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메뉴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BBC News | 코리아

'지문' 없이 태어난 방글라데시 가족의 삶은 어떨까?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가족 내 모든 남성이 지문이 없다.

10,107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아푸 사르커의 가족은 최소 4대째에 걸쳐 지문이 없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다

출처BBC

선천적으로 지문이 없어 여러 생활에 곤란을 겪는 한 방글라데시 가족이 있다.

방글라데시 라지샤히에 사는 아푸 사르커(22)는 영상 통화에서 기자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끝이 매끄러워 보였다. 아푸는 최근까지 의료 보조원으로 일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문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가족 내 모든 남성이 지문이 없이 태어났다.

이들은 세계 소수에게만 나타나는 희귀 유전질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푸의 할아버지에겐 지문이 없다는 사실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푸는 "할아버지께선 그걸 문제로 여기지 않으셨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지문이 신분 확인에 필요한 생체 정보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항 출입국에서부터 투표와 스마트폰 개통에 이르기까지 지문은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투표를 하기 전에 지문을 찍는 모습

출처Getty Images

지난 2008년 방글라데시가 성인 대상으로 국가 ID 카드를 도입했을 때의 일이다.

발급을 받으려면 지문이 필요했다. 당시 아푸의 아버지 아말은 지문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발급 직원은 당황하다가 결국 '지문 없음'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신분증을 만들어줬다.

2010년이 되자 지문은 여권과 운전 면허증에도 의무 적용됐다.

아말은 몇 차례 시도 끝에 의학적 소견서를 첨부해 여권을 발급받았지만, 공항에서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까 두려워 외국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운전면허는 시험까지 통과하고도 발급받지 못해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농장 일을 하러 갈 때 무면허로 다닌다.

"저는 발급 비용도 내고 시험도 합격했지만, 지문이 없다는 것 때문에 당국은 면허증을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적발되면 운전면허 발급 수수료를 낸 영수증을 보이며 사정을 설명해보지만, 경찰관이 이를 받아들지 않을 때도 있어 여태까지 두 차례 벌금을 물었다.

그는 황당해하는 경찰관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지문이 없는 손끝을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벌금을 면제받진 못했다.

"저로선 항상 당혹스러운 경험입니다"

2016년 방글라데시 정부는 휴대전화 심카드를 살 때 지문 조회를 의무화했다. 아푸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심카드를 사러 갔을 때, 점원은 혼란에 빠졌고, 내가 센서에 손가락을 댈 때마다 지문 인식 소프트웨어는 계속 에러가 났다"고 설명했다.

결국 구입을 거부당했고, 아푸를 비롯해 가족 내 모든 남성은 현재 아푸의 어머니 명의로 심카드를 구매해 사용한다.

아말의 손바닥 사진. 지문이 있어야 할 끝부분이 매끄럽다

출처BBC

이들이 겪고 있는 희귀 유전질환은 무지문증(ADG·Adermatoglyphia)으로 추정된다.

2007년 스위스인 20대 여성이 미국에 입국하려다 지문이 없어 고생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병이다.

이 여성의 얼굴은 여권에 찍힌 사진과 일치했으나 세관원들은 지문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피부과 전문의인 바젤대 생물의학과 피터 이틴 교수는 같은 증상을 보이는 이 여성의 가족 8명을 함께 진료했다.

모두 손가락이 납작해지고 손에 땀샘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틴 교수는 동료 피부과 전문의 엘리 스프리처 교수와 대학원생 잔나 노스백과 연구를 확장해 지문이 있는 가족 구성원 7명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2011년 선천적으로 지문이 없는 경우 'SMARCAD1'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SMARCAD1 유전자의 역할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을 때 지문이 없는 것 외에는 다른 병증을 나타내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 기능도 없는 유전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스프리처 교수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원인을 규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발견 당시 이 질병은 '무지문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틴 교수는 '입국심사 지연 병'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그의 첫 환자가 미국에서 입국 심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점에서 착안했다.

아버지 아말과 아들 아푸가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BBC

이 질병은 한 세대에 걸쳐 온 가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수도 다카에서 약 350km 떨어진 디나즈푸르에 살고 있는 아푸의 삼촌 고페시 역시 지문이 없다.

그는 여권 발급에만 2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고페시는 "지난 2년 동안 내가 여건 발급 조건에 합당하다는 점을 당국에 알리기 위해 4~5차례 다카를 가야 했다"고 말했다.

일도 쉽지 않았다. 일하던 사무실이 지문 인식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

그는 출석부에 서명하는 예전 시스템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윗선을 설득해야만 했다.

방글라데시의 한 피부과 의사는 이 가족의 상태를 '선천적 손발바닥각화증'이라고 진단했다.

피부가 거칠거칠하게 마르면서 껍질이 벗겨지고 땀이 줄어드는 병이다.

이틴 교수는 이 피부질환이 무지문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들 가족이 확정 진단을 받으려면 추가 테스트가 필요하다. 스프레처 교수는 그의 연구팀이 유전자 검사를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아푸의 남동생 아누도 지문이 없다

출처BBC

물론 이런 검사는 아푸 가족에게 병명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일상의 불편함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푸의 아버지 아말은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큰 어려움 없이 보냈지만 아이들에게는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유전적으로 물려 받긴 했지만, 나와 아들들이 온갖 문제를 겪고 있어 우리로선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아말과 아푸 부자는 진단서를 제출한 후 망막·얼굴인식을 활용한 새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심카드 구매는 불가하고, 운전면허증을 딸 수 없으며, 여권 발급도 매우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푸는 "몇 번이고 설명하는데 지쳤버렸다"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제게 법원에 가라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지요. 다른 방법으로도 안되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겠죠."

아푸는 여권을 발급받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방글라데시 밖으로 여행을 갈 날을 꿈꾼다.

녹록지 않지만, 그저 여권 발급 신청만이라도 시작해보기를 그는 바라고 있다.

사진 제공: 사르커 가족

작성자 정보

BBC News | 코리아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