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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코리아

돈 얘기만 하는 사람이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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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에 남편과 제주도에 가려고 미리 표를 결제해둔 적 있다. 여행 당일,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예약자명을 대고 발권하려는데 직원이 말했다. “여기서 출발하는 예매 내역이 없으세요. 오늘 날짜로는 제주에서 출발하는 표를 예매하신 것 같은데요.” 


에엣 그럴 리가?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역을 확인하니 출발지와 도착지를 각각 바꾸어 예약한 기록이 나온다. 가는 표와 오는 표를 모두 취소하고 재결제해야 해서 10만 원 가까이 추가금을 내야 하는 상황. 일단 새로 표를 사긴 했는데 짜증이 치밀었다. 

출처: Unsplash

어이없는 실수를 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분을 망쳐버려 큰일이다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뭐라 해도 반박 못해. 난 멍청이야” 했더니 이후 남편이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면 별것 아닌데 왜 그렇게 속상해해. 빨리 잊어버려.” 


이런 식의 위로는 처음이었다. 그 말을 듣자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남편이 돈 많은 사람이었다면 역시 부자의 사고방식은 다르구나 했을 텐데 별로 그렇지 않은 이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면 괜찮은 거라 하니 울림이 깊었다. 

출처: Unsplash

이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전까지 내가 그런 식의 반응을 들어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 내게 익숙한 상황은 이런 거였다. 단순히 놀림에 그치지 않고 너의 부주의 때문에 안 써도 될 돈을 썼다고 비난하고 화내다가 결국 여행 전체를 망치는 상황.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될까 봐

유년기에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다들 너무 돈 이야기만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부자들을 보면 ‘역시 돈밖에 모른다’고 비난했다. 밖에서는 돈이 중요치 않다고 하지만 어른들 싸움의 원인은 다 돈이었다. ‘돈 아깝다’ ‘돈 달라고 하지 마라’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다’ ‘쓸데없는 짓(돈 버는 일이 아니면 다 쓸 데 없는 짓에 포함된다) 하지 말고 빨리 돈 벌어라’ ‘돈 낭비다’ ‘돈 아껴라’….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는지,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돈을 모르고 돈을 미워하고 언제나 돈이 없으니 항상 돈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었고 끝없이 돈에 대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에게 연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머릿속에 온통 여자 생각뿐인 독신 남자처럼.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은행가들은 모이면 예술 얘기를 하고 예술가들은 모이면 돈 얘기를 한다.”

출처: Unsplash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면 별것 아닌데 왜 그렇게 속상해해. 빨리 잊어버려.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될까 겁이 났다. 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돈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버나드 쇼의 말처럼, 예술 이야기를 하면서 살려면 먼저 은행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일단 취업부터 했다. 돈을 벌게 되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스물다섯 전까지 내 통장에는 50만 원 이상 찍힌 적 없었는데 천만 원 단위의 돈이 금세 모였다. 목돈이 생기자 어떨 때는 지나치게 아끼고 어떨 때는 과하게 낭비하며 우왕좌왕했다. 초기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셀 수 없다. 


나처럼 금융 문맹이었던 사람에게, 돈에 관한 조언을 얻기 어려웠던 사람에게,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돈이 발목 잡는 사람에게 이 과정에서 알아낸 최소한의 방침을 전해주고 싶다.

출처: Unsplash

돈을 벌기 시작하면 저축하고 남는 돈의 나머지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데 재투자해야 한다. 학원에 다니거나 온라인 수업을 수강하면서 꾸준히 공부하며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이때는 적은 돈이나마 써보는 연습을 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필요한 연료를 투입하는 때다. 20대에 이렇게 투자를 해둬야 30대에 몸값을 올릴 수 있다. 취업을 하자마자 부모님께 은혜를 갚겠다며 없는 돈을 쪼개어 용돈을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30대 이후로 미루자. 


특히 가난하게 자랐고 월급도 적은 초년생이 부모님 용돈을 주며 허덕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독하게 자기 자신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본인도 금전적으로 독립하면서 부모님도 아직 건강하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짧은 황금기니 부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적은 돈이나마 써보는 연습을 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필요한 연료를 투입하는 때다. 20대에 이렇게 투자를 해둬야 30대에 몸값을 올릴 수 있다.

그 다음엔 돈에 대한 공포심과 무지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신입사원이던 시절 동갑이었던 동기가 대출을 받아 하루 빨리 집을 살 거라 말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이 지금은 상식적으로 들리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부동산 붐이 일지 않았고 나와 나이가 같은 이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전까지 나는 보증금이 모일 때까지는 월세를 사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훗날 금리를 알게 되면서 월세 50만 원을 내는 것보다 전세자금 대출을 2억 받는 것이 더 저렴한 걸 알고 당황했고.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건 물론이고 대출이나 청약 같은 것도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방법이 있는 걸 안다. 


예컨대 통신비가 아까워 알아보니 알뜰폰 요금제를 쓰면 통신 품질의 차이 없이 매달 통신비를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어 꾸준히 이용 중이다. 청년지원금의 종류도 많은데 많은 이들이 이를 신청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찾아보면 돈을 더 아끼고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런 건 나와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무력감에 젖어 있느라 일찍이 그러지 못했다.

출처: Unsplash

원칙이 없으면 돈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다음에는 돈을 쓰고 난 뒤의 만족감을 제대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 사고 난 뒤 아주 만족스러운 것에만 소비를 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면 자연스럽게 절약이 된다. 


2020년에 제일 많이 팔렸다는 책 <더 해빙>을 보다가 이런 내 경험과 비슷한 말이 나와서 재미있었는데, 저자는 돈을 쓸 때 기분이 좋은가를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돈 쓰는 건 원래 다 기분 좋은 거 아니냐고? 과시하기 위해서 쓰는 돈, 분수에 맞지 않는 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쓰는 돈, 분위기에 휩쓸려서 쓰는 돈, 화나거나 외롭거나 슬퍼서 충동적으로 쓰는 돈은 후회가 남는다. 


좋은 결정이라고 확신하며 카드를 내밀 수 있을 때가 아니면 카드를 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처럼 소비에 따르는 기분을 잘 파악할 수 있으면 돈 쓰는 재미를 알게 되어 활력이 생기면서도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게 되므로 돈이 모인다. 

출처: Unsplash

여기까지 순조롭게 왔다면 어느 정도 돈과 친해졌을 텐데 이제부터는 돈에 관한 자기만의 원칙을 정해가야 한다. 원칙이 없으면 돈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되고 숫자가 말하지 않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원고 청탁이나 글쓰기 관련 강의는 비용이 적어도 웬만하면 다 수락한다. 


돈 안 받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 출신으로서 문화적인 인프라가 서울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것을 체감하기에 강의료가 어떻든 지방에서 하는 강의는 최대한 진행한다. 이것이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비용도 대부분 적고 이동 시간도 교통비도 더 들긴 하나 깊은 뿌듯함을 준다. 


돈을 번 이후 지금까지 매달 월 수익의 1% 이상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데 후원은 주로 어린이재단에 한다. 그건 내가 불운한 아이들에게 더 많이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배를 만날 때는 꼭 내가 밥을 사고, 인원이 많아서 부담스러우면 후식이라도 꼭 산다는 원칙도 있다. 나도 예전에 선배들에게 밥을 많이 얻어먹으면서 자랐으니까. 이런 사회적 환원을 의식하지 않으면 번 돈이 혼자 잘나서 가능한 것이라 착각하게 되기 쉽다. 

출처: Pixabay

30대에 들어서면서 전처럼 돈 생각을 자주 하지 않게 되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돈 때문에 하는 일도 줄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해서가 아니라 적당히 벌며 중요한 곳에만 돈을 쓰고 있으니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돈만 있으면 된다. 


버지니아 울프도 이처럼 도구로서의 ‘충분한 돈’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적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돈만 있으면 된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걸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할 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 게 핵심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돈에서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돈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인생의 한때에는 열심히 돈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한다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글/ 정문정

샵(#)빅이슈

출처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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