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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MIL 군사세계

한국 전쟁의 전차전(上) : 소대장들의 전투

68년 전 6월 25일, 북한군 전차가 38선을 넘으면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전차는 우리 민족에게 전쟁과 압도적인 무력의 상징으로 각인되었지요. 중년 이상의 독자들은 어린 시절 한국 전쟁 당시 전차 앞에 무너진 남쪽 방어선과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국군 병사들의 투혼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에서 전차전의 실상은 어땠을까요? 『탱크 북』 의 번역자이자 강연자이신 김병륜 선생님이 「탱크 북 뮤지엄」의 연재 지면에서 한국 전쟁에서의 전차전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의 역사가 바뀔지도 모릅니다. 한국 전쟁의 전차전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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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주력 전차였던 T-34 전차. 실제 북한군에서 운용했던 T-34는 아니고 중국군이 운용하던 T-34를 수입하여 전시한 것이다. 사천항공우주박물관 전시품. 김병륜 촬영.>

한국 전쟁 당시 미군 기갑 장교들은 한국에서 전차전을 ‘소대장들의 전투’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차가 수십, 수백 대 단위로 대규모로 집결해서 전차전을 벌인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 전쟁 미군 전차 소대들은 일반적으로 5대의 전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국 ‘소대장들의 전투’였다는 것은 한국 전쟁 당시 벌어진 전차전에 투입된 전차 수가 대부분 5대 이하였다는 의미이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 전차 중대의 통신망 구성도. 각 소대(PLAT)가 5대의 전차로 구성된 사례를 기준으로 통신망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운영 분석국이 1954년 발간한 「한국전에서의 전차전」이다. 이 자료는 한국 전쟁 첫해인 1950년 7월부터 11월까지 전차들끼리의 전투에서 실제 전차포를 발사한 전차 대수만 집계했는데, 북한군과 미군의 전차전 사례 119건 중에서 1대와 1대가 대결한 사례가 36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흔하게 나타난 유형은 미군 전차 2대와 북한군 전차 2대가 대결한 사례로 모두 13건이었다. 세 번째로 미군 전차 2대와 북한군 전차 1대가 대결한 사례가 10건, 네 번째로 북한군 전차 2대와 미군 전차 1대가 대결한 사례가 7건이었다. 북한군 전차 3대와 미군 전차 2대가 대결한 것이 6건이었다.

특히 북한군이든 미군이든 어느 한쪽에서 5대 이상의 전차가 참가해서 전차전을 벌인 사례는 모두 7건에 불과했다. 한국 전쟁에서의 전차전은 소대급 정도의 전차만 투입되어서, 그중 1~2대가 전차포를 발사하는 사례가 가장 전형적인 전투 방식이었던 셈이다. 이는 영화에서 보듯이 수십, 수백 대가 넘는 전차가 대평원을 가로지르면서 포화를 주고 받는 드라마틱한 장면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북한군의 소련제 T-34 전차가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 당시 서울로 향하는 길에서 국제 연합군에 노획되었다. National Archives photo NA 80-G-421166 - Scanned from Utz, Curtis A., Assault From the Sea: The Amphibious Landing at Inchon, Naval Historical Center, Department of the Navy, Washington , D.C., 2000, ISBN 0-945274-27-0, p. 41.>

이처럼 한국에서 전차전의 규모가 작았던 것은 단순히 투입된 전차 수 자체가 적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한국 전쟁 첫해 북한군 전차의 보유량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소련제 T-34 전차를 중심으로 최소 240여 대에서 최대 600여 대의 전차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의 경우 기갑 사단이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당시 미1 기병 사단은 보병 부대였다.), 전차를 적게 운용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1950년 10월 말까지 투입된 미군 전차는 570여 대가 넘었고, 12월까지 투입된 전차는 1,000대를 돌파했다.

한국 전쟁 첫해 북한의 105전차 사단은 부대 전체에 120대의 전차를 보유한 데 비해, 미 24보병 사단의 경우 전차 배치가 완료된 시점에 사단 전차 대대에 80대, 연대 전차 중대에 45대, 사단 수색대에 7대 등 총 133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북한의 전차 사단보다 일부 미군 보병 사단이 더 많은 전차를 보유했던 셈이다. 미 1기병 사단은 83대, 미 25보병 사단은 111대, 미 2보병 사단은 152대, 미 3보병 사단과 미 7보병 사단도 각 154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미 해병 1사단도 108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사실 한국 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 월턴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년) 중장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기갑 사단장, 20군단장으로 근무하면서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대규모 전차 부대를 지휘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역시 한국 전쟁 당시 미 1기병 사단장을 지낸 호바트 게이(Hobart R. Gay, 1894~1983년) 소장은 조지 패튼 장군이 지휘하는 1기갑 군단과 7야전군, 3야전군에서 계속 참모장을 역임하면서 대규모 전차 부대를 투입한 기동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양쪽에서 이처럼 많은 전차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미군 지휘부 중 상당수가 대규모 전차전에 풍부한 경험을 가졌던 인물이었음에도, 막상 한반도의 전차전은 소대 규모로 많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그중에 실제 전투에서 전차포를 적에게 쏠 수 있었던 전차는 더 적었던 셈이 된다.

<한국 전쟁 당시 전차의 교전 시작 거리>

물론 그 이유는 전적으로 산과 언덕, 계곡이 많은 한반도 특유의 지형 때문이다. 미 극동 사령부에서 1951년 분석한 자료에 나오는 한국 전쟁 당시 전차의 교전 시작 거리 그림에서 보듯이 한국 전쟁 당시 전차들이 적을 상대로 전투를 시작한 거리는 400야드(365.7미터)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유럽의 경우 200야드부터 1200야드까지 교전 시작 거리가 비슷하게 분포하는 데 비해, 한국의 경우 400야드를 기점으로 그보다 교전 거리가 긴 사례가 두드러지게 적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구경 76밀리미터의 미군 전차포들은 거리에 2000야드에서도 60~90여 밀리미터 두께의 강철판을 뚫을 수 있었다. 이런 당시 전차들의 성능을 생각해 보면 고작 400야드라는 교전 시작 거리는 전차의 물리적 성능이 아니라 지형 때문에 나타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건물이나 산, 언덕이 너무 많아서 그런 장애물에 숨어 있는 적의 존재를 미처 보지 못하다가 400야드 정도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갑작스럽게 전투를 시작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다른 분석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 전차 대 전차들끼리의 전투만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시계(視界)가 좋을 때도 평균 840미터, 시계가 좋지 않을 때는 평균 620미터 거리에서 첫 번째 전차탄이 발사되었다. 복잡한 지형 때문에 1,00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전차 초탄을 발사한 사례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이처럼 험준한 산악 지형 때문이었는지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 기갑 부대의 속도도 그렇게 인상적인 편은 아니었다. 흔히 한국 전쟁 초반 북한군 T-34의 위력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속도’에 관한 한 북한 기갑 부대의 작전성과는 좋지 않았다. 남침 전쟁을 시작한 이후 6월 28일 서울 점령까지 북한군의 1일 진격 속도는 평균 15마일(24.14킬로미터) 정도였으나, 서울 점령 이후 낙동강 전투가 개시되는 1950년 8월 4일까지의 진격 속도는 평균 5~7마일(8~11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이 진격 속도는 제2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 개전 초기 아르덴을 우회한 독일군 기계화 부대가 대서양으로 진격한 속도인 1일 평균 39마일(62.76킬로미터), 1945년 8월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공격한 속도인 1일 평균 51마일(82.07킬로미터), 1967년 중동에서 벌어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탈(Tal) 기갑 사단의 1일 평균 50마일(80.46킬로미터)보다 눈에 띄게 느린 것이다.

당시 38선에서 서울까지 최단 거리는 불과 48킬로미터였지만, 북한 전차 부대가 서울에 도달하는 데 3일이 걸린 셈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지형에 더해 북한군의 전차 부대 운용 미숙 문제를 거론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영국의 군사 평론가 리델 하트는 북한군의 기갑 부대 운용 방식에 대해 “만약 북한군이 기갑 부대를 종심 깊게 돌파하고 전과 확대를 할 수 있도록 편성하고 독일의 구데리안 장군 방식으로 대담하게 운용했더라면 유엔군이 부산 교두보에서 병력을 증강하기 전에 한반도를 석권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으로는 다행한 일이었지만, 결국 북한은 기갑 부대를 아군 후방에 깊숙이 돌파할 수 있도록 편성하지 못했고, 추가로 전과를 확대할 수 있도록 부대를 조직하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또 기갑 부대 운용도 소극적이어서 기동력을 활용한 극적인 전과를 거두지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밖에 기계화 보병의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

「라주바예프 보고서」 등 구 소련 자료가 공개된 이후에는 북한이 개전 초반 포천 축선에 전차·자주포·야포 견인용 차량을 너무 많이 투입해 교통 체증이 발생해 공격이 지연되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당시 한반도 도로 사정이 빈약해 어지간한 도로는 폭 4~5미터 미만이었고, 그나마 비포장 도로가 많았다. 이런 도로에는 전차 2대가 나란히 전진하기도 힘들 수밖에 없다. 서울 동북 지역의 도로에도 이같은 협소 도로가 적지 않았다.

<1951년 3월 327고지로 향하는 국제 연합군 소속 영국군과 센츄리온 전차. BF 454 from the collections of the Imperial War Museums.>

결국 이런 지역에서는 전차가 일선 종대, 즉 일렬로 나란히 열을 지어 전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동 시에는 일렬로 전진하더라도 전차 부대가 보다 안정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전투 순간에는 횡대 대형으로 변환해야 하지만 한반도 지형에서는 그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도로 좌우에 시가지가 있거나 아니면 도로와 높이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도 많아 신속하게 도로 좌우로 전차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교통 체증이 무슨 말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940년 독일군의 서부전선 대공세 당시에도 일부 사단들은 혹독한 교통 체증을 경험했다. 꼭 과거의 일만은 아니어서, 근래의 워 게임 방식 훈련에서도 교통 체증으로 역습이 실패한 사례가 있다. 실전에서는 전차 단독으로 운용하는 것이 아니고 장갑차, 일반 트럭, 견인포, 자주포 등이 모두 투입될 경우 어마어마한 길이의 차량 대열이 발생한다. 여기에 소속이 다른 부대가 같은 도로 축선에서 뒤엉키면 교통 체증은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험준한 지형과 열악한 도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쟁에서 전차가 무용(無用)하지는 않았다. 전쟁 초반 북한 전차 부대의 공격 속도가 아무리 느렸다 해도, 전쟁 초반 한국군 방어선이 쉽게 붕괴된 곳은 예외 없이 북한 전차 부대가 공격한 곳이었다. 전차대신 자주포가 투입된 춘천의 국군 6사단, 북한 전차가 적었던 문산 방면의 국군 1사단은 상대적으로 잘 싸웠다.

1950년 6월 말 90여 대에 가까운 북한 105전차 사단 T-34 전차 주력이 투입된 포천-의정부-서울 축선에서 국군 7사단의 방어선이 결국 붕괴한 것은, 전차의 위력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쟁 초반 전차전을 꼼꼼하게 분석한 미 극동 사령부의 1951년 보고서도 “한반도의 지형에서 전차를 넓은 정면에서 대량 운용하는 것이 제한된다”면서도 “전차가 여러 상황에서 다목적으로 유용하게 운용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전쟁 기간 중에 각 보병 사단에 100여 대가 넘는 전차들을 운용한 것도, 한반도 같은 산악 지형에서도 전차의 운용 자체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도 전차는 전장의 왕자였던 셈이다.


글쓴이 김병륜


《국방일보》 취재 기자를 지내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석사). 한국 군사사를 중심으로 군사 분야 역사를 연구하면서 저술, 다큐멘터리 출연, 강연, 군사 관련 콘텐츠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에 『조선시대 군사혁신-성공과 실패』, 옮긴 책에 『그림으로 보는 5000년 제복의 역사』 등이 있다.


제공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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