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이해하기 힘들거야"..'블록체인 언니들' 리얼 생존기

조회수 2018. 12. 10.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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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자라서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비트코인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관한 기술을 설명하던 외국인 동료가 무심코 던진 이야기였다. 비트코인 한국 커뮤니티에서 근무하는 김슬기(가명) 매니저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안 입던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이같은 탈코르셋을 ‘나를 여자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봐 달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저는 개발자가 아니고, 당시 막 접하시 시작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분명 어려웠긴 했지만, 당황스럽고 어이도 없었어요. 블록체인 업계에서 여성이라서 무시당하는 경험이 이처럼 종종 있어요.”

암호화폐 거래소의 전략기획을 맡고 있는 정하얀(가명) 실장은 최근 해외 프로젝트와의 회의 도중 아찔한 경험을 했다. 업무의 특성상 해외 프로젝트 팀과의 화상채팅이 자주 있는데, 어느날 문득 화면을 보니 수십 명 중 본인 혼자만 여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발언할 때마다 이목이 쏠리고, 말에 대표성이 얹어지는 듯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고. “저는 그냥 저로서 일하는데 갑자기 일터에서 여성으로 소환당하는 거랄까요. 아무래도 위축되기 쉬워요.”

출처: shutterstock

최근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 몸담은 ‘언니들’의 이야기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남성 종사자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금융업계의 여성 임원이 4%에 불과하는 소식과 가상화폐 투자자 중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와 같은 선상에 있는 이야기이다. 블록체인 언니들, 암호화폐 언니들은 이같은 ‘소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업계 여성들의 연대다. 여성으로서의 솔직한 의견이나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잇따라 마련하고 있다. 올해 여름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2018’에선 여성들이 뭉치는 섹션이 별도로 마련됐다. Women in Blockchain 재단, Blockchain Ladies 그룹, Crypto Power Girls 등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도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24일에는 국내 여성 멤버십 클럽 헤이조이스에서 ‘우먼스체인(Women’s Chain)이라는 행사가 열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하는, 혹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여성 커뮤니티 공간 헤이조이스에 여성들이 모여 올해 블록체인 업계 이슈를 공유하고 있다.

이 언니들은 블록체인·암호화폐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다양성’은 필수이고, 이미 이를 기반으로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이샛별(가명) 매니저는 “블록체인을 소셜임팩트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일하고 있다”며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인 만큼 그걸 만드는 단계에서 어떻게 다양한 감수성을 포괄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좋은 서비스가 여성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되고, 더 널리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블록체인 컨설팅 회사 민도연(가명) 마케터는 “분명 남성이 대다수인 분야지만 이미 멋지게 활약하는, 발군의 여성들도 많다”면서 “여성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지지를 아끼지 않는 점이 좋다”고 평가했다.


출처: shutterstock

더 많은 여성들의 참여를 원하는 목소리도 크다. 업계에서 ‘여성들은 홍보, 마케팅, 커뮤니티 관리에 몸담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 두드러져서 나온 것일 뿐 숨겨진 여성 엔지니어, 투자 심사역, 전문 연구원도 적잖다.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윤보미(가명) 연구원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국한돼 있어 안타깝다”며 “더 많은 여성이 업계에 들어와서 다양한 모습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회생활 20년 차를 넘긴 블록체인 교육 스타트업 추가은(가명) 대표는 여성들의 업계 진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닷컴버블, 모바일 파란 등 신기술로 시작되는 큰 흐름에서 여성은 희소했다. 지금보다 많은 여성들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 진출하면 이번 새로운 기술 혁명에서는 젠더 지형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다. 추 대표는 “떠오르는 분야에는 분명 큰 기회가 있고 블록체인도 그런 신호 중 하나”라며 “더 많은 여성이 새로운 가능성에 뛰어들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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