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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스톰 트루퍼의 대결

조회수 2018. 6. 20.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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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탱크의 어머니 마크 시리즈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탄 「최후의 성전」을 보면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체펠린 비행선에 열광하던 독일인의 모습, 메서슈미트 Bf-109를 모방한 스위스 항공기 필라투스 P-2, 제2차 세계 대전 기록 영화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독일 (일본 혼다 모델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오토바이병 등 제법 그럴싸하다. 그중 백미는 롤스로이스 팬텀 2를 주고 하타이 공화국 병력과 함께 빌린 전차겠다. 얼핏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이건 영국 MK시리즈 같은데?”라고 말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전차가 바로 이 MK 시리즈다.

MK 시리즈인 듯 MK 시리즈가 아닌 듯한 MK 시리즈.

「최후의 성전」에 등장하는 전차는 실제로 존재했던 전차는 아니었다. MK.부터 MK.Ⅸ까지 샅샅이 뒤져봐도 이런 형태의 전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제작자가 영화를 위해 MK 시리즈에 회전 포탑을 달아 만든 가상의 전차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반 상업 영화에서 제1차 세계 대전에 활약했던, 그것도 탱크의 역사를 시작한 전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안과 밖


1916년 7월 1일 8일간의 준비 포격이 끝나고,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돌격이 이어졌다. 철조망과 포탄 구덩이는 연합군의 발목을 잡았고, 겨우 철조망을 빠져나오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독일군의 기관총탄과 대포의 포격이 이어졌다. 첫 날에만 5만 8000여 명의 영국군 사상자가 나왔다. 무의미한 돌격, 유원지 놀이 공원에서의 사격 게임 같은 단조로운 기관총 발사가 이어졌다. 5개월을 끈 전투에서 영국군 사상자만 40여 만 명, 프랑스군 사상자 20여 만 명에 연합군을 막아내던 독일군 역시 60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이 공세로 연합군이 진격한 거리는 고작 12킬로미터였다. 즉 1킬로미터 전진하기 위해 양측 모두 10만 명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역사는 이 멍청한 짓을 ‘솜 전투(Battle of Somme)’라고 명명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초반만 하더라도 유럽은 환호했다. 산업 혁명으로 축적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제대로 한번 뽐내보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청년들은 3~4개월 전투에 나서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 예상했고,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투의 양상은 이전 세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옥의 다른 말이 바로 ‘솜’이었다.

철조망, 기관총, 참호, 그리고 야포. 발달된 기술력은 수비력을 극강으로 끌어 올렸다. 이 방어력을 파괴할 방법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병사들을 기관총 앞으로 밀어 넣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10만, 20만이란 숫자가 무의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군과 독일 제국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독일 제국의 경우는 참호전이라는 게임의 룰 안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후티어(Hutier) 전술과 스톰트루퍼(Stormtrooper, 돌격대)다. 준비 포격만 2~3일씩 날린 다음 돌격하던 이전의 전술과 달리 2~3시간 동안 짧고 굵게 포격한 다음 가장 약한 부분에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스톰트루퍼들을 집중 투입해 일점돌파를 하는 방식이다. 이 스톰트루퍼들은 훗날 「스타워즈」에 수많은 영감을 안겨 줬고,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얀 방호복이 등장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초창기 스톰트루퍼는 무거운 철판 방탄복에 방탄 방패까지 들고 다녔는데, 실전을 통해 별 소용이 없음을 깨닫는다. 방어력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방탄복을 벗기고,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들고 참호에 뛰어들게 했다. 우리가 스타워즈를 통해 알고 있는 스톰트루퍼는 초창기 이미지에서 차용한 것이다.

1917년 서부 전선의 독일군 스톰트루퍼.
은하계 전역에까지 그 위명을 떨친 스톰트루퍼.

독일이 게임의 룰 안에서 참호전을 극복하려고 했을 때 영국은 게임의 룰 자체를 뒤바꾸려 했다. 바로 육상 군함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탱크는 영국 육군성이 아니라 해군성이 개발하게 된다.


“적의 기관총탄과 포탄이 문제라면, 이를 막을 장갑을 가진 군함을 띄우면 어떨까?”


내연 기관과 트랙터의 등장으로 이론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아이디어였다. 물론, 이 당시에도 장갑차는 존재했다. 문제는 바퀴로 움직이는 존재였다는 데 있었다. 양쪽에서 쏘아 댄 포탄 덕분에 전장 이곳저곳에는 포탄 구멍이 뚫려 있었고, 철조망이 어지럽게 쳐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무한궤도뿐이었다.


이미 트랙터의 등장으로 무한궤도에 관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게 바로 ‘탱크(tank)’다. 그런데 어째서 전차에 ‘탱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 차량의 개발 당시 개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차량을 만든다는 역 정보를 흘리면서 물 담는 탱크라는 이름이 붙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 시작은 미약했다


이야기를 다시 솜 전투로 돌려보자. 12킬로미터를 진격하기 위해 양측 모두 120만 명의 사상장을 낸 솜 전투는 역사에 제1차 세계 대전 최악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었지만, 전쟁 역사상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준 전투이기도 하다. 바로 ‘전차’의 첫 실전 투입이다.


비밀리에 전차를 개발한 영국군은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고 승무원들의 숙련도를 높인 다음 전장에 투입하려고 했지만, 솜 전투의 전황이 악화되자 조기 투입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부랴부랴 모은 전차가 50대 정도였는데, 1916년 9월 15일 플레흐-꾸흐스레트(Flers–Courcelette) 전투에 투입한다. 이때 투입된 전차가 MK 시리즈의 어머니이자, 모든 전차의 어머니인 MK.1 바로 ‘마더(Mother)’이다.

마름모꼴 디자인을 처음 선보인 마더.
탱크의 탄생을 알린 MK. I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 MK 시리즈의 처음은 미미했다. 50대의 전차 중 반 이상은 기계 고장으로 투입도 못했고, 나머지도 전장에서 멈춰 서 버렸다. 겨우 20퍼센트 정도만이 간신히 적의 참호를 돌파했으니, 그 기계적 신뢰성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할 것이다. 주행 성능은 형편없어 겨우 시속 5킬로미터 정도였다. 보병들과 함께 움직이는 토치카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오히려 보병들은 좋아했다. 움직이는 방패의 등장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방어력은 기관총은 막아냈지만 철갑탄에는 뚫렸다.


많은 문제점을 떠안은 문제작이었지만 어쨌든 철조망과 포탄 구멍, 기관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보여 줬다. 영국은 이 MK 시리즈를 계속 발전시켰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에는 MK Ⅸ형까지 만들어 낸다.  


솔직히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등장한 탱크는 말 그대로 가능성만을 보여 준 존재였다. 속도는 겨우 보병의 발걸음을 쫓을 정도였고, 방탄판을 아무리 둘러쳤다 한들 방어력은 빈약했으며, 주포를 한 번 쏘기 위해서는 사수가 막대를 겨드랑이에 끼고 몸으로 조준해야 했다. 그러나 항공기가 그러했듯 전차는 다음 전쟁의 주역으로 낙점 받았다.  


이제 탱크는, ‘지상전의 왕자’로 불리게 된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표현이 현실이 된 것이다. 

『탱크 북』 22~23쪽에서.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글쓴이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제공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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