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만나,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조회수 2021. 5. 3.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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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교 청소년을 고용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두현호 목사

“오늘 원두는 25초 안에 샷을 내려야 가장 맛있으니까 25초에 맞추자.” 사소한 것 같지만 두현호 점장이 철저히 지키는 규칙이다. 만약 25초 전에 다 나오거나 25초가 넘어가면 그 샷은 쓰지 않는다. “얘들아, 스스로를 속이면서 일하지 말자.” 

그가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들은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탈학교한 후 ‘내 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청소년에게 정당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그가 일하는 카페다.

컴포즈커피 마곡나루 점장인 두현호 목사

사실 두 점장은 ‘투잡러’다. 주중에는 컴포즈커피 마곡나루점의 점장이고, 일요일엔 목사로서 교회의 사역을 본다. 교회 청소년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도울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관련 단체를 만들었고,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며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을 고용한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아이들을 품어주는 그이지만, 카페의 매뉴얼을 가르칠 때만큼은 단호하다. 아이들이 카페 밖을 나가서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는 어른의 자세로 교육하고 함께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몇 명인가?

점심 피크 타임에 몰려 있다. 피크 타임에 두 명 있고 저녁에 마감하는 친구 한 명과 매니저, 나까지 다섯 명이다.


코로나19로 카페의 홀 영업이 중단되기도 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 매장은 테이크아웃 손님이 90% 이상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테이크아웃 손님은 대부분 유지돼 피부로 느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 경로로 여기서 일하게 되나?

강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곳에 빈자리가 생겨 인력을 충원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서 생계유지나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일자리가 필요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연결해준다. 센터를 통해 처음으로 추천받은 아이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이 매장을 연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아이가 일한 지) 2년이 넘었다.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해도 지속적‧장기적으로 일할 수 없는 생활 패턴이 있으니까 이런 패턴을 이해해주면서 끝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사업주가 필요했다.

카페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이라는 단체의 설립 멤버다. 위기 청소년 지원 단체 중 후발 주자라 먼저 청소년 사역을 하던 분들에게 자문했다. 기존 청소년 생활 시설은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하는데 이후에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플랫폼, 자립을 위한 훈련 장소가 부족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해도 지속적‧장기적으로 일할 수 없는 생활 패턴이 있으니까 이런 패턴을 이해해주면서 끝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사업주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시작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소년희망공장’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먼저 단체에서 경기도 부천에 소년희망공장 1호점을 만들었고, 그곳이 안정된 후 나는 서울 강서구로 넘어와서 2호점을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소년희망공장 1·2호점에서 고용 중인 청소년 수는 총 몇 명인가?

모두 8~10명일 것이다.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아이들이 여기서 일하면서 얻는 효과는 무엇인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우울증을 보이는데, 여기는 사람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원래 갖고 있던 편안한 상태를 깨고 다른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곳이라 확 드러나게 바뀌기보다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 친구를 예로 들면 처음엔 목소리도 작고 사람들을 대하는 데 불편을 느꼈는데, 지금은 계산도 하고 밝은 목소리로 손님도 대면하면서 전천후로 맡은 역할을 잘해내고 있다. 아마 나와 매니저님이 각자 다른 캐릭터로 밝게 운영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일하는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경험을 쌓는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한다.
실제로 여기서 커피와 관련한 일을 하는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고, 검정고시 통과나 운전면허 등 자격증 취득 욕구가 있으면 상담센터를 연계해서 도와주고 있다.

목사 겸 카페 사장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목사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냥 장난기 많은 점장, 푸근한 아저씨 정도로 알고 있다가 서로 친해져 라포가 좀 형성되고 나서 내가 사실 목사이기도 하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위기 청소년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의미가 큰 만큼 영업 면에서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영업 현황은 어떤가?

그렇다. 운영이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모든 손님을 진심으로 대한다. 여기 건물이 오피스텔인데 수백 곳을 가가호호 방문해서 무료 쿠폰을 두 개씩 드리고 손편지도 써 보내고 해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안정권에 접어들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컴포즈커피 본사에서 오픈할 때 가르쳐주는 매뉴얼을 그야말로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런 걸 배우고 아이들도 따라서 똑같이 하니까 잘됐다. 아이들이 아주 훌륭한 직원이다.(웃음)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뭔가?

특별한 뜻은 없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해서 복지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큰 틀이 있었지만 분야를 정하지는 않았었다.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일진 아이가 마음에 들어오면서 청소년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다른 교단에 있는 어머니가 그쪽 교단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내가 있는 곳에 다니게 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데려왔는데 일진이었다. 노래를 좋아하길래 노래하는 장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접할 수 있게 해줬다. 덩치가 꽤 큰 편이라 선생님들도 무서워했는데, 나는 귀엽게 받아주니까 ‘이런 아저씨도 있네.’ 싶었는지 잘 따랐고 서로 편한 사이가 됐다. 

그런데 나랑 편해지니까 부흥이 막 일어난 거다. 일진 친구를 다섯 명 데려왔다.(웃음) 그건 좋은데 일진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 위축되는 문제가 생겼다. 나랑은 잘 지냈지만 결국은 융화되지 못한 거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오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아이들을 찾아가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자기가 정말 잘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고 정서적 지지가 필요해서 그러는 거다.
그러면 ‘잘하고 있다’, ‘너는 이미 충분하다.’라고 계속 얘기해준다.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많은데 컴포즈커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 밖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집결지가 부천역 앞에 있는데, ‘청개구리 식당’이라고 아이들을 위한 무료 심야 식당이다. 거기서는 밥도 주지만 면밀히 살펴보다가 개입이 필요한 아이들을 이동시키거나 하는 일도 한다. 

부천에 위기 청소년이 많아서 관련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다. 그래서 부천시에서 소년희망공장 1호점으로 컵밥집 겸 카페를 차렸다. 그런데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밥과 커피를 파니까 냄새에 예민한 분들이 꺼리는 문제도 있고, 장사가 잘 안 되던 때에 2017년에 JTBC <나도 CEO>에 선정됐다. 

장사가 잘 안 되는 매장을 잘되게 바꿔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컴포즈커피와 매칭이 되면서 본사와 관계를 잘 다졌고, 2호점을 낼 때도 입지 선정 시에 본사에서 마곡을 적극 추천해줬다. 

학교 밖 청소년 정책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꿈이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도 필요하다. 아이가 학교를 떠나면 다시 국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경로가 없다. 들어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꼭 본인의 큰 의지가 없더라도 꿈을 꿀 수 있고 진입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의 적극적인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취지를 살리는 개인인데, 이런 취지에 관심을 가져도 실제로 사업에 뛰어들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들에겐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 학교 밖 아이들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양수복, 사진/ 김화경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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