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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비동의 강간죄' 대자보 화제.. 다른 나라 '강간' 기준은?

많은 나라에서 강간죄 인정 기준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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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성

출처Getty Images

한국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 노란색 대자보가 붙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일 "비동의 강간죄에 관심을 가져 달라"며 붙인 것이다.

'국회 보좌진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대자보에서 류 의원은 자신이 추진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 "강간의 정의를 폭행과 협박으로 한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동의 여부', '위계와 위력'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썼다.

성관계 과정에서 강압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다면 처벌할 수 있게 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한국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성기 삽입이 없는 유사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다.

류호정 의원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

출처류호정 의원실

출처류호정 의원실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꾸는 '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은 정의당의 21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일각에선 '피해자의 동의와 가해자의 동의 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개정안 찬성 진영에선 여러가지 정황을 모두 따져 판단하는 만큼 무고한 처벌은 없을 것이라고 맞선다.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토론은 한국 밖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어떤 경우에 강간죄를 인정하는지 알아봤다.

영국 "동의 없으면 강간"

영국 법은 비교적 명확하게 '동의가 없는 성기 삽입은 강간'이라고 규정한다.

영국의 성범죄법은 강간(Rape)을 남성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타인의 성기나 항문, 입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한 행위로 정의한다.

피해자가 삽입에 동의(Consent)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합리적 믿음(Reasonable belief)'이 없는 상태면 강간이 인정된다.

여기서의 '합리적 믿음'에 대한 법적 판단은 당시 상황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 이뤄진다.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고소인이 아닌 피고인, 즉 가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강간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이 법은 2004년 5월부터 시행됐다.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국 내에서도 어떤 경우에 강간이 인정되는지를 놓고 혼란이 적지 않다.

강 위 다리에 서 있는 여성의 뒷모습

출처Getty Images

2018년 여성 인권 단체 EVAW의 설문조사에선 남성 응답자의 3분의 1, 여성 응답자 5분의 1이 "여성이 데이트 중 남성에게 추파를 던졌다면 대개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6%는 "여성이 만취했거나 잠들어 있었다면 강간이 아니다"라고 응답했고, 또다른 5%는 이같은 경우에 "강간이 성립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성관계 도중 상대방 동의 없이 콘돔을 빼는 행위에 대해선 40%가 "강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당시 EVAW는 "상당한 비율의 영국 성인이 강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편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동의 없이 남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엔 강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스페인 'Yes만 Yes' 법 추진

스페인 법에서의 강간은 폭력이나 협박이 있어야 인정된다.

그러나 지난 3월 스페인 정부는 이같은 현행법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로지 Yes만 Yes일 뿐(Only Yes means Yes)'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개정안엔 상대방의 동의 여부가 없으면 강간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다.

앞서 벌어진 이른바 '팜플로나 재판'은 법 개정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를 끌어낸 사건 중 하나다.

'팜플로나 재판' 시위 당시 한 여성이 'Yes만 Yes를 의미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Getty Images

2016년 7월 스페인 북부 나바라주의 도시 팜플로나에선 한 18세 여성이 군인 등 남성 5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범행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소 20년형을 구형했지만 1심과 2심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위협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강간보다 형량이 낮은 '성적 학대(Sexual assault)' 혐의만 인정돼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나바라주 법원의 이같은 판결 직후 팜플로나에선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며칠간 이어졌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지난해 대법원은 하급 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가해자들에게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프랑스 "폭력, 강압, 협박, 기습 있어야 강간"

프랑스 법도 폭력과 강압, 협박, 기습 등의 상황이 전제돼야 강간으로 인정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8년 2월 파리에서 열린 한 재판은 이같은 법에 대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재판대에 선 29살 남성은 11살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앞선 수사에서 검찰은 강간 대신 성적 학대 혐의만 적용해 남성을 재판에 넘겼다.

성관계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는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게 검찰 판단의 이유였다.

여성의 뒷모습

출처Getty Images

당시 판사는 "가해자에겐 분명히 강간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며 상급 법원에 결정을 맡겼다.

같은해 3월 프랑스 정부는 "성관계 동의 가능 최소 연령을 15세로 제한하고 이보다 어린 아동 청소년과의 성관계는 무조건 강간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가 15세 이상인 경우의 강간죄 구성 요건은 여전하다.

유엔여성기구 "동의의 문제엔 '애매함' 없어"

현재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인정하는 유럽 국가는 영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독일, 벨기에 정도다.

개정안을 추진 중인 나라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가 논란 속에서도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대한 토론이 이어져 왔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도 일부 의원이 위력에 의한 성관계 피해를 방지하겠다며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제안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진 못했다.

유엔여성기구는 지난해 11월 "'모르겠다'는 말이나 침묵은 결코 동의가 아니다"라면서 "동의의 문제에 있어 애매모호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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