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여대생들이여, 해외서 꿈에 도전하자"
이공계 여성 및 성소수자 지원 그룹 걸스로봇이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로봇산업협회 SC와 공동주관으로 이공계 여대생 해외 취·창업 특강을 열었다.
지난 13일 구글캠퍼스에서 열린 해외 취창업 특강에는 플랜트 산업 현장에 13년 동안 몸 담았던 임한나 씨, 휴대용 미니 수력발전기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이노마드 박혜린 대표, 국과수를 나와 의료기기 스타트업에 들어간 이수민 토모큐브 수석과학자, 토요타자동차에서 자율주행차를 연구하고 있는 정호정 연구원 등이 신산업 분야 해외 취창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여학생들의 멘토로 참석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외고, 미대 졸업생이 시추선 생산 현장으로
임한나 씨는 외고 출신 프랑스 미대 졸업생이다. 전형적인 ‘문과’ 이미지에 예술까지, 중공업과는 결이 다른느낌이다. 영어, 불어가 가능했던 임한나 씨는 파리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영어, 불어, 한국어가 가능한 프로젝트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말에 덥석 면접을 보러 갔다.
첫 회사, ‘도리스 엔지니어링’을 계기로 임한나 씨는 13년 동안 시추선 생산설비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예술 세계에서 줄 하나 그어 놓고 여기 어떤 철학이 있다, 그걸 모르면 바보가 되는 세계에 있다가 800억짜리 도면들을 보니까 눈이 뜨였다”고 말했다.
유조선을 만드는 작업에는 최고보수를 받는 영국 변호사부터 벤더, 현장 노역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서로 다른 수천 명이 한 곳에 모여 “수조 원짜리 괴물을 만들겠다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곳”이 바로 시추선 생산 현장인 셈이다.
역동적인 공간에 가슴이 뛰었지만 ‘동물적인 언어’는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한나 씨는 “언어의 동물성만 극복할 수 있다면 도전할 만한 산업”이라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는 “내가 20대 중반이라면 세이프티 자격증을 딸 것 같다”면서 “북해나 노르웨이 쪽에 HSE 관련 자격증이 있다”는 현실적인 팁을 제시했다.
이공계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전했다. 문과나 예술계는 플랜트 분야에 입성하기도 어렵다.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임한나 씨 역시 ‘미대’가 꼬리표로, 또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문과나 예술계통에서 플랜트 분야에 지원하고 싶은 경우 “일찍 나가서 고생”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휴대용 신재생에너지를 만듭니다”
이노마드는 햇수로 5년차에 접어든 신재생에너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는 ‘노마드’ 체질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3개월 이상 머무른 적이 없고, 늘 떠돌아다녔다. 계획 없이 배낭 하나만 메고 삼각김밥 10개를 사서 지리산 종주를 간 적도 있었다. 이런 도전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자유로운 성장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혜린 대표는 “어릴 때부터 자유도가 높았던 게 큰 자산이었다”고 고백했다.
박혜린 대표는 홀로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전기가 없는 상황의 불편함을 체감했다. 기존 대량생산으로 저가에 공급하는 신재생에너지 ‘산업’과는 다른,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서 신재생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노마드가 탄생한 배경이다.
“쓸데없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불가능하다” 같은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만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2014년에는 청계천에 작은 수력 발전기를 설치해 청계천 물만으로도 스마트폰 충전이 가능하게 했다. 이후 이노마드는 텀블러 크기의 휴대용 수력 발전기를 만들어 북미에 진출했다. 현재는 스위스와 프랑스 등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유럽으로도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박 대표는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과 이후 진로가 좋은 시너지를 내려면, 도구로서 필요한 것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엔지니어링을 하고 싶다면 가장 기본인 언어로서의 프로그래밍이라든지 메커니즘이라든지에 대한 베이직한 기술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세포는 소우주다”
토모큐브는 ‘살아있는 세포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현미경을 만든다. 이른바 ‘세포 CT’다. 토모큐브에서 이수민 씨는 수석과학자로 일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제품을 만들면 사용자 입장에서 테스트하고 버그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전세계 기업과 학회에 기술을 소개하러 다니느라 해외 출장도 잦은 편이다. 현미경을 소개하는 내내 그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학창시절 이수민 수석과학자는 포스텍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했다. 박사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서 함께 세포를 연구했던 학우들은 대부분 의사가 됐다.
그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자리가 나서, ‘쓸모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취직했다. 번듯한 국가 공무원이 되었지만 결국 의료기기 스타트업 ‘토모큐브’로 발길을 돌렸다. 이유는 “세포가 좋아서”, 간단했다.
이수민 수석과학자는 “최근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고 있고, 흥미로운 것들을 하고 있다”면서 “원래 바이오는 학부만 나오면 할 게 없었지만, 요새는 의료기기부터 해서 할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니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이룬 자율주행 '엔지니어'의 꿈
정호정 토요타자동차 연구원은 현재 토요타자동차에서 자율주행차량과 운전자의 ‘소통’을 담당하는 HMI(휴먼-머신 인터페이스)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영미권 유학보다 일본 유학은 체감상 더 큰 장벽이 느껴진다. 정호정 연구원도 ‘일본어 능력자’였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자율주행차 연구에 대한 관심만으로 일본 대학원에 진학했다. ‘영어만 쓸 줄 알아도 되는’ 연구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유학 1년차부터 일본어를 알아듣기 시작했고, 2년차부터는 ‘조금’ 말하게 됐다. 말부터 걸고, 모르는 단어를 쓸 일이 생기면 알고 있는 온갖 어휘를 총동원해 설명했다. 그렇게 입이 트여가는 상황에서 ‘사이언티스트보다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토요타자동차에 입사지원서를 넣게 됐다.
정호정 연구원은 토요타자동차 입사 당시 어학 성적은 토익 730점, JPT는 3급 수준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일단 지원해봤다. 좋은 성적이 아니라 부끄럽지만 점수를 알려주는 이유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길 바라서”라고 말했다.
토요타의 채용 페이지에는 여성 엔지니어가 전면에 등장한다.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엔지니어라면 적극적으로 채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호정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게 여기까지라면,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앞을 향해 도전해라. 다른 결과가 올 수 있다”면서 “여러 번 도전할 것을 권유한다”고 강조했다.
멘토, 그리고 멘티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의 질문과, 멘토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언어의 장벽을 넘는 방법부터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 취업준비생들이 가진 고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조별 멘토링 시간도 이어졌다. 취업준비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질의응답 일부를 공유한다.
지금 당장 뭘 해야 할까?
영어는 다들 잘하시고, 다른 언어까지 하신다. 도대체 언어를 어떻게 익혀야 하나?
학부 졸업하고 취업할지, 대학원을 갈지 또는 유학을 갈지 고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