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이 파업했다, 힘겨운 워킹맘 살이

조회수 2020. 3. 21. 10: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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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다는 믿음으로, 도명화 민주노총 톨게이트 지부장

2019년 6월 30일,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43명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랐다. 톨게이트 노동자 1420명의 대량 해고에 항의하는 농성의 시작이었다. 태풍에 잠자리가 흔들리고, 매연이 자욱했다. 한국도로공사 본사가 있는 경북 김천, 서울의 광화문과 청와대 앞, 요금 수납원들은 곳곳에서 직접 고용을 외쳤다.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옳다’라는 믿음 하나로 이들은 똘똘 뭉쳤다. 그 믿음으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서산 톨게이트 영업소 요금 수납원이자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인 도명화 씨를 만났다. 


지난 1월 17일부터 2주가량 단식 농성을 했다. 이후 건강은 괜찮은가.

단식만으로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다. 다만 그동안 몸이 안 좋았던 게 서서히 드러났다. 이번에 담석 수술을 했다. 7개월간의 농성 중 나이가 나이인지라 입원한 이들도 많이 있다. 한 번 치료받으면 못 움직인다는 생각에 다들 병원을 잘 못 갔다. 노숙을 많이 하다 보니 허리가 아픈 사람이 많다. 집회에서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많이들 힘들어했다.


1월 31일 본사 점거 농성 종료 이후 ‘투쟁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요구는 수납 업무자에 대한 직접 고용이었지만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일하면서 싸워야겠다고 계획했다. 조합원들은 쉬지 않고 선전전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19년 6월 말부터 김천과 광화문 등 여러 공간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는데, 돌아보면 어떤가.

동료들이 동시에 한 공간에 있을 때가 없었다. 누군가 김천 톨게이트 본사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은 서울에 있는 식이었다. 그게 느껴질 때 제일 짠했던 것 같다. 우리는 톨게이트 서울요금소 캐노피에 있고 다른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싸울 때, “우리가 열심히 해서 내려오게 해줄게.”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제가 김천에 조합원들을 두고 광화문에 올 때 진짜 많이 울었다. 

2015년 이후 입사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심리적인 문제를 많이 겪고 있다. 도로공사 발표에 따르면, 일단 직접 고용이 돼도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법원이 근로자 지위가 없다고 판단하면 직장을 잃게 된다. 조건 없는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재판이 미뤄지고 있다. 하지만 질 확률은 없다고 본다.


농성 중에도 대부분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집과 가족들을 챙겨야 했다.

남편이 파업을 못 하게 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3교대 근무다. 새벽에 나오면 거의 아침을 못하고 나온다. 근데 남편들이 파업할 때는 밥을 하고 가라고 시킨다는 거다. 심지어 농성하다 중간에 집에 와서 밥하고 가라고 한다. ‘네가 일 안 하면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왜 나가서 파업을 하냐?’라는 거다.


처음엔 남편들이 지지해주고 물자도 지원 받고 했는데, 기간이 길어지니까 그런 일들이 생겼다. 가끔 농성하다 조를 짜서 집에 다녀오곤 했는데,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달래러’ 가는 거였다. 남자가 파업할 땐 안 그런다. ‘가족 대책위’가 꾸려져서 남편과 아빠의 파업을 응원하고 참여한다.

도로공사에서 요금 수납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했음에도, 하청 구조 안에 고용된 상황이 불법이라는 것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던 수납 업무에 대한 직접 고용을 주장한 것이지,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고용 수당 때문에 장애인을 제반 시설 없이 무작정 고용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강요받은 경험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제가 2004년에 서산 톨게이트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해고’가 내 일인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 하나 토를 달거나 반기 드는 사람이 없었다. 잘릴까 봐 무서워서 모든 걸 참았다. 별일이 다 있었다.  장애인 고용 보조금 3년 타먹고 바로 해고하거나, 직원 바꿔치기 하고, ‘러브 샷’ 시키고, 뒤에서 포옹하고…. 그런데도 왜 참았냐는 지적이 있는데, 그땐 참아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반찬값을 벌려고 나온 아줌마들’이라거나, 언젠간 필연적으로 대체될 인력이라는 폄하도 있다.

우리도 생존권을 가지고 싸우는 거다. 그리고 ‘반찬값’이나 벌겠다고 나와서,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겠나. 반찬 하나 덜 먹고 말지. 우리가 싸우는 과정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본다면 그렇게 말을 못 할 것 같다.

길에서 많은 시민들이 응원을 하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주는 상황은 드물었는데, KBS2 <거리의 만찬> 방송 후 응원하는 시민들이 확 늘었다. (웃음) 


‘우리가 옳다’는 구호를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많이 외쳤다. 

6월에 시범적으로 해고된 지부가 있었다. 그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루 종일 했는데, 동료 중 한 분이 그날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옳다’고 외쳤다. 그 말이 너무 와 닿았다. 그 이후 ‘우리가 옳다’고 계속 외쳤다. 우리의 행동이 옳음을 상징하는 말 아니었을까 싶다. 그 행동이 우리의 선택이기에 더 와 닿은 것 같다.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다. ‘우리가, 내가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여성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정에서도 그렇게 참고 사는 게 미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참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앞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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