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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분신 후 50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조회수 2020. 12. 1. 1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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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노동자 전태일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참혹한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노동자를 사랑했고 스스로가 노동자였던 그는 몸에 불이 붙을 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쳤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 올라온 전태일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그는 공장의 감독자들이 미싱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희롱과 성폭력을 일삼는 모습에 분노했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은 먼지를 마시며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다.

서울시 종로구 평화시장 앞 전태일다리에 위치한 전태일 동상. 동상 머리 부분에 ‘Free Job Change’ 문구의 띠가 둘러져 있다.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실태 조사를 했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그는 ‘근로개선진정서’를 노동청장에게 보내며 언론의 관심을 끌어냈고, 노동청으로부터 요구를 들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청의 약속은 속임수였다. 오히려 경찰은 근로기준법 화형 시위를 하려던 노동자들을 검거하려 했다. 이날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출처: Unsplash

그날로부터 50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2020년 상반기 산업재해로 판정된 사망자는 110여명이다. 그리고 350만 명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물량이 빠진 틈에 바닥에 앉아 쉬었다는 이유로 일렬로 서 두 시간 동안 앞을 보고 서 있는 벌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분진으로 새카맣게 변한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코로나19 이후 더 열악해진 노동환경 속에서 수많은 택배 노동자가 쓰러졌다. 전태일의 외침은 50년이 지난 오늘도 유효하다.

출처: Pixabay

전태일 사망 50주기를 맞아 정부는 전태일 열사에게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노동계 인사가 이 훈장을 받는 것은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시급한 노동환경 개선에 관한 구체적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230만 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해주는 법과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내용의 ‘전태일 3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Pixabay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던 전태일의 외침이 여전히 들리는 오늘을 지나, 어제의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는 내일을 기대한다.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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