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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건강: 사람마다 권태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이유

유독 남들보다 더 빨리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원인은 "은밀한 나르시시즘"이나 낮은 자제력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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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감을 느끼는 정도는 유전적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출처Getty Images

수백 개의 밸브가 요동치고 엔진에서는 굉음의 불협화음이 쏟아진다. 로켓 엔진에 불이 붙으며 폭발적인 추진력이 땅을 밀어낸다. 머릿속에는 지금 이 순간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비행사들에 따르면, 우주비행은 황홀한 경험이다. 하지만 1982년 우주비행을 떠난 발렌틴 레베데프에겐, 설렘이 오래가지 않았다. 우주정거장 살류트-7에서 7개월간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그는 불과 일주일만에 만사가 지루해졌다. 어쩌면 지구 저궤도를 통과하던 당시부터 그랬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일기에 "재미없는 일상이 시작됐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지루한 일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이 권태감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세탁이나 세금 납부 같은 일들을 즐겁다고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권태감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오랜 연구 결과,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나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제임스 댄커트는 온타리오주 워털루 대학에서 권태감을 연구한다. 그는 "권태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태감에 정말 잘 대처하는 사람들이 있죠."

2014년 버지니아 대학의 사회심리학자들이 몽상과 관련된 일련의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과정에서 참가자들을 15분 동안 홀로 방안에 남겨두자, 많은 이들(여성의 25%, 남성의 67%)이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자신에게 전기 자극을 가했다. 심지어 거의 200차례 이상 자신에게 전기 자극을 준 사람도 있었다.

권태감을 느껴서 특이한 행동을 일으킨 건 실험실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의 폐쇄 조치 속에서 3750년전 점토판에 기록된 메뉴로 바빌로니아 시대의 파티를 재현한 사람이나, 7년 전 학창시절의 시험지를 다시 풀어본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딱 보기에도 지루해 보이는 일들을 일부러 찾아가는 이들도 있다.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1986년 메인주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 27년 동안 모습을 감췄다. 그는 그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권태감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은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학자 세네카는 지인과 편지에서 "Qo usque eadem(똑같은 것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라며, "나는 새로운 것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보지도 않는다. 구역질이 날 정도"라고 썼다.

중세 시대에는 그리스어로 권태로 인한 공허감을 뜻하는 "아세디아(acedia)"가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권태감을 뜻하는 "보어덤(boredom)"이라는 영어 단어는 19세기 초에 나왔다. 이 단어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에 등장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도처에 권태감이 존재한다. 현대 사회의 전염병으로 묘사될 정도다. 지난 2016년, 프랑스에서 한 노동자가 "권태로 인한 피로"를 이유로 자신의 전 고용주에게 소송을 거는 사건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Z세대 사이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스마트폰 속의 앱을 스크롤하는 행위를 말하는 "휴대전화 권태감"이라는 용어도 나왔다. 아울러 요즘에는 반려동물이 권태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검사가 나왔을 정도다.

권태감 정의하기

캐나다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지루한 사람들만 지루해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출처Getty Images

어떤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권태감을 느끼는 반면, 어떤 이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어도 잘 지내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리학자마다 권태감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에 일부 연구자들은 권태감을 단순히 반복적인 업무를 했을 때 생기는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1986년에는 "권태감 척도"가 연구에 사용됐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기 쉽다"라는 문장에 동의하는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집중하기 쉽다는 것은 권태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으로, 권태감이 집중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요즘 심리학에선 권태감을 최소 5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보정적 권태감"은 권태감을 느끼면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반응적 권태감"은 권태감을 느끼며, 자신을 옭아맨 대상에 공격적 성향을 보인다. "탐색적 권태감"은 지루하거나 따분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출구를 찾는다.

"무관심한 권태감"은 권태감을 느껴, 주변의 모든 일에 관심을 끄고 평온한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 새롭게 나온 "심드렁한 권태감"은 기분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데, 권태감을 느끼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권태감은 두뇌에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댄커트와 심리학자 콜린 메리필드는 공동으로 두 남자가 빨래를 널고 있는 지루한 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그동안 MRI로 그들의 두뇌를 검사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권태감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멍한 상태나 공상에 빠졌을 때 활성화되는 두뇌 영역)"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댄커트는 "(이 영역은) 주변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만 반응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려견의 권태감 검사가 나왔다. 권태감은 개의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Getty Images

댄커트는 티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반응한다는 것은 권태를 느끼는 상태가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고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처럼, 권태감은 어쩌면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이 인지활동에 나타납니다. 의미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정신적 자원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거죠."

이를 통해 사람마다 권태감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반면, 혼자 있는 시간이 겨우 15분이었는데도 자신에게 전기자극을 주며 지루함을 달래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환경은 권태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을 찾아내기도 한다.

캐나다의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레베데프와 달리, 2012년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무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반복적인 일을 하고, 한정된 공간이었음에도 말이다.

해드필드는 여러 차례 "지루한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댄커트는 "해드필드 역시 권태감의 신호를 받지만, 그것에 대해 아주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주에 머무는 동안 해드필드는 우주선 배관정비 같은 활동에서도 의미를 찾곤 했다. 어렸을 때도 부모를 도와 지겨운 농장일을 할 때는 숨 오래 참기를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일을 끝마쳤다고 한다.

부정적인 측면

댄커트에 따르면 권태감을 잘 느끼는 것은 충동적 행동, 약물 남용, 도박 중독, 강박적인 휴대전화 사용, 우울증, 정신적 외상 등 여러가지 문제와 연관돼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인격 장애와도 관련된 심각한 것들이다.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부모의 농장에서 지루한 일을 하는 동안 숨 오래 참기를 하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출처Getty Images

권태감을 느끼는 것과 관련된 원인중 하나가 나르시시즘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부풀려 생각하는 일반적인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은밀한 나르시시즘"이다. 이런 타입의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댄커트는 "'만약 세상이 알아만 준다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아직 나르시시즘과 권태감의 연결관계가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창기 이론에 따르면, 타고난 능력과 목표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멸과 권태감이 나타난다. 또 다른 설명은 '은밀한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갈구하던 인정을 받고 나면, 곧 흥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권태감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권태감은 나르시시즘을 봉인하면서 생기는 불쾌한 부작용 중 하나다. 때문에 은밀한 나르시시스트들은 행복감이 낮은 반면, 공공연한 나르시스트들은 행복감과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권태감과 관련된 다른 성격적 특징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 죄책감, 질투심을 동반하는 신경질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권태감을 잘 느낀다는 것은 나쁜 징조일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댄커트는 "이러한 인과관계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태감과 우울증의 관계, 권태감이 유전적 요인인지 등 여러 주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댄커트는 현재 권태감과 유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아직 근거를 얻지 못했지만, 현재는 권태감이 개인 내부에 있는 어떤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댄커트는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권태감은 학습된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의 결합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해드필드 역시 어린 시절에 권태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무리 권태에 빠지기 쉬운 사람도 훈련을 통해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후에 권태감이 찾아왔을 때, 레베데프와 해드필드의 상반된 사례를 떠올려보라. 권태는 단지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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