적으로 띄우거나 네이버 검색 중에 지메일 창을 띄울 수 있다. 또 잘 쓰지는 않았지만 우측면에 위치한 ‘편의키’로도 단축키를 설정할 수 있다.


이건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편리함이다. 키투를 쓴 뒤부터는 앱을 실행하다 다른 앱을 잠깐 살펴보기 위해 창을 여러 개 띄우거나 홈화면으로 가서 다시 앱을 여는, 그 여정이 얼마나 길고 고되게 느껴지던지.

키투 키보드는 터치 센서가 적용돼 있다. 기기의 잠금해제는 하단 스페이스바가 담당한다. 손가락을 스페이스바 위에 올려 잠금해제. 인식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터치 센서 덕에 키보드 표면을 슥슥 밀어 다양한 기능을 쓸 수도 있다. 방금 입력한 ‘단어’를 지울 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키보드를 쓸어넘긴다. 자판을 두 번 톡톡 두드려 커서기능을 쓸 수도 있다. 키보드를 위아래로 쓸어넘겨 스크롤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키투 키보드로 글을 쓰면 디스플레이 하단에 자동입력 키워드가 뜬다. 키보드를 살짝 쓸어올리는 동작(swipe)으로 자동입력 키워드를 선택할 수 있다. ‘플릭 타이핑’ 기능이다. 자주 쓰는 키워드는 자체 저장된다. 문자를 몇 번 작성했더니 ‘블로터’라고 작성하기만 해도 ‘김인경입니다’가 저절로 떴다. 업무용 문자는 인사도, 소개도, 마무리 멘트도 비슷하게 구성되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았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기능이 키보드 속에 숨어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방수방진이었다. 웬만한 스마트폰은 IP67, IP68 등급의 방수방진을 내세우고 있다. 블랙베리는 예외다. 부슬비 정도는 괜찮지만 키보드와 키보드에 내장된 터치 센서로 인해 다른 스마트폰과 대등한 수준의 방수방진은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또, 스페이스바에는 흔들림 현상이 있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블랙베리 관계자는 “스페이스바 키가 다른 키보다 3배 정도 커서, 타 자판에 비해 흔들림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드로이드 오레오, 듀얼유심, 보안 기능 지원


블랙베리는 자체 OS를 포기하고 안드로이드OS를 받아들였다. 키투에는 안드로이드8.1 버전이 들어갔다. 여느 안드로이드폰과 다름없다. 키보드는 유용하고 운영체제도 안드로이드 최신 버전인데 쓰레기라는 오명은 걸맞지 않다. 키투는 6GB 램에 퀄컴 스냅드래곤 660 프로세서가 탑재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A7(2018)’, 샤오미의 ‘미 A2’, 화웨이의 ‘아너 8X 맥스’에도 퀄컴 스냅드래곤 660이 쓰였다. 3:2 화면비 4.5인치 디스플레이에 카메라는 블랙베리 최초로 1200만화소 듀얼 카메라를 도입했고, 전면에는 800만화소 카메라가 적용됐다. 저조도 환경에서 촬영한 결과물들은 아쉬움이 컸다. 어차피 고화질 사진을 중시하거나, 고사양 게임을 돌리거나, 콘텐츠 감상에 무게를 두는 사용자는 애초에 블랙베리 구매를 고려하지 않을 테니 설명을 보태지는 않겠다.

키투로 촬영한 사진들. 
회사 근처 오래된 제과점에서.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우연히 목격.
줌인. 빨리 사진만 남기고 회사에 가야 했다.

키투를 포함한 블랙베리폰은 업무용으로 스마트폰을 쓰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블랙베리도 이들을 노리고 키투에서 2개의 전화번호를 쓸 수 있도록 ‘듀얼유심’을 지원한다. 4.5인치 화면은 콘텐츠 감상용으로는 작게 느껴지지만 업무에는 별 지장이 없다. 앞서 설명한 키보드의 다양한 기능 등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 배터리는 3500mAh, 여기에 퀵 차지 3.0을 적용해 충전시간을 단축했으며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시켰다. 블랙베리에 따르면 최대 이틀 동안 지속된다.

키투는 제품 보안 상황을 보여주는 디텍 앱이 탑재돼 있고 지문인식이나 암호 입력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로커’ 폴더를 마련해 사생활 보호를 돕는 등 보안 기능을 지원한다. 스페이스바 지문인식으로 촬영한 사진은 일반 갤러리가 아닌 로커 앱에 자동보관된다. 로커 앱에는 문서 파일도 따로 넣어둘 수 있다. 사실 이 기능은 별 효용을 못 느낄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일 때 사진첩을 보여줄 일이 더러 있더라.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수십 장을 찍게 되는 민망한 셀카는 로커 앱으로 직행시켰다. 로커 앱은 심리적 안정감을 보장한다.

이렇게 따로 저장된다. 사진, 문서 등.

갈라파고스, 블랙베리


한때 블랙베리는 중독성이 마약 같다고 해서 ‘크랙베리(마약을 뜻하는 Crack과 블랙베리의 합성어)’라 불렸다. 블랙베리 인터넷 서비스(BIS), 블랙베리 메신저(BBM) 등으로 자체 생태계까지 형성했던 블랙베리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버렸다. (※ 참고기사 : 10분 써본 블랙베리 메신저, 황당하여라(2013.10.23), 최호섭 <블로터> 기자)

옛날 옛적, 찰스 다윈은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진화론의 실마리를 얻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 군도에 살던 생물들은 육지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때문에 특정 시장을 고집하다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경우를 두고 ‘갈라파고스 현상’이라 일컫는다.


블랙베리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하나의 종(種)에 가깝다. 치열한 속도전이 벌어지는 스마트폰 시장과는 이미 동떨어져 있는 상태다. 블랙베리를 인수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TCL은 블랙베리 키보드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마니아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블랙베리 마니아들이 블랙베리에 거는 기대는, 대중이 삼성이나 애플에게 거는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블랙베리 모바일 총괄 책임자 알란르준 대표는 키투 국내 출시 발표회에서 “현재의 모바일 시장은 상당히 획일적이고 유사한 제품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블랙베리만의 차별화된 제품을 제안하고 그 제품이 획일화된 제품 속에서 돋보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키보드 자체가 이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스마트폰 시장에도 다양성이 필요하고, 키보드가 있는 것만으로 이미 블랙베리는 독특한 차별화를 이룬다는 얘기였다. 맞는 말이다. 아이폰X의 대체품이 되려는 시도는 얼마나 많았나. 무수한 노치와 노치, 그리고 노치. 블랙베리는 외양부터 눈길을 잡아 끈다. 60만원대 스마트폰 중에서 자기 캐릭터를 이처럼 분명하게 드러내는 물건이 또 있던가. 편의성을 극대화한 키보드는, 마니아층이 블랙베리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아무리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해도 모두가 베젤리스 경쟁에 목을 매는 2018년에 3:2 화면비에 물리 키보드를 달고서 소프트키를 남겨둔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 사용자를 위해 디자인을 좀더 신경쓸 수는 없었을까.


예쁘지도 않고 쓰레기도 아닌 것보단 차라리 예쁜 쓰레기를 갖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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