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에 결국 정부는 '백기투항'했다

조회수 2020. 9. 15. 19: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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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1등 카드뉴스 페이스북의 속마음..
출처: 픽사베이

“의사들은 왜 파업을 하는가? 이들의 파업은 정당한가? 이들이 주장하는 요구는 어떤 내용인가? 사회는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언론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소위 인플루언서들도 논의에 뛰어들었다. 그건 의사들의 집단행동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회는 그만큼 너그러웠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아마 그들이 ‘의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설명을 아무리 이해 해보려 해도 ‘왜 정부가 지방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의사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

출처: 픽사베이

의료진의 요구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지방 공공의대에서 의사를 뽑으면 실력이 부족한 의사가 뽑히게 되므로 이는 국민 전체가 누리는 의료 품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기존에 운영되던 입학 방식을 무시하고 새로운 의대를 설립해 의사를 뽑게 되면 공정한 의료 인력 양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 9월 2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전교 1등 의사와 공공의대 의사를 비교하는 내용을 게재했다. 이 게시물은 위에서 설명한 두 가지 모두를 함의한다. ‘의사는 수능 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그 밖의 다른 경로를 통해 의사가 된 이들의 실력은 형편없을 것이며 수능 성적이 아닌 다른 잣대로 의사를 선발할 경우 기존에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의대에 진학한 이들에게 박탈감을 선사한다.’ 

내가 전교 1등이다!

‘전교 1등’이라는 그들의 특권이 걸러지지 않은 채 공개되어버린 이 게시물은 나오자마자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희 의도는 공정성이라는 부분을 좀 말씀드리려 한 건데 그런 것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오히려 오해를 산 부분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들만의 ‘공정’

출처: unsplash

그 게시물은 의료진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공정성’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전교 1등 출신’으로 ‘최상위권 수능 성적’을 받은 뒤에 비로소 획득한 ‘의사’라는 직업을 다른 방식으로 승인하는 것은 불공정이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 게시물을 보고 나서야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또렷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의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얼마 전 한바탕 시끄러웠던 ‘인천국제공항 보안직렬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논쟁이었다.

논란은 분노에서 출발한다

출처: 픽사베이

'인국공' 때도 그랬다. 문제는 ‘정규직’이 아니라 ‘인천공항’이었다. 수능 고득점을 맞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토익 점수를 비롯한 각종 스펙을 쌓아야 겨우 입사원서를 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라는 것이다. 


직렬이 다르므로 월급이 다르고 처우가 다르다는 설명은 먹혀들지 않았다. 논란이 분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그들에게는 앞서 열거한 노력을 거치지 않고 인천공항공사에 입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의사 집단이 분노한 솔직한 이유

출처: 픽사베이

그 연장선상에서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비춰보자. 의료 업무는 그 학문적 배경 못지않게 현장에서의 실무 경력이 중요한 직종이다. 게다가 ‘의사고시’라는 과정을 통해 면허를 부여한다. 정말 ‘실력 부족’이 의심된다면 충분히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방 공공의대 출신들이 충분히 실무를 쌓을 수 있을 여건을 마련한다든가 의사고시의 합격률을 낮춰 학문적 소양에 대한 검증을 확실히 한다든가 하는 각론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의사 집단에서 이런 실질적인 방안들은 검토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 혹은 지원자들이 느꼈을 것과 비슷한 종류의 분노다. 

지방의료 부족 해결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정부는 결국 백기투항 했다. 의료계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진 과로’와 ‘의사 수 증가율 1위인 상태임에도 과도한 의료 인력 양성’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들고도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지방 공공의대 설립이 과연 만성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 의료시설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지, 지방 공공의대 출신의 의료 인력이 의무 기간만 채우고 다시 거슬러 서울로 올라오는 정책적 구멍이 발생할지, 지방 공공의대 출신 의료 인력이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제대로 된 숙련도를 쌓지 못해 ‘부실 의료인력’으로 남을지 등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적으로 줄세우는 평등?

어쩌면 우리 사회가 공정에 대한 논의를 다시 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천국제공항 사태와 의료진의 반발, 모두 우리가 관성적으로 인정해왔던 어떤 ‘진입 장벽’에 대한 논란이다. 나는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낭만적인 논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전교 1등’ 내지는 ‘공채 시험 통과’같이 여태껏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던 통과 기준, 그리고 현장에서 끊임없이 노력해 숙련을 쌓고 또 시시각각 요구되는 검증과 퇴출의 압박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방식. 둘 중 어느 것이 더 공정한가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다.   


글 백승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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