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맞서 독일인의 양심을 깨운 여대생

조회수 2021. 5. 13.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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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 숄은 나치 정권에 저항한 비폭력 조직 '백장미단'의 구성원이었다.
출처: Getty Images
한때 히틀러의 추종자였던 조피 숄은 훗날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의 대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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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학창시절의 한스와 조피 숄
출처: kpa/ United Archives
조피 숄의 이야기는 1982년 '백장미'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출처: EPA
조피 숄은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뮌헨 대학에서 전단을 뿌렸다
출처: Getty Images
히틀러의 판관으로 알려진 롤란트 프라이슬러(오른쪽)는 1943년 2월 한스와 조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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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와 한스 숄의 이름은 독일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알렉산더 슈모렐과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쿠르트 푸버, 빌리 그라프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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