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하드웨어를, 아들은 코딩을
# 옛날 옛적에 아버지가 코딩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어? 아빠, 저 이거 배웠어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럼 네가 한번 해볼래?”라고 말했어요. 아들은 곧장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코딩을 만들어냈죠. 아버지는 생각했어요. ‘어라? 이거 잘 됐다.’
아빠와 아들의 동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Exp. D&A’라고 공식 팀명까지 지어서 말이다. 아버지 박성윤, 아들 박철종 메이커는 미니어처 리얼리티(Miniature Reality)를 보여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메이커 페어 서울 2018’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재미있는 작품들을 가지고 찾아온다. 부자 메이커를 만나 그들이 가져올 모험과 실험의 결과물을 먼저 살펴봤다.
먼저 Exp.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Experiment(실험)부터 해서 Experience(경험), Expert(전문가), Explorer(탐험가) 등 Exp로 시작하는 긍정적인 낱말들이 많더라고요. 농담조로 간혹 Expensive(비싼)라고도 하고요. (웃음) 그렇게 실험하고 경험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붙여봤어요.
D&A도 복합적인 이름이에요. 디지털과 아날로그(Digital & Analog)이기도 하고 실은 아빠와 아들(Daddy & Adeul)이기도 해요. DNA도 같으니까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접목하는 아빠와 아들 팀이라는 의미예요.
먼저 Exp. 중 탐험(Exploring)이란 주제에 맞춘 작품이에요. 작품 이름은 ‘달 탐사 로버(Lunar Exploring Rover)’이고 실제의 것보다 10분의 1 크기로 줄여서 만들었죠. 지난해에 선보인 ‘집 탐사 로버(Home Exploring Rover)’보다 좀 더 크고 서스펜션도 움직일 뿐 아니라 카메라도 성능이 더 좋은 제품으로 썼어요. 전과 마찬가지로 고글을 쓰고서 로버의 시점으로 조종하고 탐사할 수 있게 부스를 꾸미려고요.
또 하나는 실험(Experiment)을 주제로 한 작품이에요. 스크롤 슈팅 게임 ‘제비우스(Xevious)’ 아시나요? 그건 디지털인데 우리는 실사 아날로그 형태로 옮기는 실험을 할 거예요. 조이스틱으로 조종하면 3D 프린터의 x축과 y축이 작동하는 것처럼 비행기가 움직일 거고요. 그 아래로는 지도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면서 적들이 불빛을 반짝이게끔 하게요.
이번에 만들면서 꽤 재미있는 소재를 사용했어요. 플라플러스(Plaplus)라는 재질인데요. 많은 분이 알고는 계실 거 같은데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아직 잘 모르는 분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른 메이커들에게 소개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플라스틱은 강도도 떨어지고 열에 변형도 돼서 약하잖아요. 그런데 플라플러스는 매우 단단하고 휨성도 덜해요. 그러면서 탄성도 있어서 바퀴 같은 데로도 쓸 수 있죠. RC카라든지 움직이는 완구를 만들 때 좋을 거예요.
이거 때문에 3D 프린터나 CNC의 십자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인형뽑기 게임기도 참고하는 것 중 하나고요. 우리는 가능하면 단순하게 제비우스를 구현해내려고 해요. 다른 분들도 ‘나도 저렇게 하면 만들 수 있겠구나’라며 쉽게 할 수 있도록요.
돌아가는 지도에서는 적들이 LED 불빛을 내며 반짝일 거고요. 비행기 밑으로는 색깔을 탐지하는 센서를 넣어서 장애물마다 반응을 다르게 할 예정이에요. 이를테면 빨간색에 닿으면 체력이 깎이고 파란색에 닿으면 포인트가 오르는 식으로요.
사실 우리에게 ‘이걸로 스타워즈를 만들 거야’, ‘건담을 만들 거야’ 같이 외형을 무엇으로 씌우느냐는 부차적인 부분이에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바를 표현하기에 좋아서 건담을 쓸 뿐이죠. 주된 방향은 ‘아두이노라는 MCU를 가지고 어떤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을까’예요. 디지털 쪽의 기술에다 아날로그 감성과 재미를 덧붙여서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율주행 로봇을 만드는 일이에요. 그걸 해내기 전 단계에서 앞으로는 지금 것들을 지나 탱크도 만들고 다른 주제로도 계속 시도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하드웨어 설계라든가 프로그래밍이라든가 각종 센서들이 점점 추가되고 복잡해지겠죠.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은 레벨을 올리며 그런 아이템을 계속 선보일 계획이에요.
글자 그대로인데. (웃음) 저는 주로 공학 기술을 이용해 하드웨어를 제작하면서 3D 설계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페인팅으로 예쁘게 꾸미는 일도 해요. 이때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 어떨까 계속 고민하면서 하드웨어를 만들고 아두이노 배선까지 다 마치면 그때 아들에게 얘기해주죠. 예를 들면 “여기서 허리는 90도 돌아갈 때 머리는 반대로 60도가 돌아가게 해줘라” 같이요.
그러면 아들이 의뢰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집어넣어요. 예시 이상으로 복합적인 작동도 요청하는데 아들은 그걸 함수로 만들어내요. 제가 만약 코드를 짰으면 100줄은 될 걸 아들은 50줄로 줄여주고요. 제가 했으면 수정도 각 줄마다 숫자를 일일이 바꿀 걸 아들은 한 줄 안에서 숫자만 수정하면 끝나게 하죠. 정리를 참 잘 해줘요. 프로그래밍할 때 아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덧붙이기도 하고요.
제가 하는 것들을 아들에게 한꺼번에 알려주기보다는 아들이 관심 있어 할 때를 보고 조금씩 다가가요. C 언어 등을 공부하고 싶다면 관련된 책을 사주거나 인터넷으로도 정보를 찾아주죠. 그랬더니 어느새 제가 짠 원시적이고 초보적인 코딩이 아들의 손을 거치니까 매우 세련되고 효율적이고 있어 보이게 달라지더라고요.
최근에는 아들이 라즈베리파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제 수준에서는 아두이노 정도로 충분한데 아들은 좀 더 고난도로 계산할 수 있는 라즈베리파이 쪽을 찾는 거예요. 유니티도 최근에 공부하고 있고요. 그래서 아들이 계속 공부하면 나중에 제가 편할 것 같아요. (웃음)
‘잘 할 수 있을까?’ 좀 걱정되기도 했는데 그냥 해버려서고. (웃음)
언젠가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요.
솔직히 지난해 처음 참가하면서는 우리 자리를 지키기에 바빠서 다른 분들의 부스를 구경하고 교류하는 게 부족했어요. 남들에게 자랑하는 재미도 물론 있었지만, 우리가 볼 기회는 적었던지라 아들도 저도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죠. 지난번에는 부스 운영이 서툴러 우리의 바람을 못 채운 점이 있었는데 올해는 더 많이 다니면서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부스 안에 무인 영역을 만들어볼까 봐요. 둘 중 한 명은 꼭 부스를 지키겠지만 제비우스의 경우는 무인 부스 형식으로 운영되는 거죠.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작동법을 알려주는 음성이 나오든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카메라를 장착한 로봇을 통해 화상으로 통화하면서 설명해주든가요. “거기 동전 넣으시고요. 방향전환은 저렇게 하면 돼요” 하는 식으로요. (웃음) 그렇게 해놓으면 부스를 지키는 사람도 여유롭고 관람객들은 원리를 궁금해하기에 앞서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즐기고 갈 수 있겠죠.
우리가 계속 추구하는 바는 이거예요. 디지털 위주로만 나가는 것도 물론 필요하나 아날로그 감성도 좀 더 같이 가져가기를 바라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우리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꿔보는 만들기를 계속 시도하는 부자임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디지털을 좋아하는 아들과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아빠가 힘을 합해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스라고 사람들이 봐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