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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차들의 성지 '보빙턴 전차박물관'을 가다(1)

셔먼 전차 앞에서 여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전쟁과 역사에 대한 흥미가 발전하여 흔히 ‘밀리터리’라는 취미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군사 취미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만 그중 전차는 유독 저를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전쟁의 도구가 아닌 살아 숨쉬는 강철 유기체, 지상의 왕으로 군림하는 전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전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꼭 가봐야 할 성지가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전차가 모여 있는 전차의 메카 ‘보빙턴 전차 박물관’입니다.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마침 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큐레이터 데이비드 윌리의 탱크 북이 국내 출간되었습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전차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전차의 태동부터 제1차,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기를 거치는 동안 전차의 발전상과 각국 전차의 특징을 손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육중한 강철 기계 매력에 잠깐이나마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워털루역

울역

런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워털루 역에서 사우스 웨스턴 레일웨이(South Western Railway)를 타고 두 시간 반쯤 달리면 남부의 시골 마을 ‘울’에 도착합니다. 특색 없는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바로 이곳에 보빙턴 전차 박물관이 있습니다. 역에서 박물관까지 시내 버스가 운행하고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면 편이 낫습니다.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택시 전화 번호를 적어 두면 좋습니다.

전차박물관 입구

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The Tank Museum’입니다. 사실 보빙턴은 지명으로서 편의상 다른 전차 박물관들과 구분해 주기 위에 붙입니다. 보빙턴 전차 박물관은 제1차 세계 대전 시 영국의 주요 전차 훈련장이었습니다. 이후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노획한 전차들과 연합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전차들, 영국군의 전차가 보빙턴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민간에 공개하면서 지금의 전차 박물관이 탄생하였습니다. 현재에도 전차 박물관 옆에는 육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참호전

참호를 돌파하는 MarkⅠ Mother

박물관에 들어오자마자 참호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서부 전선, 참호 사이에서 무식한 돌격과 방어가 반복됨에 따라 사상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차가 개발되었습니다. 관람객들은 참호전 관을 지나가며 전차가 왜 필요했고,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마더는 당시의 기술력 때문에 부족한 신뢰성으로 전차병들을 고생하게 만들었지만 세계 최초의 전차로서 위상은 감히 따지기 힘듭니다.

DK 『탱크 북』 14-15쪽.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Limited

참호전 관을 지나면 2차대전관으로 이어집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전차, 자주포, 장갑차 등 각국의 다양한 기갑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호 전차(Panzer Ⅱ) Luchs

역시 가장 먼저 독일 전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2호 전차는 제1차 세계 대전에 패전한 독일이 군축 조약에 시달릴 때 기갑 부대를 위한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차량입니다. 빈약한 장갑과 무장을 탑재한 2호 전차는 스페인 내전에서 문제점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개전까지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많은 수의 2호 전차를 주력으로 유지한 채 제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소량의 2호 전차는 기동성을 살려 종전까지 정찰과 지원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전차 박물관에는 파생형인 루크스(Luchs)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정찰에 특화된 기종으로 비교적 소량이 100여 대가량이 만들어졌습니다.

4호 전차(Panzer Ⅳ) H형

독일 육군의 대들보가 되었던 4호 전차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일본 애니메이션(Girls und Panzer)에서 주 전차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Panzer Vor!”라는 구호가 생각납니다. 4호 전차는 가장 많이 만들어진 독일 전차이면서 가장 다양한 형식을 가진 전차이기도 합니다.

나치 독일 육군을 대표하는 카알 한케의 4호 전차

4호 전차 초기형은 단포신 주포에 부족한 장갑으로 중형전차로서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개전 초기 프랑스의 중전차 B1 샤르를 만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개량을 반복하여 7.5센티미터 장포신 주포를 탑재하고 장갑을 증가시켜 국방군의 주력전차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로서 미국의 M4 셔먼, 소련의 T-34 전차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6호 전차 B형 티거2 (Panzer VI Ausf. B Tiger II)

쾨니히스티거(킹타이거)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티거2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가장 강력한 전차로 꼽으라면 항상 순위권에 들어가는 전차입니다. 티거1보다 포신이 길어졌으며 경사장갑을 채택하여 방어력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구동계의 큰 개선이 없이 중량이 대폭 증가하여 신뢰성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티거2의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치메리트 코팅 또한 문제를 더했습니다. 자기흡착지뢰를 막기 위해 표면에 시공된 이 콘크리트 코팅은 아무런 효용이 없이 무게만 증가시켜 이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그럼에도 8.8센티미터 71구경장의 강력한 주포는 대부분의 연합군 전차를 일격에 침묵시켜 쾨니히스티거의 위용을 보여 주었습니다.

DK 『탱크 북』 66-67쪽.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Limited

M3A1 스튜어트

경전차로 개발되었지만 경전차를 넘어선 스펙을 가진 스튜어트입니다. 좋은 생산성과 빠른 기동성, 37밀리미터 대전차 주포의 조합은 시너지를 내어 태평양, 북아프리카, 유럽 모든 전선에서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경전차라는 한계가 있어 빠른 시간 내에 퇴출되기는 했으나 기갑 전력이 현저하게 낮은 일본 제국은 노획한 스튜어트 전차를 비장의 카드로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M4A3E8 셔먼 ‘이지에잇’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전차전을 다룬 영화 ‘퓨리’의 주인공 이지에잇(Easy Eight)입니다. 퓨리는 전차 박물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본 전차의 실 기동으로 영화가 촬영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크지는 않지만 이지에잇을 중심으로 퓨리 부스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퓨리

초기형 셔먼에 비해 주포, 장갑, 포탑, 엔진, 현가장치 등 거의 모든 부분이 달라졌기 때문에 공식명칭보다는 후기형 넘버에서 따온 이지에잇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기존 셔먼의 75 밀리미터 주포는 보병 지원에 적합했고 관통력이 부족해 대전차전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지에잇은 76밀리미터 52구경장 주포를 탑재하여 드디어 독일 전차와 맞붙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M-26 퍼싱

미국의 실질적인 최초의 중전차 퍼싱(Pershing)입니다. 개발과 실전 투입이 매우 늦어져 전쟁 막바지가 되어서야 유럽 전선에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 육군은 ‘구축 전차 독트린’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차는 보병을 지원하고 전차는 구축전차로 잡는다는 논리였습니다만 실전은 이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전차 화력이 부족한 셔먼이 일선에서 독일 중전차와 맞서야 했고 중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수뇌부는 급하게 퍼싱의 개발을 마치고 유럽전선에 투입했습니다. 퍼싱의 90밀리미터 주포와 육중한 장갑으로 판터와 티거를 상대할 수 있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발렌타인

A9, A10전차를 기반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보병 전차 발렌타인(Valentine Tank)입니다. 정말로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 개발된 전차라 이름이 발렌타인이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 전차들에 비해 성능부족이 드러났지만 기존 영국 전차들에 비해서 신뢰성과 생산성이 용이하여 전쟁 초기 많은 수량의 발렌타인 전차가 생산되었습니다. 발렌타인 전차는 연합국의 전시 물자 지원 정책인 랜드리스로 소련에 상당한 수량이 공여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성능 부족으로 평가받던 영국에서의 발렌타인과 달리 소련은 이 전차에 대해 만족을 표했습니다. 가벼운 무게를 살려 경전차로 운용했기 때문입니다.

크루세이더

마치 게딱지를 닮은 독특한 외형의 크루세이더 전차(Crusader Tank)입니다. 크루세이더 전차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영국의 이원화된 전차 체계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군은 보병 전차와 순항 전차 두 개념으로 전차를 분류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발렌타인 전차는 보병 전차입니다. 보병 전차는 보병의 진격 속도에 맞춰 적의 포화를 뚫고 진격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동성보다는 장갑과 화력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발렌타인 전차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순항 전차는 과거 기병의 역할을 맡습니다. 화력보다는 빠른 속력을 살려 적을 추격하고 기동전을 펼치는 것이 주 목표입니다. 크루세이더 전차는 순항전차에 속합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높은 기온으로 엔진 과열이 번번히 일어나 크루세이더 전차는 순항 전차의 이점을 살리기 어려웠습니다. 순항전차 특유의 장갑과 화력 부족까지 더해져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KV-1

독소 전쟁 초창기 패전을 거듭하던 소련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중전차 KV-1(Kliment Voroshilov)입니다. 독일은 현대까지 ‘전차 군단’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만큼 강력하고 성능 좋은 전차들을 항상 보유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전역부터 독소 전쟁 초기까지 독일은 중전차는 고사하고 쓸 만한 중형전차도, 대전차포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KV-1이 독일군 앞에 등장했습니다. 독일군 일선에서는 KV-1의 최대 90밀리미터에 달하는 전면장갑을 전차포로도, 대전차포로도 관통할 수 없었고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T-34에 비해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KV-1은 독일군을 저지하는 데 분명한 일조를 했습니다.

골리아트

전차 박물관에서 가장 작은 차량, 기갑 차량이라고 부르기에는 귀여운(?) 골리아트입니다. 골리앗이라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크기와 무게는 전장 1.5미터 무게 300킬로그램밖에 안됩니다. 무인 유선조종으로 움직이는 골리아트는 내부에 60킬로그램에 달하는 폭약을 싣고 자폭 공격을 합니다. 비록 당시 기술력으로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어 방어전에서만 주로 사용되었지만 연합군에게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전차포 비교

2차대전관 한편에는 전차포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가장 위쪽부터 그 유명한 티거의 8.8센티미터, 파이어플라이의 17파운더, M3 그랜트의 75밀리미터 주포 등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쪽 M5 스튜어트와 크루세이더 전차의 주포와 비교해보면 전쟁 후기로 갈수록 급격하게 발전하고 거대해지는 전차포의 양상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전차의 시작이 ‘Land Ship’, 즉 ‘육상함’의 개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마치 해전의 거함거포주의를 지상으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물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구축 전차와 탱크 스토리(Tank Story)관 소개가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


글쓴이 손건(썬더볼트)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발전소 엔지니어로 재직 중이다. 역사, 밀리터리, 자동차에 관련된 컨셉으로 각국을 탐방하는 아마추어 여행가이자 사진 작가이다. 루리웹과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night_thunderbolt)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제공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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