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생지옥

조회수 2020. 3. 25. 10: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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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포로수용소, 체험 동물원의 풍경

분노와 경악이 뒤섞인 동물 학대 제보를 종종 받는다. 작은 전시실에 힘없이 누워 있는 암사자 사진도 그런 종류였다. 사진 속 암사자는 조그만 원룸 크기 방의 타일 바닥 위에 누워서 전면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보자들은 다수였는데, 그들은 이곳을 체험 동물원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픽사베이
‘동물 학대’라 손가락질 받는 곳

해당 동물원에 대한 현장 답사가 결정됐고, 체험 동물원의 첫인상은 단연코 최악이었다. 한국에 무수히 난립하고 있는 체험 동물원 중에서도 뒤처지는 순위에 들어가는 곳. 동물들은 턱없이 좁고 열악한 환경 속에 전시돼 있는 데다,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추위를 고스란히 버텨야 하는 삶

답사를 간 당일은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바람이 무척 매서운 날이었다. 바닥을 타일로 마감한 실외 전시장에서는 원숭이 두 마리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추위를 피할 시설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숭이들이 의지할 데라고는 서로의 온기만이 유일한 셈이었다. 


전시장은 낡고 관리하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유리창은 제대로 닦지도 않아 뽀얀 흔적이 굳어 있었다. 앞다리 하나가 없는 서벌캣이 전시돼 있는 곳에는 고양이 두마리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한편 그 맞은편에는 라쿤이 있었다. 한 마리는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오가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개집에 숨어 있었다. 참담했다.

암사자가 있던 자리

참담한 사육 환경에서 짐작했다시피 내부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카운터 옆에는 사슴이 1m도 안 되는 줄에 묶여 전시돼 있었다. 사슴은 비좁은 공간 안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거의 다 빠져 살갗이 훤하게 보였다. 


암사자가 있던 자리에는 암사자 대신 대형견이 지내고 있었다. 동물원 관계자에게 물으니 “큰 집에 보내줬다.”라고 이야기하길래 대형 동물원에 보낸 것으로 생각했는데, 암사자는 질병으로 폐사했다고 한다. 암사자는 죽어서야 그 작은 전시장을 나가게 된 셈이다.


친칠라 등 소동물을 비롯해서 새들 또한 작은 새장에 갇혀 있었다. 새장이 더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왕관앵무새 한 마리는 자신의 털을 다 쪼아서 뽑은 상태였다. 그러고서도 왕관앵무는 자신의 몸에서 쪼아버릴 수 있는 것은 다 쪼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학 행동이었다. 

무지도 때로는 죄가 된다

거의 모든 체험 동물원은, ‘우리는 동물을 사랑합니다’ 등의 구호를 다양한 마케팅 슬로건으로 내걸지만, 사실상 단 한 곳의 체험 동물원도 동물에게는 안녕하지 않다. 체험 동물원은 동물을 착취하는 동시에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법이 느슨하고, 그들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체험 동물을 소비하는 사람들, 우리 시민사회 스스로의 통찰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야만과 무지를 넘어서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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