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달고나커피, 올해는 '컵라플' 어때요?

조회수 2021. 1. 26. 10: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컵라면 굽는 밤

창밖에 눈이 오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본 게 언제였는지 되짚어보는 데 열 손가락이 다 필요했다. 정부의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이 발표된 후 모든 약속을 취소했고, 3인 가족인 우리 집은 사람이 1명만 와도 ‘풀방’이라 가족이 아닌 타인을 만난 것도 벌써 지난해의 일이 됐다.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지 아흐레, 희뿌옇게 얼어붙은 세상을 바라보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건 분명 내 생에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인데 나는 왜 언젠가 이런 삶을 살아본 것 같을까. 

기차를 타고 6박 7일 동안 시베리아를 횡단한 적이 있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인생 위로 고립과 결핍이 흰 눈처럼 쌓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도리어 선명해지는 수행 같았던 여행. 마치 멸망한 지구의 가장자리를 달리고 있는 듯한 기차에서 나는 때로 쓸쓸했고 묘하게 안도했으며, 허기질 때마다 컵라면을 먹었다.

오늘은 뜨끈한 식사가 아니라 다정한 안주가 필요한 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의 주식이던 ‘팔도 도시락’에 끓는 물을 붓고 와플팬을 꺼냈다. 파워블로거들이 소개하는 검증된 레시피들을 덮어두고 죽이 되든 떡이 되든 내 멋대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컵라플 만들기

재료: 와플팬, 컵라면, 버터, 설탕, 달걀

1. 컵라면에 뜨거운 물과 라면 수프 1/2봉지를 넣은 뒤 2분 정도 기다린다.

2. 면이 익는 동안 와플팬에 버터를 살짝 바르고 달군다.

3. 면발이 완전히 익기 전 꼬들꼬들한 상태일 때 건져 와플팬 위에 올린다.

4. 면발 위에 남은 라면 수프와 설탕을 취향에 맞게 솔솔 뿌리고 그 위로 달걀 하나를 깨 올린다.

5.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주면 완성. 

분명 아는 맛이지만 행색이 낯설어서 괜히 싱거운 농담이 나오는 맛. 라면땅보다 멀고 야끼소바보다 가까운 그 무엇. ‘아, 됐고 치킨이나 시켜!’ 하며 투덜거리더라도 함께 먹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소복하게 쌓이는 밤.

꿈쩍 않고 멈춰 있는 이 기차에서 언제쯤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컵라면 하나로 행복의 요건을 때웠고 맥주 한 잔에 불행할 이유를 잊었다. 모두들 무탈하게, 종착역에서 만날 수 있길 빈다. 

글, 사진 박지선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