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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IT기업의 ‘한국패치’···한국오라클 노조 무기한 총파업 돌입

“불만을 제기하면 ‘본사 정책’이라고 넘어간다···그런데 업무 체계나 관리 방식은 한국 기업의 갑질을 그대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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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 작성일자2018.05.18. | 941 읽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퇴근할 수 없었다.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주간 110시간 넘게 일을 하고 토요일 비몽사몽한 상태로 강변북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옆에 트럭이 보였다. ‘저 트럭에 치이면 내가 오후에는 쉴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불만을 제기하면 ‘본사 정책’이라고 넘어간다. 사람을 쉽게 내보내고 뽑고, 실적 위주로 운영한다. 그런데 업무 체계나 관리 방식은 한국 기업의 갑질을 그대로 행한다. 실적이 안 좋으면 ‘XXX야’, ‘이따위로 일을 해’라고 말하곤 한다.”
“고객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ACS(Advanced Customer Services) 엔지니어는 일한 만큼 심야 시간, 주간 시간을 입력하게 돼 있으나 주 100시간을 일해도 80시간만 입력하도록, 업무시간 입력에 제한을 두고 있다. 나머지는 대체휴가로 지급된다. 사측은 우리가 임금 협상을 요구하거나 인사 제도 변화를 요구하면 본사 정책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사 ACS 엔지니어는 일한 만큼은 다 받는다.”

한국오라클노동조합 총파업 이틀째. 서울 용산역 철도회관에 한국오라클 노동조합원들이 모여 파업 2일차 집회를 진행했다. 회의장을 빼곡히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일부 조합원은 복도에 나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첫날인 5월16일 폭우 속에 열린 집회에는 전체 노동조합원 600여명 중 500여명이 참가했다. 노조 측도 예상하지 못한 높은 참여율이었다. 미리 제작해둔 조합원 조끼 400벌이 모두 동났다. 연대차원에서 집회에 참석한 이들까지 합하면 첫 집회에만 600명이 모인 셈이다.


작년 9월 설립된 한국오라클 노조는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향상, 고용안정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보장 등을 요구하며 5월16일부터 전면파업에 나섰다. 외국계 IT기업의 총파업은 2000년 한국후지쯔 이후 18년 만이다.


기본급은 ‘실질적 삭감, 명목적 동결’


한국오라클 노조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오라클의 임금체계다. 김철수 한국오라클 노동조합위원장은 “여러 회사를 거쳤지만 한국오라클은 불합리한 부분이 국내 기업보다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오라클은 성과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다수 국내기업은 근속연수에 따라 기본급이 인상되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하에서는 개인별 업무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


호봉제와 성과연봉제, 둘 다 장단이 있다. 호봉제는 가만히 있어도 임금이 오르니 동기부여가 적고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성과연봉제는 직원들이 단기적 성과에만 급급할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성과 평가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만큼 그 기준을 정교하게 세워야 한다.


한국오라클 노조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오라클 일부 직원은 전체 계약 금액 126% 가량이 인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는 모르는 상태다.


노조가 지적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임금 정책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금 결정의 기준 및 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 자체에도 불만이 크다. 본사에서 제시한 나라별 연봉 가이드라인에 맞춰 입사자의 연봉을 정하는데, 여기서 한 번 정해진 기본급은 쉽사리 오르지 않는다. 지난 2008년 입사한 직원이 기본급 238만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노조 설명에 따르면 기본적으로는 연봉동결에 가깝고, 연봉이 오른다고 해도 1-2% 정도다. 신규 입사자가 같은 직급 또는 더 높은 직급의 장기 근속자보다 고액 연봉을 받고 입사한다.


김 위원장은 “‘나갔다 다시 들어와. 오라클은 그렇게 못 줘. 연봉 안 오르는 거 몰랐어?’라는 말을 들었다. 공공연히 하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오라클 퇴사 후 재입사한 조합원 A씨도 “퇴사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임금 문제들이 있었다. 임금이 안 올라 퇴사했고, 나가서 몸값을 올려놓고 재입사했다”면서 “임금이 6년, 10년 동안이나 동결됐는데 물가를 고려하면 임금 삭감인 수준이다. 실질적 삭감, 명목적 동결이다”라고 말했다.


성과연봉제가 꼭 이런 모습은 아니다. 호봉제에서 성과연봉제로 개편하면서 기본급을 기업의 지불능력, 물가인상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기 인상되는 방식으로 설계한 기업 사례(정숙희, ‘임금체계개편사례’, 임금정보브리프(2015), 한국노동연구원)도 있다.

제자리걸음 연봉, 늘어난 목표


물론 기본급이 낮다고 해도 많은 성과급이 주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인력이 할당된 실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갈등에 불이 붙게 됐다.


한국오라클의 임금 체계는 영업직, 기술직, 백오피스별로 다르다. 노조 측에 따르면 기본급과 성과급 비율은 영업직이 5:5, 기술직은 7:3 또는 8:2, 백오피스 지원 조직은 10:0이다. 영업직의 경우 6천만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고 치면, 3천만원은 기본급으로 지급되지만 나머지 3천만원은 할당된 실적을 채워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고용 인원이 증가되면서 채워야 하는 실적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홀로 영업을 뛰어도 10억이 할당되면 100%를 채울 수 있었다.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면서 고객사를 나눠 배분했는데, 그러면서도 이전의 절반 수준이 아닌 7-9억원 정도의 실적을 달성하게끔 했다.

한국오라클에 재입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A씨는 오라클을 ‘영업판매점’에 비유했다. 숫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영업중심 기업이라는 것이다. 엔지니어도 연구개발 인력이 아닌 영업 매출을 지원하기 위해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달성해야 하는 숫자가 있으면 이런 보상을 주겠다는 유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압박만 준다. 이 숫자 맞춰. 쫓아와. 쉽게 말해 개돼지다”라며 자조했다.


이승현 한국오라클 노조 정책부장은 “클라우드 사업에 주력하는 듯하지만 영업 인력만 뽑고 있다. 클라우드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엔지니어 채용은 많지 않다. 규모에 걸맞은 기술 지원 인력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대체인력 없는 기술직은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베이스(DB) 서버 사업으로 성장해온 오라클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클라우드 사업자에게 시장을 넘겨주면서 위기를 겪었다. 이에 최근 오라클은 클라우드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조정이 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2017년 클라우드 전담 영업 인력 100여명이 채용됐지만 동시에 기존 인력 100여명이 퇴사했다.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물갈이’하고 싶던 사측이 3-5년 전 규정 위반을 문제 삼아 직원을 압박해 권고사직을 시킨 경우도 있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인력 구조조정을 하고 싶다면 돈을 주고 내보내면 되는데, 오라클은 돈을 안 쓰고 싶은 것”이라며 “국내 기업은 해고하고 새로운 인력으로 ‘리프레시’할 수 없게 돼 있다. 한국오라클은 유한회사라 정보공개가 안 되기 때문에 암암리에 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 B씨는 “한국오라클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이다. 어떤 사람은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몰랐던 정보로 둘의 처우가 달라졌다. 노조는 한국오라클의 정상화, 투명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한국오라클은 국내 법령을 존중한다. 당사는 지금까지 노조와의 교섭에 임해왔으며 향후 원활한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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