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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원룸 생활

조회수 2021. 4. 21.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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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와 저는 고향 친구이자 같은 대학 동기예요. 같은 교복을 입고 고교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학사과정 졸업을 앞둔 최근까지 안부를 묻고 지내니, 우리가 단순히 스쳐가는 인연은 아닌가 봐요. 최근 소희가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이곳이 내 집인가 싶어 한참 고민했다.”라고 말했어요. 

서울의 한 원룸 주택에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희의 일상과 ‘임시 거처’라고 표현한 집이 궁금하더군요. 소희의 스쳐가는 집에서 우리의 인연은 스쳐가지 않고 더 길게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소희의 서재이자 부엌이자 다용도실이면서 침실인 원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한 사람이 사는 집

-자기소개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김소희입니다. 손으로 뭘 만들거나 일기를 쓰는 등 사부작거리며 뭔가 하는 걸 좋아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코로나19로 원래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 폐업해서 일을 쉬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입사 지원서를 내고 탈락하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니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어. 평소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머릿속이 뿌옇다면, 일을 할 때는 행동의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서 좋아. 단순한 일이지만 퇴근시간이 되면 오늘도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썩 괜찮고, 레스토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볼 때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추억을 쌓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해.(웃음)

-코로나19가 심했던 지난해에는 주로 집에 있었다고 들었어.

=주로 혼자 방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면서 지내니까 누군가와 대화할 겨를이 없었어. 어떤 날은 정신을 차려보니 일주일이나 사람을 못 만났더라. 전화로라도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친구에게 연락했었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1인 가구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아.

=교환학생으로 외국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외로움에 취약한지 깨달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거리두기가 시행된 이후에는 예전처럼 외로움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며 실패하고 다시 시도했던 것 같아.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알기 위한 생활 루틴 짜기와 일기 쓰기, 무력감을 털어내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 등 각종 시행착오가 있었지. 결국엔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깊이 깨닫게 되었지만.(웃음)


-타인과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해진 것 같아.

=요즘엔 슈퍼나 음식점에서 뭔가를 살 때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해. 대답도 무척 열심히 하고, 영수증도 버려달라고 하면서 괜히 넉살을 피우게 되더라(웃음). 집에 정적이 감돌 땐 팟캐스트나 브이로그를 틀어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생활 소음을 배경음악 삼으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나거든. 또, 대학가에서 살다 보니 집 근처 카페에 가면 홀로 있는 학생들을 많이 봐. 나도 그 풍경 속에서 할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연결돼 있다고 느껴. 다 같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구나, 힘내야지. 이런 생각이 들어.

슬러시 같은 집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어때?

=사실 집 하면 이상적인 집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 생활 공간이랑 침실이 나뉜 공간을 주로 상상하는 것 같아. 원룸에서 사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텐데, 한 공간이 침실이고 서재고 부엌이고 다용도실이거든.


-이 집에서 1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 사는 집보다 살고 싶은 집을 먼저 떠올리는구나.

=고향에서 19년을 살다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1년 혹은 반년 단위로 집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더 이상 고향집도 내 집 같지 않고, 서울의 자취방도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완벽하게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래서 집 하면 언젠가 내가 집이라고 느낄 공간과 그 공간에 있는 나를 먼저 상상하는 것 같아. 볕이 잘 들고, 큰 테이블을 놓을 거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도 하고, ‘여기는 내 집이야’. 하고 느끼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떠올리기도 해.

-주거 환경이 계속 바뀌어 많이 힘들었구나.

=사실 한곳에 오랫동안 정착할 수 없는 게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젊은이들의 현실이잖아. 그래서 내가 지나쳐왔고, 지나쳐갈 모든 집에 좀 더 애정을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거주 기간을 따지지 않고 내가 집 삼아 지낸 공간들에 다정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서?

=해가 잘 들지 않는 집에 살면서 하루라도 좋은 날씨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산책하는 버릇이 생겼어. 또 빨래할 때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울리는 것 같은데, 방음이 잘 안 되니까 다른 집 세탁기 돌리는 소리도 엄청 크게 들리더라고. 세탁기 소리가 나면 산책하러 나가는데 세탁하는 시간이 산책하기 알맞은 시간이더라.


-방음이 안 돼서 민망한 적도 있었다고 들었어.

=지금 사는 원룸을 따뜻한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만 급하게 구해서 문제가 많아. 방음 문제도 그중 하나야. 갓 이사 왔을 때 옆집 연인의 잠자리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야. 사생활이라 그냥 넘길까 했지만, 무작정 참아야 하는 날이 반복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어. 이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한 달 가까이 고민하다가 복도에 편지를 남겼더니 그 뒤로 괜찮아졌어.

-원룸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는 지점이 많을 거야.

=원룸을 떠올리면 온갖 감정과 생각이 섞여 있는 슬러시 같아. 비용 대비 좁은 평수, 날림 공사로 인한 생활 소음, 방 하나에 경계 없이 놓인 살림살이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 서울에서 살아야 하나 싶어 답답해져. 그렇지만 서울에 몰려 있는 일자리, 그사이 애정을 준 동네와 풍경을 생각하면 서울 생활을 쉽게 청산할 수 없어. 

특히, 좁은 원룸이 답답해 동네의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가고, 주위 하천이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동네가 곧 내 집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러다 보면 정든 동네의 원룸도 꽤 살 만한 곳 같아. 그러다 또 이웃집에 소리가 들릴까 봐 조심하는 나를 발견하거나 낮에도 어두운 집을 보면 다시 이건 아닌데 싶고. 이보다 더한 애증의 관계가 있을까?

-집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본인만의 방식이 있어?

=독서를 좋아하는데 책을 사들이는 게 부담이 되니까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읽어. 또, 항상 임시 거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구나 장식품에 돈을 쓰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그래도 이 집을 좀 집처럼 느끼고 싶어서 큰맘 먹고 모빌을 샀어. 인테리어용으로 물건을 산 건 초록 모빌이 처음이야.


-초록색을 좋아하는구나.

=산과 바다 중 고르라고 하면 산을 꼽는 사람이야.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집에 해가 잘 들지 않아서 식물을 못 키우니까 이렇게라도 초록색을 보겠다는 욕구를 충족하는 거야.(웃음) 초록 계열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봄이나 여름에는 활기가 넘치고 겨울에는 지치는 것 같아. 서울살이를 하면서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했는데, 봄이면 곧 싹이 돋아난다는 생각에 들뜨곤 했어. 나중에 지하철 1호선 초록 할머니 되는 거 아닌가 몰라.(웃음)

과거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집

-네게 집은 어떤 의미야?

=집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집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활이 가능하잖아. 그리고 친구 집을 구경하거나 집과 관련한 영상을 보면 각자의 집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서울살이를 하면서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했는데, 봄이면 곧 싹이 돋아난다는 생각에 들뜨곤 했어.

-소희의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

=좋아하는 건축가가 지은 작품 사진과 직접 뜬 모자 등 모든 물건에 저마다 추억이 담겨 있어. 추억을 꾸역꾸역 보관하는 피곤한 인간이다 싶다가도 그거라도 없으면 안 되겠다 싶기도 해. 뉴욕으로 여행을 갔을 때 들고 온 브로슈어는 펼치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나와. 

워낙 오래되어서 해졌는데, 그걸 들고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본 기억이 생생해. 비싸게 주고 샀지만 촉감이 참 좋은 곰 인형 또한 미국에서 지낸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고 프랑스 팔레 드 도쿄 박술관에서 가져온 ‘모험을 떠나라.’라는 글귀가 있는 브로슈어와 그때 친구가 보내준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담긴 사진도 무척 소중해.

-추억이 아주 많은 집이네! 이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순간도 있다고 했잖아.

=창문 너머 옆집 지붕 틈새로 들꽃이 피는데 무리 지어 피지 않았는데도 참 예뻐. 자주 오는 고양이 가족이랑 꽃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행복하더라고. 아기 고양이가 다 큰 고양이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괜히 혼자 뿌듯하기도 했어.(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올해엔 정이 들어서 접시를 괜찮은 걸로 바꾸거나 모빌을 사기도 했어. 집에서 만족을 느끼는 순간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 말고, 정신적으로 만족하며 지낼 수 있도록 집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며 잘 지내고 싶어. 

집과 동네에 정을 붙여서 이제 조금은 내 집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집 계약 기간에 따라 주거지가 계속 바뀌는 건 꽤 큰 스트레스야. 집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왜 이리도 가지기 힘든 걸까? 5년이나 10년쯤 정착해서 살 곳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그곳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도시에서 내 집을 얻어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


글/ 손유희, 사진/ 이규연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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