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

조회수 2020. 7. 25. 13: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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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법 제정을 기다리며

소라넷과 n번방. 디지털 성범죄는 흔한 오락거리 혹은 몰카라는 변명, 처벌할 근거가 없는 부실한 법과 낮은 형량을 들어 존재 자체로 불법이 아니라고 외쳤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숨어버린 사건들에 국회가 관심을 가진 때는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한 후부터다. 모두가 잠시 여론의 눈치를 본 결과물이 아닌, 내실 있는 ‘n번방 방지법’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 보좌진으로 일했던 최이삭 씨가 ‘n번방 사건’이 끝내 해결되리라 믿는 이유를 말한다. 


2018년 6월 9일은 6·13 지방선거 사전 투표가 시작된 날이자 제2차 혜화역 시위가 열린 날이다.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혜화역으로 향했다. 제1차 시위에 1만여 명(경찰 추산 수치)이나 모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울지 마, 지워줄게. 죽지 마, 지켜줄게. 우리가 싸워줄게.’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피켓을 읽으며 걷다 보니 최고기온이 30℃에 육박하고 비까지 오는 이 궂은 여름날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왜 혜화역에 모였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니 사방에서 초콜릿과 비타민 같은 간식을 나눠 줬다. 부산에서 왔다는 옆자리 참가자는 집에서 얼려온 2리터짜리 생수 병을 건네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혜화역 시위구나. 선거는 나흘 후라 지방선거 후보자 중 아직 아무도 당선되지 않았는데, 이곳에 이미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18년 뜨거운 여름을 치열하게 함께 보냈던 사람들은 당시 집회에서 문제가 된 혐오성 발언과 퍼포먼스에 대해 내부 비판을 하고 논쟁하며 의미 있는 유산으로 만들었고, 혜화역 시위의 본질을 이어나가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문제, 낙태죄 폐지, 미투 운동, ‘안희정 성폭력 사건’, ‘버닝썬 사건’ 등을 계속 의제화해 제도적·문화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것은 사소한 일인가

출처: 픽사베이

올해 2월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국회가 n번방 사건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사람이 1월 25일에 20만 명을 넘겼으나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경찰청장은 3월 1일 청원에 답변했다.) 다시 비슷한 내용이 이슈화하는 데 당시 나는 무척 회의적이었다. 


왜 국민의 절반인 여성이 주 피해자가 되는 사회문제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을 여전히 ‘불온하고 사소한 일’로 여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2018년 정치권에서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볼 필요도 있다는 수준의 발언조차 하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지난 2월 10일 n번방 사건 수사를 촉구하는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하는 사람이 10만 명을 넘은 이후, 각 정당 지도부가 n번방 사건 해결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이를 선거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할 것인지 홍보하는 총선 후보들도 있었다. 물론 늘 그랬듯, 대부분은 책임지지 못할 말이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이 의결되긴 했으나, 충분한 연구와 논의 없이 일단 통과만 시키고 봤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범국민적 지지를 얻어 200만 명을 넘겼을 정도로 중대한 현안이기에 21대 국회에서 보다 온전한 법제화를 위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n번방 사건’을 끌어올린 그때처럼

출처: 픽사베이

낙관은 먼 얘기다. 3월 24일 경찰청장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영상의 생산·유포자는 물론 가담·방조한 자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 라며 약속했지만, 현재 법원이 신상 공개를 결정한 n번방 사건 관련 범죄자는 운영·관리자인 조주빈, 이원호, 강훈, 문형욱, 안승진 다섯 명에 불과하다.


#RECALL_NTHROOM, ‘n번방을 상기하자’는 해시태그가 SNS에 종종 보이고 있다. 검경의 수사 진척이 예상보다 더디고, 입법으로 사건 해결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제21대 국회의 정상 운영이 늦어지며 사회적 관심이 많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를 믿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 여론을 바닥부터 끌어올려 국민 200만 명의 동의를 얻고,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선결 과제로 만든 우리를. 그리고 그해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함께 얼음물을 나눠 마셨던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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