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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평양에서의 5일'..푸른 눈의 이방인이 경험한 북한 호텔 이야기

호주 출신 제임스 스컬린과 니콜 리드가 평양의 호텔을 통해 북한의 사회상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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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창광산호텔

출처NICOLE REED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고립된 국가 중 하나인 북한은 한국인들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다. 핵무기 개발이나 인권 문제 등으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외국인들에게도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외부 사회에 문을 걸어 닫은 북한을 궁금해하며 이곳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있다.

호주 출신의 제임스 스컬린(James Scullin)과 니콜 리드(Nicole Reed)는 지난해 평양을 다녀온 뒤, 북한의 호텔 11곳을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독특한 책 '평양의 호텔들(Hotels of Pyongyang)'을 최근 발간했다. 북한처럼 고립된 나라에 이렇게 호텔이 많은 것이 역설적이라고 표현한 그는 BBC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평양을 여행하며 느낀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들에 대한 조금 특별한 생각을 공유했다.

'호텔은 정치색이 가장 덜한 곳'

외국인으로서 북한을 여행하며 관광지가 아닌 호텔에 주목한 이유를 묻자 제임스는 북한 사회를 제대로 보고 싶은 나름의 핑계거리였다고 답했다. 당국의 제한이 많은 북한 관광에서는 매번 박물관, 기념비, DMZ 등 똑같은 곳만 가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북한 청년호텔

호텔은 디자인이나 구성 양식 면에서 특별히 정치색이 강한 건물이 아니라는 점도 그가 호텔에 주목한 이유였다. 그는 북한처럼 '정치적인'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 중에 호텔이 그나마 객관성을 갖고 있는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북한 여행을 하면 항상 가이드와 함께 다녀요. 일정이 다 짜여져 있어 보통 저녁에는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죠. 당 기념비 같은 늘 똑같은 관광지보다 호텔은 외국인 입장에서 북한을 들여다 보기에 가장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덜 정치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북한의 호텔 건물들이 과거 소비에트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것도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제가 읽던 소비에트 건축에 대한 책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도 그렇지만 평양의 모든 호텔들은 러시아나 구 동독, 우크라이나 등 소비에트 연방의 여행 산업을 반영하고 있거든요."

제임스는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호텔들은 일종의 유물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호텔 리노베이션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70-80년대의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독특한 소비에트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기업도 광고도 없는 호텔업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북한 호텔들의 첫인상은 '이상하다(bizzare)'는 느낌이었다. 서양에서 호텔 사업은 중요한 비즈니스로서 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만 북한의 호텔은 모두 당국에 의해 운영된다. 대도시에서 기업이나 광고를 빼면 생경하고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개발이 되지 않고 글로벌화 되지 않은 곳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설명이다.

"그 흔한 광고 간판도 없고 브랜딩도 없어요. 아마 100년 전 동아시아 국가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업이나 광고 같은 게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다른 도시들도 글로벌화 되기 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는 북한 호텔들은 기업이 아닌 당국이 운영하는 만큼 코로나 사태가 퍼진 지금에도 평양의 호텔에는 아마 전 직원이 다 근무를 서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금 모습이 우리가 역사 속 어디엔가 갖고 있는 모습과 비슷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북한 보통강호텔

"평양에 머무는 동안 북한 군대가 수백 대의 트럭을 이동시키느라 10분 동안 이동 못하고 기다리던 적이 있어요. 정말 엄청 많은 군대들을 봤죠. 이때 이 군대를 향해 열심히 깃발을 흔들던 여성들이 있었는데 아마 그걸 본 외부 사람들은 '저 거짓된 행동 봐라', '정말 가식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전 그렇게 보지 않아요. 그들에게 군대는 '셀럽' 같은 것이고, 이들이 지나가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거죠."

"북한에는 매우 정치적인 요소들이 많아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과거 집단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들 글로벌화 되고 개인주의화 됐기 때문에 북한이 매우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해요. 물론 북한이 독특한 건 맞지만 어떤 면에서는 북한의 지금 모습이 우리가 과거 역사 속에서 갖고 있던 어떤 면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서양인 떠난 자리, 중국 관광객 '가득'

한때 북한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2011년, 2012년에 평양에 방문했던 제임스는 그때 당시만해도 평양에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없으니 호텔도 거의 비어있었는데 아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북한 호텔'하면 생각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책 작업을 위해 평양을 찾은 지난해 봄에는 호텔이 완전히 다 차있는 상태였다. 다만 서양 관광객이 아니라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의 북한 여행 산업은 거의 중국 관광객들 위주로 돌아갔다.

"책에 나온 사진들을 보면 역시 북한 호텔엔 아무도 없구나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북한은 가이드 투어라서 다들 아침 8시에 일어나 바로 버스를 타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든요. 우린 개별 가이드를 고용해 호텔을 둘러봤기 때문에 사진 상에는 호텔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죠."

제임스는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관광 산업은 상당히 성장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서양인 관광객이 아닌, 중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니콜 역시 자신들이 호텔에 머무를 당시 다른 서양인은 독일인을 포함해 4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회상했다.

"중국 관광객들에게 북한에 왜 왔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100% 똑같은 말을 해요. '북한은 중국의 70년대 같다'는 답이죠. 북한을 방문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과거를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동독이나 러시아, 동유럽에서 오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비슷한 동기를 갖고 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서양 사람들은 북한만이 가진 독특함, 차별성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북한 양강호텔

북한 양강도호텔

통제 속에 발휘된 창의성

두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의 호텔에도 수영장이나 사우나 등 일반 호텔에 있는 시설들을 다 볼 수 있다. 다만 와이파이와 룸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북한 호텔은 기업이 아닌 당국이 운영하지만 호텔마다 일종의 브랜딩처럼 유니폼을 갖춰 입고 호텔 이름이 적힌 뱃지를 달고 있었다는 점은 그들의 눈에 흥미롭게 비춰졌다.

호텔의 내부 디자인도 두 사람의 눈에는 인상적이었다. 북한은 탑다운식의 의사 결정 구조이기 때문에 호텔 내부 구조에 있어서도 정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나름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얘기를 할 때 항상 고려호텔에 있는 노래방을 얘기하게 되는데 보기에 매우 이상해요. 조명이나 벽 무늬 이런 것들이 마치 70년대 같긴 한데 뭔가 북한이라는 나라와 대조적인 느낌이었거든요. 벽지나 테이블 밑에 푸른 불빛을 달아서 전체적으로 은은한 푸른 빛이 돌도록 했는데 탑다운 방식의 설계 속에서도 누군가 나름의 창의성적인 결정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죠."

"북한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영향이 덜하잖아요. 하지만 북한처럼 창의력이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에서도 개인의 창의성은 어떤 식으로든 발휘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 프랑스를 가봤거나 일본을 여행해 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닐텐데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싶었어요."

사진작가인 니콜은 가장 기억에 남는 호텔로 청년호텔을 꼽았다. 건축적인 면이나 건물 구조 등이 인상적이었다며 군대를 연상시키는 초록색의 색상과 커다란 돔 양식의 내부 인테리어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번 책의 글을 쓴 제임스는 창광산호텔을 언급했다. 아마도 서양 관광객들이 가장 못 가봤을 호텔이지만 리노베이션이 되지 않아 소비에트 건축물의 거친 느낌이 가장 잘 살아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평양의 호텔들도 내부 개조가 많이 이뤄졌는데 창광산호텔은 큼직한 로비와 대리석 장식 등 과거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제임스는 고려호텔 내부 조명이나 벽 무늬 등이 북한이라는 나라와 대조적인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북한 호텔 내 노래방

우리가 만난 북한 주민들

북한 관광은 기본적으로 가이드 투어이기 때문에 자유 시간이 거의 없고 모두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인다. 보통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가이드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데 가이드도 같은 호텔에 머문다. 보통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저녁이 되면 바를 간다든지 밖에 나가서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평양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제임스와 니콜은 이런 관광 특성 때문에 호텔에 있는 바나 노래방에 가면 북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접촉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고 전했다.

호주 출신의 제임스와 니콜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뒤 북한 호텔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북한 사람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주제만 피한다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예를 들어 군대, 지도자, 한국 전쟁 같은 것들이죠. 한국 이야기, 인간 관계,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들도 외부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하는데 이런 정치적인 부분, 민감한 부분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임스는 북한 사람들이 가장 얘기하기 좋아하는 주제는 단연 '통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자신의 조국이 분단됐다는 사실에 상당히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통일이 매우 가까이 와있는 목표라는 점을 많이 얘기했어요. 통일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고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그들은 외부 세력 때문에 통일을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임스는 북한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어딘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면 거의 다 통일에 대한 노래라고 했어요. 아리랑을 부르는 것도 봤는데 이들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떨어져있다고 느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갈망이 북한 사회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지금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 외에는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열망하는 공통의 목표라는 것이 없지만 북한 사람들은 '통일'에 있어 이런 점이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비극적인 건, 바깥 세상에 사는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통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먼 얘기라는 걸 알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현실적으로 더 가능한 일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겁니다. 나이가 많든 젊든, 북한 사람들의 공통된 열망은 '통일'이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독일의 경우보다도 더 요원한 일이라는 걸 아는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북한 호텔의 역설, 시각적 속임수

앞서 언급한대로 북한의 호텔은 전 세계 다른 호텔과 달리 비즈니스를 위한 곳이 아니다. 과거 러시아, 동독, 체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 정치적으로 가까운 나라들 사이에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이 있었고 교류도 많았다. 북한도 이들과 가까운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체제들이 사라졌고, 1989년 이후 이들 대부분의 국가들이 서구화됐다. 하지만 북한의 호텔 인프라는 여전히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호텔이 상업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제임스는 이렇게 많은 국제 관광 호텔을 갖고 있는 국가가 전혀 국제적이지 않은 것이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보다 많은 서구 관광객이 와주길 바라면서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치적으로도 여행이 쉽지 않은 상태를 고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북한 호텔들이 시각적 속임수(visual deceit)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관광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평양으로 어서오세요' 하면서도 국제적으로 노출된 건 전혀 없죠. 바로 그런 부분이 북한 호텔이 갖고 있는 '시각적 속임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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